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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王安石(2)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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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9. 《이문공집》의 뒤에 쓰다
看王公文字 須識得他筆力天縱處니라
왕공의 글을 읽을 때에는 모름지기 그의 문장력이 생득적인 우수함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문공李文公(李翶)은 동자董子(董仲舒)가 〈사불우부仕不遇賦〉를 지은 것을 비난하여 그가 자기 자신을 후하게 대우하지 않은 것이 애석하다 하였다.
以余觀之컨대 하고로다하시니 夫蓋嘆不遇也
내가 살펴보건대 《시경詩經》의 삼백편三百篇은 때를 만나지 못한 것에 대해 분노를 드러낸 것이 매우 많고, 공자孔子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봉황鳳凰이 날아오지 않고 하수河水에서 가 나오지 않으니, 나는 끝났구나!” 하셨으니, 이는 모두 때를 만나지 못했음을 탄식한 것이다.
문공文公이 주장한 차원의 드높기가 이와 같은데, 역사에 기록된 것을 관찰해보니, 〈그렇게 남을 준열하게 비판하였던 문공文公 자신도〉 한 번 맡고 싶은 직임職任을 얻지 못하면, 재상宰相을 비판하여 스스로 분풀이를 하였다고 하였다.
今吾於人也 聽其言而觀其行하고 言不可獨信 久矣로라
이에 나는 사람에 대하여 그 말을 듣고는 그 행실을 살피게 되었고, 말만 듣고는 믿지 못하게 된 지가 오래되었다.
雖然이나 彼宰相 名實固有辨하니 彼誠小人也
비록 그러하나 저 재상宰相명분名分실제實際가 본시 같지 않음이 있으니, 그 재상은 진실로 소인小人이다.
則文公之發 爲不忍於小人 可也어니와
그렇다면 문공文公발분發憤하여 비판한 것이 소인小人의 행위를 참을 수가 없어서였던 것은 옳은 일이다.
爲史者 獨安取其怒之以失職耶
그런데 역사를 기록한 사람이 어찌하여 유독 그가 맡고 싶은 직임職任을 얻지 못하여 성을 낸 부분만 취하여 쓴 것일까?
世之淺者 固好以其利心으로 量君子하야 以爲觸宰相以近禍하고 非以其私 則莫爲也니라
세상의 천박淺薄한 사람들은 본시 자신의 이기심利己心을 기준으로 집정자執政者를 헤아리기를 좋아하여, 재상宰相의 노여움을 하는 것은 를 가까이 하는 일이라고 여기고, 자신의 사욕私慾을 채우는 데 적합하지 않으면 행하지 않는다.
夫文公之好惡 蓋所謂皆過其分者耳로다
대저 문공文公이 좋아하고 싫어한 것은 이른바 모두 그의 분수分守에 맞지 않는 것들이었다.
方其不信於天下어늘 更以推賢進善爲急하야 一士之不顯이면 至寢食爲之不甘하니 蓋奔走有力하야 成其名而後已
그때는 그가 천하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지 못하였는데도, 현인賢人을 추천하고 선인善人을 등용함을 더욱 급선무로 여겨, 한 사람의 라도 드러나지 않으면 근심하여 자고 먹는 것이 달지 않음에 이르렀으니, 힘 있는 자에게 분주하게 추천하여 그 명성을 이루게 한 후에야 그쳤다.
士之廢興 彼各有命이니 身非王公大人之位어늘 取其任而私之하고 又自以爲賢하야 僕僕然忘其身之勞也하니 豈所謂知命者耶
가 벼슬에 나아가느냐 물러나 있느냐는 저마다 각기 운명運命이 있는데, 자신自身왕공王公이나 대인大人의 지위에 있지도 않으면서, 그 임무를 맡아서 자신의 일로 삼고, 또한 자신이 현인賢人이라고 여겨, 분주히 애쓰며 자신의 수고로움을 잊었으니, 어찌 이른바 운명運命을 아는 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라하니 夫文公之過也 抑其所以爲賢歟
전적典籍에 이르기를 “해지지 않으니, 현자賢者는 지나친 행위를 하고 불초자不肖者는 미치지 못하는 행위를 하기 때문이다.” 하였으니, 저 문공의 지나친 행위도 현인賢人이었기 때문인가?
역주
역주1 書李文公集後 : 《李文公集》은 唐代의 文人 李翶(772~841)의 文集을 지칭한다. 李翶의 諡號가 文이므로 그의 문집을 《李文公集》이라 한 것이다. 李翶는 國子博士와 史館修撰 등을 역임하였고 言論이 激切하였으며, 人材를 즐겨 추천하였다.
本文은 李翶 자신의 불우함에 대한 견해와 그의 행실이 일치하지 않았음을 지적하고, 李翶가 자신의 직분을 넘어서 인재를 추천한 것이 ‘知命’에 위배됨을 비판한 것이다.
역주2 文公……惜其自待不厚 : 漢나라 때의 董仲舒(B.C. 179~B.C. 104)가 〈仕不遇賦〉를 지어서 자신이 聖君이 다스리는 시대를 만나지 못하여 壯志를 펼칠 수가 없으니 世俗에 영합하지 않고 몸을 깨끗하게 수양하며 지내겠다고 한 것에 대하여, 李翶는 〈答獨孤舍人書〉에서 董仲舒가 자기 자신을 후하게 대우하지 않은 것이 애석하다고 비판하였다.
역주3 詩三百 發憤於不遇者甚衆 : 《史記》 〈太史公自序〉에 “《詩經》 詩 300편은 대체로 賢聖이 發憤하여 지은 것이다.[詩三百篇 大抵賢聖發憤之所爲作也]” 하였다.
역주4 孔子亦曰……吾已矣 : 《論語》 〈子罕〉에 보인다. 《春秋左氏傳》 昭公 17年에 “少皞摯가 즉위할 적에 봉황이 마침 이르렀다.[少皞摯之立也 鳳鳥適至]” 하였고, 《周易》 〈繫辭 上〉에 “河水에서 圖가 나오고 落水에서 書가 나오자, 聖人이 이를 본받았다.[河出圖 洛出書 聖人則之]”라고 보인다. 이는 孔子께서 聖君이 다스리는 시대가 到來하지 않음을 탄식한 말이다.
역주5 文公論高如此……則詆宰相以自快 : 《舊唐書》 〈李翶傳〉에 “李翶는 文章의 才能을 자부하며 스스로 知制誥의 職任에 합당하다고 여겼으나 오래도록 뜻을 이루지 못하자 怏怏不樂하며 中書省에 들어가 宰相 李逢吉의 過失을 하나하나 지적하였다.[翶自負辭藝 以爲合知制誥 以久未如志 郁郁不樂 因入中書謁宰相 面數李逢吉之過失]” 하였다.
역주6 記曰……不肖者不及也 : ‘記曰’의 記는 典籍을 지칭한다. 《中庸》에 “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道가 行해지지 않을 것임을 내가 알겠도다. 지혜 있는 사람은 지나치게 나아가고 어리석은 사람은 미치지 못하는도다. 道가 밝혀지지 않을 것임을 내가 알겠도다. 현명한 사람은 지나치고 못난 사람은 미치지 못하는도다.’라고 하였다.[子曰 道之不行也 我知之矣 知者過之 愚者不及也 道之不明也 我知之矣 賢者過之 不肖子不及也]” 한 말을 원용한 것이다.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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