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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柳宗元(1)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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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하고 又得柳柳州하여 相爲羽翼이라 故此唱彼和하니
譬之컨대 噴嘯山谷 一呼一應하니 可謂盛已
昌黎之文 得諸古者爲多하고 而柳州 則間出乎
其深醇渾雄 或不如昌黎 而其勁悍泬寥 抑亦千年以來曠音也
予故讀할새 似與相上下하여 欲爲掩卷纍欷者久之
再覽鈷鉧潭諸記하니 하여 若將凌虛御風也已 奇矣哉
予錄書啓三十三首 序傳十七首 記二十八首 論議辯十四首 說贊雜著十八首 碑銘墓碣及誄表狀祭文二十首하여 釐爲十二卷하니라
按柳州平淮雅與鐃歌及五七言詩什 於諸家中 尤擅所長이나 予校而錄之者 特文也 故不及하니라
歸安鹿門茅坤題하노라


유유주문초柳柳州文抄〉에 대한 서문[引]
창려昌黎 한퇴지韓退之는 그 문장이 8대에 걸쳐 쇠퇴해진 것을 크게 일으켜 세웠고, 또 유유주柳柳州를 얻어 서로 우익이 되었기 때문에 이쪽에서 선창先唱하면 저쪽에서 화답和答하였다.
비유하자면 마치 범이 산골짝에서 포효할 적에 한 번 소리치면 한 번 메아리가 반응하는 것과 같았으니, 성대하였다고 말할 만하다.
창려昌黎의 문장은 옛날 육예六藝맹가孟軻양웅揚雄에게서 얻은 것이 많았고, 유유주柳柳州의 경우는 《국어國語》 및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그리고 제가諸家에서 간간이 흘러나왔다.
그 깊고 순박하며 소박하고 중후한 점은 간혹 창려昌黎보다 못하지만 힘차고 활달한 점은 어쩌면 또한 역사적으로 그와 유사한 사례가 없을 것이다.
내가 이전에 허경조許京兆(許孟容)에게 보낸 편지와 소한림蕭翰林(蕭俛)에게 보낸 편지 등을 읽어볼 적에 그 느낌이 사마자장司馬子長(司馬遷)의 〈답임소경서答任少卿書〉와 서로 막상막상인 것 같아, 그만 읽던 책을 덮고 한참 동안 감탄사를 토하고픈 충동이 일어났다.
그러다가 다시 〈고무담기鈷鉧潭記〉 등 여러 기문記文을 열람해보았더니 정신이 원수沅水상수湘水 가에서 노니는 듯 아련하여 장차 허공으로 올라가 바람을 타고 돌아다닐 것만 같았으니, 기이한 일이었다.
나는 33수, 17수, 28수, 14수, 잡저雜著 18수, 비명碑銘묘갈墓碣제문祭文 20수를 초록하여 12권으로 정리하였다.
살펴보건대, 유주柳州에서 지은 〈헌평회이아표獻平淮夷雅表〉와 〈요가鐃歌〉 및 오칠언시 작품은 여러 작가들 중에서 우수한 고지를 점하고 있으나, 내가 교정하여 채록하는 것은 오직 산문散文이므로 거기까지는 미치지 않았다.
귀안歸安녹문鹿門 모곤茅坤은 쓴다.


역주
역주1 柳柳州文抄引 : 柳柳州는 작자가 柳州刺史를 지냈기 때문에 그의 별칭으로 쓰인다. 작자의 저술은 《柳河東集》 45권‧外集 2권‧新編外集 1권이 전해오는데, 茅坤이 이 중에서 韻文을 제외한 散文을 대상으로 하여 각 문체별로 우수한 작품을 가려 뽑아 편집하고 쓴 서문이다.
引은 唐나라 이후에 생긴 序와 유사한 문체의 일종으로 그 분량이 비교적 적은 편이다.
역주2 昌黎韓退之 崛起八代之衰 : 昌黎는 韓愈(768~824)의 봉호이고, 退之는 그의 자이다. 蘇軾이 쓴 〈潮州韓文公廟碑〉에 “문장에 있어서는 8대에 걸쳐 쇠락해진 문풍을 일으켰다.[文起八代之衰]”고 한 내용을 인용한 것이다. 8대는 東漢‧魏‧晉‧宋‧齊‧梁‧陳‧隋 등 여덟 王朝를 가리킨다. 이 당시의 문장 풍조는 騈儷體가 주종을 이루어 내실보다는 외양의 미려함을 지나치게 추구함으로써 그 폐단이 극에 이르렀는데, 韓愈가 古文運動을 펼침으로써 그 같은 폐단을 바로잡았다는 것이다. 《東坡全集 권86》
역주3 六藝及孟軻揚雄 : 六藝는 본디 고대의 교육과목인 禮‧樂‧射‧御‧書‧數를 가리키지만, 여기서는 여섯 종의 유가경전인 《詩經》‧《書經》‧《禮記》‧《樂經》‧《周易》‧《春秋》를 말한다.
孟軻(? B.C. 372~B.C. 289)는 孔子의 도통을 계승한 전국시대 사상가로, 그의 사상과 논리가 《孟子》 7편에 담겨 있는데, 여기서는 《孟子》를 말한다.
揚雄(B.C. 53~18)은 西漢의 문학가로 학문이 깊고 經學‧小學‧辭章 등에도 조예가 깊었는데, 여기서는 그의 저술인 《太玄經》‧《法言》과 〈甘泉賦〉‧〈河東賦〉‧〈羽獵賦〉‧〈長楊賦〉 등 그의 대표적인 賦를 말한다.
역주4 國語及左氏春秋諸家 : 《國語》는 先秦의 역사가가 고대 각국의 사료를 모아 엮은 책으로, 모두 21권이다. 〈周語〉‧〈魯語〉‧〈齊語〉‧〈晉語〉‧〈鄭語〉‧〈楚語〉‧〈吳語〉‧〈越語〉 등 여덟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로 西周 말기부터 춘추시기 각국 귀족들의 논변을 기술하였는데, 그 내용이 《春秋左氏傳》과 서로 참조할 만하다는 이유로 ‘春秋外傳’이라 부르기도 한다.
左氏春秋는 左丘明의 《春秋》로, 《春秋左氏傳》을 말한다.
諸家는 춘추전국시대에 사상과 논리를 전개하며 활발하게 활동했던 諸子百家, 곧 九流의 저술을 말한다. 九流는 儒家‧道家‧陰陽家‧法家‧名家‧墨家‧縱橫家‧雜家‧農家의 통칭이다.
역주5 許京兆蕭翰林諸書 : 작자가 쓴 〈寄許京兆孟容書〉와 〈與蕭翰林俛書〉 등의 편지를 말한다.
許京兆는 京兆尹 許孟容(743~818)을 가리킨다. 그의 자는 公範이며, 進士에 급제한 뒤에 이어 明經科에 급제하고 禮部員外郞과 給事中을 역임하였다. 元和 4년(809)에 許孟容이 京兆尹에 제수되었을 때 永州司馬로 貶謫된 작자가 자기의 불우한 처지를 설명하고 도와달라는 뜻으로 그에게 편지를 보냈다.
蕭翰林은 翰林學士 蕭俛(?~837)을 가리킨다. 그의 자는 思謙이며, 德宗 때 進士에 급제하고 穆宗이 즉위했을 때 中書侍郞‧同平章事가 되었으며 전쟁을 멈추고 文敎에 힘쓸 것을 주청하였다. 元和 5년에 조정에서 王承宗의 반란을 진압하고 그 죄를 사면하자, 그 이듬해 무렵에 작자가 중앙 조정에서 翰林學士로 재직 중인 그에게 자기도 사면대상자 속에 들어갈 수 있게 주선해달라는 뜻으로 편지를 보냈다.
역주6 司馬子長答任少卿書 : 司馬子長은 《史記》의 저자로, 西漢의 저명한 역사가이자 문학가인 司馬遷(B.C. 145~?)을 가리킨다. 子長은 그의 자이다. 任少卿은 司馬遷의 벗 任安(B.C. ?~B.C. 91)으로 少卿은 그의 자이다. 司馬遷이 宮刑을 당한 뒤에 中書令으로 발탁되었을 때 益州刺史로 있던 任安이 편지를 보내 훌륭한 인재를 초치하는 일에 힘쓸 것을 권하자, 세상에서 가장 치욕스런 宮刑을 당한 사람이 무슨 낯으로 천하의 인재를 초치하는 일에 나서겠느냐는 뜻으로 장문의 답장을 보냈다.
역주7 杳然神遊沅湘之上 : 沅湘은 중국 남부 湖南省 지역에 흐르는 沅水와 湘水 두 강물의 이름이다. 작자가 쓴 〈鈷鉧潭記〉의 주제인 鈷鉧潭의 위치가 역사적으로 이름난 沅水와 湘水의 주변이기 때문에 한 말로, 鈷鉧潭을 가리킨다. 〈鈷鉧潭記〉의 말미에 “무엇보다 中秋에 달구경을 하기에 적합하니 여기에서 하늘이 높고 기운이 회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과연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 자연을 즐기고 고향을 잊게 만든단 말인가? 그것은 이 못이 아니겠는가.” 하였는데, 이 문장이 워낙 아름다워 자신도 모르게 현실을 벗어나서 작자의 그 문장세계로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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