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唐宋八大家文抄 王安石(1)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22. 乞退表二
22. 물러나기를 청하는 2
臣某하노이다
는 말씀을 올리나이다.
近具表乞解機務로되 伏奉手詔未賜兪允者로소이다
근자에 를 갖추어 중요한 정무를 담당하는 직책에서 해면解免해 주시기를 빌었으나, 윤허하지 않는다고 손수 쓰신 조서를 받들게 되었습니다.
聖恩所及 有隆天重地之施하고 私義未安之懼로소이다
성은聖恩이 미치는 바가 드넓은 천지에 가득하게 베푸심이 있으나, 사사로운 생각이 편안하지를 못하여 깊은 못에 임하고 얇은 살얼음판을 건너는 듯 두려움을 갖게 되나이다.
(中謝) 竊惟成湯高宗之世 有若伊尹傅說之臣하야 其道則格于帝而無疑하고 其政則加乎民而有變하니이다
(中謝) 삼가 생각하옵건대 나라 성탕成湯고종高宗의 시대에는 이윤伊尹부열傅說 같은 신하가 있었고, 그 천제天帝를 감동시키기에 의심할 것이 없었고, 그 훌륭한 정사政事는 백성들에게 베풀고자 개혁改革함이 있었습니다.
后惟時乂하고 相亦有終이러니
군주君主들은 오직 시대의 태평太平을 도모하였고, 재상들 또한 끝까지 섬김이 있었습니다.
迨乎中世之陵夷하야 非復古人之髣髴하니이다 忠或不足以取信하니 而事事至於自明이요 義或不足以勝姦하니 而人人與之爲敵이니이다
중고中古시대의 쇠락함에 이르러서 옛 성인聖人과 같은 정치를 회복하지 못하여서, 충성忠誠이 신뢰를 얻기에 부족하게 되니 일마다 자신을 변명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고, 의리義理가 간사함을 억제하기에 부족하게 되니 사람마다 서로 이 되었습니다.
以此乘權而久處하니 孰能持祿以少安이리잇가
이 때문에 권세를 이용하여 오랫동안 지위를 누리려 하게 되었으니, 누구인들 녹위祿位를 유지하면서 잠시나마 편안할 수 있었겠습니까.
此臣之慮危於居寵之時하야 而昧死有均勞之乞이온 況於抱病하야 浸以癏官이니잇가
이에 신이 총애를 받으며 벼슬자리에 있을 때에 염려하고 위태롭게 여기면서, 고생을 두루 겪는다 해도 죽기를 무릅쓰려 하였던 것인데, 더구나 질병을 안고 있어서 차츰 직무를 펼칠 수 없음에야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伏惟陛下 道與日躋하시고 德侔乾覆하사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황제폐하께서는 지니신 가 밝은 태양과 같으며 은 하늘이 온 천하를 덮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哀一夫之失所하시고 樂萬物之皆昌하시니이다
한 사람이 제자리를 찾지 못한 것을 불쌍히 여기시며 만물이 모두 함께 번창하게 됨을 기꺼워하십니다.
矧夫眷遇之優하야 旣已勤劬之久하니
하물며 돌보아 우대優待하심을 넉넉하게 입어서 이미 부지런히 힘쓰기를 오랫동안 했음에야 어떠하겠습니까.
宜蒙善貸하야 使獲曲全이니 賜其疲賤之身하사 假以安閒之地하소서
마땅히 너그러우신 시혜施惠를 입어 여생을 온전히 보존할 수 있게 해 주시고, 파리하고 하찮은 이 몸이 물러남을 허락하시어 안한安閑한 경지에서 노닐 수 있도록 용인해 주십시오.
則敝車無用이나 猶可具於이요 未忘이면 或再施於華幄이리이다
낡은 수레는 쓸모가 없으나 오히려 땔감으로 쓸 수가 있고, 버렸던 자리를 잊지 않으시면 혹 폐하의 유악帷幄에 다시 쓸 수가 있게 될 것입니다.
역주
역주1 深淵薄冰 : 조심스럽고 두려운 마음으로 모든 일을 신중하게 처리한다는 뜻이다. 《詩經》 〈小雅 小旻〉에 “전전긍긍하여 깊은 못에 임한 듯이 하며 얇은 얼음을 밟는 듯이 한다.[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라고 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역주2 勞薪 : 오래 사용한 나무 수레바퀴를 쪼개어 만든 땔감을 이른다. 《世說新語》 〈術解〉에 “荀勗이 일찍이 晉 武帝의 연회석상에서 죽순과 밥을 먹다가 좌중의 사람들에게 말하길 ‘이것은 勞薪으로 불을 땐 것이오.’라고 하였다. 좌중의 사람들이 그 말을 믿지 않고 몰래 사람을 보내어 물어보게 했더니 정말로 오래된 수레바퀴를 사용한 것이었다.[荀勗嘗在晉武帝坐上食筍進飯 謂在坐人曰 此是勞薪炊也 坐者未之信 密遣問之 實用故車脚]”라고 보인다.
역주3 棄席 : 버려진 功臣을 비유하는 말이다. 《淮南子》 〈說山訓〉에 “晉 文公이 臥席 밑의 곰팡이가 난 시커먼 寢席을 버리자 咎犯은 사직하고 돌아갔다.[文公棄荏席後黴黑 咎犯辭歸]”라고 하였는데, 구범은 진 문공의 공신으로 진 문공이 寢席을 버리자 옛 신하를 버릴 것이라고 짐작하여 사직하였던 것이다.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