張操來하여 致足下四月十八日書하니 始復去年十一月書라
言
之說及親戚相知之道
하니 是
는 吾於足下固具焉不疑
어늘
徒親戚은 不過欲其勤讀書하여 決科求仕하고 不爲大過니 如斯已矣라
告之而不更則憂하고 憂則思復之하며 復之而又不更則悲하나니 悲則憐之라
徒相知면 則思責以堯舜孔子所傳者하여 就其道하고 施於物이니 斯已矣니라
告之而不更則疑하고 疑則思復之하며 復之而又不更則去之하나니
吾於足下固具是二道하니 雖百復之亦將不已커든 況一二敢怠於言乎리오
果爲車柔外剛中이면 則未必不爲弊車요 果爲人柔外剛中이면 則未必不爲恒人이라
夫剛柔無常位하여 皆宜存乎中이라가 有召焉者在外면 則出應之라
必曰外恒柔
라하면 則
와 及爲
과 以
와 을 君子其不克歟
아
中恒剛
이면 則當
하고 하며 之事
를 君子其卒病歟
아
吾以爲剛柔同體하여 應變若化니 然後能志乎道也니라
內可以守하고 外可以行其道를 吾以爲至矣어늘 而子不欲焉하니 是吾所以惕惕然憂且疑也니라
書之言堯曰
이라하고 言舜曰
이라하고 라하고 이라하고 高宗曰
하라하고
武王引天下誅紂
하고 而代之位
하니 其意宜肆
어늘 而
이라하고
周公踐天子之位
하여 하고 孔子曰
이라하고 其弟子言曰
라하니라
聖人能求諸中하여 以厲乎己하고 久則安樂之矣어늘 子則肆之하니 其所以異乎聖者는 在是決也니라
若果以聖與我異類면 則自堯舜以下는 皆宜縱目卬鼻와 四手八足과 鱗毛羽鬣으로 飛走變化 然後乃可라
若然者면 聖自聖하고 賢自賢하고 衆人自衆人하여 咸任其意니 又何以作言語立道理하여 千百年天下傳道之리오
是皆無益於世하고 獨遺好事者藻繢文字하여 以矜世取譽니 聖人不足重也니라
吾以子近上智어늘 今其言曰 自度不可能也라하니 則子果不能爲中人以上耶아
孔子七十而縱心
하니 彼其縱之也
는 不踰矩而後縱之
하니라
今夫狙猴之處山에 叫呼跳梁하여 其輕躁狠戾異甚이나 然得而縶之면 未半日則定坐하여 求食唯人之爲制라
其或優人得之하여 加鞭箠하고 狎而擾焉하면 跪起趨走를 咸能爲人所爲者하고 未有一焉狂奔掣頓하고 踣弊自絶이라
今子有賢人之資하되 反不肯爲狂之克念者하여 而曰我不能이라하니 捨子其孰能乎아
今子曰 我不能爲車之說이라 但當則法聖道而內無愧라야 乃可長久라하니
吾以內可以守하고 外可以行其道告子어늘 今子曰 我不能翦翦拘拘하여 以同世取榮이라하니 吾豈敎子爲翦翦拘拘者哉아
吾之所云者는 其道自堯舜禹湯高宗文王武王周公孔子皆由之어늘 而子不謂聖道하니 抑以吾爲與世同波하여 工爲翦翦拘拘者아
以是敎己라하여 固迷吾文하고 而懸定吾意하니 甚不然也라
又子自言 處衆中偪仄擾攘하여 欲棄去不敢하여 猶勉强與之居라하니
忍汚雜囂譁하여 尙可恭其體貌하고 遜其言辭어늘 何故不可吾之說고
其旨在於恭寬退讓하여 以售聖人之道하고 及乎人이니 如斯而已矣니라
慢其貌하고 肆其志하여 茫洋而後言하고 偃蹇而後行하며 道人是非하여 不顧齒類면 人皆心非之하여 曰 是禮不足者라하고 甚且見罵하리니
故曰
라하고 이라하니 不幸而及於危亂
이라도 期勿禍而已耳
니라
今子書數千言이 皆未及此하니 則學古道하고 爲古辭하여 尨然而措於世라도 其卒果何爲乎아
是之不爲
하고 而
以爲慕
하여 棄大而錄小
하며 賤本而貴末
하여 夸世而釣奇
하고 苟求知於後世
하여 以聖人之道爲不若二子
하니 僕以爲過矣
라하노라
彼甘羅者는 左右反覆하여 得利棄信하여 使秦背燕之親己而反與趙合하여 以致危於燕이라
天下是以益知秦無禮不信하여 視函谷關若虎豹之窟하니 羅之徒實使然也니라
彼終軍者
는 誕譎險薄
하여 不能以道匡漢主好戰之志
하고 視天下之勞
를 若觀蟻之移穴
하여 翫而不戚
하고 人之死於
者 赫然千里
하되 不能諫而又縱踴之
하고
己則決起奮怒
하여 掉强越
하고 하여 欲蠱奪人之國
이라가 智不能斷而俱死焉
하니
是無異
之遇嗾
에 呀呀而走
하여 不顧險阻
하고 唯嗾者之從
하니 何無己之心也
오
主上以聖明으로 進有道하여 興大化하니 枯槁伏匿縲錮之士도 皆思踴躍洗沐하여 期輔堯舜이라
萬一有所不及이라도 丈人方用德藝達於邦家하여 爲大官하여 以立於天下하니 吾子雖欲爲處나 何可得也리오
將出於世而仕어늘 未二十而任其心하니 吾爲子不取也로라
好搏虎
라가 卒爲善士
하고 狂橫
이라가 一旦改節
하니 皆老而自克
이라
今子素善士
요 年又甚少
하여 血氣未定
이어늘 而忽欲爲
하여 守而不化
하여 不肯入堯舜之道
하니 此甚未可也
니라
觀過而知仁하니 彌見吾子之方其中也라 其乏者는 獨外之圓耳라
苟不適其道면 則肆與佞同하니 山雖高하고 水雖下라도 其爲險而害也는 要之不異라
足下當取吾說車하여 申而復之니 非爲佞而利於險也明矣리라
吾子惡乎佞而恭且不欲이어늘 今吾又以圓告子하니 則圓之爲號는 固子之所宜甚惡
固若輪焉이니 非特於可進也에 銳而不滯이요 亦將於可退也에 安而不挫라
吾年十七求進士하여 四年乃得擧하고 二十四求博學宏詞科하여 二年乃得仕하니
當時志氣類足下하여 時遭訕罵詬辱하니 不爲之面이면 則爲之背라
積八九年에 日思摧其形하고 鋤其氣하여 雖甚自折挫나 然已得號爲狂疎人矣라
及爲藍田尉하여 留府庭하여는 旦暮走謁於大官堂下 與卒伍無別하고 居曹則俗吏滿前에 更說買賣하고 商算贏縮하니라
及爲御史郞官하여는 自以登朝廷에 利害益大라하여 愈恐懼하여 思欲不失色於人하니
猶以前時遭狂疎輕薄之號 旣聞於人하고 爲恭讓未洽이라 故罪至而無所明之하고 到永州七年矣라
蚤夜遑遑하여 追思咎過하여 往來甚熟하고 講堯舜孔子之道亦熟하여
今吾先盡陳者는 不欲足下如吾更訕辱하고 被稱號하여 已不信於世하고 而後知慕中道하여 費力而多害라 故勤勤焉云爾而不已也로라
令僕專專爲掩匿覆蓋之하여 愼勿與不知者道하니 此又非也니라
凡吾與子往復은 皆爲言道니 道固公物이라 非可私而有니라
假令子之言非是면 則子當自求暴揚之하여 使人皆得刺列하고 卒采其可者하여 以正乎己니 然後道可顯達也리라
今乃專欲覆蓋掩匿하니 是固自任其志하고 而不求益者之爲也라
但當把鋤荷鍤하여 決溪泉爲圃以給茹하고 其隙則浚溝池하고 藝樹木하며 行歌坐釣하여 望靑天白雲이니 以此爲適이면 亦足老死無戚戚者라
時時讀書하여 不忘聖人之道하고 己不能用이라도 有我信者면 則以告之하리라
丈人日夕還北闕이면 吾待子郭南亭上하리니 期口言不久矣라
05. 수레 이야기의 의의를 해석한 것에 대해 양회지楊誨之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
2천 자에 이르는 문장이 처음부터 끝까지 한 줄의 실처럼 이어졌다.
장조張操가 와서 족하足下의 4월 18일 편지를 전해주기에 뜯어보고 지난해 11월에 보낸 편지의 답장이 이제야 온 것을 알았네.
〈내가 이전 편지에서〉 〈설거說車〉에 관한 설을 말하면서 친척과 벗에 대한 도리를 언급하였는데, 이 두 가지 도리를 내가 족하足下에 대해 다 갖추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네.
그런데 또 어찌 해를 넘겨가며 반론하여 나를 이기려 하는가?
그저 친척일 경우에는, 상대가 부지런히 책을 읽어 과거科擧에 급제하여 벼슬하고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를 바라는 정도에 지나지 않으니, 이 정도일 뿐이네.
이 말을 고했는데도 고치지 않으면 걱정하고, 걱정하면 다시 말해볼까 생각하고, 다시 말해도 고치지 않으면 슬퍼하니 슬퍼하면 그가 불쌍해지네.
어찌 요堯‧순舜‧공자孔子가 전한 도道를 얻도록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일이 있겠는가.
그저 벗일 경우에는, 상대가 요堯‧순舜‧공자孔子가 전해오는 도를 얻도록 요구하여 그 도를 성취하고 만물에 베풀 것을 생각하니, 이 정도일 뿐이네.
이 말을 고했는데도 고치지 않으면 의심하고, 의심하면 다시 말해볼까 생각하고, 다시 말해도 고치지 않으면 그를 버리네.
어찌 걱정하고 슬퍼하고 또 불쌍해하는 마음을 그에게 억지로 적용할 일이 있겠는가.
나는 족하足下에 대해 본디 이 두 가지 도리를 모두 갖추고 있으니, 고해주는 일을 비록 백 번을 반복하더라도 그만두지 않을 것인데, 하물며 한두 번 말하는 정도를 감히 게을리 하겠는가.
내가 수레에 대해서 말한 의도는 안으로는 도道를 지킬 수 있고 밖으로는 그 도를 행할 수 있기 때문이었네.
그런데 지금 그대는 이것을 ‘외유내강外柔內剛’이라고 말하였네.
그대는 어찌하여 수레의 이치를 허술하게 취했는가.
과연 수레가 외유내강하게 되면 사용하지 못할 망가진 수레가 되지 않을 수 없고, 과연 사람이 외유내강하게 되면 변변치 않은 평범한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네.
대체로 강剛과 유柔는 일정한 자리가 없이 모두 내면에 존재해 있다가 밖에서 부르는 것이 있으면 나가서 응하는 것이네.
응하는 것이 모두 도리에 적합한 것을 시중時中이라 하니, 그런 다음에 군자君子라고 이름할 수 있다네.
밖은 항상 부드러워야 한다고 고집한다면, 공자孔子가 행한 협곡夾谷에서의 일이나 노魯 정공定公이 무자武子의 누대로 피신하는 경우를 만났을 때, 그리고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군주를 위해 충절忠節을 바치는 일이며, 잘못된 군주의 마음을 고치는 일과 백성을 엄숙하게 대하는 일 등을 군자가 능히 이겨내지 못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안이 항상 강하다면, 기운을 가라앉히고 안색을 부드럽게 하며 용의를 단정히 하고 태도를 공순히 하며, 무고하게 벌 받는 사람을 가련하게 여기고 죄수를 부드럽게 신문하는 일 등을 군자가 끝내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지 않겠는가.
나는 강함과 부드러움이 한 몸이 되어 임기응변臨機應變을 신神처럼 완전하게 해낸 다음에야 능히 성인의 도에 뜻을 둘 수가 있다고 생각하네.
지금 그대의 뜻은 이에 가깝지만 내세우는 말은 틀렸네.
안으로는 도를 지킬 수 있고 밖으로는 그 도를 행할 수 있는 것을 나는 으뜸으로 여기는데 그대는 수긍하려 하지 않으니, 이것이 내가 안절부절 걱정하고 의심하는 이유이네.
이제 거듭 그대에게 옛 성인의 도를 말하고자 하네.
《서경書經》에서 요堯임금은 “진실로 공손하고 능히 겸양했다.”고 하고, 순舜임금은 “온화하고 공손하며 진실하고 독실했다.”고 하였으며, 우禹는 좋은 말을 들으면 절을 하였고, 탕湯은 망설이지 않고 허물을 고쳤고, 고종高宗은 “네 마음을 열어 나의 마음을 윤택하게 하라.”고 하였네.
그리고 문왕文王은 조심하고 신중하며 〈정무에 매진하느라〉 해가 기울도록 밥을 먹을 겨를이 없었고 〈좋은 계책이 떠오르면〉 앉아서 아침을 기다렸네.
무왕武王은 천하의 제후들을 이끌고서 주紂를 정벌하고 자기가 천자 자리에 대신 앉았으니 그의 마음이 방자할 만하건만 “나 소자小子는 감히 정무를 게을리하고 안일함을 즐길 수 없다.” 했네.
주공周公은 천자의 직무를 대행하는 자리에 올라서 〈어진 인재를 끊임없이 접견하느라 밥 먹을 때나 머리 감을 때 선비가 찾아오면〉 감던 머리를 움켜쥐고 먹던 밥을 뱉었으며, 공자孔子는 “말이 충성스럽고 진실하며 행실이 독실하고 신중해야 한다.”고 했고, 그의 제자는 “선생께서는 온화하고 선량하고 엄숙하고 검소하고 겸양하는 덕으로 군주가 예우해주는 것을 얻었다.”고 하였네.
지금 그대는 “스스로 헤아려볼 때 나는 불가능하다.”고 했네.
그렇다면 요堯‧순舜부터 그 이하 사람들은 그대와 과연 다른 부류인가?
자유롭고 편한 것을 좋아하고 구속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비록 성인聖人이라도 그대와 같네.
그러나 성인聖人은 중용中庸으로부터 도를 구하여 자기에게 엄격할 수 있고 오래 되면 편안하고 즐거운데 그대는 방자하여 거리낌이 없으니, 그대가 성인聖人과 다른 것은 이 점에 있는 것이 분명하네.
만약 과연 성인聖人과 내가 다른 부류라고 여긴다면, 요堯‧순舜부터 그 이하 사람들은 모두 눈자위가 세로이고 콧구멍이 위로 트이며 손이 넷이고 발이 여덟이며 비늘, 털, 깃, 갈기가 붙어 있어 달리고 날아다니며 형태가 변화해야 마땅할 것이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역시 사람일 뿐인데 그대는 옛 성인聖人들을 모두 부정할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성인聖人은 본래부터 성인이고 현인은 본래부터 현인이고 보통 사람은 본래부터 보통 사람이어서 모두 자기 뜻대로 할 것이니, 또 어찌 저술을 하고 도리를 세워 천백 년 후대 천하에 전해지게 했겠는가.
이 모든 것이 세상에는 무익하고 오직 호사가들이 문자를 수식하여 세상에 자랑하고 명예를 취하는 수단으로만 남겨졌으니 성인은 중시할 대상이 못 될 것이네.
그러므로 “중등 이상인 사람은 상등의 이치를 말해줄 수 있다.”고 하고, 또 “상지上智와 하우下愚는 변하지 않는다.”고 하였네.
나는 그대가 상지上智에 가깝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그대 말이 “스스로 헤아려볼 때 나는 불가능하다.”라고 하니, 그렇다면 그대는 과연 중등 이상인 사람이 될 수 없단 말인가?
내가 걱정하고 의문을 가지는 것은 이 때문이네.
유자儒者가 모범으로 취하는 대상 중에 공자孔子보다 위대한 자는 없네.
공자孔子는 일흔이 되어서야 마음이 내키는 대로 놓아두었는데, 그가 마음이 내키는 대로 놓아둔 것은 법도法度를 벗어나지 않는 것을 헤아린 뒤에 놓아둔 것이었네.
스스로 헤아려볼 때 과연 능히 법도를 벗어나지 않는가?
그래서 그만 마음을 풀어놓는 것을 좋아하는가?
부열傅說은 “광인狂人이라도 바른 마음을 가지면 성인聖人이 될 수 있다.”고 했네.
지금 저 원숭이들이 산에 있을 때는 소리치고 떠들면서 이리저리 뛰어다녀 경박하고 조급하고 거칠고 사납기 짝이 없지만 잡아서 묶어놓으면 반나절도 채 안 되어 조용히 앉아서 먹을 것을 달라며 오로지 사람이 시키는 대로 따른다네.
간혹 조련하는 사람이 데려가 매도 때리고 친근하게 어르고 하면, 무릎을 꿇고 일어나고 달리고 하는 동작을 모두 사람이 하라는 대로 하지, 어느 한 마리도 제멋대로 날뛰거나 쓰러져 까무라치는 놈이 없다네.
그러므로 나는 광인狂人도 성인聖人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믿네.
지금 그대는 현인賢人의 자질을 지니고 있으면서 도리어 광인狂人도 바른 마음을 갖는 그런 노력을 하려 하지 않고 “나는 할 수 없다.”라고 하고 있으니, 그대가 아니면 과연 누가 할 수 있겠는가.
이는 맹자孟子의 이른바 “하지 않는 것이지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라는 경우이네.
대체로 내가 보낸 편지와 〈설거說車〉의 내용은 모두 성인聖人의 도이네.
그런데 지금 그대는 “나는 수레 이야기의 내용을 실천할 수는 없고, 다만 성인聖人의 도를 본받되 안으로 부끄러운 마음이 없어야만 비로소 그 도가 오래 유지될 수 있다.”고 했네.
거참, 내가 말한 수레 이야기가 과연 성인聖人의 도가 될 수 없단 말인가?
그리고 나는 안으로는 도를 지킬 수 있고 밖으로는 도를 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그대에게 고했는데, 지금 그대는 “나는 남의 비위를 맞춰가며 굽실대면서 세상과 영합하여 영예榮譽를 취하는 일은 못한다.”고 하니, 내가 어찌 그대에게 남의 비위를 맞춰가며 굽실대라고 했는가?
그대는 왜 나의 수레 이야기를 자세히 살피지 않았는가?
내가 말한 도는 요堯‧순舜‧우禹‧탕湯‧고종高宗‧문왕文王‧무왕武王‧주공周公‧공자孔子에 이르기까지 모두 따랐던 것인데 그대는 성인聖人의 도라고 하지 않으니, 그렇다면 나를 세상과 어울려 남의 비위를 맞춰가며 굽실대는 짓을 잘하는 사람으로 보았는가?
이런 내가 자기를 가르친 것이라고 생각하여 내 글을 이해하지 못하고 내 마음을 멋대로 단정하였는데, 그것은 전혀 그렇지 않네.
〈혹시 그렇다 하더라도〉 성인聖人은 어떤 사람이 문제가 있다 하여 그가 한 말까지 폐기하지는 않는다네.
내가 비록 젊었을 때 세상과 어울리긴 했으나 남의 비위를 맞춰가며 굽실댄 적은 없네.
또 그대가 하는 말이 “대중들 속에 처하여 바쁘게 살면서 이들을 버리고 떠나고 싶어도 감히 그러지 못하고 억지로 함께 지내고 있다.”고 하였네.
정말 그럴 수 있다면, 어찌 수레 이야기의 내용을 실천하지 못하는가?
잡스럽고 어지러운 세태世態를 수용하여 오히려 태도를 공손히 하고 말투를 겸손히 하면서 무엇 때문에 내 이야기가 안 된다는 건가?
나는 일찍이 아첨阿諂과 위선僞善을 행한 적이 없네.
그 뜻은 공손하고 관대하고 물러나고 양보함으로써 성인聖人의 도를 행하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미치도록 하는 데에 있으니, 그저 이런 것일 뿐이네.
요堯‧순舜은 겸양謙讓하였고, 우禹‧탕湯‧고종高宗은 경계警戒하였고, 문왕文王은 조심操心하였고, 무왕武王은 감히 태만怠慢함과 안일安逸함을 즐기지 않았고, 주공周公은 밥 먹을 때나 머리 감을 때 선비가 찾아오면 감던 머리를 움켜쥐고 먹던 밥을 뱉었고, 공자孔子는 69살까지는 마음이 내키는 대로 행동하지 않았네.
이상 7, 8명의 성인聖人이 한 행동이 이와 같았으나 어찌 항상 마음에 부끄러움이 있었겠는가.
반면에 오만한 태도와 방자한 생각을 지녀 허풍을 떨면서 말하고 거들먹거리면서 행동하며 남의 장단점을 말하고 동류同類를 돌아보지 않으면 사람들이 모두 마음속으로 “이 사람은 예의禮義가 없는 자이다.”라고 비난하고 심지어 욕까지 할 것이네.
성인聖人이 예의를 차리고 겸양하는 것이 과연 위선을 위한 것인가, 아첨을 위한 것인가?
지금 그대는 또 험한 길을 가는 것이 수레의 죄라고 여기고 있네.
수레가 길을 가는데 어찌 험한 길을 가는 것을 즐거워하겠는가.
어쩔 수 없이 험한 길에 이르더라도 넘어지지 않기만을 기대할 뿐이네.
군자君子 또한 그와 마찬가지여서 위험을 무릅쓰고 이익利益을 추구하지 않네.
그러므로 “위태로운 나라에 들어가지 않고, 어지러운 나라에 살지 않는다.” 하고, “나라에 도가 없을 때에는 그의 침묵沈黙이 족히 난세亂世에 살아남을 수 있다.”라고 하였으니, 불행히 위험하고 어지러운 때를 만나더라도 화가 없기만을 기대할 뿐이라네.
그리고 그대는 은택이 만물에 미치고 도를 행하는 것을 옳다고 보는가, 그르다고 보는가?
이윤伊尹은 백성을 살리는 것을 자기의 임무로 여겼고, 관중管仲은 몸에 향을 바르고 목욕을 하고 나서 천하를 제패하였으니, 공자孔子가 어질게 여겼네.
군자가 도를 행함에 있어 이것 말고 더 큰 것은 분명히 없을 것이네.
그런데 지금 그대 편지는 수천 자가 모두 이것을 언급하지 않았으니, 옛 도道를 배우고 옛 문장文章을 구사하여 거창하게 세상에 베풀더라도 그것을 과연 어디에 쓸 것인가.
이 〈천하를 위하는 도〉를 추구하지 않고 감라甘羅와 종군終軍을 흠모하여 큰 것을 버리고 작은 것을 취하며, 근본根本을 경시하고 말단末端을 귀하게 여기면서 세상에 재능을 과시하고 명예를 낚아 후세에 이름이 알려지기를 추구한 나머지 성인聖人의 도가 저 두 사람만 못하다고 여기니, 나는 잘못이라고 생각하네.
저 감라甘羅라는 자는 이리저리 두리번거리고 이랬다저랬다 변하면서 이익利益을 얻고 신의信義를 버려, 진秦나라로 하여금 친하게 지내던 연燕나라를 등지고 도리어 조趙나라와 연합하여 연燕나라가 위험에 빠지게 했네.
천하가 이로써 진秦나라가 무례하고 신의가 없음을 더욱 알게 되고, 함곡관函谷關을 마치 호랑이굴처럼 보게 되었으니, 감라甘羅의 무리가 사실 그렇게 만든 것이네.
그런데 그대가 흠모하다니, 세상에 재능을 과시하려는 것이 아닌가?
저 종군終軍이라는 자는 간교하고 경박하여 전쟁을 좋아하는 한漢 무제武帝의 마음을 바로잡지 못하고, 천하 사람들이 수고하는 것 보기를 마치 개미가 구멍을 옮겨가는 것처럼 태연하게 여기고 불쌍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호월胡越 땅에서 죽은 자들이 천릿길에 죽 벌여 있어도 간하지 못하고 오히려 장려하였네.
그리고 자기는 결연히 일어나 노기를 품고 강한 월越을 뒤흔들기 위해 음탕한 자를 끼고 늙은 부인을 매개체로 삼아 남의 나라를 고혹시켜 빼앗으려 했다가 지혜가 형세를 판단하지 못해 함께 죽었네.
이는 노구盧狗가 조련사를 만나면 멍멍거리고 달리며 위험을 살피지 않고 오직 조련사가 시키는 대로 따르는 것과 같으니, 어쩌면 그리도 자기의 주견이 없단 말인가.
그런데 그대 같은 사람이 흠모하다니, 큰 명예를 낚으려는 게 아닌가?
두 소인小人(감라甘羅와 종군終軍)의 길을 나는 그대가 말하지 않기를 바라네.
공자孔子는 “이는 명예이지 달達이 아니다.”라고 했네.
두 소인이 공자孔子의 시대에 살았다면 금장琴張이나 목피牧皮 같은 광자狂者의 대열에도 끼지 못했을 것이니, 이는 진정 그대가 목표로 삼을 대상이 아니네.
또한 그대가 세상에 취하려는 것은 은거隱居의 태도인가, 출사出仕의 태도인가?
주상主上께서 현명하신 덕으로 도가 있는 자를 등용하여 큰 교화를 일으키려 하시므로, 바짝 마른 모습으로 숨어 있거나 죄에 걸려 유폐된 선비도 모두 분발하여 몸을 씻고 세상에 나가 요堯‧순舜 같으신 군주를 보좌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네.
만일 그대가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해도 장인어른께서 바야흐로 덕망과 재능이 나라에 알려져 고관高官이 되어서 천하에 우뚝 서게 될 것이니, 그대가 비록 은거하고자 한다 해도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장차 세상에 나아가 벼슬할 것인데 아직 나이 스물도 안 되어 방임하려고 하다니, 나는 그대를 위해 그것을 인정하지 않네.
풍부馮婦는 범을 때려잡기를 좋아했는데 마침내 어진 선비가 되었고, 주처周處는 제멋대로 횡포를 부리다가 어느 날 태도를 바꾸었으니, 모두 늙어서도 자신을 이겼네.
지금 그대는 본디 어진 선비이며 나이 또한 매우 젊어 혈기가 아직 안정되지 않았는데, 갑자기 원함阮咸과 혜강嵇康이 했던 행위를 따라 지키며 바뀌지 않으려 하고 요堯‧순舜의 길로 들어서려고 하지 않으니, 이는 정말 안 되는 것이네.
내 생각에 족하足下가 이렇게 말한 것은 아첨을 유달리 증오하여 공손하게 구는 것이 달갑지 않기 때문일 뿐이네.
어느 점에서 실수했는지를 보아서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으니, 그대가 안은 바르다는 것을 더욱 알게 되었으며, 부족한 것은 다만 외면의 원만함뿐이라네.
굴원屈原이 “뜨거운 국에 덴 사람은 찬 나물도 불어서 먹는다.”고 했었는데, 그대도 이와 비슷한 것 아닌가?
아첨을 증오하는 것이 지나친 나머지 공손함이 도리어 죄를 얻은 것이네.
성인聖人이 중용中庸을 귀하게 여기는 이유는 그때그때 법도에 맞게 할 수 있기 때문이네.
만약 그 법도에 맞지 않는다면 방종放縱과 아첨阿諂이 다 같은 것이니, 산이 비록 높고 물이 비록 낮아도 위험하고 해가 되는 것은 다르지 않네.
족하足下는 마땅히 나의 〈설거說車〉를 꺼내 거듭 반복해서 봐야 하니, 아첨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험난한 길을 뚫고 나가는 데에 이로운 방법임을 분명히 알게 될 것이네.
그대가 아첨을 증오하여 공손함조차 행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이제 내가 또 원만함을 추구하라고 그대에게 말하니, 원만함이란 말은 참으로 그대가 매우 증오하는 것이 마땅하네.
그러나 내가 말하는 원만함은 세속世俗에서 적당히 어울리며 자기에게 이익이 돌아오게 하는 것과는 다르네.
진정 수레의 바퀴와 같아야 한다는 말이니, 나아갈 수 있을 때 막힘없이 빠르게 나아갈 수 있을 뿐 아니라, 뒤로 물러나야 할 때 좌절하지 않고 안정되게 물러날 수도 있네.
옥고리처럼 끊임없이 돌자는 것이고 탄환처럼 낮은 곳으로 계속 굴러 내려가자는 것이 아니네.
건괘乾卦의 기상처럼 씩씩하게 움직이고, 이괘離卦의 의미처럼 자연스럽게 어울려 나아가야 하는데, 그러하기 위해서는 어찌 원만함으로 험난함을 극복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나이 열일곱에 진사進士에 응시하기 시작하여 4년 만에 합격하였고, 스물넷에 박학굉사과博學宏詞科에 응시하기 시작해서 2년 만에 출사할 수 있게 되었네.
그 사이 함께 어울렸던 보통 사람들이 수백 명이었네.
그 당시 포부와 혈기가 족하足下와 비슷해서 수시로 비난과 모욕을 당했는데, 면전에서 당하지 않으면 등뒤에서 당했었네.
이렇게 8, 9년 지나면서 날마다 태도를 잡아 꺾고 기질을 없애기 위해 비록 스스로 매우 억눌렀지만,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이미 받고 있었네.
남전위藍田尉가 되어 공당公堂에 머무를 때는 아침저녁으로 고관高官의 당堂 아래 달려가 배알하는 것이 군졸들과 다를 바 없었고, 관아에 있을 때는 많은 속리俗吏들과 물건을 사고파는 일을 논하고 이익의 손익을 계산하였네.
그러면서 또 2년 동안 이렇게 혈기를 잡아 눌렀으나 아무래도 제거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노자老子》의 “빛을 감추고 세속에 섞이라.”는 가르침을 더 깊이 배웠네.
그 결과 스스로 이제는 되었다고 여겼으나 경박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이미 받고 있었네.
어사낭관御史郞官이 되어서는 내심 조정에 오르면 〈나의 언행言行에 따른〉 이해관계가 더욱 클 것이란 생각에, 한층 더 두려워하면서 사람들로부터 나의 인격을 잃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였네.
그래서 언행을 더욱 경계하고 신중히 하였지만 끝내 연루되어 쫓겨나는 신세를 면하지 못했네.
〈내가 그처럼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전에 제멋대로이고 경박하다는 평가가 이미 사람들에게 알려진데에다, 공손하고 겸양하는 정도가 충분하지 못했기 때문에 죄가 가해져도 무고함을 소명하지 못하였고, 영주永州에 온 지 지금 7년이 지났네.
〈그동안〉 밤낮으로 가슴을 졸이는 가운데 지난날의 허물을 회상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해보고, 요堯‧순舜과 공자孔子의 도 역시 충분히 연구하였네.
그 결과 세상에 나온 자는 스스로 방임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을 더더욱 알았네.
지금 족하足下는 내가 예전에 겪었던 과정들을 아직 겪지 않았으니, 자기 뜻대로 해보려는 것이 당연하네.
그러나 내가 했던 대로 따라 해본 다음에야 어려움을 알 것이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금 내가 미리 모든 것을 말하는 이유는, 족하足下가 나처럼 비난과 굴욕을 겪고 나쁜 평판을 얻어 이미 세상으로부터 불신을 당하고 난 뒤에 중용中庸의 도를 흠모함으로써 힘을 부질없이 소비하고 피해를 많이 받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니, 그래서 이렇게 멈추지 않고 간곡하게 당부하는 것이네.
그대는 부디 나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여 헛되이 부질없는 말을 중언부언하지 않는다면 매우 좋겠네.
그리고 그대의 편지 내용에 옳지 않은 말이 있네.
나에게 우리 편지를 꼭꼭 숨기고 덮어서 모르는 사람에게 절대 말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이 또한 틀린 일이네.
대체로 나와 그대가 주고받은 편지는 모두 도道를 말하기 위한 것이며, 도란 본디 공적公的인 것이어서 사적私的으로 소유할 수가 없네.
가령 그대의 말이 옳지 않다면 그대는 마땅히 스스로 널리 드러내어 사람들이 모두 지적하게 하고, 마침내 그중 옳은 것을 채택하여 자기를 바로잡아야 할 것이니, 그런 뒤에야 바른 도가 드러날 수 있는 것이네.
그런데 지금 오로지 덮어 가리려고만 하니, 이는 진정 스스로 자기 뜻대로 행동하고 남의 도움을 받기를 바라지 않는 자들이나 하는 짓이네.
사士는 대부大夫에게 자기의 의견을 전달하고 일반 백성은 길에서 국정國政을 비판하게 한 일이나, 자산子産이 향교鄕校를 헐어버리지 않은 일 등은 과연 무엇 때문이겠는가.
군자의 허물은 일식日蝕‧월식月蝕과 같으니, 어찌 가릴 수 있겠는가.
이 일은 나는 그대의 가르침을 받들 수가 없으니 양해하기 바라네.
족하足下가 쓴 편지는 문장에 관한 논리가 매우 바르고 말이 심오하고 단아하였네.
후배로서 이 길을 향해 달리는 사람 중에 그대가 장차 포소蒲梢나 결제駃騠가 될 것이니, 어찌 그대를 당해낼 수 있겠는가.
나머지는 《장자莊子》와 《국어國語》의 문자를 사용한 부분이 너무 많아 도리어 바른 기운에 누가 되었네.
만약 이를 버릴 수 있다면 아주 좋을 것이네.
폐기되어 금고禁錮된 처지에 있는 나를 걱정하고 적전籍田의 행사가 폐기된 것을 슬퍼하였는데 그 뜻이 간곡하였으니, 진정 나를 크게 아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네.
나는 나의 죄가 크다는 것을 스스로 짐작하니 감히 이런 일로 기뻐하거나 슬퍼할 수 있겠는가.
다만, 호미를 손에 쥐고 삽을 메고서 시냇물을 터서 텃밭에 물을 대어 먹을 것을 가꾸고, 틈이 나면 못도 파고 나무도 심으며, 거닐면서 노래하고 앉아서 낚시하다가 푸른 하늘의 흰 구름을 바라보니 이것으로 낙을 삼아도 역시 아무 슬픔 없이 늙어 죽을 수 있을 것이네.
그리고 수시로 책을 읽어 성인聖人의 도를 잊지 않고, 나 자신은 세상에 쓰이지 못하더라도 나를 믿어주는 자가 있으면 내 의견을 말해줄 생각이네.
조정에 새 재상이 부임하여 정사가 더욱 잘 다스려지고 있네.
장인어른께서 조만간 북쪽 대궐로 귀환하시게 되면 나는 지나는 길에 들를 그대를 성곽 남쪽 정자 위에서 기다리리니, 만나서 직접 얘기할 날이 멀지 않을 것이네.
지금 도주道州로 가는 사람이 있어 대략의 뜻을 이와 같이 간략히 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