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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王安石(2)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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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9. 내한을 지낸 심공의 묘지명
글이 아정雅正하다.
公姓沈氏 諱遘 字文通이니 世爲杭州錢塘人이라
심씨沈氏이고, 이며, 문통文通이니, 대대代代항주杭州 전당인錢塘人이었다.
曾祖諱某 皇贈兵部尙書 祖諱某 皇贈吏部尙書 父扶 今爲尙書이라
증조曾祖 로서 병부상서兵部尙書증직贈職되었고, 로서 이부상서吏部尙書증직贈職되었으며, 로서 현재 상서금부원외랑尙書金部員外郞이다.
公初以祖廕補郊社齋郞이라가 擧進士하고 於廷中爲第一이나 大臣疑已仕者 例不得爲第一이라 故以爲第二하다
은 처음 조부祖父의 공덕으로 교사재랑郊社齋郞음보蔭補되었다가,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고 정시廷試에도 제일第一로 합격하였으나, 이미 벼슬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관례상 1을 줄 수 없다고 대신大臣이의異議를 제기하였으므로 2이 되었다.
除大理評事하고 通判江寧府하니 當是時하야 公年二十이라 人吏少公이나 而公所爲卓越하야 已足以動人이나
대리평사大理評事제수除授되고 강녕부통판江寧府通判이 되었는데, 이때에 의 나이가 20세에 불과하였으므로 하급관리들이 을 어리다고 깔보았는데, 의 업무처리가 탁월卓越하여 이로써 사람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하였다.
然世多未知公果可以有爲也러니라
그러나 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이 과연 어떤 일을 하였는지를 알지 못하고 있다.
恩遷秘書省著作佐郞이라가 歲滿召歸하야 除太常丞 集賢校理 判登聞鼓院 하고 이라가 又判都理欠 憑由司하니 於是 校理八年矣
명당明堂에서 제사祭祀를 지낼 때에 은전恩典을 내려서 비서성저작좌랑秘書省著作佐郞으로 옮겼다가, 만기滿期를 채운 후 불러들여서 태상승太常丞 집현교리集賢校理 판등문고원判登聞鼓院 이부남조吏部南曹를 제수하였고, 권삼사도지판관權三司度支判官이 되었다가 다시 판도리흠判都理欠 빙유사憑由司가 되었으니, 이에 교리校理를 8년이나 지냈다.
平居閉門하야 雖執政이라도 非公事 不輒見也 故雖執政이라도 初亦莫知其爲材러라
평소에 문을 닫고 지내며 비록 집정자執政者라 해도 공적公的인 일이 아니면 만나지를 않았으므로, 집정자라 해도 처음에는 그의 재능을 알 수가 없었다.
居久之 乃始以同修起居注 召試知制誥러니 及爲制誥하야 遂以文學稱天下하다
오래 지나서 비로소 동수기거주同修起居注로서 시지제고試知制誥로 소환되었다가, 제고制誥가 됨에 이르러서야 드디어 문학文學으로 천하에 칭송을 받게 되었다.
金部君坐免歸 求知越州하고 又移知杭州하야 鉏治姦蠹하고 所禁無不改하며 崇獎賢知하야 得其歡心하니 兩州人皆畫像祠之하니라
김부군金部君께서 어떤 사건에 연좌되어 면직되어 돌아가니 월주지사越州知事가 되기를 청하였고, 다시 항주지사杭州知事로 옮겼는데, 간악奸惡하게 남의 재물을 침탈侵奪하는 자들을 가려내어 다스리고 금법禁法을 고치지 않은 것이 없었으며, 현명賢明하고 지혜智慧 있는 사람들을 추숭追崇하고 포장襃獎하여 그 고을 사람들의 환심歡心을 사니, 두 고을 사람들이 모두 초상화肖像畵를 그려 모시고 제사祭祀를 지내고 있다.
英宗卽位하사 召還하야 兼提擧兵吏司封官告院하고 兼判集賢院하야 廷見勞問甚悉하다
영종英宗께서 즉위卽位하시자 중앙으로 불러들여서 삼반원三班院구당句當군사軍事관리官吏봉증封贈을 관리하는 관고원官告院제거提擧를 겸하게 하였고, 아울러 집현원판사集賢院判事도 겸하게 하면서 천자天子께서 인견引見하시며 위로하고 묻기를 매우 자상하게 하셨다.
居一月 하니
1개월이 지나자 권발견개봉부사權發遣開封府事가 되었다.
公初至 開封指以相告曰 杭州沈公也라하더니 攝事 吏皆屛息이러라
이 처음 수도首都에 이르자, 개봉開封 사람들이 그를 가리키며 서로 고하기를 “이분이 항주지사杭州知事로 있던 심공沈公이다.” 하였는데, 직무를 처리하자 관리들이 모두 숨을 죽이고 긴장하였다.
旣而 以知審官院으로 遂以龍圖閣直學士權知開封府하다
그 후 지심관원知審官院에서 용도각직학사龍圖閣直學士 권지개봉부權知開封府가 되었다.
公旦晝視事라가 日中則庭無留人하고 出謝諸客하야 從容笑語하니
은 아침 일찍부터 한낮까지 직무를 보고, 정오가 되면 관부官府의 뜰에 남아 있는 사람이 없게 하고, 나가서 여러 빈객들을 응대하여 조용히 담소를 나누었다.
客皆怪公獨有餘日호되 而畿內翕然稱治하고 人人如公坐視其左右러라
빈객들이 이 유독 여유가 있음을 괴이하게 여겼으나, 기내畿內의 모든 이들이 흡연翕然히 잘 다스림을 칭찬하였고, 관리들마다 마치 이 그들의 곁에 앉아서 감시하는 것처럼 여겨 직무에 충실하였다.
於是 名實暴耀振發하야 賢臨一時하니 自天子大臣으로 皆論以爲國之器하고 而閭巷之士奔走談說하야 讙呼鼓舞하야 以不及爲恐이러라
이에 명성과 실적이 밝게 드러나고 크게 떨치게 되었으며, 어진 분이 한 시대를 굽어보고 있다고 여겨서, 천자天子로부터 대신大臣들까지 모두 나라를 다스릴 큰 인물로 여기고, 민간民間의 선비들은 달려와서 담론하고 고무되어 환호하면서, 그런 분을 만나지 못할까 두려워하였다.
會母夫人疾病이어늘 請東南一州視疾한대
그때 마침 모부인母夫人이 질병에 걸리자, 동남東南 지방의 한 고을을 맡아서 병환을 보살필 수 있게 해주기를 청하니,
英宗曰 學士豈可以去朝廷也아하고
영종英宗께서 말씀하시기를 “학사學士를 어찌 조정朝廷에서 떠나게 할 수 있겠는가?” 하시고,
明日 除翰林學士 知制誥하야 充群牧使하고 兼權判吏部流內銓 判尙書禮部하다
이튿날 한림학사翰林學士 지제고知制誥를 제수하시고, 충군목사充群牧使 권판이부유내전權判吏部流內銓 판상서예부判尙書禮部를 제수하였다.
公雖去開封이나 然皆以爲朝夕且大用矣 而遭母夫人喪以去하다 英宗聞公去하고 尤悼惜하야 하시고 而以金部君知蘇州하시다
이 비록 개봉開封에서 떠난다 해도, 가까운 시일 안에 장차 크게 쓰이게 될 것이라고 모두들 생각하였는데, 모부인母夫人을 당하여 떠나게 되니, 영종英宗께서 이 떠났음을 들으시고 매우 애석해하시면서 특별히 사자使者를 보내어 추가로 황금 100하사下賜하시고, 김부군金部君 지소주知蘇州를 제수하셨다.
公居喪致哀하야 寢食如禮러니 以某年某月 得疾杭州之墓次하야 某日至蘇州라가 而以某日卒하니 年四十有三이러라
상주喪主 노릇하면서 지극히 슬퍼하여 침식寢食예법禮法대로 하였는데, 모년某年 모월某月항주杭州묘소墓所에 머물다가 을 얻어서, 모일某日소주蘇州에 이르렀다가, 모일某日하니 향년享年이 43세였다.
三男子六女하니 中男恭嗣 後公六日卒하고 隆嗣廷嗣與六女 皆尙幼하다
아들 셋에 딸 여섯을 두었는데, 둘째아들 공사恭嗣한 지 6일 만에 하였고, 아들 융사隆嗣정사廷嗣 및 여섯 딸들은 모두 아직 어리다.
夫人陸氏 封安定郡君하고 公官右諫議大夫 散官朝散大夫 勳輕車都尉 爵長安縣開國伯으로 食邑八百戶
부인夫人 육씨陸氏안정군군安定郡君해졌고, 의 벼슬은 우간의대부右諫議大夫 산관조산대부散官朝散大夫에 이르렀으며, 경거도위輕車都尉이고 장안현개국백長安縣開國伯으로 식읍食邑이 800였다.
有文集十卷하다
문집文集 10을 남겼다.
公平居不常視書호되 而文辭敏麗可喜하고 强記精識하야 長於議論하니 世所謂老師宿學無所不讀하고 通於世務者라도 皆莫能屈也러라
은 평소에 항상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문장을 짓게 되면 민첩하고 아름다워서 볼 만하였으며, 읽은 것을 잘 기억하고 정확하게 알고 있으면서 의론議論에 익숙하니, 세상의 이른바 노련한 선생이나 오랜 기간 학문을 연구한 사람으로 세상 일에 정통한 사람들도 모두 그의 논리를 꺾을 수가 없었다.
與人甚簡하야 而察其能否賢不肖尤詳하야 視遇之各盡其理러라
사람을 매우 잘 가려 쓸 줄 알아서, 그 사람이 잘하는 일과 잘못하는 일, 현명함과 불초함을 매우 자세하게 살펴서 쓰고, 그들을 대우함이 각기 그 정도에 합당하게 하였다.
爲政號爲嚴明호되 而時有所縱舍하고 於善良貧弱 撫恤之尤至하다
정무政務를 처리함이 엄격 분명하다고 이름이 났으나 때로는 너그럽게 풀어주기도 하였으며, 가난하고 약한 사람에게는 선량하게 대하고 위무慰撫하고 구제救濟해주기를 매우 극진하게 하였다.
在杭州 待使客多所闊略이나 而州人之貧無以葬及女子失怙恃而無以嫁者 以公使錢葬嫁之 凡數百人이니 於其卒 知與不知 皆爲之歎惜이러라
항주지사杭州知事로 있을 때에는 사자使者빈객賓客의 접대는 소홀히 하면서도, 고을 사람 가운데 가난하여 장례를 치를 수 없거나 여자가 부모를 여의어 시집갈 수 없는 사람에게는 관비官費로 장례를 치르게 하거나 출가出嫁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 수백數百 이었는데, 그가 하자 아는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이나 모두 그를 위해 탄식하고 안타까워하였다.
某年某月某日 葬公杭州某鄕某里하다
모년某年 모월某月 모일某日항주杭州모향某鄕 모리某里하장下葬하였다.
銘曰
은 다음과 같다.
沈公儀儀하니 德義孔時
심공沈公께서 거동이 정숙하니, 그 덕의德義를 당시 사람들이 크게 칭양稱揚하였네.
升自東方하니 其明孰夷
동방東方에서 발신發身하시니, 그 밝음이 누가 그보다 더 현저할 수 있으랴.
視瞻歎譽 無我敢疵
우러러보고 탄복하며 찬양할 뿐, 우리가 감히 비난할 것이 없도다.
正晝而隕하니 嗚呼可悲로다
한창 나이에 돌아가셨으니, 아아! 슬픈 일이로다.
序傳有史하고 亦在銘詩
사서史書에 행적을 입전立傳해놓았고, 또한 업적을 명시銘詩에도 실어놓았도다.
역주
역주1 內翰沈公墓誌銘 : 內翰은 翰林學士의 別稱이다. 墓主 沈遘가 治平 4년(1067)에 卒하였으므로, 本 墓誌銘은 그해 또는 이듬해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역주2 金部員外郞 : 金部는 戶部에 소속된 官署로 商稅, 茶稅, 鹽稅 등을 관장하였다. 員外郞은 一定한 職責이 없이 祿俸을 받는 寄祿官이다.
역주3 明堂 : 帝王이 政敎를 펴고 祭祀, 朝會, 敎學 등의 典禮를 행하는 곳이다.
역주4 吏部南曹 : 吏部員外郞이 주관하는 人事의 考課 등을 담당했던 관서이다. 尙書省의 남쪽에 있었으므로 吏部南曹라 稱하였다.
역주5 權三司度支判官 : 官職 앞에 붙이는 ‘權’은 그 관직을 임시로 맡길 때에 붙이는 것이다.
역주6 句當三班院 : 句當은 어떤 업무의 처리를 임시로 위임할 때에 붙이는 명칭이다.
역주7 權發遣開封府事 : 權發遣은 그 직무를 담당하기에 品階가 2等級 낮은 사람을 임명할 때에 붙이는 명칭이다. 品階가 1等級 낮은 사람을 임명할 때에는 벼슬 명칭 앞에 ‘權知’를 붙인다.
역주8 特遣使者追賜黃金百兩 : ‘特’은 저본에 ‘時’로 되어 있는데 《臨川集》에 근거하여 바로잡았고, ‘百兩’은 저본에 없는데 《臨川集》에 근거하여 보충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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