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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王安石(1)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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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臣某하노이다
乘衰攖厲 敢意浼聞이리잇가
軫舊垂矜하사 曲加寵數하사 卽馳近御하사 兼飭太醫하시며 錫以寶奩하사 實之珍劑하시니이다
創殘再肉하고 顚眴更蘇하야 沓被慈憐하니 不勝負荷로소이다
臣叨恩缺報하고 昧祿取災하니 果崇降以疾殃하야 至上煩於愍惻하니이다
此蓋伏遇皇帝陛下念厚하사 軒幄眷深이니 天弗籲而亦臨하고 雲甫瞻而旣雨로소이다
哀逾察父하야 感劇孤臣하니
論可報之涓埃 難知稱效 顧未塡之溝壑하니 徒誓糜捐이로소이다 撫涕汍瀾하고 捫心躑躅하노이다


14. 환관을 보내어 선지宣旨어의御醫를 파견하신데 감사하는
는 말씀을 올리나이다.
몸이 쇠약해 병에 걸렸으나 어찌 감히 이것이 황상皇上에게까지 보고될 줄이야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옛 신하를 애긍哀矜히 여기시어 곡진曲盡하게 은총을 베풀어 주시고, 즉시 근시近侍를 파견하시고 아울러 태의太醫에게까지 칙명勅命을 내리셔서 보배로운 상자에 귀중한 치료약을 넣어 하사하셨습니다.
상처로 이지러졌던 곳에는 새 살이 돋고, 혼미한 어지럼증에서도 깨어나도록 자애로우신 은혜를 거듭 입게 되니 감내할 수가 없습니다.
신은 은혜를 저버리고 보답을 하지 못하였으며, 봉록俸祿하다가 재앙을 입어서, 저 높은 하늘에서 질병의 앙화를 내리게 하여 황상께서 가련하고 측은하게 여기는 뜻을 번거롭게 함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대체로 황제폐하皇帝陛下께서 못난 신하臣下를 염려하심이 하셔서 보살펴 주심이 깊으셨으며, 하늘을 향해 호소하지도 않았는데도 또한 굽어 살펴주셨고, 구름을 향해 빌지도 않았는데 이미 비를 내려 주신 것입니다.
밝으신 어버이처럼 더욱 가련하게 여기시니 멀리 떨어져있는 외로운 신은 크게 감동하였습니다.
작은 보답이나마 하고자 하나 공효功效를 헤아리기가 어렵고, 돌이켜보건대 골짜기나 구렁텅이에 떨어져 죽지는 않았으니, 다만 이 목숨 다해 보답報答하기를 맹세하면서 줄줄 흐르는 눈물을 닦고 가슴을 어루만지며 배회徘徊하나이다.


역주
역주1 中使宣醫謝表 : 이 표는 宰相職에서 물러나 있을 때에 올린 것으로 보인다.
역주2 屨簪 : 신발과 비녀란 뜻으로, 여기서는 미천한 옛 신하, 곧 왕안석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다. 孔子가 길을 가다 어떤 부인이 우는 것을 보고 사연을 물었더니, 그 부인은 땔감으로 쓸 柴草를 베다가 시초로 만든 비녀[簪]를 잃었기 때문이라 했다. 다시 그게 왜 그리 슬프냐고 물었더니, 그 부인은 “비녀를 잃은 것이 슬픈 게 아니라 옛 물건을 잃은 게 슬픕니다.” 하고 대답했다. 또 楚나라 昭王이 전쟁을 하다가 후퇴할 때 신발[屨] 한 짝이 잃었는데, 30보쯤 갔다가 다시 돌아와 그 신발을 찾아 신으니, 신하들이 신발 한 짝을 왜 그리 아까워하냐고 물었다. 이에 소왕은 “초나라가 비록 가난하지만 신발 한 짝이 아까우랴. 군사들과 함께 후퇴하려는 것이다.” 하고 대답했다. 앞의 고사는 《韓詩外傳》에, 뒤의 고사는 《新書》 〈諭誠〉에 나온다. 땔감으로나 쓰는 재료로 만든 비녀와 후퇴하는 군사 한 사람도 소중하게 여겼던 이 두 고사를 ‘遺簪墜屨’라 하며, 옛 물건이나 옛 사람을 잊지 않는다는 뜻으로 사용한다.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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