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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王安石(2)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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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3. 오처사의 묘지명
序處士生平이라 故皆虛語
오처사의 일생을 서술하면서, 고의로 자신의 생각만으로 글을 썼다.
君吳氏 諱某 字某 其先建安大姓이라
오씨吳氏이고, 이며, 이니, 그 선조先祖건안建安벌족閥族이었다.
曾大父諱某 建州長史 大父諱某 館驛巡官 檢校尙書吏部員外郞이니所置也
증조曾祖 건주자사建州刺史였고, 조부祖父 관역순관館驛巡官 검교상서이부원외랑檢校尙書吏部員外郞이었는데, 모두 강남江南 이씨李氏가 설치했던 관직이었다.
方李氏時 吏部府君之父子 同時仕江南者以十數러니 至君之考諱某하야 始以汀州軍事推官歸하야 選於朝하야 主鄭之新鄭簿하니라
이씨李氏가 세운 남당시대南唐時代일족一族 가운데 이부부군吏部府君부자父子와 동시에 남당南唐에서 벼슬한 사람이 십여 명이었는데, 선고先考 에 이르러 비로소 정주訂州군사추관軍事推官으로서 우리 송조宋朝귀순歸順하니, 조정朝廷에서 선임選任하여 정주鄭州신정현주부新鄭縣主簿로 삼았다.
君少孤하야 事母夫人至孝하고 與其弟軻相愛하니라
은 어려서 부친을 여의고 모부인母夫人을 지극한 효성으로 섬겼으며, 그의 아우 와도 우애가 깊었다.
春秋祭先人 雖老矣 眡牲省器 皆不以屬子孫하고 俯仰齋慄하야 如見其饗之者하며 已祭 未嘗不悲哀也러라
춘추春秋로 선친께 를 올릴 적에 늙은 이후에도 희생犧牲을 살피고 제기祭器를 돌보는 일을 모두 자손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하였고, 굽어보고 우러러보며 두려운 듯 조심하여 마치 흠향歆饗하는 분을 직접 뵙는 듯이 하였으며, 제사가 끝난 후에는 슬퍼하고 애달파하지 않는 일이 없었다.
讀書 取大指通而已 或勸之謀利하면 曰吾貧久矣 人以我爲憂 而我以是爲樂하니 不能改也라하다
글을 읽을 때에는 대의大義함을 할 뿐이었고, 혹 이익利益을 도모하기를 권하면, 말하기를 “내가 가난하게 지낸 지 오래되었고, 남들은 나를 위해 이를 근심하지만, 나는 이를 으로 여기고 있으니, 바꿀 수가 없소.” 하였다.
有子三人하니 甫申冉이니 皆不使事生産하고 曰 士而貧 多於工商而富也라하다
아들 셋을 두었으니, 인데, 모두 생계生計를 도모하는 일을 하지 못하게 하고, 말하기를 “선비로서 가난하게 지내는 것이 기술자나 상인이 되어 부유하게 지내는 것 보다 낫다.” 하였다.
三人者皆以하고 而申爲太平州軍事推官하다
세 사람이 모두 지방에서 시행하는 향공진사과鄕貢進士科에 합격하였고, 태평주太平州군사추관軍事推官이 되었다.
君年七十八 某年某月某日 卒於太平之官舍하니 甫等護其柩하고 歸葬於江州某縣某鄕某原하니 某年某月日也
이 78세가 되던 모년某年 모월某月 모일某日태평太平관사官舍에서 하자, 아들 등이 그의 을 모셔다 강주江州모현某縣 모향某鄕모원某原귀장歸葬하였으니, 그때가 모년某年 모월某月 모일某日이었다.
夫人前君卒하야 別葬하니 實南陽葉氏
부인夫人보다 먼저 하여 다른 곳에 하장下葬하였으니, 남양南陽 섭씨葉氏이다.
君所居毁於水어늘 乃奉母夫人하고 來客江州하야 愛其山川而遂家之 故其葬也以歸焉하니라
처음에 이 거처하던 곳이 수해를 입어 허물어지니, 이에 모부인母夫人을 모시고 강주江州로 와서 객지생활을 하였는데, 그곳의 산천을 사랑하게 되어, 드디어 그곳에 정착하였으므로, 그곳으로 돌아가 장례를 모시게 된 것이다.
申之友 論次君之事如此하니 而申以告曰 先人不幸하야 力爲善而不獲顯於天下러니
의 친구인 남양인南陽人 장힐張頡사적事績을 이와 같이 차례로 정리하니, 이 이를 가지고 와서 하기를 “선친先親께서 불행하게도 힘써 선행善行을 닦으셨지만 천하에 드날림을 얻지 못하셨습니다.
今具葬하니 宜得銘하야 使後世有見焉이라하다
이제 장례를 갖추어 모셨으니, 묘지명墓誌銘을 지어서 후세로 하여금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 하였다.
嗟乎
슬프도다!
予不及識君矣 然予之故人 多能言君之敎諸子盡其道 故卒皆有立하고 而申之文行 尤以知名於世
나는 미처 을 알지 못하였으나 나의 친구들 중에는, 이 아들들을 가르칠 때에 그 에 맞게 하기를 지극하게 하였으므로, 끝내는 모두가 입신출세立身出世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고, 문장文章행실行實은 세상에 더욱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方今士大夫之列於朝者 天子於其父母 皆有以寵嘉之하야 其官封之卑鉅視其子하야 所以勸天下之爲父母하고 而慰其子之心하니 以君之善敎而子之材 宜及其身 有高爵盛位之報焉이로다 其生也 旣不及하니 其沒也 孰知其不卒享也哉리오
바로 이 시대에 사대부士大夫들로 조정朝廷에 늘어서 있는 사람들은, 천자天子께서 그들의 부모에게까지 총애를 베푸심이 있어서, 그들에게 그 아들의 벼슬에 맞추어 높거나 낮은 관작官爵추봉追封해주어, 천하天下부모父母 된 이들을 고무鼓舞하고 그 자손의 마음을 위무慰撫해주시니, 에 맞게 잘 가르치고, 자식들이 재능이 있으니, 마땅히 그의 몸에 높은 작위와 성대한 벼슬로 보답함에 이르렀어야 할 것인데, 그가 살아 있을 때에는 이에 미치지 못하였으니, 그가 한 후에도 끝내 이를 누리지 못할 것이라고 누가 알았으랴.
是故 不宜無銘也
이 때문에 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銘曰
이에 아래와 같이 을 지었다.
士或爲仁이나 稱止一鄕이라가
선비가 혹 을 행하여도, 미명美名이 한 고장에 그쳤다가,
至其後興하야 厥聞乃光이라
후손後孫흥기興起함에 이르러 그 소문이 이에 빛을 발하기도 하도다.
或業以勤이나 而傳之圮어늘
덕업德業을 행하기를 부지런히 해도, 해짐이 끊기기도 하지만,
維是不朽 實君有子
오직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것은, 실로 에게 훌륭한 아들이 있어서라오.
역주
역주1 吳處士墓誌銘 : 墓主 吳處士의 이름은 考究할 수가 없다. 處士는 才德이 있으면서 벼슬하지 않고 隱居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역주2 江南李氏 : 唐이 亡하고 宋이 建國되기까지의 五代十國時代에 李氏가 건국했던 南唐(937~975)을 지칭한다.
역주3 進士貢於鄕 : 地方의 州와 府에서 3년마다 시행하는 鄕貢進士科에 합격하였음을 말하며, 이에 합격한 자는 중앙의 禮部試에 응시할 자격이 부여되었다.
역주4 南陽張頡 : 南陽人 張頡로, 吳申과 同年에 進士試에 급제하였고, 戶部侍郞을 역임했던 인물이다.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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