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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王安石(2)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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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5. 망형 왕상보의 묘지명
荊公以兄常甫才而不遇 故特於文章虛景相感慨하야 令人讀之而有餘悲
형공荊公이 자신의 형 상보常甫가 재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불우不遇하였다고 여겼으므로, 특별히 행적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 문장으로 슬픈 감개를 표현하여,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더욱 많은 슬픔을 느끼게 한다.
七歲好學하야 毅然不苟戱笑하고 讀書二十年하다
선생先生은 7세 때부터 배우기를 좋아하여 꿋꿋하게 지내며 구차하게 희롱하고 웃는 짓을 하지 않았고, 20년 동안 독서를 하였다.
하니 先生學完行高하야 江淮間州 爭欲以爲師하니 所留 輒以詩書禮易春秋 授弟子하다
경력慶曆 연간年間천자天子께서 책을 하사하고 주현州縣에 크게 학교를 설치하도록 하시자, 선생의 학문學問은 완성의 경지에 이르고 행실行實은 고매하였으므로, 강수江水회수淮水 사이의 고을에서 다투어 스승으로 모시려 하니, 머무는 곳마다 곧 《시경詩經》, 《서경書經》, 《역경易經》, 《춘추春秋》를 제자들에게 가르쳤다.
慕聞來者 往往千餘里하니 磨礱淬濯하야 成就其器 不可勝數러라
소문을 듣고 연모戀慕하여 왕왕 천여 리 밖에서도 찾아오니, 열심히 연마하고 깨끗이 수양하여 그 능력을 발휘한 사람을 이루 다 기재記載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而先生始以進士下科 補宣州司戶러니 至三月 轉運使以監江寧府鹽院하고 又三月卒하다
선생은 처음에 진사시進士試하과下科로 급제하여 선주사호宣州司戶가 되었는데, 부임한 지 3개월 만에 전운사轉運使강녕부江寧府감염원監鹽院에 임명하였고 그 후 3개월 만에 하였다.
又七月葬하니 則卒之明年四月也 實皇祐四年이라 墓在先君東南五步하다
다시 7개월 만에 장례를 지내니, 곧 한 이듬해인 4월로, 실은 황우皇祐 4년(1052)에 해당되며, 선군先君 동남쪽 5보 떨어진 곳에 있다.
先君姓王氏 諱益이요 官世行治 旣有銘하니
선군先君왕씨王氏이니, 이며, 벼슬하신 이력과 다스리신 업적은 이미 그분의 묘지명墓誌銘에 등재되어 있다.
先生 其長子 諱安仁이요 字常甫 年三十七이니 生兩女하다
선생은 그분의 맏아들로 안인安仁이고, 상보常甫이며, 향년享年이 37세이니, 두 딸을 낳았다.
嗚呼
아아!
先生之道德 蓄於身而施於家하야 不博見於天下하고
선생의 도의道義덕행德行은 몸에 축적되었고 집안에 이를 베풀었지만, 천하에 널리 드러내지를 못하였도다.
文章名於世 特以應世之須爾 大志所欲論著 蓋未出也
문장文章은 세상에 이름이 났으나, 지은 것은 다만 세상 사람들이 요구하는 것뿐이었고, 평론評論하고 저술著述하고자 한 큰 뜻은 모두 드러내지를 못하였다.
而世之工言能使不朽者 又知先生莫能深이니 嗚呼
세상에서 공교롭게 여길 글을 지어 영원히 남겨놓을 수 있었지만, 선생이 깊이 천착해 남겨놓을 겨를이 없었음을 알겠으니, 아아!
先生之所存 其卒於無傳耶
선생이 간직하고 있었던 것을 끝내 전할 수 없게 될 것인가.
始先生常以爲功與名不足懷라하더니 蓋亦有命焉이라
애초에 선생은 공로功勞명성名聲은 마음에 둘 것이 못 된다고 항상 생각하였으니, 이는 대체로 또한 운명이 있는 것이다.
君子之學 然則先生之無傳 蓋不憾也
군자君子학문學問은 그 천성天性을 극진하게 닦는 것일 뿐이니, 그렇다면 선생의 학덕學德이 전해지지 않는다 해도 유감遺憾스러울 것이 없다.
雖然이나 先生孝友最隆하야 委百世之重이어늘 而無所屬以傳이로다
비록 그러하나 선생의 지극히 드높은 효성과 우애는, 백대百代가 지나도 중히 여길 만한데, 중요한 저작著作에 실어놓아 전하게 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有母有弟어늘 方壯而奪之하야 使不得相處以久하니 先生尙有知인댄 其無窮憂矣리라
모친이 생존해 계시고 아우들이 있는데, 막 장년에 이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아 가서, 함께 오래 지낼 수가 없게 하였으니, 선생께서 돌아가셔서도 앎이 있으시다면, 무궁토록 이를 근심하실 것이로다.
嗚呼
아아!
以往而推存하니 痛其有已邪
이미 떠났는데도 아직 계신 듯하니, 애통함을 그칠 수 있으리오.
痛其有已邪
애통함을 그칠 수 있으리오.
先生하야 其弟旣次以藏其家하고 又次行治藏於墓하니 嗚呼
선생이 문집文集 15권을 남겨서, 그 아우가 이미 편차編次하여 그의 집에 간직하고 있고, 또 덕행德行치적治績을 차례로 엮어 묘지墓誌를 지어서 무덤에 부장하게 되었으니, 아아!
酷矣
운명이 가혹하도다.
極矣로다
가혹함이 극심하도다.
銘止矣 其能使先生傳耶
이에 을 짓지 못하겠으니, 설령 짓는다 한들 선생의 행적을 전할 수 있겠는가.
역주
역주1 亡兄王常甫墓誌銘 : 王常甫는 王安石의 異母同父 長兄인 王安仁(字 常甫)으로, 皇祐 4년(1052)에 일찍 卒하자, 이를 안타까워하여 지은 것이다. 당시 왕안석은 32세였다.
역주2 先生 : 亡兄에 대한 尊稱이다. 曾肇가 그의 형 曾鞏의 行狀을 지으면서도 先生이라 稱하였다.
역주3 當慶曆中 天子以書賜州縣大置學 : 仁宗이 慶曆 4년(1044)에 慶曆新政을 推進하면서, 각 州縣에 學校를 세우도록 詔書를 내렸던 일을 말한다.
역주4 盡其性而已 : 《孟子》 〈盡心 上〉에서 “그 마음을 극진히 하는 사람은 그 天性을 알게 된다. 그 天性을 알게 되면 天道를 알게 된다. 그 마음을 간직하고 그 天性을 기르는 것이 하늘을 섬기는 根本이다.[盡其心者 知其性也 知其性 則知天矣 存其心 養其性 所以事天也]” 한 뜻을 압축하여 표현한 것이다.
역주5 有文六十五卷 : 《宋史》 〈藝文志〉에 著錄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일찍이 逸失된 듯하다.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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