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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王安石(1)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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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6. 포선산褒禪山 유람기遊覽記
逸興滿眼하야 而餘音不絶이라
절경絶景완상玩賞하는 빼어난 흥취興趣가 눈에 가득 들어오는 듯하여, 끊임없는 여운餘韻을 느끼게 된다.
褒禪山 亦謂之華山하니 唐浮圖慧褒 始舍於其址라가 而卒葬之 以故 其後名之曰褒禪이라하니라
포선산褒禪山화산華山이라고도 부르는데, 나라 때의 스님 혜포慧褒가 그곳에 불사佛舍를 짓고 머물다가 사망하여 그곳에 장례를 지냈으므로, 그 때문에 그 이후에 포선산褒禪山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今所謂慧空禪院者 褒之廬冡也
지금 혜공선원慧空禪院이라 일컫는 곳은 혜포慧褒의 무덤을 지키는 사원寺院이다.
距其院東五里 所謂華山洞者 以其乃華山之陽으로 名之也
혜공선원慧空禪院에서 동쪽으로 5쯤에 이른바 화산동華山洞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이 곧 화산華山의 남쪽이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을 지은 것이다.
距洞百餘步 有碑仆道하니 其文漫滅이나 獨其爲文猶可識 曰花山이니
화산동華山洞에서 100 쯤 되는 곳에 비석碑石이 길가에 쓰러져 있으나, 문자文字마멸磨滅되어 모호模糊하고 오직 문장文章 가운데 식별할 수 있는 것은 ‘화산花山’이라 한 부분뿐이다.
今言華 如華實之華者 蓋音謬也
지금 ‘’字를 발음할 때에 ‘화실華實(꽃과 열매)’이라 할 때와 같이 발음하는데, 아마도 이 같아서 잘못 전해진 듯하다.
其下平曠하고 有泉側出하야 而記遊者甚衆하니 所謂前洞也
그 아래는 평평하게 트여있고, 그 곁에서 샘이 솟아서 이곳을 유람하고 를 지은 사람이 매우 많으니, 이곳이 이른바 전동前洞이다.
由山以上五六里 有穴窈然하야 入之甚寒이어늘 問其深하니 則其好遊者 不能窮也 謂之後洞이라
을 따라서 5~6 정도 올라가면 동굴洞窟이 있어 깊고 어두우며 그곳으로 들어가면 오싹한 한기寒氣를 느끼게 되고, 그 굴의 깊이를 물어보면 이곳을 즐겨 유람한 사람들도 끝까지 밝힐 수가 없으며, 이곳을 후동後洞이라 이른다.
余與四人으로 擁火以入하니 入之愈深하야 其進愈難이나 而其見愈奇러라
내가 네 사람과 함께 횃불을 들고 들어가 보았는데, 점점 깊이 들어갈수록 앞으로 나가기가 점점 어려웠고, 보이는 것들이 더욱 기이하였다.
有怠而欲出者하야 曰 不出이면 火且盡이라하야늘 遂與之俱出하니라
그런데 싫증을 느끼고 나오고자 하는 사람이 있어서 말하기를, “지금 나가지 않으면 횃불이 꺼질 듯하다.” 하였으므로 어쩔 수 없이 그들과 함께 나오고 말았다.
蓋予所至 比好遊者 尙不能十一이나 然視其左右하고 來而記之者已少
아마도 내가 이르렀던 곳이 이곳 유람을 즐기는 사람에 비하면 오히려 10분의 1도 되지 않을 듯한데, 그러나 좌우를 살펴보고 나와서 이를 기록한 사람은 매우 드물었다.
蓋其又深이면 則其至又加少矣리라
대체로 더욱 깊은 곳일수록 그곳까지 이르렀던 사람은 더욱 적었다.
方是時하야 予之力 尙足以入이요 火尙足以明也일새 旣其出하야 則或咎其欲出者하고 而予亦悔其隨之하야 而不得極夫遊之樂也호라
이때를 당하여 나의 기력氣力은 아직 더 들어가기에 충분하였고, 횃불도 이를 밝히기에 아직 여유가 있었으므로, 이미 나온 후에는 어떤 사람은 먼저 나가려 했던 사람을 원망하였고, 나 또한 그를 따라 나와서 그 유람의 즐거움을 끝까지 누릴 수 없었음을 후회하였다.
於是 予有歎焉호라 古人之觀於天地山川草木蟲魚鳥獸 往往有得하니 以其求思之深이면 而無不在也
이에 나는 탄식歎息을 하였으니, 옛사람들은 천지天地산천山川초목草木충어蟲魚조수鳥獸 등을 관찰하고 왕왕 터득한 것이 있었으며, 이를 근거로 하여 사고思考심오深奧하게 하면 도를 간직하지 않는 일이 없었다.
夫夷以近이면 則遊者衆하고 險以遠이면 則至者少하니 而世之奇偉瑰怪非常之觀 常在於險遠하야 而人之所罕至焉이라
대체로 평탄하고 가까운 곳은 유람하러 찾아오는 사람이 많고 험하고 먼 곳은 찾아오는 사람이 드물지만, 세상에 기이奇異하게 빼어나거나 특이하게 진귀珍貴하거나 보통보다 뛰어난 경관景觀은 언제나 험난하고 먼 곳에 있으므로, 사람들 가운데 이곳까지 이르는 사람이 드문 것이다.
故非有志者 不能至也니라
그러므로 의지意志를 가진 사람이 아니면 이를 수가 없다.
有志矣 不隨以止也 然力不足者 亦不能至也
의지意志가 있고 또한 싫증 내어 게으름 피우는 사람을 따라서 중단하지 않는다 해도, 기력氣力이 모자란 사람은 이를 수가 없다.
有志與力하고 而又不隨以怠하야 至於幽暗昏惑이라도 而無物以相之 亦不能至也
의지와 기력이 있고 게으름 피우는 사람을 따라 중단하지 않고 계속 전진하여 어둡고 분별하기 어려운 곳까지 이르렀다 해도, 다른 사람이 도와주지 않으면 또한 끝까지 이를 수가 없다.
然力足以至焉이어늘 於人爲可譏 而在己爲有悔
그러나 기력氣力이 이르기에 충분한 사람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원망을 들을까봐 중도에 중단했다가 이를 후회하기도 한다.
盡吾志也로되 而不能至者 可以無悔矣 其孰能譏之乎
내가 의도한 바대로 최선을 다했는데도 이를 수가 없었다면 후회하지 않을 것이니, 그 누구를 원망할 수 있으리오.
此予之所得也니라
이 점이 동굴을 유람하고 내가 터득한 것이다.
予於仆碑 又以悲夫古書之不存하니 後世之謬其傳而莫能名者 何可勝道也哉
나는 엎어져 있는 비석碑石에 대하여 옛 글이 남아있지 않음을 슬퍼하나니, 후세後世에 잘못 전해져서 이름도 온전하게 알 수 없는 것에 대해서야 어찌 이루 다 말할 것이 있겠는가.
此所以學者 不可以不深思而愼取之也니라
이것이 학자學者들이 깊이 생각하고 신중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소이所以이다.
四人者 廬陵蕭君圭君玉 長樂王回深父 余弟安國平父 安上純父
함께 갔던 네 사람은 여릉廬陵 소규蘇圭 군옥君玉장락長樂 왕회王回 심보深父와 내 아우 안국安國 평보平父안상安上 순보純父 등이었다.
至和元年七月某日 臨川王某하노라
지화至和 원년元年 7 모일某日임천臨川 왕모王某를 지었노라.
역주
역주1 遊褒禪山記 : 이 記는 至和 元年(1054) 7월에 지은 것이다. 褒禪山은 現 安徽省 含山縣 북쪽에 있다. 山水의 遊覽에 대하여 말하면서 이를 學問하는 자세에 비유한 것이 奇拔한 着想이다.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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