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唐宋八大家文抄 王安石(2)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범례 |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9. 선거현 태군 위씨의 묘지명
以虛景感慨起案하야 而誌特略하니 又一調也
세속을 개탄하는 생각으로 글을 시작하여 실제의 사적事蹟은 특별히 간략하게 기술하였으니, 이 또한 문장을 짓는 격식의 하나이다.
臨川王某曰 俗之壞久矣
임천臨川 왕모王某가 말하기를 “훌륭한 풍속이 무너진 지 오래되었도다.
自學士大夫多不能終其節이온 況女子乎
학사學士 대부大夫들도 그 절의節義를 끝까지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데, 더구나 여자임에랴.” 하였었는데,
當是時하야 僊居縣太君魏氏 抱數歲之孤하고 專屋而閒居하야 躬爲桑麻以取衣食하며
이때를 당하여 선거현僊居縣 태군太君 위씨魏氏가 아비를 잃은 두서너 살짜리 아이들을 안고 집안에서 홀로 지내면서 몸소 누에치고 길쌈해서 의식衣食을 해결하였고,
窮苦困阨久矣로되 而無變志하니라
가난하고 고생스러운 곤액困厄을 오래 겪으면서도 수절守節할 뜻을 바꾼 일이 없었다.
卒就其子以能有家하야 受封于朝하고 而爲里賢母하니
끝내는 그 아들을 출세시켜서 가문家門을 일으킬 수 있었고, 조정朝廷으로부터 태군太君으로 책봉冊封을 받아 마을에서 현모賢母로 소문나게 되었다.
嗚呼
아아!
其可銘也로다
그런 분은 묘지명墓誌銘을 지어드릴 만하도다.
於其葬 爲序而銘焉하노라
이에 그분을 하장下葬할 때에 를 짓고 을 썼노라.
序曰
는 다음과 같이 지었다.
魏氏 其先江寧人이니
위씨魏氏는 그 선조先祖강녕인江寧人이었다.
太君之曾祖諱某 光祿寺卿이요 祖諱某 池州刺史 考諱某 이니時也
태군太君증조曾祖 광록시경光祿寺卿이었으며, 조부祖父 지주자사池州刺史였고, 선고先考 태자유덕太子諭德이었는데, 이들이 벼슬한 것은 모두 강남江南 땅을 이씨李氏가 세운 남당南唐이 다스릴 때였다.
李氏國除 而諭德易名居中이라가 退居于常州러니
이씨李氏남당南唐이 망하자 유덕공諭德公은 이름을 거중居中으로 바꾸고 상주常州로 은퇴하여 살았는데,
以太君爲賢으로 而選所嫁할새 得江陰沈君諱某하고 曰 此可以與吾女矣라하다
따님인 태군太君을 현명하다고 여기고 출가할 곳을 고르다가 강음江陰심군沈君 를 얻고는 말하기를 “이 사람이 내 딸과 짝이 될 만하다.” 하고,
於是時 太君年十九 歸沈氏하다
이때에 19세 된 태군太君심씨沈氏에게 출가시켰다.
歸十年 生兩子하고 而沈君以進士甲科 爲廣德軍判官以卒하다
출가한 지 10년에 두 아들을 낳았고, 심군沈君진사시進士試갑과甲科로 급제하여 광덕군廣德軍판관判官으로 있다가 하였다.
太君親以詩論語孝經敎兩子하니 兩子就外學 時數歲耳로되 則已能誦此三經矣러라
태군太君은 《시경詩經》, 《논어論語》, 《효경孝經》 등을 두 아들에게 몸소 가르쳤으므로, 두 아들이 밖에 나가 공부할 때에 겨우 몇 살 되지 않았는데도 이미 이 삼경三經을 암송할 수 있었다.
其後子逈爲進士하고 子遵爲殿中丞이라가 知連州軍州러니 而太君年六十有四 以終于州之正寢하니 時皇祐二年六月庚辰也
그 후 아들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였고, 아들 전중승殿中丞으로 연주군지주連州軍知州가 되었는데, 태군太君께서 향년 64세로 연주부連州府정실正室에서 사망하니, 그때가 황우皇祐 2년(1050) 6월 경진일庚辰日이었다.
嘉祐二年十二月庚申 兩子葬太君江陰申港之西懷仁里하다
가우嘉祐 2년 12월 경신일庚申日에 두 아들이 태군太君강음江陰 신항申港의 서쪽 회인리懷仁里안장安葬하였다.
於是 遵爲太常博士라가 通判建州軍州事하니 而沈君贈官至太常博士하다
이때에 태상박사太常博士건주군建州軍통판지사通判知事로 있었으며, 선친先親 심군沈君도 벼슬이 증직贈職되어 태상박사太常博士에 이르렀다.
銘曰
은 다음과 같이 지었다.
山朝于躋인댄 其下惟谷이라
산에 향을 올리려 오르려면, 낮은 골짜기에서부터 시작해야지.
纘我博士 夫人之淑이라
우리 집안이 박사博士를 계승한 것은 현숙賢淑부인夫人이었어라.
其淑維何 博士其家
그 현숙함이 어떠하였기에, 그 집안에 박사가 연이었는가?
二子翼翼하야 萼跗其華
두 아들이 나란히 뛰어나서, 꽃받침에 꽃이 피듯 하였네.
詵詵諸孫 其實其葩
많고 많은 여러 손자들은, 이미 그 꽃이 열매를 맺은 것이네.
孰云其昌
누가 그 창성昌盛함만을 이르는가?
其始萌芽
그것은 새싹에서 시작된 것이네.
皇有顯報하니 曰維在後
황천皇天이 드날리게 보답함이 있다면, 그 후손에게 있을 것이로다.
碩大蕃衍하야 刲牲以告
이에 크게 번창하게 되었음을, 소와 양을 잡아서 제사를 올리며 아뢸 것이로다.
視銘考施하면 夫人之效
을 보고 베풀어진 은혜를 고찰한다면, 부인夫人의 덕택임을 알게 될 것이로다.
역주
역주1 僊居縣太君魏氏墓誌銘 : 本 墓誌銘의 墓主 魏氏는 殿中丞 沈遵의 母親으로, 嘉祐 2년(1057)에 下葬하였다고 하였으니 本文도 그즈음에 지은 것으로 보이며, 당시 作者가 魏氏가 거주했던 常州知事였으므로 이 글을 짓게 된 것으로 보인다.
역주2 太子諭德 : 官名으로 太子의 잘못을 諷諫하고 바로잡는 일을 담당하였다.
역주3 江南李氏 : 李昇이 세웠던 南唐으로, 五代十國 중의 한 나라였다.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