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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王安石(2)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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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5.
05. 성에 대한 설
或曰 荊公 性說 專闢韓子라하니라
어떤 사람은 “왕형공의 〈성설性說〉은 오로지 한퇴지의 주장을 배격한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인간의 은 서로 가까우나, 습관에 의해 서로 멀어지게 된다.”라 하셨으니, 내가 이 때문에 공자孔子의 주장을 따르는 것이고, 한자韓子가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말한 것은 내가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자孔子께서 “보통 사람[中人] 이상의 수준인 사람에게는 상등의 것을 말해주어 이해시킬 수가 있지만, 보통 사람 이하의 수준인 사람에게는 상등의 것을 말해주어 이해시킬 수가 없다.” 하시고 “상지上智하우下愚는 변화시킬 수가 없다.”고 하신 것은 무슨 말씀인가?
曰 習於善而已矣 所謂上智者 習於惡而已矣 所謂下愚者 一習於善하고 一習於惡 所謂中人者
대답하기를 “만을 익히는 데 그칠 뿐인 자가 이른바 상지上智요, 만을 익히는 데 그칠 뿐인 자가 이른바 하우下愚이며, 더러 을 익히기도 하고 더러 을 익히기도 한 자가 이른바 중인中人이다.
上智也 下愚也 中人也 其卒也命之而已矣니라
상지上智하우下愚중인中人은 그 생애의 최후最後명명命名할 뿐이다.
有人於此하니 未始爲不善也 謂之上智可也 其卒也去而爲不善이면 然後謂之中人可也니라
여기에 어떤 사람이 있는데, 애초부터 불선不善한 일이 없다면 그를 상지上智라고 이르는 것이 옳고, 마지막에 이에서 떠나서 불선不善을 행하였다면, 그런 후에는 그를 중인中人이라고 이르는 것이 옳다.
有人於此하니 未始爲善也 謂之下愚可也 其卒也去而爲善이면 然後謂之中人可也니라
여기에 어떤 사람이 있는데, 애초부터 을 행한 일이 없다면 그를 하우下愚라고 이르는 것이 옳고, 마지막에는 이에서 떠나서 을 행하였다면 그런 후에는 그를 중인中人이라고 이르는 것이 옳다.
惟其不移라야 然後謂之上智하고 惟其不移라야 然後謂之下愚 皆於其卒也命之 夫非生而不可移也니라
오직 만을 행하고 이를 바꾼 일이 없은 뒤에야 그를 상지上智라 이르고, 오직 만을 행하고 이를 바꾼 일이 없은 뒤에야 그를 하우下愚라 이르니, 이는 모두 그 생애의 최후最後명명命名한 것이요, 태어나면서 품부받은 것이기 때문에 바꿀 수가 없는 것이 아니다.” 하였다.
且韓子之言 弗顧矣 라하니 夫仁義禮智信 孰而可謂不善也
또한 한자韓子의 말은 고려顧慮해볼 필요가 없으니, 그가 말하기를 “의 세 등급이 있지만 이 되는 근원根源은 다섯 가지가 있다.”라고 하였는데, 대저 에 어느 것인들 불선不善이라 이를 수 있겠는가?
또 말하기를 “상품上品에 해당하는 사람은 이 다섯 가지에 대하여 하나(仁)를 위주爲主로 하여 나머지 네 가지를 행하고, 하품下品에 해당하는 사람은 다섯 가지에 대하여 하나(仁)에 하는 행위를 하여 나머지 네 가지도 어기게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是其於性也 不一失焉而後 謂之上焉者 不一得焉而後 謂之下焉者
이는 그 에 대하여, 하나도 잃지 않은 이후에야 이를 상품上品이라 이르는 것이고, 하나도 얻지 못한 이후에야 이를 하품下品이라 이르는 것이다.
是果性善이요 而不善者 習也니라
이는 분명히 한 것이되 불선不善하게 되는 것은 습관 때문이라는 것이다.
然則
之事 後所引者 皆不可信邪
그렇다면 임금의 아들 단주丹朱, 임금의 아들 상균商均, 고수瞽瞍의 아들 , 의 아들 , 후직后稷, 월초越椒, 숙어叔魚 등의 일에 대하여 후에 인용하여 말한 것들은 모두 믿을 수 없다는 것인가?
曰堯之朱 舜之均 固吾所謂習於惡而已者 瞽瞍之舜 鯀之禹 固吾所謂習於善而已者니라
대답하기를 “의 아들 단주丹朱의 아들 상균商均은 본시 내가 말한바 만을 익히는 데 그친 사람들이고, 고수瞽瞍의 아들 의 아들 는 본시 내가 말한바 만을 익히는 데 그친 사람들이다.
后稷之詩 以異云이요 而吾之所論者 常也
후직后稷에 관한 는 특수한 경우를 말한 것이고, 내가 논한 것은 일반적인 경우를 말한 것이다.
하니 人子而無父 猶可以推其質常乎
의 내용에, 사람의 자식이었으면서 아비가 없다고 하기까지 하였으니, 사람의 자식이면서 아비가 없는 것을, 그 본질本質을 보통 사람을 기준으로 하여 추구推究할 수가 있겠는가?
夫言性 亦常而已矣 無以常乎 則狂者蹈火而入河라도 亦可以爲性也니라
대저 에 대하여 말할 때에도 일반적인 것을 기준으로 해야 할 뿐이니, 일반적인 것을 기준으로 할 수 없으면, 미친 사람이 불길 속으로 들어가고 강물에 뛰어드는 것도 에 의한 행위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하니 丘明 固不可信也니라
월초越椒숙어叔魚에 관한 일은 다만 좌구명左丘明에게서만 들을 수 있는 것인데, 좌구명左丘明의 말은 본시 신뢰할 수가 없다.
말을 기준으로 하여 사람을 취하시다가 공자孔子께서 재아宰我에게 실수를 하셨고, 외모外貌를 기준으로 하여 사람을 취하시다가 자우子羽에게 실수를 하신 일이 있다.
此兩人者 其成人也 孔子朝夕與之居로되 以言貌取之而失이어시늘
이 두 사람은 재덕才德을 겸비한 사람이었고, 공자孔子께서 아침 저녁으로 함께 지내시면서도 말과 외모로 그들을 취하다가 실수를 하신 일이 있는데,
彼其始生也 婦人 以聲與貌定하고 而卒得之라하니
저들(越椒와 숙어叔魚)이 처음 태어났을 때에 부인婦人이 그들의 〈과는 무관한〉 울음소리와 외모를 통하여 그들의 미래를 예측하였고 끝내 그대로 이루어졌다 하였으니,
婦人者獨有過孔子者耶
그렇다면 그 부인婦人이 특별히 공자孔子보다 뛰어남이 있었다는 것인가?” 하였다.
역주
역주1 性說 : 儒家의 人性에 관한 인식은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 孟子는 人性이 본래 善한 것이라 하였고, 荀子는 人性이 본래 惡한 것이라 하였으며, 揚雄은 人性에 善과 惡이 混在해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韓愈는 〈原性〉에서, 人性을 上‧中‧下 三品으로 나누고, 사람은 누구나 이 三品 중의 하나를 生得하는 것으로 보아 후천적인 변화가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王安石은 本文을 통하여 韓愈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人性이 善하게 되거나 惡하게 되는 것은 原初的 狀態와는 無關한 後天的인 習慣의 결과로 보았다.
說은 文體名이다. 어떤 道理나 主張을 闡述한 것으로 論辨類에 해당된다.
역주2 孔子曰……習相遠也 : 《論語》 〈陽貨〉에 보인다.
역주3 吾是以 與孔子也 : 王安石은 그가 지은 〈原性〉에서 “太極(宇宙萬物의 根源)은 五行(金, 木, 水, 火, 土)이 生한 根據이지만 五行이 太極은 아니고, 性은 五常(仁, 義, 禮, 智, 信)이 생겨난 근거이지만 五常을 性이라 말할 수는 없다.[夫太極者 五行之所由生 而五行非太極也 性者 五常之所由生 而五常不可以謂之性]”라 하였는데, 이 주장이 孔子께서 人性은 서로 가깝다고 말씀하신 것과 相通한다는 것이다.
역주4 韓子之言性也 吾不有取焉 : 韓愈가 그가 지은 〈原性〉에서 人性에 대하여 밝힌 것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역주5 孔子所謂……不可以語上 : 《論語》 〈雍也〉에 보인다.
역주6 惟上智與下愚 不移 : 《論語》 〈陽貨〉에 보인다.
역주7 曰性之品三 而其所以爲性五 : 韓愈가 지은 〈原性〉에서 “人性은 세 등급이 있고 人性의 근본이 되는 것이 다섯이 있다.……人性은 上品, 中品, 下品의 세 등급이 있는데, 上品은 善하기만 할 뿐이고, 中品은 上品으로 유도할 수도 있고 下品으로 유도할 수도 있으며, 下品은 惡하기만 할 뿐이다. 그 人性을 이루는 근본이 되는 것은 다섯이 있으니 仁과 禮와 信과 義와 智라는 것이다.[性之品有三 而其所以爲性者五……性之品有上中下三 上焉者 善焉而已矣 中焉者 可導而上下也 下焉者 惡焉而已矣 其所以爲性者五 曰仁曰禮曰信曰義曰智]”라는 내용을 인용한 것이다.
역주8 上焉者之於五……反於一而悖於四 : 여기에서 말한 一은 ‘仁’을, 四는 ‘禮‧信‧義‧智’를 지칭한 것이다.
역주9 堯之朱 : 堯의 아들 丹朱를 지칭하며, 그가 傲慢하고 荒淫하여 丹水로 유배되었으므로 名을 丹朱라 한 것이다.
역주10 堯之朱……叔魚之事 : 이는 모두 韓愈가 〈原性〉에 열거하였던 사례들로 이로써 性善, 性惡, 善惡相混說의 세 단면을 증명한 것이다.
〈原性〉에는 “숙어가 태어나자 그 어머니가 보고서 그가 반드시 재물 때문에 죽을 것임을 알았고, 양이아가 태어나자 숙향의 어머니가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반드시 그의 종족을 멸할 것임을 알았으며, 월초가 태어나자 자문이 이 때문에 크게 슬퍼하고 약오씨의 조상들이 제사밥을 얻어먹지 못할 것을 알았으니, 人性이 과연 善한 것인가?
后稷이 태어났을 때에는 그 어머니가 아무런 해를 입지 않았고, 막 기어다니기 시작했을 때에는 크고 숙성하였으며, 文王이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에는 그 어머니가 아무런 근심이 없었고, 태어난 뒤에는 師傅가 수고롭지 않고 학문한 뒤에는 師傅가 번거롭지 않았으니, 사람의 性은 과연 악한 것인가?
堯의 아들 丹朱와 舜의 아들 商均과 文王의 아들 管叔‧蔡叔 등이 익힌 것이 善하지 않은 것이 없었는데도 끝내는 奸惡한 짓을 하였고, 瞽叟의 아들 舜과 鯀의 아들 禹가 익힌 것이 惡하지 않은 것이 없었는데도 끝내는 聖人이 되었으니, 사람의 性에는 善과 惡이 과연 섞여 있는 것인가?[叔魚之生也 其母視之 知其必以賄死 楊食我之生也 叔向之母聞其號也 知必滅其宗 越椒之生也 子文以爲大戚 知若敖氏之鬼不食也 人之性果善乎 后稷之生也 其母无災 其始匍匐也 則岐岐然 嶷嶷然 文王之在母也 母不憂 旣生也 傅不勤 旣學也 師不煩 人之性果惡乎 堯之朱 舜之均 文王之管蔡 習非不善也 而卒爲奸 瞽叟之舜 鯀之禹 習非不惡也 而卒爲聖 人之性果善惡相混乎]”라 하였다.
역주11 舜之均 : 舜의 아들 商均을 지칭하며, 그가 못났기 때문에 舜이 禹에게 禪位한 것이다.
역주12 瞽瞍之舜 : 瞽叟는 舜의 아버지로서 惡人이었다가 舜의 至孝에 감동하여 善人이 되었다.
역주13 鯀之禹 : 鯀은 禹의 아버지로서 堯의 명을 받아 治水를 하였으나 9년 동안 성과가 없자 舜이 羽山에서 處刑하였다.
역주14 后稷 : 後에 穀神이 된 인물로 周나라의 始祖이다.
역주15 越椒 : 춘추시대 楚나라 사람 鬪椒로 字가 子越이다. 그가 태어나자 그의 伯父가 그의 아버지 子良에게 말하기를 “이 아이는 熊虎의 狀이고 豺狼의 울음소리와 같으니 반드시 죽여야 한다. 죽이지 않으면 우리 敖氏 집안이 반드시 다 죽게 될 것이다.” 하였는데, 子良이 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 후 越椒가 令尹이 되어 군사를 이끌고 楚王을 공격하다가 敗하여 敖氏들이 모두 族滅당하였다.
역주16 叔魚 : 춘추시대 晉의 大夫 羊舌鮒의 字이다. 《國語》에 “叔魚가 태어나자 그의 어머니가 살펴보고 말하기를 ‘이 아이가 범의 눈에 돼지의 입이고 솔개의 어깨에 소의 배를 가지고 태어났으니, 골짜기는 메울 수 있어도 이 아이의 욕심은 채울 수가 없을 것이니, 반드시 재물 욕심 때문에 죽게 될 것이다.’ 하였는데 과연 이 때문에 죽었다.” 하였다.
역주17 詩之言 至以爲人子而無父 : 詩之言은 《詩經》 〈大雅 生民〉에, 姜嫄이 男子와 交合하지 않고 后稷을 낳았다고 한 것을 지칭한다. 姜嫄이 神明에게 제사를 지내어 아들을 낳기를 원하였는데, 天帝의 발자국을 밟고서 잉태하여 后稷을 낳았다 한다.
역주18 越椒叔魚之事 徒聞之左丘明 : 越椒와 叔魚에 관한 일은 모두 《春秋左氏傳》에 나오기 때문에 ‘다만 左丘明에게서만 들을 수 있다.’고 칭한 것이다. 左丘明은 춘추시대 魯나라의 史官으로, 《春秋左氏傳》과 《國語》를 지었다고 전해지나 확실하지 않다.
역주19 以言取人 孔子失之宰我 : 《史記》 〈仲尼弟子列傳〉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인다. “宰予는 자가 子我이며 언변이 뛰어났다. 宰予가 3년의 喪期를 1년으로 줄일 것을 주장하면서 ‘君子가 3년 동안 禮를 행하지 않으면 禮가 반드시 무너지고, 3년 동안 음악을 익히지 않으면 음악이 반드시 무너질 것입니다. 묵은 곡식이 이미 없어지고 새 곡식이 익으며 불씨를 취하는 나무도 바뀌니, 1년이면 그칠 만합니다.’ 하였다.
孔子께서 ‘쌀밥을 먹고 비단옷을 입는 것이 네 마음에 편안하냐?’ 하시니, 宰我가 대답하기를 ‘편안합니다.’ 하였다. 孔子께서 말씀하기를 ‘네가 편안하거든 그리 하라. 君子는 居喪할 때에 맛있는 것을 먹어도 달지 않으며 음악을 들어도 즐겁지 않으며 거처함에 편안하지 않다. 이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이다.’ 하였다.
宰我가 밖으로 나가자,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宰予의 仁하지 못함이여. 자식이 태어나서 3년이 된 뒤에야 부모의 품을 벗어난다. 3년상은 천하의 공통된 喪이니, 宰予는 3년의 사랑이 그 父母에게 있었는가?’ ”
역주20 以貌失之 子羽 : 《史記》 〈仲尼弟子列傳〉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인다. “澹臺滅明은 武城 사람으로 자는 子羽이다. 그는 용모가 매우 못생겨서 孔子께서는 재능도 천박할 것이라고 여기셨으나, 그는 배운 뒤에 물러가면 행실을 닦고 길을 다닐 적에는 지름길로 다니지 않으며 공적인 일이 아니면 卿大夫를 만나지 않았다. 그가 남쪽으로 내려가 長江 근처에 이르렀을 때 따르는 제자가 300명이나 되었고 제후들 사이에도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孔子께서 이 말을 듣고 탄식하기를 ‘내가 말로써 사람을 취하였다가 宰我에게 실수를 하였고, 外貌로써 사람을 취하였다가 子羽에게 실수하였다.[吾以言取人 失之宰予 以貌取人 失之子羽]’ 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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