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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王安石(2)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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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3. 구양문충공의 제문
歐陽公祭文 當以此爲第一이라
구양공歐陽公을 애도하는 제문祭文은 당연히 이 제문祭文을 으뜸으로 삼아야 한다.
夫事有人力之可致로되 猶不可期어든 況乎天理之溟漠 又安可得而推리오
대저 사업事業은 사람의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인데도 오히려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기약期約할 수가 없는데, 더구나 하늘의 이치는 아득하고 모호하니, 이를 또한 어찌 추측할 수가 있겠는가?
惟公生有聞於當時하고 死有傳於後世하니 苟能如此足矣 而亦又何悲리오
생각하건대 은 살아서는 당대當代에 명성이 알려지고, 사망해서는 후세後世에 전해짐이 있게 되었으니, 진실로 이와 같을 수 있으면 충분한데, 또한 무엇을 더 슬퍼할 것이 있으리오.
如公器質之深厚하고 智識之高遠 而輔學術之精微 故充於文章하고 見於議論 豪健俊偉하고 怪巧瑰琦
은 기량과 자질이 심후深厚하고, 지혜와 식견이 고원高遠한데다, 정미精微한 학술로 보조하였으니, 이 때문에 문장文章을 표현하고 의론을 드러낸 것들이 호방豪放하고 굳건하고 빼어났으며 교묘하고 영롱하였다.
其積於中者 浩如江河之停蓄하고 其發於外者 爛如日星之光輝
그 마음속에 축적해놓은 것은 드넓기가 마치 강하江河의 물을 가두어놓은 듯하고, 그 문장文章으로 드러낸 것은 찬란燦爛하기가 마치 해와 별의 광채와 같다.
其淸音幽韻 凄如飄風急雨之驟至 其雄辭閎辯 快如輕車駿馬之奔馳
의 맑은 심오深奧운치韻致는 마음을 오싹하게 하기가 마치 회오리바람이나 소나기가 갑자기 몰려오는 듯하고, 그 문장文章웅장雄壯문사文辭광활廣闊변설辨說은 거침없기가 마치 가벼운 수레를 천리마千里馬가 끌고 급히 내닫는 듯하다.
世之學者 無問乎識與不識하고 而讀其文이면 則其人可知
세상의 학자들은, 알고 있는 사람이나 알지 못하는 사람이나 따질 것이 없이, 그가 지은 글을 읽어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
嗚呼
아아!
自公仕宦四十年 上下往復하야 感世路之崎嶇하니 雖屯邅困躓하고 竄斥流離라도 而終不可掩者 以其公議之是非 旣壓復起하야 遂顯于世
이 벼슬길에 나아간 뒤로 40년간 승진과 좌천을 거듭하면서, 세상살이의 험난함을 느꼈으니, 비록 곤경에 처하고 좌절을 겪으며, 쫓겨나고 배척되어 이리저리 떠돌았으나, 끝내 공의 실상을 가릴 수 없었던 것은, 공론公論시비是非가 이미 억눌렸다가도 다시 일어나서 드디어 세상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果敢之氣 剛正之節 至晩而不衰
과감한 기상과 굳건하고 바른 절조節操만년晩年에 이르러서도 하지 않았다.
方仁宗皇帝臨朝之末年하야 顧念後事하며 謂如公者 可寄以社稷之安危라하다
그러므로 인종황제仁宗皇帝께서 정무政務를 처결하시던 말년末年을 당하여 뒷일을 염려하시면서 말씀하시기를 “ 같은 사람이 사직社稷안위安危를 맡길 만한 인물이다.” 하셨던 것이다.
及夫發謀決策하야 從容指顧하야 立定大計하니 謂千載而一時
계책을 내고 결단하여 조용히 지시하고 살펴서 즉시 큰 계획을 확정하니 그런 때는 천 년에 한 번 만날 수 있다고 이를 만하다.
功名成就하고 不居而去하니 其出處進退 又庶乎英魄靈氣 不隨異物腐散하야 而長在乎箕山之側 與潁水之湄로다
공명功名을 성취하고서는, 이를 누리지 않고 물러났으니, 그가 벼슬에 나가거나 물러난 처신이, 또한 특출하고 신령한 기상氣象으로, 다른 인물들에 휩쓸려 부패한 일이 없었으니, 길이 벼슬을 사양하고 기산箕山의 곁에서 은거隱居하며 영수潁水의 물에 귀를 씻었던 허유許由와 같았도다!
然天下之無賢不肖 且猶爲涕泣而歔欷어든 而況朝士大夫 平昔游從 又予心之所嚮慕而瞻依
그러므로 천하天下의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을 가릴 것이 없이, 서거逝去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또한 눈물을 흘리면서 탄식하였던 것이니, 더구나 조정朝廷에서 벼슬한 사대부士大夫들로 평소에 그분과 종유從遊한 사람들이나, 나처럼 마음으로 앙모仰慕하고 우러러보며 의지했던 사람이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嗚呼
아아!
盛衰興廢之理 自古如此하니 而臨風想望하야 不能忘情者 念公之不可復見하니 而其誰與歸리오
했다 했다 궁곤窮困해졌다 형통亨通해졌다 하는 이치가 예부터 이와 같았으니, 감화를 받으며 생각하고 그리워하면서 정을 잊지 못하는 사람으로, 을 다시 뵐 수가 없음을 생각하니, 장차 그 누구에게 돌아가 의지해야 하리오?
역주
역주1 祭歐陽文忠公文 : 歐陽脩(諡號 文忠, 1007~1072)가 熙寧 5년(1072) 閏7월에 卒하였으므로, 本 祭文도 그 직후에 지은 것으로 보이며, 당시 왕안석은 52세로 新法을 힘써 시행하고 있었다.
歐陽脩는 政治, 經學, 史學, 金石學, 書法 等에 두루 精通하고, 《詩本義》, 《新唐書》, 《新五代史》 《六一詩話》, 《歐陽文忠公文集》 등의 저술을 남긴 인물로, 兩宋時代 文士들의 모범이 되어, 後代의 蘇軾, 王安石, 曾鞏, 蘇轍, 陸游, 楊萬里 등 저명한 문인들이 그의 文風을 따르고자 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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