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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王安石(2)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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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1. 한림시독학사 지허주군주사를 지낸 매공의 신도비
歐陽公最長於墓誌表하고 以其序事處往往多太史公逸調하야 唐以來學士大夫所不及者로되
구양공歐陽公(歐陽脩)은 묘지墓誌묘표墓表를 가장 잘 지었고, 사실事實서술敍述한 곳은 왕왕 태사공太史公(司馬遷)의 빼어난 격조에 비견할 만한 곳이 많아서, 당대唐代 이후의 학사 대부들이 이에 미칠 수 없다.
而王荊公 獨自出機軸하고 多巉畫曲折之言하며 其尤長者 往往於序事中 一面點綴着色 雋永遠出하야 令人覽之 如走駿馬於千山萬壑之中 而層巒疊嶂 應接不暇하니 序事中之劒戟也
그런데 왕형공王荊公(王安石)만은 독자적인 기축機軸을 발현하여 우뚝하게 드높고 깊은 곡절을 드러낸 말이 많으며, 더욱 훌륭한 점은, 사실을 서술한 가운데 왕왕 어느 한 면을 돋보이도록 수식修飾을 가하여 아름다우면서도 심오함이 원대하게 빼어남이 있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이를 열람하면 마치 준마駿馬를 타고 천산만학千山萬壑 가운데를 달려 층층으로 이루어진 산과 겹겹의 절벽을 미처 완상할 겨를이 없게 하는 것과 같으니, 사실을 서술한 글 가운데 날카롭고 빼어나기가 검극劍戟과 같다.
通篇以銘序始終하니 亦變調也
문장 전체를 로 시작하여 으로 마쳤으니, 또한 비문체碑文體변조變調라 할 수 있다.
宋翰林侍讀學士 正奉大夫 知許州軍州事 兼管內堤堰橋道勸農事 上柱國 南昌郡開國公 賜紫金魚袋梅公之墓 在宣州宣城縣長安鄕西山里하다
나라 한림시독학사翰林侍讀學士 정봉대부正奉大夫 행급사중行給事中 지허주군주사知許州軍州事 관내제언교도권농사管內堤堰橋道勸農事 상주국上柱國 남창군개국공南昌郡開國公 식읍이천삼백호食邑二千三百戶 식실봉육백호食實封六百戶자금어대紫金魚袋하사下賜받은 매공梅公선주宣州 선성현宣城縣 장안향長安鄕 서산리西山里에 있다.
公有五子하니 鼎臣德臣寶臣輔臣淸臣이니
은 다섯 아들을 두었으니, 정신鼎臣덕신德臣보신寶臣보신輔臣청신淸臣 등이다.
淸臣今獨在하야 爲尙書司門郞中이러니 以公行狀及之銘으로 來請文以刻墓碑하니 時熙寧元年八月四日也
현재 청신淸臣만이 생존하여 상서사문낭중尙書司門郎中으로 있는데, 행장行狀낙안樂安 구양공歐陽公이 지은 을 가지고 와서, 비문碑文을 지어 묘비墓碑에 새길 수 있게 해달라고 청하였으니, 때는 희령熙寧 원년元年(1068) 8월 4일이었다.
銘曰
이에 다음과 같이 을 지었다.
公先이니 後氏其國이라
선조先祖매백梅伯이니 후대後代에 그 나라 이름을 성씨姓氏로 정하였네.
彌周涉秦 不見史策이요
주대周代를 지나서 진대秦代에 이르기까지는 사서史書조상祖上들의 명자名字가 보이지 않고,
著漢名籍이라
매현梅鋗매복梅福이라는 분이 계셔서 한대漢代인명록人名錄에 드러나 있네.
公福之孫이니 詢字昌言이라
매복梅福의 후손으로 이름이 이고 창언昌言이었네.
하고 陵陽之里
선조先祖삼대三代는 벼슬을 하지 않으시고 능양陵陽 마을에 사셨네.
公第廷中하야 判官利豐이러니
전시殿試에 급제하여 이풍利豐판관判官이 되셨고,
再歲而擢하야 以丞將作이라
2년 만에 장작감將作監으로 발탁되셨다가,
以宰仁和 人譽用多
인화현仁和縣가 되자 사람들의 많은 칭찬을 받으셨네.
主推御史하야 侍考進士하고
어사대御史臺추감관推勘官이 되어 황상皇上을 모시고 진사시進士試고관考官이 되었고,
一見天子 以爲知己
천자天子께서 한 번 보시고는 뜻을 같이할 만한 기재奇材로 여기셔서,
詔曰試哉인저하야하고
조서詔書를 내리셔서 “등용하라!” 하시고, 드디어 시중서사인試中書舍人하셨고,
館之集賢하야 賜服緋魚
직집현원直集賢院이 되시니 붉은색의 관복과 은어대銀魚帶하사下賜하셨네.
於時繼遷 兵我西鄙하니
이때에 이계천李繼遷이 우리의 서쪽 변방을 침노하니,
老弱餽守하고 丁彊多死
노약자老弱者들은 물자운송과 성곽수호에 고생하고, 장정壯丁들은 전사戰死한 사람이 많았으며,
靈州告危하니 帝視不怡
영주靈州에서 위태로움을 하니 황제께서 마음이 편치 않으셨네.
公請擇人하야 使潘羅支하니
적임자適任者를 골라 반라지潘羅支에게 사신使臣을 보내어 설득하기를 청하니,
兵法所謂 以夷攻夷
병법兵法에 이른바 오랑캐로 오랑캐를 치게 한 것이네.
帝曰誰可 無如臣者라한대
황제께서 “누구를 보낼까?” 하시자 “만 한 적임자가 없습니다.”라고 답하였는데,
曰予汝嘉 閉陷奈何오하시다
황제께서 “나는 너를 가상하게 여기지만, 막히고 무너지면 어찌하랴.” 하시니,
公拜且跪하고 颺言而起하야
이 절을 올리고 꿇어앉았다가 일어나서 큰 소리로 말씀 올리기를,
苟紓西師 臣不愛死로소이다하니
“진실로 서방西方병란兵亂진정鎭定시킬 수 있다면 은 목숨도 아끼지 않겠습니다.” 하니,
出書授之하사 往訖爾謀하라하시다
국서國書를 내어주시며 “그곳으로 가서 너의 계책을 이루도록 하라!” 하셨으나,
至疆勅還하니 會棄靈州
그 땅에 이르렀다가 칙명勅命을 받고 돌아와 보니 영주靈州는 포기한 였네.
帝察公藝하고 可書帝制러니
황제께서 의 재주를 살피시고 황제의 조서詔書를 지을 만하다고 보셨으나,
相或止之하야 留佐三司하다
재상宰相 가운데 반대하는 자가 있어서 삼사三司에 머물면서 보좌하였네.
其後羅支 果窘西賊하니
그 후에 반라지潘羅支가 과연 서방西方을 물리치니,
論將料敵
장수將帥공과功過를 논하고 에 대하여 예측하셨던 것이,
皆如所策이라
모두 이 세웠던 계책과 들어맞았네.
或從或違하고 或擠或推하며
누구를 따르고 누구를 어기며, 누구를 물리치고 누구를 천거할지와
牾合阻夷 神者公尸
반역反逆할 자와 귀부歸附할 자를 이 귀신같이 알아맞혔네.
黜之倅州하야 用獄一眚
옥사獄事의 처리를 한 번 그르쳤다 하여 지방 고을의 로 쫓겨났고,
去杭而蘇하야 列國東屛이라
항주통판杭州通判으로 나갔다가 소주지사蘇州知事가 되어 국가의 동쪽 방어를 튼튼히 하였으며,
漕輸淛河하야 就付將領하고
절강浙江전운사轉運使가 되어 이끌고 거느리기를 하게 하고,
三年告功 僅得故省이라
3년 만에 공적功績이 보고되어 겨우 옛 관직을 회복하셨네.
又以譴投하야 守彼淮州할새
다시 견책譴責을 받아 쫓겨나서 저 회주淮州지사知事가 되었을 적에
有僚許公하야 相得於此하고
동료同僚허국공許國公 여이간呂夷簡과 이곳에서 서로 만나,
與之欣然하야 樂以忘徙러라
흔연히 함께 지내면서 즐거워하여 옮겨갈 것을 잊었었네.
使於湖北 遷自濠梁이러니
호북湖北전운사轉運使에서 호주濠州로 옮겼는데,
又奪一官하야 往裨于襄하니
관등官等강등降等되어 이곳을 떠나서 양주판관襄州判官에 보임되었으니,
坐發驛馬하야 給奔喪者
나라의 역마驛馬을 당하여 급히 떠나는 사람에게 빌려준 일에 연좌連坐되어서였네.
於鄂於蘇 剖將之符하고
악주鄂州소주蘇州에서 지주知州 관군사管軍事가 되었고,
握節關中하야 使總其輸하니
황제의 부절符節을 가지고 관중關中 땅을 관할하여 전운轉運의 사무를 총관總管하니
煌煌金章 厥賜特殊
광채光彩 나는 관복官服은 특별한 은총을 내리신 것이네.
謀復靈武하야 度兵葫蘆하니
영무군靈武郡수복收復도모圖謀하여 군사가 호로수葫蘆水를 건너려 할 때에,
秦有將瑋하야 諾公與俱러니
진주秦州장군將軍 조위曹瑋가 있어, 과 함께 가기를 허락하였었는데,
會瑋召還하야 公復淪胥
때마침 조위曹瑋소환召還당하여 은 다시 포부를 이룰 수가 없었네.
有反咸陽하니 能名氏朱
함양咸陽에서 반란反亂을 일으킨 자가 있었으니, 천거薦擧했던 주능朱能이라 하는 자였네.
始雖弗察이나 後捕而誅
처음에는 비록 제대로 살피지 못하였으나 후에는 잡아서 처형하니,
自懷徂池하야 再副戎車
이 때문에 회주懷州에서 지주池州로 옮겨가서 다시 단련부사團練副使가 되셨네.
眞宗新陟 罪垢皆滌하고
진종眞宗께서 승하昇遐하시자 죄과罪過를 모두 사면하셔서,
爲郞度支하야 以將廣德이라가
탁지원외랑度支員外郞이 되시고 광덕군廣德軍이 되셨다가
外更四州하니 楚壽陝荊이라
지방관으로 나가 네 고을의 지사知事를 역임하였으니, 초주楚州수주壽州섬주陝州형주荊州였네.
乃還待制하야 中糾獄刑이라
이어 용도각대제龍圖閣待制로 소환되어 수도首都형옥刑獄규찰糾察하였고,
有巋龍圖 其唐殖殖이러니
용도각직학사龍圖閣直學士로 우뚝하게 드러나서, 당당한 말씀은 바르고 공평하였으며,
就以學士하야 專其閣直이라
학사로 있으면서 용도각 지키기를 오로지 하였네.
輟之銓衡하고 乘傳臨幷이라가
관리 전형銓衡직임職任을 마치고는 역거驛車를 타고 병주幷州로 부임하셨다가
超遷郞秩하야 進直樞密이라
낭중郎中관등官等을 뛰어넘어서 추밀원직학사樞密院直學士로 승진하셨네.
趣歸封駮하고 考國中失이라가
잠시 후 봉박사封駁司로 돌아가 국중國中의 잘못된 점을 바로잡았고,
申命選事하야 得權進絀이라
다시 전선銓選의 임무를 담당하여 승진시키고 좌천시키는 권한을 얻었네.
加職侍讀하고 改司群牧하며
시독侍讀의 직책이 더해지고 군목사群牧使이 되셨으며
移之審官하니 審是在服이라
심관원審官院으로 옮기셔서 지심관知審官으로 복무하셨네.
伐閱積遷하야 給事于中이러니
공적功績경력經歷으로 급사중給事中이 되셨는데,
告疾出許하야 鼓歌從容하니라
을 이유로 지허주사知許州事로 나아가 조용히 태평하게 지내시다가 하셨네.
方公少壯 志立人上하야
은 젊었을 적에 뜻을 세우심이 남보다 뛰어나서,
談辭慨然하니 帝悅而嚮이라
주장하는 말이 비장하니 황제께서 기뻐하시며 특별히 예우하셨네.
及後晩出 皆爲將相하고
후배들로 늦게 진출한 사람들이 모두 장상將相에 이르자,
公則老矣 將歸田里
노령老齡을 이유로 하여 전리田里로 돌아가고자 하셨네.
康定辛巳 六月十日
강정康定 신사년辛巳年(1041) 6월 10일에,
公七十八 以其官卒하니
78세로 임소任所에서 하시니
公開南昌하야 勳爵第一이라
남창군南昌郡 개국공開國公이 되어 훈급勳級작위爵位가 으뜸이셨네.
夫人曰劉 不及郡封하고
부인夫人유씨劉氏로 미처 군봉郡封을 받지 못하고
封君彭城하니 其卒先公이라
팽성현군彭城縣君해졌으니 보다 먼저 하였기 때문이었네.
公卒明年 季秋
하신 이듬해 9월 10일에,
於州山西 卜祔而吉하다
고을의 산 서쪽에 점쳐 길지吉地를 얻어 부인夫人합장合葬하였네.
公有하니 伯爲進士하야
은 네 아들을 두셨으니 맏아들은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여
丞於殿中이러니 與仲前死하다
전중승殿中丞을 지냈는데, 둘째 아들과 함께 보다 먼저 사망死亡하였네.
仲賜科名하고 叔也皆丞하야
둘째에게는 동진사同進士하사下賜하였고, 셋째와 넷째는 모두
將作殿中하야 或廢或興이라
장작將作전중殿中을 역임하여 벼슬에 나아갔다 물러났다 하였네.
有顯惟季 時丞衛尉라가
오직 막내 아들만이 현달顯達하여 한때 위위승衛尉丞을 지냈고,
今爲郞中하야 論序初終하고
지금은 낭중郎中으로 있으면서 이 태어나서부터 할 때까지의 행적을 기술記述하여,
實來求詩하야 刻示無窮하니라
이를 가져와서 신도비명神道碑銘을 청하고, 에 새겨 무궁토록 볼 수 있게 하였네.
역주
역주1 翰林侍讀學士知許州軍主事梅公神道碑 : 本文은 梅詢(964~1041)의 神道碑銘으로, 熙寧 元年(1068) 8월에 지은 것이다. 神道碑는 二品官 以上에게만 세우는 것이 허용되며, 文體上 碑誌類에 屬하는 문장이다.
역주2 行給事中 : ‘行’은 品階는 높으면서 낮은 職務를 담당했을 때[位高職卑]에 관직 앞에 붙이는 명칭이다. 이와 반대로 품계는 낮으면서 높은 직무를 담당하였을 때[位卑職高]에는 벼슬명칭 앞에 ‘守’를 덧붙인다.
역주3 食邑二千三百戶 食實封六百戶 : 食邑은 封地로서 受封者가 封地의 인민이 납부하는 조세를 享有할 수 있으나 後代에는 名譽만 누리는 虛封이 되었고, 食實封만을 受封者가 해당 봉지 조세수입의 3분의 1을 향유할 수 있었다.
역주4 樂安歐陽公 : 歐陽脩를 지칭한다. 구양수의 爵位가 樂安郡開國公이었으므로 이렇게 칭한 것이다.
역주5 梅伯 : 商나라 紂王 때의 제후이다. 성품이 충직하여 紂王에게 자주 간하니, 紂王이 노하여 그를 죽여서 젓담갔다고 한다.
역주6 有鋗有福 : 鋗은 漢 高祖를 도와 공을 세웠던 梅鋗을, 福은 西漢 末에 南昌尉를 지내다가 은둔하여 신선이 되었다고 전해지는 梅福을 지칭한다.
역주7 三世不仕 : 歐陽脩의 墓誌銘에 “公의 증조부 諱 超와 조부 諱 遠이 모두 벼슬하지 않았고, 부친 諱 邈은 형부시랑에 추증되었다.”라고 하였다.
역주8 試中書 : 宋나라 때 官制의 일종으로, 맡고 있는 실직이 官階보다 두 등급 이상 높은 것을 가리켜 ‘試’라고 칭한다. 中書는 中書舍人의 약칭이다.
역주9 挾日 : 十干을 날짜에 배당하여 甲에서부터 癸까지에 이르는 날수를 뜻하는 말로, 10일을 가리킨다.
역주10 四子 : ‘四’는 ‘五’로 바꾸어야 한다. 앞에 ‘公有五子’라 하고 다섯 아들의 名을 나열하였기 때문이다.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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