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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王安石(1)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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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8. 여요현餘姚縣방조제防潮堤축조築造
以謝景初所自言으로 爲領袖
사경초謝景初가 스스로 한 말을 기준으로 하였다.
自雲柯而南으로 至於某 有隄若千尺하야 截然令海水之潮汐하야 不得冒其旁田者하니 知縣事謝君爲之也
운가雲柯 남쪽으로부터 모처某處에 이르기까지 약 일천一千 쯤 되는 제방이 있어서, 바닷물이 밀물로 올라왔다 썰물로 빠졌다 하는 것을 막아 주어서 그 주변 농토에 넘쳐들 수 없게 하였는데, 이는 지현사知縣事 사군謝君이 만든 것이다.
始隄之成 謝君 以書屬予記其成之始하야 曰 使來者有考焉하야 得卒任完之以不隳라하니라
처음 제방이 완성되자 사군謝君이 나에게 편지를 보내어 그것을 이룬 시말始末을 기록한 를 지어 주도록 부탁하면서 말하기를, “후임자로 오는 사람으로 하여금 근거로 삼음이 있게 하여, 제방을 보전하는 임무를 끝까지 지켜서 무너뜨림이 없게 하고 싶습니다.” 하였다.
사군謝君양하陽夏 사람으로, 사후師厚라 하며, 경초景初이다.
其先 以文學稱天下하야 而連世爲貴人이러니 至君하야 遂以文學으로 世其家하니
그의 선조先祖문학文學으로 천하天下에 이름이 났고 를 이어 높은 벼슬에 올랐으며, 사군謝君에 이르러 드디어 문학에 능한 것으로 그 가통家統을 계승하였다.
其爲縣 不以材自負而忽其民之急하니라 方作隄時 歲丁亥十一月也 能親以身當風霜氛霧之毒하며 以勉民作하야 而除其菑하고 又能令其民翕然皆勸趨之하야 而忘其役之勞하야 遂不踰時以有成功하다
그가 지현사知縣事가 되어서는 재능이 있음을 뽐내거나 백성들이 급선무로 여기는 것을 소홀하게 처리하는 일이 없었고, 제방을 축조한 때가 정해년丁亥年(慶曆 7년, 1047) 11월이었는데, 몸소 바람과 서리와 안개의 해독을 감내하며 백성들의 작업을 독려하여 그 를 제거할 수 있었고, 또한 백성들로 하여금 기쁜 마음으로 모두 고무鼓舞되어 이에 종사하면서 그 노역勞役의 괴로움을 잊게 하여, 드디어 시한時限을 넘기지 않고 그 공업功業을 완료할 수 있었다.
其仁民之心 效見於事如此하니 亦可以已 而猶自以爲未也라하고 又思有以告後之人하야 令嗣續而完之하야 以永其存하니 善夫로다
그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사업事業에 효과로 드러남이 이와 같았으므로 또한 이를 완수完遂할 수가 있었는데도, 오히려 스스로 미흡未洽하다고 여기고, 또 후임자後任者에게 알려 주어 그로 하여금 자신을 계승하여 이를 유지 보수하여 영원히 보존保存되도록 도모하고 있으니, 참으로 훌륭하도다!
仁人長慮却顧하야 圖民之災 如此其至하니 其不可以無傳이요 而後之君子 考其傳하야 得其所以爲 其亦不可以無思리라
어진 사람이 멀리 보고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백성들의 재앙災殃대비對備하기를 이와 같이 지극하게 하였으니, 이를 기록으로 남겨 전하지 않으면 안 되고, 뒷날의 군자君子들도 그 전해진 사실을 고찰하여 그가 할 바를 알게 하는 것도 또한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하니 而君過予하야 與予從容言天下之事할새 君曰
그리고 과거에 내가 일이 있어서 여요현餘姚縣에 이르자, 이 나를 찾아와 나와 조용히 천하天下의 일에 대하여 토론한 일이 있는데, 이 말하기를,
道以閎大隱密하야 聖人之所獨鼓萬物以然이나 而皆莫知其所以然者 蓋有所難知也
는 크게 광대廣大하고 오묘奧妙한 것이므로 성인聖人만이 홀로 만물萬物에 맞게 교화敎化 생장生長시켜서 이렇게 되었지만, 모두가 그렇게 된 근본 이유를 알지 못하는 것은, 대체로 알기 어려운 바가 있어서입니다.
其治政敎令施爲之詳 凡與人共호되 而尤丁寧以急者 其易知較然者也 通塗川하고 治田桑하며 爲之隄防溝澮渠川하야 以禦水旱之災하고 而興學校하야 屬其民人 相與習禮樂其中하야 以化服之 此其尤丁寧以急이요 而較然易知者也
정사政事를 관리하고 교화敎化하고 명령命令하여 실행하기를 자상하게 하기를 모두 다른 사람과 같게 하면서, 더욱 진정으로 화급火急하게 해야 할 것으로 그 밝게 알기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있으니, 도로와 하천을 통하게 하고 농토와 뽕밭을 다스리며, 이를 위해 제방과 농수로와 도랑을 만들어서, 수재水災한재旱災를 막고, 학교學校를 일으켜서 그 백성들이 그 안에서 예악禮樂을 익히도록 하여, 이로써 교화敎化를 이루어 순복順服하게 하는 것, 이것이 진정으로 화급한 일이며 분명하고 쉽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今世吏者 其愚也 固不知所爲 而其所謂能者 務出奇爲聲威하야 以驚世震俗하고 至或盡其力하야 而反以謂古所爲尤丁寧以急者 吾不暇以爲 吾曾爲之 而曾不足以爲之라하며 萬有一人爲之로되 且不足以名於世而見謂材하니
그런데 이 시대의 관리들은, 그 어리석은 사람이야 본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지만, 이른바 유능하다는 사람들도 명성과 위엄을 위하여 기이한 계책을 내기에만 힘쓰고 이로써 속인俗人들을 경동驚動시키며, 더러는 그의 능력을 다 동원하여 붓이나 놀려서 문서文書나 잘 꾸미는 데에 진력하는데 이르기도 하고, 도리어 예부터 진정으로 화급하게 할 바라고 이르는 것에 대하여는, 나는 그것을 행할 겨를이 없고, 내가 일찍이 이를 실행해 보았으나 이를 실행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하고 있으며, 사람 가운데 한 사람 쯤이 이를 행한다 해도 세상에 이름을 내거나 재능이 있었다고 불리워짐에 부족하게 되었으니, 아아!
其可歎也로다
탄식할 일입니다.
夫爲天下國家且百年이어늘 則猶未也하니 其不出於로다하니라
대저 천하天下에 우리 나라를 세운지가 100년이 다 되어가지만, 선정善政을 행하여 잔포殘暴한 사람을 착하게 교화하여 형벌로 처형하는 일을 없애는 일이 아직 다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이런 풍조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까.” 하였다.
予良以其言爲然이러니
나는 진정으로 그의 말이 옳다고 여겼다.
旣而聞君之爲其縣이라 至則爲橋於江하고 治學者하야 以敎養縣人之子弟하며 旣而又有隄之役이라
그러고 나서 여요현餘饒縣을 다스리게 되었다고 들었는데, 부임하자마자 강에는 다리를 놓고 학교를 일으켜서 이곳에서 현인縣人들의 자제子弟를 교양시키며, 그러고 나서 이 제방堤防을 축조한 것이다.
於是 又信其言之行하야 而不予欺也已
이를 보고서 그가 했던 말을 실제로 행하고 있으며, 나에게 허튼 말을 한 것이 아님을 믿게 되었다.
爲之書其隄事하고 因幷書其言終始하야 而存之以告後之人하노라
이에 그가 제방을 축조한 일을 기록하면서 아울러 그가 했던 말의 시말始末도 적어서, 이를 뒤에 올 사람이 알 수 있도록 남겨 놓고자 한다.
慶曆八年七月日하노라
경력慶曆 8년 7 를 지었노라.
역주
역주1 餘姚縣海塘記 : 本 記는 慶曆 8年(1048) 7月에 지은 것으로, 餘姚縣은 現 浙江省에 속한 곳이고, 海塘은 防潮堤로서 農田을 보호하는 堤防이었다.
역주2 謝君者……其名也 : 謝景初(1020~1084)는 慶曆 6年(1046)에 知餘饒縣事를 歷任하였다.
역주3 而異時 予嘗以事 至餘姚 : 당시에 왕안석은 餘饒縣에 매우 가까운 鄞縣의 知事로 있을 때이다.
역주4 以事刀筆簿書之間而已 : 刀筆의 原義는 古代의 書寫用具로 竹簡에 쓴 글이 잘못되었으면 칼로 긁어내고 다시 썼으므로 刀筆이라 한 것이고, 後에는 文書를 의미하게 되었다.
역주5 而勝殘去殺之效 : 《論語》 〈子路〉에, “善人이 백 년간 나라를 다스리면 또한 殘暴한 사람을 교화시켜 善한 사람이 되게 하여 死刑으로 다스릴 형벌을 없앨 수 있다.[善人爲邦百年 亦可以勝殘去殺矣]” 하였다.
역주6 此乎 : 저본에는 ‘當時’로 되어 있는데 《臨川集》에 의거하여 바로잡았다.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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