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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王安石(1)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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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臣某하노이다
伏覩今月初五日 南郊禮畢하고 大赦天下者로소이다
精明條達 神睠顧而依懷하고 膏澤川流 人歡呼而蹈厲로소이다
能擧釐事 實歸聖時니이다
恭惟皇帝陛下 鴻化已昭하고 康年屢應하니
奔走籩豆 有董正之治官하고 潔豐粢盛 有底愼之財賦로소이다
禮成穀旦하야 恩浹綿區하니
之休明이나 尙難譬稱이요之淺訥 能盡揄揚이리잇가
臣夙荷慈憐이라가 方嬰衰瘵이나
獨遠句傳하고 니이다


08. 남교南郊에서 제례를 올린 후 죄수를 풀어준 것을 축하하는
는 말씀을 올리나이다.
삼가 금월今月 5日에 남쪽 교외郊外에서 천제天帝를 올리는 의식을 마치고, 천하의 죄수를 크게 사면하심을 보게 되었습니다.
성실하고 밝음에 통달하시므로 이 돌보아 주어 귀의歸依하게 하고, 은택恩澤이 끝없이 흘러 사람들이 환호하며 분발합니다.
(中賀) 신이 들으니, “효성의 지극함은 천제天帝배향配享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은 없다.”고 하고, “를 따지면서 소홀하게 행하면 선제先帝를 흠향하게 하기에 부족하다.”고 하였습니다.
천지天地에게 제사를 잘 행할 수 있는 것은 실로 성명聖明천자天子가 다스리는 시대에나 가능한 일입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황제폐하의 성대盛大교화敎化가 이미 밝게 드러났고, 태평한 시대임이 여러 차례 징험徵驗되었습니다.
예법에 맞게 부지런히 제사를 올리니 감독하고 바로잡아 잘 다스리는 관원이 있게 되었고, 깨끗하고 풍성하게 제물을 가득 담아 올리니 재정財政을 신중히 관리함이 있었습니다.
좋은 날 아침에 예를 올리니 은택이 광범한 지역에 오래도록 널리 미쳤습니다.
비록 낙송洛誦처럼 아름답고 밝은 지혜를 가졌다 해도 오히려 비교 설명하기가 어려울 것인데, 어찌 아관兒寬처럼 천박淺薄하고 눌변訥辯이 찬양하기를 극진히 할 수 있겠습니까.
신은 일찍이 자애로운 보살핌을 받다가 이제 쇠질衰疾에 걸렸습니다.
구빈九賓신홀紳笏을 홀로 멀리서 바라보며 이 를 올리고, 산림山林에서 온갖 짐승들을 길들여 순종하게 하면서 이들을 이끌고 춤추는 태평성세太平盛世가 되었음을 알게 되었나이다.


역주
역주1 賀南郊禮畢肆赦表 : 왕안석의 〈賀南郊禮畢肆赦表〉 두 篇 가운데 이 表는 第二篇으로 元豐 6년(1083)에 올린 것이다.
역주2 中賀 : 고대에 신하가 황제에게 賀表를 올릴 때에 으레 ‘誠慶誠賀 頓首頓首’ 또는 ‘誠歡誠慶 頓首頓首’ 등의 套式語를 썼는데, 後代에 文集을 편찬할 때에는 이를 생략하고 ‘中賀’ 두 자로 代替함이 일반적 경향이었다.
역주3 孝之至 莫大於配天 : 《孝經》 〈聖治〉에 “孝는 아버지를 극진히 존경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고, 아버지를 극진히 존경하는 것은 하늘과 짝이 되게 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다.[孝莫大於嚴父 嚴父莫大於配天]”라고 보인다.
역주4 議禮而輕 不足以享帝 : 享帝는 饗帝로도 쓰는바, 上帝에게 제향을 올림을 이른다. 《禮記》 〈禮器〉에 “시경 삼백 편을 외운다 해도 禮에 대해 알지 못하면 一獻을 할 수가 없고, 一獻의 禮를 행하더라도 大饗을 할 수가 없고, 大饗의 예를 능히 행하더라도 大旅를 할 수가 없고, 大旅의 禮가 갖추어졌더라도 上帝를 제향할 수가 없으니 가벼이 禮를 의논하지 말아야 한다.[誦詩三百 不足以一獻 一獻之禮不足以大饗 大饗之禮不足以大旅 大旅具矣 不足以饗帝 毋輕議禮]” 하였다.
역주5 洛誦 : 《莊子》 〈大宗師〉에 등장하는 虛構의 인물로 通達한 사람을 상징한다.
역주6 兒寬 : 兒寬(?~B.C. 103)은 《漢書》 〈兒寬傳〉에, “治績이 있었고 曆法과 文學에 능했으나, 말로 설명하는 일은 잘하지 못하였다.[有治績 善歷法文學 口不能發明也]”라고 하였는데, 왕안석은 이를 인용하여 자신의 글이 低劣하다고 謙讓한 것이다.
역주7 望九賓之紳笏 獨遠句傳 : 《漢書》 〈酈陸朱劉叔孫傳〉에 “大行에는 九賓을 두어 황제의 명령과 신하들의 상소를 전하게 했다.[大行設九賓 臚句傳]” 하였는데, 그 註에 “九賓은 《周禮》의 九儀이니, 公, 侯, 伯, 子, 男, 孤, 卿, 大夫, 士를 이른다.[九賓則周禮九儀也 謂公侯伯子男孤卿大夫士也]”라고 하였고, 또 “위에서 아래로 말을 전하여 알리는 것을 臚라 하고, 아래에서 위로 보고하는 것을 句라 한다.[上傳語告下爲臚 下告上爲句也]”라고 하였다.
역주8 紳笏 : 벼슬아치가 차는 印끈을 紳이라 하고, 朝會時에 손에 잡고 있는 笏板(일종의 備忘錄)을 笏이라 한다.
역주9 狎百獸於山林 : ‘山林에 있다’는 것은 자신은 郊祭에 참여하지 못하고 먼 지방에 있었음을 표현한 것이다.
역주10 猶知率舞 : 이는 황제의 德化가 사람은 물론이고 萬物에게 두루 미쳐서 太平盛世가 되었음을 찬양한 것이다. 率舞는 《書經》 〈虞書 益稷〉에 舜임금의 樂官인 夔가 아뢰기를 “아, 제가 石磬을 치고 석경을 어루만지자, 온갖 짐승 탈을 쓴 사람들이 모두 따라서 춤을 추었으며, 여러 官府의 長이 진실로 화합하였습니다.[於 予擊石拊石 百獸率舞 庶尹允諧]”라고 한 데에서 온 말이다.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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