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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王安石(2)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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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0. 《강남록》을 읽고
行文宛曲이나 其所議鉉厚誣潘佑處 可謂刺骨之論이라
문장을 모나지 않고 부드럽게 썼으나 서현徐鉉반우潘佑를 크게 무고誣告한 일을 논한 부분은 골수에까지 깊이 사무치는 의론이라 이를 만하다.
하야亡國之際하얀 不言其君之過하고 但以歷數存亡論之하니
산기상시散騎常侍였던 서현공徐鉉公태종太宗을 받들어 《강남록江南錄》을 편찬하였는데, 이씨李氏의 나라(南唐)가 할 때의 사실에 이르러서는 군주君主과오過誤를 말하지 않고, 다만 역수曆數에 따라 존속하였다가 망한 것으로 설명하였다.
雖有愧於實錄이나 其於 徐氏錄 爲得焉하다
이는 비록 사실事實의 기록에 부합되지 않는 결함이 있지만, 그것을 춘추필법春秋筆法의의意義기자箕子무왕武王의 질문에 답한 말로 볼 때 서씨徐氏의 《강남록江南錄》은 합당함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然吾聞호니 國之將亡 必有大惡하니 惡者無大於殺忠臣이라
그러나 내가 들으니, 나라가 장차 하려 할 때에는 반드시 대악大惡자행恣行함이 있는데, 악행惡行 가운데 충신忠臣을 죽이는 것보다 더 큰 이 없다.
國君無道 不殺忠臣이면 雖不至於治 亦不至於亡이라호라
국군國君무도無道하다 해도 충신忠臣을 죽이는 일이 없으면, 비록 나라가 잘 다스려지지는 않지만 또한 멸망하는 지경에 이르지는 않는다고 하였다.
紂爲君 至暴矣
가 임금 노릇한 것은 지극히 포악暴惡하였다.
무왕武王맹진孟津에서 군대軍隊사열査閱하였는데, 제후諸侯들이 를 치기를 청하자 무왕武王은 “아직은 안 된다.”라고 말하였다가, 그가 충신忠臣왕자王子 비간比干을 죽였다는 소식을 들은 후에야 그 나라가 장차 망할 것임을 알고, 한번 군사를 일으켜서 단번에 승리하였다.
충신忠臣 계량季梁나라에 있을 때에는 나라 사람들이 비록 난정亂政에 시달렸지만 나라 사람들이 감히 침략하지 못하였고, 나라가 충신忠臣 궁지기宮之奇의 건의를 용납容納하지 않자 나라 사람들이 비로소 벽옥碧玉을 보내어 길을 빌리는 계책을 이루어 를 멸망시켰다.
然則忠臣 國之與也 存與之存하고 亡與之亡이니라
그러므로 충신忠臣은 나라와 운명을 같이하는 사람이니, 나라가 존재하면 그와 함께 존재하고, 나라가 망하면 그와 함께 망하는 것이다.
予自爲兒童時 已聞하니라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이미 남당南唐의 신하 반우潘佑직언直言을 하다가 죽임을 당하였음을 들었다.
當時京師因擧兵來伐하며 數以殺忠臣之罪하니라
당시에 송조宋朝에서 그것을 이유로 군사를 동원하여 정벌하고, 충신을 죽인 죄를 꾸짖었다.
及得佑所上諫李氏表 觀之하니 詞意質直하야 忠臣之言이라
반우潘佑이씨李氏(南唐의 군주 이욱李煜)에게 간언諫言표문表文을 얻어 보니, 문사文辭의 뜻이 질박質朴하면서 솔직한 충신忠臣의 말이었다.
予諸父中 舊多爲江南官者하야 其言金陵事頗詳하야 聞佑所以死則信이라
나의 조부와 숙부‧백부들 가운데 강남江南에서 벼슬을 한 분들이 많아서, 그분들이 남당南唐의 일에 대하여 매우 자상하게 말씀을 해주셔서, 반우潘佑가 죽게 된 이유를 들어보니 사실이었다.
然則李氏之亡 不徒然也니라
그런즉 이씨李氏남당南唐한 것은 역수曆數에 따라 자연히 망한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다.
今觀徐氏錄言佑死호니 頗以妖妄하야 與予舊所聞者 甚不類
이제 서씨徐氏가 편찬한 《강남록江南錄》에서 반우潘佑가 사형을 당한 데 대하여 언급한 것을 살펴보니 자못 요망妖妄한 말을 하여, 내가 과거에 들은 것과는 매우 달랐다.
不止於佑 其他所誅者 皆以罪戾하니 何也
반우潘佑만이 아니라 그 외에 처형당한 사람들도 모두 죄과罪科를 범했기 때문이라고 하였으니, 왜 그랬을까?
予甚怪焉이로라
나는 이를 매우 괴이하게 여긴다.
若以商紂及隋虞二君으로 論之하면 則李氏亡國之君 必有濫誅 吾知佑之死 信爲無罪 是乃徐氏匿之耳
나라의 의 두 군주君主를 기준으로 하여 따져본다면, 나라를 하게 한 후주後主 이욱李煜은 틀림없이 충신忠臣을 함부로 죽인 일이 있었을 것이니, 나는 반우潘佑의 죽음이 진실로 죄가 없이 죽은 것이고, 《강남록江南錄》에서 밝힌 것은 곧 서씨徐氏가 이를 은닉隱匿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何以知其然
어떻게 그런 줄을 알게 되었는가?
吾以情得之니라
나는 인정을 근거로 하여 이를 알게 되었다.
大凡毁生於嫉하고 嫉生於不勝하니 此人之情也
대체로 비방誹謗은 미워하는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고, 미워하는 마음은 그를 이기지 못할 때에 생기는 것이니, 이는 사람의 공통된 감정이다.
吾聞鉉與佑 皆李氏臣이요 而俱稱有文學하야 十餘年爭名於朝廷間이어늘 當李氏之危也하야 佑能切諫호되 鉉獨無一說하고 以佑見誅 鉉又不能力諍하야 卒使其君으로 有殺忠臣之名하고 踐亡國之禍하니 皆鉉之由也로다
내가 듣자 하니 서현徐鉉반우潘佑가 모두 이씨李氏(李煜)의 신하였고, 함께 문학文學으로 찬양을 받았으며, 십여 년간 조정朝廷에서 명성名聲을 다투었는데, 남당南唐이 위태로운 지경에 처하자, 반우潘佑는 간절하게 하였지만 서현徐鉉은 단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으며, 이 때문에 반우潘佑가 처형을 당하게 되었는데도 서현徐鉉은 또한 힘써 간쟁諫諍을 하지 않아서, 끝내 그의 임금으로 하여금 충신忠臣을 죽였다는 오명汚名을 지니고 망국亡國를 입게 하였으니, 이는 모두 서현徐鉉 때문이었다.
鉉懼此過하고 而又恥其善不及於佑 故匿其忠而汚以他罪하니 此人情之常也
서현徐鉉은 이런 허물이 알려지는 것이 두렵고, 또한 그 선행善行반우潘佑에 미치지 못함을 부끄럽게 여겨서, 그 때문에 그의 충심忠心을 감추고 다른 죄로 오명汚名을 뒤집어씌운 것이니, 이것이 일상적인 보통 사람의 감정인 것이다.
以佑觀之컨대 其他所誅者 又可知矣니라
반우潘佑의 경우를 기준으로 하여 관찰해본다면, 그 밖에 처형당한 사람들도 없이 죽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아아!
若果如此 吾謂鉉 不唯厚誣忠臣이라 其欺 不亦甚乎
만약 과연 이와 같이 하였다면, 내가 생각건대 서현徐鉉은 단지 충신忠臣을 크게 모함했을 뿐 아니라, 우리 군주君主기망欺罔함이 또한 심하지 않았겠는가.
역주
역주1 讀江南錄 : 《江南錄》은 中國 五代十國時代에, 金陵에 도읍하였던 南唐이 宋에 의하여 滅亡한 후, 南唐의 역사를 기록한 책으로, 현재는 傳해지지 않는다.
本文은 王安石이 亡國之君은 반드시 忠臣을 함부로 죽인 일이 있음을 근거로 하고, 또한 자신이 들은 사실을 토대로 하여, 당시에 南唐의 潘佑는 틀림없이 忠諫을 하다가 죽임을 당한 것인데도, 徐鉉이 《江南錄》에 그가 妖妄한 행위를 하다가 처형당했다고 기재한 것은, 그에 대한 嫉視 때문에 忠臣을 크게 誣告한 것이며, 아울러 이는 君主를 欺罔하는 죄를 범한 것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역주2 故散騎常侍徐公鉉 奉太宗命撰江南錄 : 五代時代 南唐의 舊臣이었던 徐鉉이 南唐이 亡한 후 宋 太宗의 命을 받아 南唐의 역사를 기록한 《江南錄》 10卷을 편찬하였으나 현재는 逸失되어 전해지지 않는다.
역주3 李氏 : 五代十國의 하나인 南唐을 가리킨다. 937년에 徐知誥가 吳나라의 선위를 받아 李昪으로 개명하고 金陵에 도읍하여 세운 나라이다. 처음에 국호를 齊라고 하였다가 唐으로 고쳤는데, 이를 역사에서 남당이라고 칭한다. 975년 北宋에게 멸망당하였다.
역주4 春秋之義 : 《王荊公文集》의 原文 아래에는 夾註를 달아서 “《春秋》에 신하와 자식은 군주와 어버이를 위하여 결점을 諱하고 드러내지 않는다.[春秋臣子爲君親諱]” 하였다.
역주5 箕子之說 : 《王荊公文集》의 原文 아래에는 夾註를 달아서 “周 武王이 商을 멸망시키고 箕子에게 商이 亡하게 된 이유를 물으니, 箕子는 商나라의 결점을 다 말하지 않고 國運에 따라 존재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한다고 대답하였다.[周武王克商 問箕子商所以亡 箕子不悉言商惡 以存亡國祚告之]” 하였다.
箕子는 商末의 賢人으로 周 武王에게 天下 통치의 원리인 〈洪範〉을 지어 전해주고 朝鮮王에 봉해졌다고 전해지는 인물로, 《書經》 〈洪範〉, 《史記》 〈殷本紀〉, 《史記》 〈宋微子世家〉 등에 그의 행적이 기술되어 있다.
역주6 紂爲君……一擧而勝焉 : 이 내용은 《史記》 〈殷本紀〉에 보인다.
역주7 季梁在隨……楚人不敢加兵 : 이 내용은 《春秋左氏傳》 桓公 6年에 보인다. 季梁은 춘추시대 隨나라의 어진 신하이다. 楚나라 武王이 隨나라를 침공해 들어가서 大夫 薳章을 보내어 화평을 요구하게 하고는 瑕에 주둔하여 그 결과를 기다렸다.
그러자 季梁이 말리면서 말하기를 “하늘이 바야흐로 초나라를 돕고 있는데, 楚나라가 파리한 군대를 보여준 것은 우리를 유인하려는 것입니다. 임금께서는 무엇 때문에 그리 서두르십니까. 신이 듣건대 小國이 大國을 대적하는 경우는 소국이 有道하고 대국이 無道할 때만이 가능하다고 합니다.”라고 하면서 간하였으나 받아들이지 않아, 결국 초나라 武王의 토벌을 받고 망하였다.
역주8 虞以不用宮之奇之言 晉人始有納璧假道之謀 : 이 내용은 《春秋左氏傳》 僖公 2年에 보인다.
역주9 金陵臣潘佑 以直言見殺 : 金陵은 南唐이 도읍한 곳으로, 여기서는 南唐을 가리킨다. 潘佑(?~973)는 南唐의 臣下였던 인물로, 《新五代史》 〈南唐世家〉에 “內史舍人 潘佑가 글을 올려 極諫하자 李煜이 체포하여 下獄시키니 潘佑가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內史舍人潘佑上書極諫 煜收下獄 佑自縊死]” 하였다.
역주10 吾君 : 《江南錄》을 편찬하라고 명한 宋 太宗을 가리킨다.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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