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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王安石(2)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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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6. 비부원외랑을 지낸 진군의 묘지명
悽惋多大旨
비통하면서도 큰 뜻을 드러낸 부분이 많다.
有子五人하니 今宰相是也
진진국공陳晉國公은 아들 다섯을 두었는데, 그 가운데 한 사람은 현재 재상宰相으로 계시다.
晉公之中子 而今宰相弟
진국공晉國公의 둘째 아들로서 지금 재상으로 계신 분의 아우이다.
晉公諱某 事始卒 在史官하니라
진국공晉國公는 아무개[某]이고 그분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사적事蹟사관史官의 기록에 수록되어 있다.
公諱某 字某 九歲 用晉公恩으로 守秘書省校書郞하다
이고 이며, 9세에 진국공晉國公의 은덕으로 수 비서성 교서랑守秘書省校書郞이 되었다.
晉公薨 恩改太常寺奉禮郞하다
진국공晉國公하시자 은덕으로 태상시봉례랑太常寺奉禮郞으로 옮겼다.
服除하고 久之 會封禪恩하야 改大理評事라가 監鳳翔府酒稅하다
상기喪期를 마치고 오랜 기간이 지나서 봉선封禪의 행사에 은혜를 입어서 대리평사大理評事로 옮겼다가 감봉상부주세監鳳翔府酒稅가 되었다.
又會祀汾陰하야 改衛尉寺丞이라가하야 以最升知邵武之邵武縣하다
다시 분음汾陰에서 후토后土에 제사 지낼 때에 은혜를 입어서 위위시승衛尉寺丞으로 옮겼다가, 돌아와서 고과考課상등上等으로 올랐으므로 소무邵武로 승진해가서 지소무현사知邵武縣事가 되었다.
獻文章하야 得試學士院하니 宰相才之하야 호되
문장文章을 지어 올리니 학사원學士院에서 불러 시험을 보였고, 재상宰相재능才能이 있음을 인정하여 과거科擧 합격 명부에 올리기를 의론하였는데, 이 굳게 이를 사양하며
親在하니 願得進官職也 不願得科名이라하니 從之하야 通判秀州라가 改大理寺丞하다
“형님이 재상 자리에 있으니, 관직官職에 나아갈 수 있게 되기만을 원할 뿐이고 과거에 급제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하였으므로, 이 뜻을 따라서 수주통판遂州通判에 임명하였다가 대리시승大理寺丞으로 바꾸었다.
하야 又獻文章하고 表乞治劇郡하야 得淮陽軍이라가 改太子中舍하다
돌아와 다시 문장文章을 지어 올리고, 를 올려서 정무政務번극繁劇한 큰 고을을 다스릴 수 있도록 해주기를 청하여, 회양군淮陽軍을 다스리게 되었다가 태자중사太子中舍로 옮겼다.
하야 恩加改殿中丞이러니 是歲 賜緋衣銀魚하고 知臨江軍이라가하야 得睦州하다
금상今上께서 즉위卽位하시자 은전恩典을 가하여 전중승殿中丞으로 옮겼는데, 이해에 비의은어緋衣銀魚하사下賜하고 지림강군知臨江軍에 임명하였으며, 돌아와서는 목주睦州를 다스리게 되었다.
薦者數人이어늘 天子以公名屬審官이라가 又徙知遂州하다
몇 사람의 추천이 있었으므로 천자天子께서 심관원審官院일원一員으로 삼았다가 다시 수주지사遂州知事로 옮겼다.
以齊國太夫人疾 辭還하야 改虞部員外郞하다
모친母親제국태부인齊國太夫人의 병환 때문에 사임辭任하고 돌아왔다가 우부원외랑虞部員外郞으로 바뀌었다.
上便宜數事 得引對하야 因自贊하니 天子欲稍進用之로되 而遭齊國太夫人之喪以去하다
황상皇上께서 몇 가지 일을 합당하게 처리하고자 하실 때에 불러서 물어보셨는데, 자신을 천거하니 황상께서 차츰 올려 쓰실 뜻을 가지게 되었으나, 제국태부인齊國太夫人을 당하여 물러나게 되었다.
居無何 睦州人王稷 上書斥公赦前數事하니 服除 猶坐是監虔州稅하다
물러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목주睦州 사람 왕직王稷사면령赦免令이 있기 이전의 몇 가지 일로 을 배척하는 글을 올렸으므로, 상기喪期를 마친 후 오히려 이 일에 연좌連坐되어 감건주세監虔州稅로 좌천되었다.
明道元年 恩改比部員外郞하고 通判建州라가 改駕部하다
명도明道 원년元年(1032)에 은전恩典을 입어서 비부원외랑比部員外郞으로 바뀌었고 건주통판建州通判이 되었다가 다시 가부駕部로 바뀌었다.
用擧者徙知吉州하야 坐法免이라가
천거薦擧를 받아들여 길주지사吉州知事로 옮겨주었다가 을 위반하였다 하여 면직免職되었다.
起爲比部하야 監泗州糧料하고 又坐法免이라가
그 후 복직復職되어 비부比部서임敍任되고 감사주양료監泗州糧料가 되었으나, 또 을 위반하였다 하여 면직되었다.
起爲虞部하야 監饒州하다 復得比部라가하야 羈居京師하다
다시 복직되어 우부虞部에 서임되어 감요주전감監饒州錢監이 되었다가 다시 비부比部에 서임되어 돌아와서 경사京師우거寓居하였다.
久之 乃出監江陰軍酒稅라가 道疾病하야 上書自言호되
오랜 후에 감강음군주세監江陰軍酒稅로 나가게 되었는데, 도중途中에 걸리자 글을 올려 말하기를
先臣恕得幸先皇帝하야 至大臣하고 臣階先臣以得仕하야 屢進所學하야 蒙記識하니이다
선친先親선황제先皇帝의 총애를 받아 대신大臣에 이르렀고, 선신先臣으로 인하여 음보蔭補로 벼슬을 얻어서, 신이 배운 바를 여러 번 진언進言하여 알아주심을 입었습니다.
方壯少時 頗汲汲欲自奮하야 收一日之效하야 以卒事陛下之分이나 而孤行單立하야 無黨友之助하고 又薄命不幸하야 數遭小人하니 以見困蹶하야 負先臣餘敎하고 辱陛下器使之恩이로소이다
젊었을 때에는 스스로 떨치고자 열심히 노력하며 뒷날에 효과를 거두어서 이로써 폐하께서 맡기신 일을 끝까지 잘 받들어 이행하려 하였으나, 외롭게 홀로 행하면서 당우黨友들의 도움도 받지 못하였고, 또 불행히도 운명이 궁박하여 여러 차례 소인小人들을 만나니, 곤난困難실패失敗를 겪어 선신先臣께서 남겨주신 가르침을 저버렸고, 폐하陛下께서 중용重用해주신 은혜를 욕되게 하였습니다.
今老矣 念終無以報盛德하고 除媿恥일새 夙夜憂畏하니 以故得病하야 病且死로소이다
이제는 늙어서, 생각하건대 끝내 성덕聖德에 보답을 못할 듯하여, 부끄러움을 면할 수 없기에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두려워하고 번민하다 보니, 이 때문에 병을 얻어 그 병 때문에 장차 죽게 될 듯합니다.
無田園以歸하고 無彊有力子弟以養하야 唯男一人世昌 去年爲進士하야 得嘉慶院解 臣兄在中書하야 奏不得試禮部하고 今當爲遠官하야 去臣旁遠甚이로소이다
돌아갈 전원田園도 없고, 유력한 자제子弟가 가까이 있어서 봉양하는 일도 없으며, 오직 하나뿐인 자식 세창世昌이 지난해에 진사시進士試응시應試 자격으로 가경원해嘉慶院解 자리를 얻었으나, 중서성中書省에 있으므로 친혐親嫌을 이유로 예부시禮部試에 응시하지 못하도록 상주上奏하였고, 이제 먼 지방의 관직을 담당하게 되어서 의 곁에서 매우 멀리 떠나게 되었습니다.
陛下憐之하사 幸聽臣分司하시고 改世昌蘇常間一官하사 以卒養臣이면 天地之賜也니이다
폐하께서 이를 가련하게 여기셔서 행여 분사分司에 근무하도록 허락해주시고, 세창世昌소주蘇州상주常州 사이의 한 벼슬로 바꾸어주셔서, 이로써 끝까지 을 봉양할 수 있게 해주신다면, 천지天地하사下賜해주신 것 같은 큰 은혜로 여기겠습니다.
臣誠窮하니 卽無自言이면 誰當爲臣言者乎잇가 書入未報하야 竟卒於江寧하니 得年若干이요 時某年月也
이 진실로 곤궁에 처하였으나 스스로 말씀을 올리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가 을 위해 말씀을 올려주겠습니까.” 하였는데, 상서上書가 황제께 전해지기도 전에 드디어 강녕江寧에서 하였으니, 향년享年모세某歲이고 한 때는 모년某年 모월某月이었다.
夫人某氏 子男兩人이니 世昌 泉之晉江主簿 次世長 前死하다 女兩人이니 皆已嫁하다
부인夫人모씨某氏이고, 아들 둘을 두었는데, 세창世昌천주泉州진강주부晉江主簿이고, 둘째 세장世長에 사망하였으며, 딸이 둘인데 모두 이미 출가하였다.
主簿將以某年月 葬公某處하야 葬有日 使來乞銘하다
주부主簿로 있는 아들이 모년某年모처某處에 하장하려 하면서, 장례 날이 잡히자 사람을 시켜 나에게 을 지어주기를 청하였다.
公爲臨江軍 先君爲之佐하고 其後二十五年 某得主簿於淮南하야 而兄事之하니 仍世有好 義不可以辭無銘也로다
처음 임강군臨江軍에서 벼슬할 때에 선친先親이 보좌한 일이 있었고, 그 후 25년이 지나서 (王安石 자신自身)가 회남주부淮南主簿가 되었을 때에 형으로 섬겼으니, 를 이어 하게 지냈기에 의리상義理上 짓기를 거절할 수가 없었다.
名臣子 少壯得美仕하고 間以文藝自進하니 意自以爲且貴富世其家 而遭平世하야 槪以文法持臣下 故其材不得有所肆하고 而卒以齟齬窮하니 其感激怨懟 往往見於文辭
명신名臣의 아들로서 젊어서 좋은 벼슬자리를 얻었고, 간혹 문장文章을 지어 상관上官에게 올려서 스스로 진출하기를 청하기도 하였고, 장차 그 집안의 부귀를 대를 이어 계승할 뜻을 가지고 있었으며, 태평한 시대를 만나서 법도에 합당하게 신하의 도리를 다하려 하였으나, 그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가 없었고, 시대 풍조와 어그러져서 궁곤하게 지냈으니, 그 원한怨恨한탄恨歎이 왕왕 그의 문장 속에 드러나기도 한다.
主簿離其藁爲二十卷하니 讀之 知其心之所存也 而其求分司語 尤悲하니 因掇其大槪而存之하노라
주부主簿가 그의 원고原稿를 분야별로 나누어 정리하여 20으로 편집하였는데, 이를 읽어보고 그분이 마음속에 간직했던 뜻을 알게 되었으며, 분사分司의 자리를 요청한 말이 더욱 비장하므로, 그 내용의 대강을 적취하여 묘지墓誌에 실어놓게 된 것이니, 아아!
其亦可悲也夫인저
그 또한 슬퍼할 만한 일이로다.
銘曰
은 다음과 같다.
於此有木焉하니 一本而中分이라
여기에 나무가 있어, 한 뿌리에서 나서 중간에 갈라졌네.
其材均하고 樹之時又均이어늘
그 재목됨이 똑같았고, 심은 때도 동일하였는데,
或斷而焚하고 或剖以爲犧尊하니
한 그루는 잘려서 불태워졌고, 다른 한 그루는 다듬어서 종묘의 제기를 만들었네.
誰令然耶
누가 각기 그렇게 되게 하였는가?
其偶然耶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인가?
吾又何嗟리오
내 이를 탄식한들 어이할 수 있으랴!
역주
역주1 比部陳君墓誌銘 : 本 墓誌銘은 慶曆 6년(1046)頃에 지은 것으로 보이며, 比部는 比部員外郞의 略稱이다.
역주2 陳晉公 : 陳恕(946~1004)를 칭한다. 卒한 後에 吏部尙書에 追贈되고 晉國公에 封해졌으므로 晉公이라 칭한 것이다.
역주3 其一人 : 陳執中(991~1059)을 가리킨다.
역주4 議與科名 公固辭 : 科名은 과거 합격자 명부에 이름이 오르는 것으로, 科名에 오른 사람은 轉任이나 昇進에 유리한 점이 많았는데도 公이 이를 사양한 것이다.
역주5 今上卽位 : 仁宗이 乾興 元年(1022) 2월에 卽位한 것을 말한다.
역주6 錢監 : 貨幣의 鑄造를 감독하는 벼슬이다.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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