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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王安石(1)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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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4. 탁지부사청度支副使廳 전임자前任者들의 이름을 기록한
何等識見이며 何等筆力
어찌 그토록 대단한 식견이며 문장력인가!
不書前人名姓이러니 嘉祐五年 尙書戶部員外郞 始稽之衆史하야 又得其在事之歲時하니
삼사부사三司副使전임자前任者성명姓名을 기록해 놓지 않았었는데, 가우嘉祐 5년에 상서호부원외랑尙書戶部員外郞 여충지군呂沖之君이 처음으로 여러 관리들을 통해 조사하여 이굉李紘 이상以上으로부터 사도査道에 이르기까지의 재임在任했던 사람들의 이름을 알아냈고, 양해楊偕 이상以上은 그들이 맡았던 벼슬을 알아냈으며, 곽권郭勸으로부터 그 이하以下는 또한 그들이 재임在任하였던 기간도 알게 되었다.
於是 書石而鑱之東壁하다
이에 돌에 기록하여 동쪽 벽에 새겨놓게 되었다.
夫合天下之衆者財 理天下之財者法이요 守天下之法者吏也
대저 천하天下민중民衆을 모으는 수단은 재물財物에 있고, 천하의 재물을 관리하는 수단은 에 있으며, 천하의 법을 지키는 사람은 관리官吏들이다.
吏不良이면 則有法而莫守하고 法不善이면 則有財而莫理
그 관리가 훌륭하지 않으면 이 있어도 지킬 수가 없고, 이 훌륭하지 않으면 재물이 있어도 제대로 관리管理할 수가 없게 된다.
有財而莫理 則阡陌閭巷之賤人 皆能私取予之勢하고 擅萬物之利하야 以與人主 爭黔首하야 而放其無窮之欲 非必貴强桀大而後能이니
재물이 있는데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게 되면, 길거리 향리鄕里천인賤人들이 모두 사사로이 차지하고 나누어주는 권세權勢를 멋대로 누리며 온갖 물자에 대한 이익利益을 제 마음대로 차지하게 되고, 이렇게 되면 군주君主와 더불어 백성을 서로 차지하려 다투면서 끝없는 욕심을 끝까지 발휘하는 것이, 반드시 지위가 높거나 힘이 강해진 이후에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게 된다.
如是而天子猶爲不失其民者 蓋特號而已耳니라
이와 같이 되었는데도 천자天子가 아직 그 백성百姓들을 잃지 않은 것은 다만 허명虛名만 차지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雖欲食蔬衣敝하야 憔悴其身하고 愁思其心하야 以幸天下之給足하야 而安吾政이라도 吾知其猶不得也로라
이렇게 된다면 군주君主가 비록 나물밥을 먹고 해진 옷을 입고, 그 몸을 초췌하게 하고 그 마음의 근심을 다하면서, 이로써 천하天下의 공급이 풍족하게 하여 정치政治가 안정됨을 다행으로 여기고자 한다 해도, 나는 그런 일이 행해질 수 없을 것임을 알고 있다.
然則善吾法하고 而擇吏以守之하야 以理天下之財 雖上古堯舜이라도 猶不能毋以此爲先急이온 而況於後世之紛紛乎
그렇다면 황제皇帝가 그가 만드는 법을 훌륭하게 제정하고 훌륭한 관리를 택하여 이를 지키게 하며 이로써 천하의 재물을 관리하게 하는 것은, 비록 상고上古시대의 임금과 임금이라 해도 이를 급선무로 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 하물며 후세後世의 번잡하고 어지러운 때에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三司副使 方今之大吏 朝廷所以尊寵之甚備
삼사부사三司副使는 지금 이 시대의 큰 벼슬아치이고, 조정朝廷에서 높여주고 인정해 줌을 모두 차지한 사람들이다.
蓋今理財之法 有不善者 其勢皆得以議於上而改爲之
대체로 지금 재물을 관리하는 법에 적절하지 않은 점이 있는 것은 그 형세가 이를 모두 황상皇上께 설파하고 건의하여 고쳐 시행하도록 해야 한다.
非特當守成法하고 吝出入하야 以從有司之事而已니라
단지 이미 이루어진 법만을 굳게 지키고 재물의 출납만을 고지식하게 처리하며 관리로서의 직분만을 수행해서는 안 된다.
其職事如此하니 則其人之賢不肖 利害施於天下 如何也리요
그 직분을 수행한다는 것이 이와 같으므로 그 관리의 훌륭함과 못남으로 인하여 천하天下가 이로워질 수도 있고, 해로워질 수도 있을 것이니, 그렇다면 인물의 중요성이 어떠하겠는가?
觀其人인댄 以其在事之歲時하고 以求其政事之見於今者하야 而考其所以佐上理財之方이면 則其人之賢不肖 與世之治否 吾可以坐而得矣리니
그 인물을 살펴보고자 한다면, 그가 직무職務를 담당했던 시기를 살펴보고, 그가 행한 정사政事 가운데 지금에 드러난 것을 추구해보고, 그가 황상皇上을 보좌하여 재물을 다스린 방법을 고찰해보면, 그 인물의 현명함과 못남 및 세상이 잘 다스려졌음과 그렇지 않았음을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此蓋呂君之志也니라
이것이 여군呂君이 그들의 성명을 해당 건물 벽에 새겨 놓은 취지인 것이다.
역주
역주1 度支副使廳壁題名記 : 本 記는 度支副使廳 壁에 前任者들의 名을 새겨놓으면서 嘉祐 5년(1060)에 지은 것이다. 탁지부사는 三司副使의 一員으로 國家의 財賦를 담당하는 자리였다.
역주2 三司副使 : 官名으로, 鹽鐵使, 度支使, 戶部使를 통합하여 三司라 칭하고 그 長官으로 三司使를 두고 副長官으로 3人의 副使를 두었다.
역주3 呂君沖之 : 呂景初를 지칭하며 字를 沖之라 하였다. 度支副使를 역임하였고, 벼슬이 天章閣 待制에 이르렀던 인물이다.
역주4 自李紘已上……自郭勸已下 : 李紘, 査道, 楊偕, 郭勸 등은 모두 度支副使를 歷任하였던 인물들이다.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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