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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王安石(2)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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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7. 조봉랑 수국자박사 지상주를 지낸 이공의 묘지명
特歸重於常州하고 以虛語感慨
특별히 상주지사로 있던 일에 중점을 두고, 슬픈 감정을 논리적인 말로 드러내었다.
公李氏 諱餘慶이며 字昌宗이니 年四十四 하다
이씨李氏여경餘慶이고 창종昌宗이며, 벼슬이 국자박사國子博士 지상주知常州에 이르렀던 44세에 하였다.
然公之威名氣略 聞天下하야 自其卒至今久矣로되 天下尙多談公之爲有過於人者하니라
그러나 위명威名기략氣略은 천하에 소문이 나서, 한 이후 지금까지 오랜 기간이 지났지만, 천하에는 아직도 의 업적이 남보다 뛰어났던 점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余嘗過常州하니 州之長老道公卒時就葬於橫山할새
내가 일찍이 상주常州 땅을 지날 때에 그 고을의 장로長老가 “하자 그때에 곧 횡산橫山안장安葬하였는데,
州人塡道하야 瞻送歎息하고 爲之出淚하며 又爲之畫像하야 寘之浮屠以祭之하다
고을 사람들이 길이 메워지도록 모두 나와서 우러러 전송하며 탄식하고 그분을 위해 눈물을 흘렸고, 또 그분을 위해 초상화를 그려서 사원寺院에 안치하고 제사를 지내고 있다.”라고 말하였으므로,
於是 又知公之有惠愛於常人也호라
이에 상주常州 사람들에게 은혜를 입히고 사랑을 베풀었음을 더욱 잘 알게 되었다.
已而與公之子處厚遊하여 則得公之所爲甚具하다
그 후 의 아드님 처후處厚와 교유하게 되어 이 한 일을 매우 자세히 알게 되었다.
蓋公之爲政 精明强果하야 事至能立斷而得하야 久姦宿惡 輒取之不貸하고 至其化服이면 則撫循養息하야 悉有其處
대체로 정사政事를 베풀 때에 정밀하고 분명하며 꿋꿋하고 과단성이 있어서, 일의 처리에 이르러서는 단안斷案을 내려서 적의適宜함을 얻었고, 오랫동안 간사奸邪한 짓을 하거나 악독한 짓을 한 사람은 곧 잡아들여 용서 없이 벌을 주었으며, 백성들이 감화하여 순복함에 이르러서는 그들의 뜻에 맞게 안무按撫하고 길러주어, 모두가 안주安住할 곳이 있게 하였다.
所以威震遠近하야 而蒙其德者 亦思之無窮也러라
이에 원근遠近에 위엄이 크게 떨치게 되었고, 그의 은덕을 입은 사람들이 또한 그를 무궁토록 그리워하게 되었다.
當明肅太后時하야 嘗欲用公矣러니 公再上書論事하야 其言甚直하니 以故不果用而出常州하다
명숙태후明肅太后께서 수렴청정垂簾聽政할 때를 당하여, 일찍이 을 등용하고자 한 일이 있었는데, 이 거듭 상서上書하여 당시當時국사國事를 논하면서 그 말에 직언直言을 한 것이 매우 많았으므로, 이 때문에 의 임용이 실현되지 못하고 상주지사常州知事로 나가게 되었던 것이다.
嗚呼
아아!
公之自任 豈止於一州而已리오
이 스스로 맡아 처리하고자 했던 것이 어찌 한 고을을 다스리고자 한 데에 그칠 뿐이었겠는가.
此有志者所以爲之惜也
이 점이 뜻을 가진 선비들이 애석하게 여기는 이유이다.
始公以叔父任으로 起家應天府하야 遇事輒爭之하니 留守者不能奪也하야 卒薦公改太常寺太祝 知湖州歸安縣하다
처음에 숙부叔父으로 서임敍任되어 응천부應天府법조참군法曹參軍으로 집안을 일으켰으며, 처리할 사안事案에 그릇된 점이 있으면 끝까지 간쟁諫爭을 하여 유수留守도 그의 뜻을 꺾을 수가 없게 되자, 이에 드디어 을 추천하여 태상시태축太常寺太祝 호주湖州 귀안현지사歸安縣知事로 바꾸었다.
其後通判秀州하니 州近鹽이어늘 公作華亭 海鹽二監하야 以業盜販之民하야 歲入緡錢八十萬하다
그 이후 수주통판秀州通判이 되었는데, 고을이 염전鹽田에 가까이 있었으므로 화정華亭해염海鹽 두 염전을 감독하여, 전매품인 소금을 허가받지 않고 판매하는 사람을 단속하는 일을 맡아서, 한 해에 민전緡錢 80세입歲入을 올리게 되었다.
又爲石堤호되 自平望至吳江五十里하야 以除水患하야 人至今賴之하니 其所至處 利害多如此러라
또 돌로 제방을 쌓아서 평망平望으로부터 오강吳江에 이르기까지 50의 땅에 수해水害가 나지 않도록 하여 백성들이 지금까지 그 혜택을 입고 있으니, 그가 이르는 곳마다 를 제거하여 롭게 한 것이 이와 같이 많았다.
然非公大志所欲 以就名成功者 故不悉著 著其利於民尤大하야 而能以久者云이라
그러나 의 큰 뜻은 자신自身공명功名을 성취하고자 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그 업적이 모두 다 드러나지를 않았고, 백성들을 특별히 크게 이롭게 한 것만이 오래도록 전해질 수 있었을 뿐이었다.
公平生慷慨하야 好議當世事하야 其所趣舍 必欲如己意하야 雖强有勢라도 終不爲撓러라
은 평생 동안 비장한 자세로 그 시대의 일을 비판하기를 좋아하여 취할 일과 버릴 일에 대하여 반드시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고자 하였으며, 비록 세력 있는 사람이 강하게 밀어붙여도 끝내 동요되지 않았다.
嘗考前世治亂之迹 與其君臣之間議論하야 編爲七十卷하야 藏於家하니 此蓋其大志所存也
일찍이 시대時代치란治亂의 자취와 군신君臣 사이에 의론議論한 것들에 대해 고찰하여 70으로 편찬해서 집안에 보관하고 있었으니, 이 속에 그의 큰 뜻이 간직되어 있었다.
公之先 爲開封之陳留人이니 하야 因避地家於福之漣江하다
선조先祖개봉開封진류인陳留人이었는데, 오대조五代祖께서 후량後梁을 위해 에 사신으로 가게 되었으므로 그 땅에서 피하여 복주福州연강현漣江縣으로 집을 옮겼다.
曾大父周 不仕하고 大父郁 贈尙書虞部員外郞하고 考慕玢 秘書省著作佐郞으로 贈尙書工部員外郞하다
증조부曾祖父 는 벼슬한 일이 없었고, 조부祖父 상서우부원외랑尙書虞部員外郞증직贈職되었으며, 부친父親 모분慕玢비서성저작좌랑秘書省著作佐郞을 역임하고 상서공부원외랑尙書工部員外郞증직贈職되었다.
夫人龔氏 永安縣君이요 男五人이니 處常 忠武軍節度推官이니 與誼諴皆已卒하고 處厚 大理寺丞이니 與處道皆進士
부인夫人공씨龔氏영안현군永安縣君해졌으며, 아들이 다섯으로, 처상處常충무군절도추관忠武軍節度推官을 지냈는데, 처의處誼처함處諴과 함께 모두 이미 하였고, 처후處厚대리시승大理寺丞으로 처도處道와 함께 모두 진사출신進士出身이다.
旣葬之二十三年 至和元年 余銘其墓曰
장례葬禮를 마친 후 23년이 되는 지화至和 원년元年(1054)에 내가 그의 묘명墓銘을 다음과 같이 지었다.
公閩於家하니 來自陳留
의 집안은 땅에 있었으니, 진류陳留에서 이주했던 것이었네.
維時方屯하야 閉蓄函收
그때에 바야흐로 간난艱難을 겪으면서, 몸을 웅크리고 포용하기에 힘썼네.
其孰有源이어늘 而久於幽리오
그 누구인들 훌륭한 근원을 가지고 있으면서, 오래도록 숨어만 있을 수 있으랴.
自公之考 乃施乃流
그리하여 선친先親 때부터 연이어 벼슬을 이어오게 되었네.
其流至公하니 孰敢泳游
그 이어옴이 에 이르렀으니, 누구인들 감히 능력을 감출 수 있었으랴.
茫洋演迤하야 小大畢浮
드넓게 계승하여 펼쳐서, 작은 일이건 큰 일이건 모두 드러내었네.
曷蹇于行하야 使止一州
어찌 그다지도 뜻 펼치는 것을 가로막아, 한 고을 다스리는 데 그치게 하였는가.
庶其渙發하야 在後之修리라
다행히 그 덕화德化가 널리 퍼져서, 후손後孫현인賢人이 연잇게 되리라.
역주
역주1 朝奉郞守國子博士知常州李公墓誌銘 : 本 墓誌銘은 墓主 李餘慶(988~1031)의 死後 23년이 되는 至和 元年(1054)에 지은 것이다.
역주2 官止國子博士 知常州以卒 : 宋 彭乘이 撰한 《墨客揮犀》에 의하면 “國子博士 李餘慶이 常州知事로 있을 때에 政事를 果斷性 있게 처리하면서 과감하게 惡習을 제거해서, 凶暴한 사람과 惡한 관리가 귀신을 만난 듯이 두려워하였다.
말년에 병이 들어 심히 피곤해졌을 때에 고을의 醫博士가 못된 짓을 많이 하면서 늘 李餘慶에게 발각될까 봐 두려워하다가 그 기회를 타서 독약을 올렸다. 이를 복용하고 매우 고통스러워하면서도 李餘慶이 그 奸惡한 행위를 看破하여 부축을 받으며 업무를 처리하고 의박사를 소환하여 杖殺한 다음, 돌아와 미처 자리에 눕기도 전에 사망하였다.” 하였다.
역주3 法曹參軍 : 모든 州府에 설치되었던 官職으로, 법률의 집행과 죄수의 판결을 관장하였다.
역주4 五代祖爲梁使閩 : 梁은 五代의 한 나라인 後梁을 지칭한다. 朱全忠이 907년에 건국했다가 923년에 李存勗이 세운 後唐에게 망하였다. 閩은 五代十國의 한 나라로 王審知 父子가 건국하여 54년간 존속하였다가 945년 南唐에게 亡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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