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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王安石(2)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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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4. 주객낭중 지흥원을 지낸 왕공의 묘지명
於沒旣久하야 而不能詳其治 行文自可槪見이라
사망한 지가 이미 오래되어 그 치적을 상세히 기술할 수가 없으나 기술한 글 속에 절로 그 대략이 나타나 있다.
公王氏 諱某 字某
왕씨王氏이고 이다.
其先著望太原하니 而公之曾大考諱某 考諱某 皆葬撫州之臨川縣하다
선조先祖태원太原 지방의 저명한 망족望族이었고, 증조고曾祖考 이고 선고先考 이니 모두 무주撫州임천현臨川縣에 장례를 모셨다.
公少力學하야 以孝悌稱於鄕里하고
은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썼고, 효성과 우애로 향리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다.
旣壯 起進士하야 爲漢州軍事推官하다 至則以材任劇으로 在上者交擧之하야 遷大理寺丞 知大名府大名縣하고 就除通判忻州라가 又通判眞定府하다 恃氣하야 侮折其屬하고 爲不法하니 以故久之莫敢爲通判者러라
장년이 되어 진사進士발신發身하여 한주군사추관漢州軍事推官이 되었는데, 부임하자 재능이 있다 하여 번잡한 사무를 담당하게 되었으며, 상관上官들이 서로 천거하여 대리시승大理寺丞 대명부大名府 지대명현知大名縣으로 전임되었다가, 곧 흔주통판忻州通判에 제수되었고, 다시 진정부통판眞定府通判이 되었는데, 진정부의 부수府帥왕사종王嗣宗호기豪氣를 부리며 그의 속료屬僚들을 모멸하고 불법을 자행하니, 이 때문에 오래도록 감히 의 업무를 판정하고 감독하려는 자가 없었다.
公行 嗣宗固不懌하야 稍侵公以氣호되 公恬然不爲校也하고 以禮示之而已하니 嗣宗詘服하다
이 그곳에 통판으로 가자, 왕사종王嗣宗은 처음부터 탐탁하게 여기지 않으면서, 슬슬 기세氣勢를 과시하고 에게 능욕을 가하였지만, 은 태연하여 이를 괘념掛念하지 않고 에 맞는 행동을 보여주니, 왕사종王嗣宗이 드디어 굴복하였다.
居十餘日 公請視獄하니 獄中繫者常數百人이어늘 嗣宗意慍하야 輒久之不問하고 吏亦不敢言治러라
부임한 지 10여 일 만에 옥사獄事를 처리하겠다고 청하였는데, 감옥 안에 갇혀 있는 자들이 늘 수백數百 에 이르렀으나, 왕사종王嗣宗은 마음속에 노여움을 품어 오래도록 문초조차 하지 않았으며, 옥리들도 감히 죄를 다스리도록 건의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公視獄하니 所當者數十人而已 餘悉當釋하야 無所坐하니
공이 구속된 죄수들을 살펴보니, 마땅히 치죄治罪해야 할 자들은 수십數十 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모두 범법을 한 것이 없어서 석방해야 마땅한 사람들이었다.
於是 嗣宗有司하야 如公指하고 卽日斷出之하니
이에 왕사종王嗣宗담당관서擔當官署에 재촉하여 이 지적한 대로 처리하여, 그날로 즉시 결단을 내려서 이들을 석방하였다.
自是 事無不聽公所爲러라
이 일이 있은 이후로는 사안事案의 처리에 이 하는 바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없었다.
分別可否하야 而使其政皆由嗣宗以出하니 雖府人이라도 或不知公於嗣宗日有助也
은 즉시 가부可否를 판별하여 처리하면서도 그 정사政事가 모두 사종嗣宗한 것으로 하여 을 그에게 돌리니, 비록 부중府中 사람이라도 더러는 사종嗣宗에게 날마다 도움을 주고 있음을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一府遂治하니 而士以此稱公爲長者러라
이렇게 되어 드디어 온 부중府中이 잘 다스려지니, 선비들이 이 때문에 을 훌륭한 어른이라고 칭찬하게 되었다.
始公中進士時 同進有常陵公者嫉公하야 先以被酒하야 取公勅牒裂燒之어늘 公爲諱其事하고 以失亡告有司而已
처음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였을 때에 동년급제자同年及第者 가운데 늘 능멸陵蔑하며 질시嫉視하고, 에 술에 취하여 의 임명장을 빼앗아 찢어서 불태운 일이 있었는데, 은 그를 위해 그 사실을 숨기고 임명장을 잃어버렸다고 담당관청에 보고하였다.
及後陵公者爲屬吏어늘 公擧遷之한대 或非公以德報怨하니
그 후 을 능멸했던 자가 속리屬吏가 되자, 이 그를 높은 자리에 천거하였는데, 어떤 사람이 원한怨恨으로 보답하였다고 비난하였다.
公曰 受詔擧京官하야 彼今爲吾屬而任京官하니 吾則擧之어늘 何報怨之謂哉리오
이에 이 말하기를 “칙명勅命을 받아 경관京官을 천거하게 되었고, 그가 이제 나의 속료屬僚가 되어 경관京官을 맡고 있으므로 내가 그를 천거한 것일 뿐인데, 어찌 원한怨恨으로 갚았다고 이를 것이 있겠는가?
且吾與彼 乃未始有怨也라하니
그리고 나와 그는 애당초 서로 원한이 없었다.” 하였다.
蓋公之行 已多如此러라
대체로 한 일에 이와 같은 것이 많았다.
居一歲 移知保州라가 又以擧者移知深州하고 又以選移知齊州하니 二州之人皆曰 公愛我라하더니
1년 만에 지보주知保州로 옮겼다가, 다시 천거하는 사람이 있어서 지심주知深州로 옮겼고, 다시 뽑아 가려는 사람이 있어서 지제주知齊州로 옮겼는데, 두 고을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이 우리를 아껴주셨다.” 하였다.
已而 提點刑獄淮南 兼勸農事하다
그 후 회남淮南제점형옥提點刑獄 권농사勸農事가 되었다.
公於爲獄 務在寬民하고 而以課田桑爲急하야 按渠陂之故하야 誘民作而修之하니 利田至萬九十頃이라
옥사獄事를 처리할 때에는 백성을 너그럽게 대하고자 노력하였고, 경전耕田양잠養蠶의 관리 감독을 급선무로 여겨서 농수로農水路와 제방 가운데 오래된 것을 살펴서 백성을 인도引導하여 이를 수리修理하니, 그 혜택을 입게 된 땅이 1 90에 이르렀다.
天子賜書獎諭하고 後出氏名付大臣召用하다
이에 천자天子께서 장려獎勵하는 유시諭示의 글을 내리시고 후에 씨명氏名(姓名)을 대신大臣에게 내려보내어 불러 쓰도록 당부하셨다.
而當是時하야 爲宰相이라 先是 謂以二人으로 屬公善視之하야 曰 皆能吏也라하더니 至則皆有罪어늘 公發其狀以聞하니
이때를 당하여 정위丁謂재상宰相이 되었는데, 이보다 앞서서 정위丁謂는 두 사람을 속리屬吏로 보내면서 잘 보살펴주도록 당부하고 말하기를 “이들은 모두 유능한 관리이다.” 하였으나, 부임한 후에 보니 모두 가 있었으므로, 이 그 죄상罪狀을 들춰내어 이를 보고하였다.
由此 謂欲傷公하야 不果하다
이 때문에 정위丁謂을 해치고자 하여 불러 쓰지 않았던 것이다.
而久之 公所任吏亦有贓坐하니 卽絀公監池州順安鎭酒稅러니 會今上卽位하야 移滁州하고 又移知興元府하다
그리고 나서 오랜 후에 이 임명한 관리 또한 횡령죄에 걸리게 되자, 즉시 지주池州 순안현順安縣감주세監酒稅로 좌천시켰는데, 때마침 금상今上께서 즉위하시니 저주滁州로 옮겼다가 다시 지흥원부知興元府로 옮기게 되었다.
으로 論者皆以公宜復用이러니 而公亦且得疾不起矣하니 享年六十二 官至尙書主客郞中하다
정위丁謂가 죄를 범하여 남방으로 좌천되자, 말하는 사람들이 모두 이 당연히 다시 등용되리라고 하였는데, 또한 을 얻어서 일어나지 못하였으니, 향년享年이 62세였고, 벼슬은 상서주객낭중尙書主客郎中에 이르렀다.
明年天聖七年 葬和州之歷陽縣이라가 後若干年 公夫人張氏葬할새 而公墓墊하야 乃改卜合葬於眞州揚子縣萬寧鄕銅山之原하다
이듬해인 천성天聖 7년에 화주和州역양현歷陽縣안장安葬하였고, 그 후 몇 년이 지나서 부인夫人 장씨張氏장례葬禮를 치를 적에 합장合葬하려 하면서, 이에 을 쳐서 개장改葬하여 진주眞州 양자현揚子縣 만녕향萬寧鄕 동산銅山의 언덕에 합장合葬하였다.
公子六人 於是存者二人이니 曰某 爲殿中丞이요 曰某 爲進士
은 아들이 6이었으나, 이때에 생존해 있는 사람은 2이었으니, 전중승殿中丞이고 진사進士였다.
其四人 皆已卒하니 曰某 開封士曹參軍이요 曰某 楚州寶應縣主簿 曰某 曰某 爲進士
4은 모두 이미 하였는데, 개봉부사조참군開封府士曹參軍을 지냈고, 초주楚州 보응현주부寶應縣主簿였으며, 진사進士였다.
而公以殿中君積贈官至右諫議大夫하다
그리고 전중군殿中君에서 계속 증직贈職되어 우간의대부右諫議大夫에 이르렀다.
公兄孫也 受命於叔父而爲銘하니
(王安石 자신)는 손자孫子로서, 숙부의 을 받아 이 을 짓게 되었다.
銘而次公之行事不能詳者 以不得事公이요 而公之沒 叔父皆尙少故也
을 지으면서 께서 하신 일을 차례대로 상세히 기술하지 못하는 것은 을 모신 일이 없었기 때문이고, 께서 하셨을 때에 숙부叔父들이 모두 아직 어렸기 때문이다.
嗚呼
아아!
於公之行事 雖不得其詳이나 而其略所聞如是하니 蓋可以考公德矣리아
하신 일에 대하여 상세히 기술할 수가 없지만, 그 들은 바가 대략 이와 같으니, 이것만으로도 대체로 덕행德行을 살펴볼 수가 있다.
銘曰
은 다음과 같다.
王亡晉封하고 遠跡南土
왕씨王氏 땅의 봉토封土를 잃고, 멀리 남녘 땅에 이르렀었네.
公始有廟하야 妥其禰祖
이 비로소 가묘家廟를 갖게 되어, 그곳에서 선고先考선조고先祖考의 제사를 지내게 되었네.
孰强而勝하고 孰忌以爭
누가 억센 기세氣勢로 꺽으려 하였으며, 누가 꺼리면서 다투려 하였던가?
孚予恭寬 在窒而亨이라
나의 겸손謙遜함과 관후寬厚함을 굳게 지키니, 막혔던 일이 형통亨通하게 되었네.
嶷嶷之節 因時乃發하니
우뚝하신 절조節操는 때맞추어 드러났으니,
曰黜予咎 匪仇予遏이라
내가 허물이 있어서 쫓겨난 것이지, 원수怨讐가 나를 해쳐서가 아니라고 말씀하셨네.
避善不名이나 亦不隕聞이라
선행을 하면서 이름나지 않게 피하셨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소문 없어지지 않았네.
寘銘新基하니 維以長存하리라
새로 이장移葬한 무덤에 을 새겨놓으니, 이 업적業績 오래도록 남아 있으리.
역주
역주1 主客郎中知興元王公墓誌銘 : 本 墓誌銘의 墓主는 王貫之로서, 王安石의 從祖이다. 主客郎中은 禮部 主客司의 長으로, 外交‧宴會‧祭祀 등을 管掌하였다. 知興元은 興元府(現 四川省 廣漢)의 知事를 지칭한다.
역주2 府帥王嗣宗 : 府帥는 한 路의 長官으로서 兵馬를 관할하는 按撫使를 兼任한 자의 칭호이다. 당시 府帥였던 王嗣宗(944~1021)은 輕薄하고 못된 짓을 많이 한 자로, 靜難軍節度使로 관직을 마친 인물이다.
역주3 : 촉
역주4 : 저본에는 ‘賴’로 되어 있는데, 龍舒本에 근거하여 바로잡았다.
역주5 丁謂 : 丁謂(966~1037)는 中書門下平章事 昭文館大學士를 역임했으며 多才多藝하였으나 性情이 狡猾하여 宰相 寇准을 모함하여 罷職시켰다가, 갖가지 欺罔이 탄로되어 崖州司戶參軍으로 降等되었던 인물이다.
역주6 : 龍舒本에 근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7 丁謂得罪徙南方 : 建興 元年(1022)에 左僕射 同平章事로 있던 丁謂가 崖州司戶로 降等 左遷된 것을 지칭한다.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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