夫事有人力之可致로되 猶不可期어든 況乎天理之溟漠을 又安可得而推리오
惟公生有聞於當時하고 死有傳於後世하니 苟能如此足矣라 而亦又何悲리오
如公器質之深厚하고 智識之高遠에 而輔學術之精微라 故充於문장文章하고 見於議論이 豪健俊偉하고 怪巧瑰琦라
其積於中者는 浩如江河之停蓄하고 其發於外者는 爛如日星之光輝라
其淸音幽韻은 凄如飄風急雨之驟至요 其雄辭閎辯은 快如輕車駿馬之奔馳라
世之學者 無問乎識與不識하고 而讀其文이면 則其人可知라
自公仕宦四十年에 上下往復하야 感世路之崎嶇하니 雖屯邅困躓하고 竄斥流離라도 而終不可掩者는 以其公議之是非 旣壓復起하야 遂顯于世라
方인종황제仁宗皇帝臨朝之末年하야 顧念後事하며 謂如공公者는 可寄以社稷之安危라하다
及夫發謀決策하야 從容指顧하야 立定大計하니 謂千載而一時라
功名成就하고 不居而去하니 其出處進退는 又庶乎英魄靈氣 不隨異物腐散하야 而長在乎기산箕山之側과 與영수潁水之湄로다
然天下之無賢不肖히 且猶爲涕泣而歔欷어든 而況朝士大夫로 平昔游從과 又予心之所嚮慕而瞻依아
盛衰興廢之理 自古如此하니 而臨風想望하야 不能忘情者로 念公之不可復見하니 而其誰與歸리오
구양공歐陽公을 애도하는 제문祭文은 당연히 이 제문祭文을 으뜸으로 삼아야 한다.
대저 사업事業은 사람의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인데도 오히려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기약期約할 수가 없는데, 더구나 하늘의 이치는 아득하고 모호하니, 이를 또한 어찌 추측할 수가 있겠는가?
생각하건대 공公은 살아서는 당대當代에 명성이 알려지고, 사망해서는 후세後世에 전해짐이 있게 되었으니, 진실로 이와 같을 수 있으면 충분한데, 또한 무엇을 더 슬퍼할 것이 있으리오.
공公은 기량과 자질이 심후深厚하고, 지혜와 식견이 고원高遠한데다, 정미精微한 학술로 보조하였으니, 이 때문에 문장文章을 표현하고 의론을 드러낸 것들이 호방豪放하고 굳건하고 빼어났으며 교묘하고 영롱하였다.
그 마음속에 축적해놓은 것은 드넓기가 마치 강하江河의 물을 가두어놓은 듯하고, 그 문장文章으로 드러낸 것은 찬란燦爛하기가 마치 해와 별의 광채와 같다.
그 시詩의 맑은 음音과 심오深奧한 운치韻致는 마음을 오싹하게 하기가 마치 회오리바람이나 소나기가 갑자기 몰려오는 듯하고, 그 문장文章의 웅장雄壯한 문사文辭와 광활廣闊한 변설辨說은 거침없기가 마치 가벼운 수레를 천리마千里馬가 끌고 급히 내닫는 듯하다.
세상의 학자들은, 알고 있는 사람이나 알지 못하는 사람이나 따질 것이 없이, 그가 지은 글을 읽어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
공公이 벼슬길에 나아간 뒤로 40년간 승진과 좌천을 거듭하면서, 세상살이의 험난함을 느꼈으니, 비록 곤경에 처하고 좌절을 겪으며, 쫓겨나고 배척되어 이리저리 떠돌았으나, 끝내 공의 실상을 가릴 수 없었던 것은, 공론公論의 시비是非가 이미 억눌렸다가도 다시 일어나서 드디어 세상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과감한 기상과 굳건하고 바른 절조節操는 만년晩年에 이르러서도 쇠衰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인종황제仁宗皇帝께서 정무政務를 처결하시던 말년末年을 당하여 뒷일을 염려하시면서 말씀하시기를 “공公 같은 사람이 사직社稷의 안위安危를 맡길 만한 인물이다.” 하셨던 것이다.
계책을 내고 결단하여 조용히 지시하고 살펴서 즉시 큰 계획을 확정하니 그런 때는 천 년에 한 번 만날 수 있다고 이를 만하다.
공명功名을 성취하고서는, 이를 누리지 않고 물러났으니, 그가 벼슬에 나가거나 물러난 처신이, 또한 특출하고 신령한 기상氣象으로, 다른 인물들에 휩쓸려 부패한 일이 없었으니, 길이 벼슬을 사양하고 기산箕山의 곁에서 은거隱居하며 영수潁水의 물에 귀를 씻었던 허유許由와 같았도다!
그러므로 천하天下의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을 가릴 것이 없이, 서거逝去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또한 눈물을 흘리면서 탄식하였던 것이니, 더구나 조정朝廷에서 벼슬한 사대부士大夫들로 평소에 그분과 종유從遊한 사람들이나, 나처럼 마음으로 앙모仰慕하고 우러러보며 의지했던 사람이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성盛했다 쇠衰했다 궁곤窮困해졌다 형통亨通해졌다 하는 이치가 예부터 이와 같았으니, 감화를 받으며 생각하고 그리워하면서 정을 잊지 못하는 사람으로, 공公을 다시 뵐 수가 없음을 생각하니, 장차 그 누구에게 돌아가 의지해야 하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