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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王安石(2)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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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5. 건안 장군의 묘지명
序跌宕之行이라 故文亦跌宕이라
자유분방自由奔放하게 살았던 행적行蹟서술敍述하였으므로, 문장文章도 자유분방하다.
君諱友直이요 姓章氏
우직友直이고, 장씨章氏이다.
少則卓越하야 自放不羈하고 不肯求 然有高節大度하야 過人之材하니
젊어서는 특출하게 뛰어났고, 자유분방自由奔放하여 예법禮法에 얽매이지 않았으며, 선발되어 임용됨을 추구하지 않았으나, 드높은 절의節義와 웅대한 도량度量으로 남보다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其族人爲宰相 欲奏而官之호되 非其好하야 不就也하니라
그의 친족親族순국공郇國公재상宰相이 되었을 때에, 상주上奏하여 벼슬을 주려 하였으나, 그런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취임하지 않았다.
自江淮之上 嶺南之間으로 以至京師 無不游하야 將相大人豪傑之士 以至閭巷庸人小子 皆與之交際하야 未嘗有所忤하야 莫不得其歡心이라
장강長江회수淮水 유역의 영남嶺南으로부터 경사京師에 이르기까지 유람하지 않은 곳이 없어, 장상將相 대인大人들과 호걸豪傑스러운 선비로부터 여항閭巷의 평범한 사람 및 수양이 덜된 사람에 이르기까지 그들 모두와 교제하면서, 일찍이 서로 거스르는 일이 없어, 그들의 환심을 사지 않는 일이 없었다.
卒然以是非利害加之라고 而莫能見其喜慍하니 視其心하면 若不知富貴貧賤之可以擇而取也 頹然而已矣러라
갑자기 옳고 그름을 따지고 해도 기뻐하거나 원망하는 기색을 보지 못했으니, 그의 마음을 살펴보면, 마치 부귀富貴빈천貧賤을 가려서 할 줄을 모르는 듯이 하였으며, 공경하고 순순히 따를 뿐이었다.
하야 哀天下之士沈於得喪하고 陷于毁譽하야 離性命之情하고 而自託於人僞하야 以爭須臾之欲이라
옛적 열어구列御寇장주莊周문왕文王 무왕武王이 세웠던 나라의 말세를 당하여 천하天下의 선비들이 득실得失을 따지는 일에 빠지고 비난과 찬양에 함몰陷沒되어, 성명性命실정實情에 어긋나게 되고, 자신을 헛된 쟁투와 한 순간의 욕망에 맡겨버림을 불쌍하게 여겼다.
故其所稱述 多所謂天之君子하니 若君者 似之矣로다
그 때문에 그들이 말하고 기술한 것에, 이른바 자연스러운 군자君子(至人과 신인神人)에 대한 것이 많으니, 같은 사람이 그에 유사한 인물이라 하겠다.
君讀書通大指하고 尤善相人이나 然諱其術하야 不多爲人道之하고 知音樂書畵奕碁하야 皆以知名於一時하니라
은 책을 읽으면 대의大義에 통달하였고, 사람들의 관상觀相을 매우 잘 보았으나, 그 재능 드러내기를 꺼려서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일이 많지 않았고 음악音樂서화書畵와 바둑 장기 등에 해서, 이런 모든 일로써 한 시대에 이름이 알려졌다.
皇祐中 近臣言君文章善篆한대 有旨召試호되 君辭焉하다
황우皇祐 연간年間근신近臣문장文章을 잘 짓고 전서篆書를 잘 쓴다고 아뢰니, 불러서 시험해보도록 명을 내렸지만 이 이를 사절辭絶하였다.
於是 할새 又言君善篆하야相上下한대 又召君하니 君卽往하야
이때에 태학太學에서 석경石經전서체篆書體로 새길 적에, 전서篆書를 잘 써서 이사李斯, 이양빙李陽氷과 우열을 겨룰만 하다고 다시 아뢰자, 또 을 부르니 은 즉시 이에 응하였다.
經成 除試將作監主簿호되 不就也하다
그리하여 석경石經이 완성되자 시장작감주부試將作監主簿에 제수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嘉祐七年十一月甲子 以疾卒于京師하니 年五十七이라
가우嘉祐 7년 11월 갑자일甲子日으로 경사京師에서 하니, 향년享年이 57세였다.
娶辛氏하야 生二男하니 存孺 爲進士 五女子 其長嫁常州晉陵縣主簿侍其璹하야 早卒하니 璹又娶其中女하고 次適蘇州吳縣黃元하고 二人未嫁하다
신씨辛氏와 결혼하여 두 아들 를 낳았는데 모두 진사進士가 되었고, 딸이 다섯인데 장녀長女상주常州 진릉현주부晉陵縣主簿 시기숙侍其璹에게 출가出嫁하였다가 일찍 하자 시기숙侍其璹가 다시 둘째 딸과 혼인하였고, 그 다음 딸은 소주蘇州 오현위吳縣尉 황원黃元에게 출가하였으며, 나머지 둘은 아직 출가하지 않았다.
君家建安者五世 其先則豫章人也
의 집안이 건안建安에 거주한 지는 5가 되었고, 그 이전에는 예장인豫章人이었다.
君曾祖考諱某 佐江南李氏하야 爲建州軍事推官하고 祖考諱某 著作佐郞으로 贈工部尙書 考諱某 京兆府節度判官이라
증조고曾祖考 이씨李氏강남江南에 세웠던 남당南唐에서 벼슬하여 건주建州 군사추관軍事推官을 지냈고, 조고祖考 저작좌랑著作佐郞으로 공부상서工部尙書증직贈職되었으며, 선고先考 경조부절도판관京兆府節度判官이었다.
君以某年某月某甲子 葬潤州丹陽縣金山之東園하다
모년某年 모월某月 모갑자某甲子윤주潤州 단양현丹陽縣 금산金山동원東園안장安葬하였다.
銘曰
이에 다음과 같이 을 지었다.
弗繢弗雕하고 弗跂以爲高
그리지도 않고 아로새기지도 않았으며, 발돋움하지 않았는데도 드높았도다.
俯以狎於野하고 仰以游於朝
고개 숙이고 초야草野에서 즐겁게 지내었고, 고개 들고 조정朝廷에서 노닐었도다.
中則有實하니 視銘其昭리라
속마음은 충실充實함이 있었으니, 이 을 본다면 밝게 알리라.
역주
역주1 建安章君墓誌銘 : 本文에 墓主가 嘉祐 7년(1062) 11월에 卒했다 하였으므로, 本 墓誌銘도 그 즈음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역주2 選擧 : 隋‧唐代 이후부터 賢能한 인물을 選拔하여 任用하는 제도로서, 平民이 官途에 나아갈 수 있는 한 방법이 되었다.
역주3 郇公 : 郇國公에 封해졌던 章得象(978~1048)을 지칭한다.
역주4 列禦寇莊周 : 전국시대의 道家思想家들인 列子와 莊子를 지칭한다.
역주5 文武末世 : 文王과 武王이 세운 周나라의 국력이 쇠미해져서 혼란에 빠졌던 戰國時代를 지칭한다.
역주6 太學篆石經 : 國子監에서 慶曆 元年(1041)에 九經(周易, 詩經, 尙書, 周禮, 禮記, 春秋, 孝經, 論語, 孟子)을 篆書와 楷書로 刻石하기 시작하여 嘉祐 6년(1061)에 完成한 사실을 말한다.
역주7 李斯陽氷 : 李斯(?~B.C. 208)는 秦나라가 六國을 滅하고 天下를 統一하는 데 功을 세워 丞相이 되었고, 戰國時代 나라마다 字體가 달랐던 文字를 篆書體로 統一하였다. 泰山, 琅邪 등의 刻石이 그의 글씨라 한다.
陽氷은 李陽氷으로, 唐代의 文字學과 書法의 大家로서, 특히 篆書에 독자적인 風格을 이루었던 인물이다.
역주8 : 衍文이다.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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