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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王安石(2)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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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0. 우령군위장군으로 벼슬에서 물러난 왕군의 묘지명
문장이 기발하다.
君王氏 諱乙이며 字次公이라
왕씨王氏이고, 이며, 차공次公이다.
其望在太原이나 而實家大名之元城이니 不知其始所以徙
가문家門태원太原망족望族이었는데, 생가生家대명大名원성현元城縣이니, 그 집안이 애초에 어디에 있다가 옮겨왔는지는 알 수가 없다.
曾祖諱安이니하야 爲閤門通事舍人하고 祖諱廷溫이니 開寶中 泰寧軍節度副使 考諱奉諲이니 右班殿直으로 贈左武衛大將軍하다
증조曾祖으로, 후주後周세종世宗 때에 합문통사사인閤門通事舍人역임歷任하였고, 조부祖父정온廷溫으로 개보開寶 연간年間태령군절도부사泰寧軍節度副使를 지냈으며, 선고先考봉인奉諲으로 우반전직右班殿直으로 좌무위대장군左武衛大將軍증직贈職되었다.
君嘗擧進士 不中하니 因獻其所藏書秘閣하고 而上書言호되
은 일찍이 진사시進士試에 응시하였다가 낙방하자 소장所藏하고 있던 서적을 비각秘閣에 바치면서 글을 올리기를
先臣某逮하야 於先皇帝有一日之幸하니 臣實其子로소이다
선친先親 허왕許王을 섬길 때에 선황제先皇帝께 한때 사랑을 받은 일이 있는데, 이 바로 그의 아들입니다.” 하니,
天子下其問驗이어늘 以爲三班借職하고 累遷至內殿崇班 閤門祗候 淮南東路都巡檢使하다
천자天子께서 그 편지를 내려보내며 확인해보도록 하고서, 삼반차직三班借職에 임명하였으며, 벼슬을 여러 차례 옮겨서 내전숭반內殿崇班 합문지후閤門祗候 회남동로순검사淮南東路巡檢使에 이르렀다.
皇祐二年 年七十三으로 以右領軍衛將軍致仕하고 卒於海州하니 而以嘉祐二年 葬眞州之揚子縣某鄕某原하고 以後夫人劉氏祔하니 於是先夫人林氏旣葬矣러라
황우皇祐 2년(1050) 73세 때에 우령군위장군右領軍衛將軍으로 벼슬에서 물러나 해주海州에서 하자, 가우嘉祐 2년에 진주眞州양자현揚子縣 모향某鄕 모원某原안장安葬하고, 후부인後夫人 유씨劉氏합장合葬하였으니, 이때에 선부인先夫人 임씨林氏는 이미 다른 곳에 안장하였기 때문이었다.
君强記博聞하고 剛毅而聰明하며 好讀書하야 雖老矣라도 讀書未嘗少止하다
은 기억력이 뛰어나고 견문이 넓었으며, 굳세고 의연하면서 총명하였고, 독서를 좋아하여 늙은 후에도 글 읽기를 잠시도 중단한 일이 없었다.
於窮人賤士 苟義所在 樂與之爲膠漆하고 一欲以不直加我 雖嚴貴人이라도 義終不爲受也러라
궁곤한 사람이나 미천한 선비라 해도 진실로 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면, 더불어 친밀하게 지내기를 즐거워하였고, 하나라도 바르지 않을 일을 나에게 가하려 한다면, 그가 비록 위엄威嚴 있는 귀인貴人이라 해도, 를 끝까지 고수하면서 굽히고 받아들이는 일이 없었다.
數上書言事 皆中世病이나 而用事者多不聽하고 聽者兩言耳 又事之小者
자주 상서上書하여 언급한 일들이 모두 시대의 잘못을 지적한 것들이었으나, 집권자가 들어주지 않은 것이 많았고, 들어준 것은 두 가지 건의뿐이었으며, 그것도 건의한 일 가운데 자질구레한 것이었다.
然當時蒙其利 言楚州 可去堰爲牐이라하야 歲省卒二十一萬七千人 錢一百三十萬 米六萬八千石이요
그러나 당시에 그의 건의로 이익을 입은 것으로는, 초주楚州에 있는 북신北新하구언河口堰 일부를 허물고 그곳에 갑문閘門을 설치할 것을 건의하여, 한 해에 노동력 21 7 화폐貨幣 130 미곡米穀 6 8 을 절약할 수 있었다.
又言河陰 可以茶鹽募入穀하야 而漕之河北한대 爲十說以排三司之難하야 三司不能絀其一하니
와 소금을 팔아 그 돈으로 곡식을 구매하여 하음창河陰倉입고入庫하도록 하고 이를 하북河北에서 운송運送해 오도록 건의하자 삼사三司에서 반대하였는데, 열 가지 이유를 들어 삼사三司의 반대를 배격하자, 삼사에서는 그 가운데 한 조항도 반박하지 못하였다.
此當時蒙其利者也
이 두 사례가 당시 사람들이 그의 건의로 이익을 본 것들이었다.
宋興百年 大定於太宗하야 至眞宗內外富矣
나라가 건국되고 100년 동안에 태종太宗 때에 나라가 크게 안정되었고, 진종眞宗 때에 이르러 나라 안팎의 경제가 풍족해졌다.
內外自是遂務以無爲養息天下하고
나라의 안팎이 이로부터 드디어 새로운 일을 일으키지 않고 현상을 유지하는 데 힘쓰고 천하天下 사람들로 하여금 휴양생식休養生息을 도모하게 하였다.
朝廷所尙 賢良進士 而將相大臣之世用이러라
조정에서는 현량賢良진사進士로 등제한 자들이 장상將相대신大臣들에게 발탁되어 세상을 위해 쓰이는 것을 숭상하는 풍조가 있었다.
君方慨然懷古人趨赴功業之意하고 欲起貧賤하야 不勢左右하고 而以其辯智當人主하니 衆圓獨方하고 用非其時하야 卒以不合하니
은 그런 시기에 강개慷慨하게 옛사람이 공업功業을 이룩하기 위하여 애써 일했던 뜻을 마음에 품고, 빈천한 가문을 일으키고자 하여, 권세와 이익을 위해 군주君主의 좌우에 있는 사람들과 교결交結한 일이 없고, 자신의 총명聰明재지才智를 발휘하여 군주를 받들려 하니, 다른 사람들은 모두 둥글둥글 지내는데 홀로 모나게 행동하고, 이 때문에 당시 사람들의 비난을 받아, 끝내 그들과 뜻을 맞출 수가 없었다.
嗚呼
아아!
甚可悲也로다
심히 슬퍼할 일이로다.
然天下不肖多畏惡君이어늘 以其伉直으로 而幸其齟齬不得意以老하니 獨賢者哀之耳니라
그러나 천하의 못난 사람들은 군을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이들이 많았는데, 그 강직함을 고수하면서 세상과 어그러져서, 뜻을 얻지 못하고 늙어가면서도 행복으로 여기니, 오직 현자賢者들만이 이를 안타깝게 여겼을 뿐이었다.
君子越石 泰州觀察判官이요 其次子仁傑 爲進士 女二人이니 嫁進士林度 陳州項城主簿宋造하다
의 아들 월석越石태주泰州관찰판관觀察判官이고, 둘째아들 인걸仁杰진사進士이며, 딸이 둘인데 진사進士 임도林度진주陳州 항성주부項城主簿 송조宋造에게 출가하였다.
余嘗爲君僚 而與其子越石으로 同年進士也
나는 과거過去속료屬僚를 지낸 일이 있고, 그 아들 월석越石과는 진사시進士試동년급제同年及第한 사이이다.
銘其葬曰
이에 하장下葬할 때에 다음과 같이 을 쓴다.
强能吾嬴이면 吾與之爲抗하고
권세權勢 있는 사람이 나를 압도하면, 나는 그와 맞섰고,
嬴者惴惴 吾與之爲讓이라
압도하던 사람이 겸손 공근하면, 나는 그에게 사양하였네.
卒嬴于强하야 以窒于行이나
끝내 권세 있는 사람에게 압도되어, 행하려는 일 막혔으나,
維其心之亨하야 以實其聲也로다
그 마음은 형통亨通하여, 그의 명성名聲은 세상에 가득 찼어라!
역주
역주1 右領軍衛將軍致仕王君墓誌銘 : 本 墓誌銘은 墓主와 繼室 劉氏를 合葬하였던 嘉祐 3년(1058)에 지은 것이다. 右領軍衛將軍은 宮闕을 수호하는 環衛軍의 官職名이다.
역주2 周世宗時 : 五代의 한 나라였던 後周의 世宗(在位 945~959) 때를 말한다.
역주3 許王 : 雍熙 2년(985)에 許 땅의 王으로 冊封되었던 太宗의 次子 趙元僖를 지칭한다.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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