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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王安石(2)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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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6. 葛興祖墓誌銘
06. 갈흥조의 묘지명
本興祖所仕不得志處 點次 多情이라
갈흥조葛興祖가 벼슬살이에 뜻을 이루지 못한 것에 근본하여 순서대로 서술한 문장에 정이 많이 들어 있다.
許州長社縣主簿葛君 諱良嗣 字興祖
허주許州 장사현주부長社縣主簿 허군許君양사良嗣이고 흥조興祖이다.
其先處州之麗水人이러니 而興祖之父徙居明州之鄞하고 興祖葬其父潤州之丹徒 故今又爲丹徒人矣
그의 선조先祖처주處州여수인麗水人이었는데, 흥조興祖부친父親명주明州은현鄞縣으로 옮겼고, 흥조興祖가 그의 선친先親윤주潤州단도현丹徒縣안장安葬하였으므로 지금은 다시 단도인丹徒人이 되었다.
曾大父諱遇 不仕하고 大父諱旴 贈尙書都官郞中이요 父諱源이니 以尙書度支郞中終仁宗時하다
증조曾祖 는 벼슬한 일이 없고, 조부祖父 상서도관낭중尙書都官郎中추증追贈되었으며, 부친父親 상서탁지낭중尙書度支郎中으로 인종仁宗 연간年間에 사망하였다.
度支君三子 當之間 以文有聲하야 赫然進士中하니 하야 閱之終篇하시고 而屢歎葛氏之多子也러니
탁지군度支君의 세 아들이 천성天聖경우景祐 연간年間문장文章으로 명성이 나서 진사進士들 가운데 뛰어났으니, 나의 선친先親께서 일찍이 그들이 지어 올린 글을 받아서 마지막 편까지 열람해보시고, 갈씨葛氏 집안에 훌륭한 자손이 많음에 여러 차례 감탄하셨다.
旣而 三子者 伯仲皆蚤死하고 獨其季在하니 卽興祖
그 후 세 아들 가운데 맏이와 둘째는 모두 일찍 사망하였고 그 막내만이 남아 있었으니, 그가 바로 흥조興祖이다.
興祖博知多能하야 數擧進士하야 角出其上호되
흥조興祖는 박식하고 재능이 많았으며, 여러 차례 진사進士들과 겨루어서 뛰어난 성적을 발휘하였다.
而刻勵修潔하고 篤於親友하야 慨然欲有所爲하야 以效於世者也
그리고 열심히 노력하고 맑게 수양하며, 친우들과 돈독하게 지내면서, 개연慨然히 업적을 성취하여 세상에 도움을 주고자 하였던 사람이다.
年四十餘 始以進士出仕州縣하야 餘十年而卒窮於無所遇以死하니
나이 40여 세가 되어 비로소 진사進士주현州縣의 벼슬을 얻어 나아갔다가, 10여 년간 끝내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여 궁곤窮困하게 지내다가 사망하였다.
嗟乎
슬프도다!
命不可控引이요 而才之難恃以自見 蓋久矣
수명壽命은 억지로 연장할 수가 없고, 재능은 스스로 드러나기를 기대하기 어렵게 된 것이 오래되었도다.
然興祖於仕未嘗苟하고 聞人疾苦 欲去之如在己러라 其臨視雖細故 人不以屬耳目者라도 必皆致其心하니
그러나 흥조興祖는 일찍이 벼슬을 구차하게 추구한 일이 없고, 남의 질고疾苦에 대하여 듣게 되면 자신이 겪는 질고疾苦처럼 여기며 이에서 벗어나게 해주고자 하였고, 그가 처리하는 일 가운데 비록 하찮은 일이어서 다른 사람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도, 반드시 모두 온 정성을 다 기울여 처리하였다.
論者多怪之曰 興祖且老矣어늘 弊於州縣하야 而服勤如此라하다
이렇게 되니 비판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를 괴이하게 여기며 “흥조興祖는 늙어가면서 주현州縣에서 곤궁하게 지내면서도 지성至誠으로 근무하기를 이와 같이 하고 있다.” 하였다.
余曰 是乃吾所欲於興祖
내가 말하기를 “이것이 바로 내가 흥조興祖에게 기대하는 것이다.
夫大仕之則奮하고 小仕之則怠忽以不治 非知德者也라하니 興祖聞之하고 以余之言爲然하다
대저 큰 벼슬을 하게 되면 분발하여 노력하고, 낮은 벼슬을 하게 되면 게으르고 소홀하게 처리하여 제대로 다스리지 않는 사람은 을 아는 자가 아니다.” 하니, 흥조興祖가 듣고서 나의 말을 옳다고 여겼다.
興祖娶胡氏하고 又娶鄭氏하다
흥조興祖초취初娶호씨胡氏이고, 재취再娶정씨鄭氏이다.
其卒年五十三이니二年三月辛巳
한 해에 53세였으니, 치평治平 2년(1065) 3월 신사일辛巳日이었다.
其葬 以胡氏祔하야 在丹徒之長樂鄕顯揚村하니 卽其年十一月某甲子也
그를 하장下葬할 때에 호씨胡氏를 합장하여 단도丹徒장악향長樂鄕 현양촌顯揚村안장安葬하였으니, 바로 그해 11월 모갑자일某甲子日이었다.
興祖三男子 蘩蘊 皆有文學하니 許州臨潁縣主簿 鄧州穰縣主簿 尙幼也
흥조興祖는 아들 셋을 두었는데, 은 모두 문학文學으로 이름이 났으니, 허주許州 임영현주부臨穎縣主簿이고, 등주鄧州 양현주부穰縣主簿이며, 은 아직 어리다.
四女子 皆未嫁云이라
딸이 넷인데 모두 아직 출가出嫁하지 않았다.
銘曰
이에 다음과 같이 을 지었다.
蹇於仕하야 以爲人尤
벼슬이 순탄하지 않아서 사람들이 원통해하고 괴이하게 여겼네.
不憖施以年하니 孰主孰謀
하늘이 장수長壽를 내려주지 않았으니, 이는 누가 도모하고 누가 주재한 것인가.
無大憾於德이어니 又將何求리오
을 베풂에는 크게 유감遺憾이 없었으니, 다시 장차 무엇을 더 추구할 게 있으리오.
역주
역주1 天聖景祐 : 天聖과 慶祐는 모두 宋 仁宗의 年號이다.
역주2 先人嘗受其摯 : 先人은 王安石의 아버지 王益을 지칭하며, 그가 葛興祖의 스승이었다. ‘摯’는 ‘贄’의 뜻으로 쓴 것으로, 본래 윗사람이나 스승을 처음 뵈러 갈 때에 가져가는 예물을 의미하나, 이곳에서는 스승을 뵈러 갈 때에 보여 드리려고 가져갔던 자신이 지은 詩文을 지칭한 것이다.
역주3 治平 : 宋 英宗의 年號(1064~1067)이다.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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