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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王安石(1)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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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1. 건주虔州에 학교를 세운 일을 기록한
荊公文 往往好爲深遠之思하고 遒婉之調
형공荊公의 문장은 왕왕 심원深遠한 사상을 적절하게 표현하기도 하고, 글의 굳셈과 아름다움이 조화調和를 이루기도 한다.
이나 亦思或入於渺하고 而調或入於詭하니 須細詳得之니라
그러나 또한 생각이 더러 미세한 면에 치우치고 격조가 더러 궤변詭辯으로 빠지기도 하니, 이런 점을 모름지기 자상하게 살펴서 터득해야 할 것이다.
虔於江南 地最曠하고 大山長谷 荒翳險阻
건주虔州강남江南에서 땅이 가장 넓고 큰 산과 긴 골짜기에 수목이 무성하고 험하게 막혀 있는 곳이다.
銅鹽之販 道所出入하니 椎埋盜奪鼓鑄之姦 視天下爲多
교주交州, 광주廣州, 민주閩州, 월주越州에서 구리나 소금을 판매하는 상인들이 이 길을 경유하게 되니, 몽둥이로 살인하여 암매장하는 무리, 강도범들, 전폐錢幣병기兵器를 불법으로 주조鑄造하는 못된 무리들이 천하의 다른 지역에 비하여 많은 편이다.
하니 虔亦應詔로되 而卑陋褊迫하야 不足爲美觀하니 州人 欲合私財하야 遷而大之久矣
경력慶曆 연간年間황상皇上께서 일찍이 에 학교를 세우도록 명하셨으므로 건주虔州 또한 명을 따르게 되었지만, 그 건물이 낮고 누추하고 좁아서 아름다운 건물이 못되니, 고을 사람들이 사재私財를 모아서 더욱 크게 옮겨 짓고자 한 지가 오래되었다.
然吏常力屈於聽獄하야 而不暇顧此 凡二十一年이러라
그러나 관리들은 항상 옥사獄事를 처리하는데도 힘이 부쳐서 이 문제를 돌아볼 겨를이 없이 지내온 것이 어언 21년이 되었다.
而後 改築於州所治之東南하니 以從州人之願이라
그런 이후에 치소治所 동남쪽에 다시 개축改築하게 되어 고을 사람들의 소망이 실현되었다.
蓋經始於治平元年二月하니 行州事之時 而考之以十月者
치평治平 원년元年(1064) 2에 착공하였는데, 제점형옥提點刑獄송성宋城채후蔡侯가 고을을 다스리던 때였고, 10월에 이를 완공한 분은 지건주사知虔州事전당錢塘원후元侯였다.
二侯 皆天下所謂才吏 故其就此不勞로되 而齋祠講說候望宿息 以至庖湢 莫不有所하니라
두 분 모두가 천하 사람들이 재능才能 있는 관리라고 일컫는 사람들이었으므로, 이를 완공하는데 어려움이 없었고, 재계齋戒제사祭祀에 쓰이는 건물과 강설講說하는 과 손님을 접대하는 건물과 숙식宿食하는 건물에서 목욕하고 요리하는 곳에 이르기까지 제자리를 잡고 있지 않은 것이 없었다.
又斥餘財하야 市田及書하야 以待學者하니 內外完善矣
또한 남은 재물로 토지土地전적典籍구매購買하고, 이로써 배우러 올 사람들을 기다리니, 안과 밖으로 갖추어야 할 것들이 훌륭하게 완비되었다.
於是 州人 相與樂二侯之適己하야 而來請文以記其成하니라
이에 고을 사람들이 두 분께서 자기들의 소망을 들어 준 것을 기쁘게 여기며, 내게 와서 글을 지어 그 성취한 바를 기록해 주기를 청하였다.
余聞之호니 先王所謂道德者 性命之理而已 其度數 在乎鐘鼓管絃之間이로되 而常患乎難知
내가 들으니, 선왕先王들이 이른바 도덕道德이라 한 것은 생명生命 본원本源이치理致일 뿐이고, 그 법도法度조두俎豆종고鐘鼓관현管絃 사이에 존재하나, 항상 그것의 알기 어려움을 근심하였다.
故爲之하야 爲之學하고 以聚天下之士하야 期命辯說하고 誦歌絃舞하야 使之深知其意하니라
그렇기 때문에 백성 교육을 책임진 관리를 두어서 그것들을 배우게 하고, 배운 것을 준거로 천하의 들을 모아서 사물事物특점特點에 의거하여 명명命名하고 분별하여 설명하며, 시가詩歌송독誦讀하면서 거문고 비파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그 의의意義를 깊이 이해하도록 하였다.
夫士 牧民者也
대저 는 백성을 기르는 사람이다.
知地之所在 則彼不知者 驅之爾
가축을 기르는 사람은 그 초지草地가 있는 곳을 알아야 하나니, 그 사람이 초지草地가 있는 곳을 모른다면 내쫓아 버려야 할 뿐이다.
然士學而不知하고 知而不行하며 行而不至 則奈何
그리고 가 배웠어도 알지 못하거나, 알기는 하되 실천實踐을 하지 않거나, 실천은 하되 지극至極경지境地에 이르지 못한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先王 於是乎有政矣니라
선왕先王이 이런 경우를 위하여 정치政治제도를 둔 것이다.
夫政 非爲勸沮而已也 然亦所以爲勸沮
대저 정치가 권장하거나 금지시키기 위해서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또한 권장과 금지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故擧其學之成者하야 以爲卿大夫하고 其次 雖未成이나 而不害其能至者 以爲士하니
그 때문에 그 배움이 이루어진 자를 등용하여 이나 대부大夫를 삼기도 하고, 그만은 못하여 비록 완성은 못하였다 해도 지극한 경지를 이룰 수 있음에 해가 되지 않는 사람은 로 삼았으니, 이런 것이 임금이 이른바 임용하였다고 하는 것이다.
若夫道隆而德駿者 又不止此하니 雖天子라도 而問焉하고 而與之迭爲賓主하나니
대저 가 높고 덕행德行걸출傑出한 사람은 또한 이에 그치지 않으니, 비록 천자天子라 해도 스승으로 섬기면서 질문을 하였고, 그와 번갈아 빈주賓主가 되어 를 극진히 하였으니, 이것이 임금이 이른바 공경하여 받들었다고 하는 것이다.
蔽陷畔逃하야 不可與有言이면이라
숨고 배반하고 도피하여 그를 말로 설득시킬 수가 없으면 매를 쳐서 그 과실을 깨우치게 하고, 이를 기록하여 그 함을 알게 하였다.
待之以歲月之久로되 而終不化 則放棄殺戮之刑 隨其後하니
오랜 세월을 기다려도 끝내 교화敎化되지 않으면 유배형流配刑사형死刑이 뒤따르게 하였으니, 이것이 순임금이 이른바 그들을 두려워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蓋其敎法 德則異之以 行則同之以이요 藝則盡之以니라
대체로 그 가르치는 법이 육덕六德으로써 구별하고, 행실行實육행六行으로써 통일하며, 육예六藝로써 극진히 하였다.
淫言詖行 詭怪之術 不足以輔世 則無所容乎其時하니라
음란한 말과 비뚤어진 행동, 괴이한 술책은 세상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그 시대에는 허용될 수가 없었다.
而諸侯之所以敎 一皆聽於天子 이니라
그리고 제후諸侯들이 가르치는 근본도 한결같이 모두 천자天子의 뜻을 따르는 것이었으니, 천자가 명한 연후에야 학교學校를 세웠다.
命之曆數하야 所以時其遲速하고 命之하야 所以節其豐殺하니
세시歲時 절후節候를 헤아리도록 명하여 시령時令에 맞추어 속히 할 일과 천천히 할 일을 정하는 근거가 되었고, 도량형度量衡을 제정하도록 명하여 늘이고 줄이는 준칙準則의 근거가 되었다.
命不在是 則上之人 不以敎 而爲學者不道也니라
이 이에 있지 않으면 윗자리에 있는 사람이 이를 가르치지 않았고, 배우는 사람을 위해 이를 말하지 않았다.
士之奔走揖讓酬酢笑語升降 出入乎此 則無非敎者
가 내달리고, 하고 사양하며, 술잔을 주고받고, 담소하며, 오르고 내리는 것이 이 기준에 벗어나는 것이 있게 되면, 가르쳐서 바로잡아 주지 않는 것이 없었다.
高可以至於命하고 其下亦不失爲人用이러니 其流及乎旣衰矣 尙可以鼓舞群衆하야 使有以異於後世之人이라
위로는 천명天命에 도달할 수 있고 아래로는 또한 사람들의 쓰임이 되기에 결함이 없었는데, 그 교화敎化가 세월이 흐르면서 이미 쇠미衰微해졌지만 아직도 군중을 고무시킬 수 있었으니, 후세後世의 사람들과는 다른 점이 있었다.
故當是時하야 婦人之所能言 童子之所可知 有後世老師宿儒之所惑而不悟者也 武夫之所道 鄙人之所守 有後世豪傑名士之所憚而愧之者也
그러므로 이때를 당하여서는 부인婦人도 능히 말할 수 있었고 동자童子도 잘 알고 있었던 것 가운데, 후세의 훌륭한 스승과 수양을 깊게 한 유학자도 의문을 품고 깨닫지 못한 것이 있게 되었고, 당시當時무부武夫한 바와 배우지 못한 시골 사람이 지키던 것 가운데, 후세의 호걸豪傑명사名士들도 이를 따라할 수 없음을 두려워하고 부끄럽게 여길 만한 것이 있게 되었다.
堯舜三代 從容無爲로되 同四海於一堂之上하니 而流風餘俗詠歎之不息 凡以此也니라
삼대三代들은 조용히 있으면서 인위적人爲的으로 억지로 추구하는 것이 없었지만 제위帝位에서 남면南面하고 가만히 있으면서도 온 천하를 동화同化시킬 수 있었고, 그러한 풍속이 후세에 전해 내려와서 노래하고 찬미하기를 중단함이 없었던 것은 모두 이 때문이었다.
周道微 不幸而有秦하야 君臣 莫知屈己以學하고 而樂於自用하니
주도周道가 쇠미해지자 불행하게도 나라가 일어나서, 신하臣下들이 자신을 낮추고 배워야 함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뜻대로 하는 것을 즐거워하였다.
其所建立 悖矣어늘 而惡夫非之者하야 乃燒詩書하고 殺學士하며 掃除天下之
그들이 세운 제도가 그릇된 것이므로 이를 싫어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게 되니, 이에 《시경詩經》과 《서경書經》을 불태우고 학사學士를 죽이고 천하의 모든 교육기관을 없애 버렸다.
然後 非之者愈多하야 而終於不勝하니 何哉
그 이후에 이를 비판하는 사람이 더욱 많아져서 끝내는 이들을 이길 수가 없게 되었으니, 이는 무엇 때문인가.
先王之道德 出於性命之理 而性命之理 出於人心이니
선왕先王도덕道德생명生命 본래本來이치理致에서 나온 것이고, 생명 본래의 이치는 인심人心에서 나온 것이다.
詩書能循而達之 非能奪其所有而予之以其所無也
시경詩經》과 《서경書經》은 생명 본래의 이치를 따라서 인심에 도달한 것이니,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빼앗거나 없는 것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經雖亡이나 出於人心者猶在하니 則亦安能使人舍己之昭昭하고 而從我於聾昏哉리오
경서經書가 비록 없어진다 해도 인심人心에서 나온 것은 여전히 남아 있는데, 어찌 사람들에게 자기의 마음속에 명백하게 존재하는 양심의 소리를 버리고 귀머거리가 되어 나를 따르라고 할 수 있겠는가.
然是心 非特秦也 니라
그러나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특별히 시대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니, 공자孔子가 생존했던 때에도 이미 향교鄕校를 파괴하려는 자가 있었다.
蓋上失其政이면 人自爲義하야 不務出至善以勝之하고 而患乎有爲之難하나니 則是心 非特秦也니라
대체로 위에서 그 바른 정사政事를 잃게 되면, 사람들이 각자 제 뜻대로 행하여 지선至善경지境地로 나와서 그릇됨을 극복하는데 힘쓰지 않고 그런 일의 하기 어려움만을 근심하게 되나니, 이런 마음은 특별히 시대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墨子區區 不知失者在此하고하니 彼其爲愚 亦獨何異於秦이리오
묵자墨子의 변변치 못한 이론은 그릇됨이 여기에 있음을 알지 못하고 ‘상동尙同’의 이론을 내놓았으니, 그 사람의 어리석음이 어찌 유독 진시황秦始皇과 다를 것이 있으리오.
嗚呼
아아!
道之不一 久矣
가 하나로 합일合一되지 못한 지가 오래되었도다.
揚子曰 如將復駕其所說인댄 莫若使諸儒金口而木舌이라하니 蓋有意乎學校之事
양자揚子가 말하기를, “만약 장차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신 를 다시 천하天下에 널리 펼쳐지게 하려 한다면, 여러 선비들로 하여금 만민萬民목탁木鐸이 되어 널리 알리게 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다.” 하였으니, 이는 벽옹辟雍학교學校를 일으키는데 뜻을 두고 한 말이다.
善乎 其言이여
참으로 훌륭하도다, 그 말이여!
雖孔子出이라도 必從之矣시리라
비록 공자孔子가 다시 태어난다 해도 반드시 그 말을 따랐을 것이로다!
今天子以盛德으로 新卽位하시니 庶幾能及此乎인저
이제 천자天子께서 성대盛大을 지니시고 새로 즉위卽位하셨으니, 아마도 이런 경지에 이를 수 있을 것이로다!
今之守吏 實古之諸侯 其異於古者 不在乎施設之不專이라 而在乎所受於朝廷 未有先王之法度 不在乎無所於敎 而在乎所以敎 未有以成士大夫仁義之材니라
지금 한 지방을 진수鎭守하는 관리들은 실은 옛날의 제후諸侯와 같으나, 그들이 옛 제후들과 다른 점은 관내管內의 행정시행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조정朝廷선왕先王법도法度를 갖지 못한 것을 명해도 그대로 받아들여 따르는 데 있고, 백성을 가르칠 곳이 없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는 것이 사대부士大夫인의仁義를 지닌 인재人材로 키우지 못하는 데 있는 것이다.
雖地曠以遠이나 得所以敎 則雖悍昏嚚凶하야 扺禁觸法而不悔者라도 亦將有以聰明其耳目而善其心이리니 又況乎學問之民이리요
건주虔州 땅이 비록 중앙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황폐한 곳이지만, 교화敎化의 근본을 얻게 된다면, 비록 거칠고 혼암昏暗하고 어리석고 포학하여 금령을 어기고 법에 저촉되는 일을 하면서 뉘우침이 없는 사람들이라 해도, 또한 장차 그 이목耳目총명聰明해지고 그 마음이 착해지게 될 것이니, 더구나 학교學校에서 학문學問을 닦은 백성이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故余爲書二侯之績하고 因道古今之變及所望乎上者하야 使歸而刻石焉하노라
그 때문에 내가 그들을 위해 두 공적功績을 기록하고, 이어서 고금古今학교學校에 대한 의식의 변화와 윗사람에게 기대하는 바를 말해서, 찾아온 사람으로 하여금 돌아가 이를 돌에 새겨 놓도록 하였다.
역주
역주1 虔州學記 : 이 글에서 治平 元年(1064) 10월에 虔州의 州學이 完工되었다고 한 것으로 보아, 그 얼마 후에 本 學記가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虔州는 現 江西省 贛州이다. 記는 文體의 一種으로, 敍事를 위주로 하지만 景物 描寫나 議論 위주로 된 것도 있다. 王安石의 記는 대부분 議論을 드러낸 것들이다.
역주2 交廣閩越 : 交州는 現 越南 하노이 一圓, 廣州는 현 廣東省 일원, 閩州는 현 福建省 일원, 越州는 현 浙江省 일원을 지칭한다.
역주3 慶曆中 嘗詔立學州縣 : 宋 仁宗이 慶曆 4년(1044) 3월에 각 州縣에 學校를 세우도록 詔令을 내렸다.
역주4 提點刑獄宋城蔡侯 : 蔡侯는 蔡挺을 지칭하며, 侯라 稱한 것은 士大夫에 대한 尊稱으로 쓴 것이다. 蔡挺(1014~1079)은 治平 年間에 江南西路提點刑獄을 역임한 일이 있으며, 벼슬이 樞密副使에 이르렀고, 《宋史》에 傳이 있다.
역주5 知州事錢塘元侯也 : 元侯는 元積中을 지칭하며, 治平 元年에 知虔州事를 歷任하였다.
역주6 俎豆 : 古代의 祭器로, 이곳에서는 祭祀의 法度를 지칭한다.
역주7 官師 : 《禮記》 〈祭法〉에, “관사는 일묘만 둘 수 있다.[官師一廟]”라 하였고, 이에 대한 鄭玄의 註에, “官師는 中士, 下士, 庶士, 府士에 屬하는 사람이다.[官師 中士下士庶士府士之屬]”라고 한 것으로 보아, 下級 官吏를 指稱하며, 이곳에서는 民衆의 교육을 담당한 官員을 가리킨다.
역주8 舜所謂庸之者也 : 《尙書》 〈虞書 益稷〉에 “格則承之庸之 否則威之”라고 보이는데, 이에 대한 孔安國의 傳에 “천하의 사람이 능히 道에 이르면 받들어 등용하여 관직을 맡기고, 가르침을 따르지 않으면 형벌로 위엄을 보인다.[天下人 能至于道 則承用之 任以官 不從敎 則以刑威之]”라고 하였다. 庸은 用의 의미이다.
역주9 北面 : 古禮에 臣下가 君主를 拜謁하거나, 지위가 낮거나 나이가 어린 사람이 尊長을 뵐 때에는, 北向하여 禮를 올리게 되어 있으므로, 이곳에서 天子가 北面하고 질문한다고 한 것은, 弟子가 스승을 받드는 예를 행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주10 舜所謂承之者也 : 앞의 註 3) 참조.
역주11 撻之以誨其過 書之以識其惡 : 《尙書》 〈虞書 益稷〉에 “매를 때리고 이를 기록해 놓는다.[撻以記之]”, “기록해 놓아서 그의 악함을 기억하게 한다.[書用識哉]”라 하였고, 이에 대한 孔穎達의 疏에,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매를 쳐서 그 과실을 알고 기억하게 한다는 것은 허물이 가벼운 사람에 대한 처벌을 이르는 것이다.[笞撻不是者 使記識其過 謂過輕者也]”, “그의 잘못을 기록해 기억하게 하였으니, 이 또한 적은 허물을 범한 사람에 대한 조치이다.[書識其非 亦是小過者也]”라 한 말을 인용한 것이다.
역주12 舜所謂威之者也 : 앞의 註 3) 참조.
역주13 智仁聖義忠和 : 《周禮》 〈地官 大司徒〉에서는 이를 六德이라 하였다.
역주14 孝友睦婣任恤 : 《周禮》 〈地官 大司徒〉에서는 이를 六行이라 하였다.
역주15 禮樂射御書數 : 《周禮》 〈地官 大司徒〉에서는 이를 六藝라 하였다.
역주16 天子命之矣 然後興學 : 《禮記》 〈王制〉에 “천자가 가르치라고 명한 이후에 학교를 세운다.[天子命之敎 然後爲學]” 하였다.
역주17 權量 : 權은 무게를 측정하는 기구인 저울을, 量은 부피를 측정하는 斗‧斛 등을 말한다.
역주18 庠序 : 庠과 序는 古代 學校의 명칭이다. 《漢書》 〈儒林傳 序〉에, “지방 마을에 교육기관을 두었으니, 夏시대에는 이를 校라 하였고, 殷시대에는 이를 庠이라 하였으며, 周시대에는 이를 序라 하였다.[鄕里有敎 夏曰校 殷曰庠 周曰序]” 하였다.
역주19 當孔子時 旣有欲毁鄕校者矣 : 《春秋左氏傳》에 의하면, 孔子가 생존하였던(12歲時) 襄公 31년에 鄭나라 사람들이 相國인 子産에게 鄕校의 폐지를 건의한 일이 있었다. 단 子産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역주20 發尙同之論 : 尙同은 《墨子》의 篇名으로, 上, 中, 下 三篇으로 되어 있고, 이 篇에서 節用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
역주21 辟雍 : 西周시대에 설치하였던 太學으로, 둘레를 圓形으로 하여 水池로 玉璧처럼 에워싸고 便橋를 놓아 통행하게 하였으므로 辟雍이라 부르게 되었다.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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