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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王安石(1)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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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7. 재상의 직을 면해 주기를 청하는 1
臣某하노이다
는 말씀을 올리나이다.
竊以使陪國論하야 인댄 必用强明이라야 乃能協濟 豈容昏瞀 可以叨居리잇가
삼가 국가國家대계大計를 논의하는 자리에 배석陪席하여 천자天子께서 큰 공적을 이루도록 보좌하려면, 반드시 강건强健하고 정명精明한 사람이어야 협력協力하여 일을 처리할 수 있나니, 어찌 어둡고 우매한 사람이 참람僭濫하게 자리나 채우는 일을 용납할 수 있겠습니까.
進冒聰明하야 罄陳危悃하노이다
총명하신 황상皇上의 뜻을 하게 됨을 무릅쓰고 근심과 지성을 펼쳐 아뢰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中謝) 伏念臣 逮侍先帝하야 列官하고 晩以喪歸라가 因爲病廢하니이다
(中謝)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선제先帝들을 시봉侍奉할 때에 관직이 외조外朝에 속해 있었고, 만년晩年에는 어머니의 때문에 벼슬에서 물러나 강녕江寧으로 돌아갔으며, 이어서 병 때문에 벼슬에 나가지 못하였습니다.
伏遇皇帝陛下 召還辭禁하야 擢預經筵하시고 收於衆惡之中하야 諏以萬機之事하시니이다
삼가 황제폐하께서 궁금宮禁에서 문사文辭를 담당하는 한림학사翰林學士로 소환하시고 특별히 발탁拔擢하여 경연經筵에 참여토록 하셨고, 뭇 사람들이 미워하는 가운데도 거두어주고 천하의 각종 사무에 관하여 자문諮問하셨습니다.
搆讒誣而竝至호되 輒賜辨明하시고 推孤拙以直前호되 每蒙開納이로소이다
모함과 음해가 거듭될 때마다 번번이 변명할 기회를 마련해 주셨고, 편벽되고 졸렬한 견해를 직언直言으로 올려도 매번每番 널리 채납해 주시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陛下所以遇臣者可謂厚矣 臣之所以報國者終於缺然이니
폐하께서 신을 예우禮遇하심이 후했다고 말할 수 있는데, 신은 나라에 아무런 보답도 못하고 마치게 되었습니다.
豈理勢之獨難이리잇가
이것이 어찌 유독 사태의 형세形勢만 어려워서였겠습니까.
抑才能之素薄이니이다
또한 재능才能이 본시 천박해서였습니다.
方懼過尤之積 乃罹疚疾之加하니
바야흐로 과오過誤가 쌓여감을 두려워하였는데, 질병에 걸리는 불행까지 더하여졌습니다.
比欲外乞州蕃하야 冀以就營醫藥이로소이다
근자에는 바깥 고을로 나가고자 하여 지방관으로 보내주시기를 빌면서, 나아가 병의 치료만을 기약하였습니다.
重念采薪之弗給이어늘 尙何守土之敢謀리잇가
거듭 산림山林퇴거退居하기를 염원念願하였으나 허락을 받지 못하였으니, 어찌 감히 지방관으로 나가기를 도모할 수 있겠습니까.
이에 “소임을 감내할 수 없는 사람은 사임해야 한다.[不能者止]”는 말을 근거로 하여, 행여 벼슬을 탐해서 직분을 그르치는 후회는 면하고자 합니다.
伏望皇帝陛下 曲垂仁惻하시고 俯記愚忠하사 賜以一官하야 許於江寧居止하시면 則天地之德 實有施於餘年이니 犬馬之勤 冀或輸於異日하노이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황제폐하께서는 어지신 측은지심惻隱之心을 베풀어 주시고 어리석은 충심忠心을 굽어 살펴주셔서, 분사分司의 한 관원官員으로 내려 주셔서 강녕江寧에 거주함을 허락해 주신다면, 천지天地와 같은 은덕恩德으로 여생을 마칠 수 있을 것이니, 혹시 주인을 섬기는 견마犬馬의 부지런함을 후일에 바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하나이다.
역주
역주1 乞罷政事表一 : 이 表는 《續通鑑》에, ‘熙寧三年 二月 癸亥 王安石稱疾求分司’라 한 기록으로 보아, 첫 번째 宰相의 職을 담당하였던 熙寧 3年(1070) 2월 이후에 올린 것으로 보인다.
역주2 惟亮天工 : 황제를 보좌하여 천하의 功을 이루게 한다는 뜻이다. 《書經》 〈虞書 舜典〉에 “공경하여 때로 天子의 일을 도우라.[欽哉 惟時亮天功]” 하였다.
역주3 外朝 : 宰相의 管轄下에 있는 行政機構를 칭하는 것으로, 宮中의 기구인 內朝와 對比한 칭호이다.
역주4 輒緣不能者止之言 : 이 내용은 《論語》 〈季氏〉에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求야, 周任이 한 말에 ‘그 능력을 다 발휘하여 임무를 수행하다가 잘 할 수가 없으면 물러나야 한다.’ 하였다.[求 周任有言曰 陳力就列 不能者止]” 한 것을 빌어서, 자신이 재능이 부족하면서 重任을 담당한 것을 겸손하게 표현한 것이다.
역주5 庶免貪以敗官之悔 : 법도에 맞지 않는 관직에 있다가 그 직무를 그르치는 후회를 하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는 말이다. 《春秋左氏傳》 昭公 14년조에 “탐욕으로 직무를 그르치는 것을 墨이라 한다.[貪以敗官爲墨]”라고 하였다.
역주6 分司 : 唐代에 陪都인 洛陽에, 首都인 長安에 설치한 것과 동일한 官府를 설치하여 朝廷 官員의 관직을 나누어 직무를 맡겼는데, 이것을 分司라 하였다. 宋代에는 南京과 北京에도 分司를 두었다. 分司는 맡은 일이 별로 없어 관리들은 이따금 分司를 자청하여 휴식하는 곳으로 삼기도 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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