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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王安石(2)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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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3. 병부원외랑을 지낸 마군의 묘지명
機圓이라
논리전개가 원만하다.
馬君諱遵이요 字仲塗 世家饒州之樂平하다
마군馬君이고, 중도仲塗이니, 대대代代요주饒州악평현樂平縣에 거주하였다.
擧進士하야 自禮部至於廷 書其等皆第一이라
진사시進士試에 응시하여 예부시禮部試로부터 정시廷試에 이르기까지 그의 등급이 모두 일등一等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守秘書省校書郞하고 知洪州之奉新縣이라가 移知康州하다
수 비서성 교서랑守秘書省校書郞홍주洪州 봉신현지사奉新縣知事로 있다가 지강주知康州로 옮겼다.
當是時하야 하고 欲有所爲하야 求才能之士하야 以察諸路할새 而君自大理寺丞으로 除太子中允 福建路轉運判官호되 以憂不赴하다
이때를 당하여 천자天子께서 대신大臣을 교체하고, 시행하고자 하는 바가 있으셔서, 재능이 있는 선비들을 찾아서 제로諸路를 살피도록 하였는데, 대리시승大理寺丞에서 태자중윤太子中允 복건로전운판관福建路轉運判官에 제수되었으나 상중喪中이었으므로 부임하지 않았다.
憂除 知開封縣하고 爲江淮荊湖兩浙制置發運判官하다
상기喪期를 마친 후 지개봉현사知開封縣事가 되고 강남동로江南東路, 강남서로江南西路, 회남로淮南路, 형호남로荊湖南路형호북로荊湖北路, 양절로兩浙路제치발운판관制置發運判官이 되었다.
於是 君爲太常博士러니 朝廷方尊寵其使事하야 以監六路라가 乃以君爲監察御史하고 又以爲殿中侍御史라가 遂爲副使하다
이에 태상박사太常博士가 되었는데, 조정朝廷에서 때마침 그가 맡은 일을 높여서 육로六路를 감독하게 하였다가, 이에 감찰어사監察御使로 삼았고 다시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로 삼았다가, 드디어 육로제치발운부사六路制置發運副使에 보임하였다.
已而 還之臺하야 以爲言事御史하니
그 후 어사대御史臺로 불러들여서 언사어사言事御史를 삼았다.
하야 則彈宰相之爲不法者하니 宰相用此罷하고 而君亦以此出知宣州러니 하다
부임해서는 재상宰相 가운데 불법을 자행한 자를 탄핵하니, 재상은 이 때문에 파직되었고, 또한 이 때문에 지선주知宣州로 나갔는데, 선주宣州에 부임한 지 하루 만에 경동로전운사京東路轉運使전임轉任되었다.
又還臺하야 爲右司諫 知諫院이라가 又爲尙書禮部員外郞 兼 同判流內銓하니 數言時政하야 多聽用하다
다시 어사대御史臺로 불러들여서 우사간右司諫 지간원知諫院으로 삼았다가 다시 상서예부원외랑尙書禮部員外郞시어사지잡사侍御史知雜事동판유내전同判流內銓으로 삼았는데, 시정時政에 대하여 자주 간언諫言을 올려 그 가운데 많은 부분이 받아들여져서 시행되었다.
始君讀書할새 卽以文辭辯麗 稱天下러니 及出仕하야 所至號爲辦治하고 論議條鬯하야 人反覆之而不能窮이러라
처음 이 글을 읽을 때에 지은 문사文辭가 논리적이고 아름다워서 천하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는데, 벼슬길에 진출해서는 이르는 곳마다 사리事理에 밝게 잘 다스렸다는 이름을 얻었으며, 논의論議조리條理통달通達하였으므로 사람들이 반복反復하여 반론反論을 제기한다 해도 그의 논지論旨를 무너뜨릴 수가 없었다.
平居頹然하야 若與人無所諧로되 及遇事有所建이면 則必得其所守하니라
평소에는 공순恭順하여 보통 사람들과 다른 바가 없었으나, 일을 만나서 처리할 원칙을 세우게 되면 반드시 굳게 지킬 기준을 마련하였다.
開封常以權豪請託不可治러니 客至有所請이면 君輒善遇之하야 無所拒호되 客退어든 視其事하면 一斷以法하다
개봉현開封縣은 언제나 권호權豪들의 청탁 때문에 제대로 다스릴 수가 없었던 곳인데, 이 찾아와서 청탁을 하게 되면 은 곧 그를 잘 예우해주면서 거절하는 바가 없었으나, 객이 물러간 후에 그가 처리하는 일을 보면 한결같이 대로 결단을 내렸다.
居久之 人知君之不可以私屬也하야 縣遂無事하다
이렇게 오래 지내게 되니, 사람들이 에게는 사사로이 청탁을 해봐야 소용이 없음을 알게 되었고, 이 드디어 아무 탈이 없이 편안하였다.
及爲諫官御史 又能如此하니 於是 士大夫歎曰 馬君之智 蓋能時其柔剛以有爲也라하더라
그가 간관어사諫官御史가 되어서도 이와 같았으므로, 이에 사대부士大夫들이 탄복하기를 “마군馬君의 지혜는 그 강함과 부드러움을 시의적절時宜適切하게 조화시켜서 업적을 이룰 수 있었도다.” 하였다.
嘉祐二年 君以疾求罷職以出 至五六이라 乃以爲尙書吏部員外郞 直龍圖閣하고 猶不許其出이러니 某月某甲子 君卒하니 年四十七이라
가우嘉祐 2년에 은 질병을 이유로 중앙의 관직에서 물러나 외관外官으로 나가게 해달라고 5, 6차례나 청하였으나, 상서이부원외랑尙書吏部員外郞 직용도각直龍圖閣을 제수하고 외관으로 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모월某月 모갑자일某甲子日하니 향년享年이 47세였다.
天子以其子某官某爲某官하고 又官其兄子持國某官하다
천자天子께서는 그의 아들 모관某官으로 있는 모관某官에 임명하고, 또 그 의 아들 지국持國에게 모관某官의 벼슬을 내렸다.
夫人某縣君鄭氏 以某年某月某甲子 葬君信州之弋陽縣歸仁鄕裏沙之原하다
부인夫人모현군某縣君 정씨鄭氏이며, 모년某年 모월某月 모갑자일某甲子日신주信州익양현弋陽縣 귀인향歸仁鄕 이사里沙의 언덕에 안장安葬하였다.
君故與予善하니 予常愛其智略하야 以爲今士大夫多不能如하야 惜其不得盡用하고 亦其不幸早世하야 不終於貴富也로라
은 과거에 나와 친밀하게 지내었는데, 나는 늘 그의 지략을 사랑하여, 지금의 사대부들은 대부분 그만 못하다고 여겼고, 그가 능력을 다 발휘할 수 있는 자리에 쓰이지 못하고 또 불행하게도 일찍 세상을 떠나 부귀를 다 마치지 못한 것을 애석하게 여겼다.
然世方懲尙賢任智之弊하야 而操成法以一天下之士하니 則君雖壽考하고 且終於貴富라도 其所畜 亦豈能盡用哉리오
그러나 이 시대가 바야흐로 어진 사람을 높이거나 재능 있는 사람에게 일을 맡기기를 꺼리는 폐단이 있고, 성법成法을 가지고 천하의 들을 동일하게 만들었으니, 이 비록 오래 살고 또 부귀하게 되어 생을 마쳤다 한들, 이런 시대에 그가 축적한 큰 뜻을 어찌 다 발휘할 수가 있었겠는가.
嗚呼
아아!
可悲也已로다
이를 슬퍼할 뿐이로다.
旣葬 夫人與其家人謀하야 而使持國來以請曰 願有紀也하야 使君爲死而不朽라커늘 乃爲之論次하고
장례를 마친 후 부인夫人과 그 집안사람들이 상의하여, 지국持國을 시켜 내게 와서 청하기를 “묘지명墓誌銘을 지어서, 께서 사거死去하셨지만 그 이 영원히 남아 있게 해주시기를 원합니다.” 하기에, 이에 그를 위해 업적을 차례로 하고 이어서 아래와 같이 를 지었다.
歸以才能兮
재능을 품은 채로 돌아갔음이여!
又予以時로다
한때 이 세상에 휴가 얻어 내려왔던 것이로다.
投之遠塗兮
먼 길에 올랐음이여!
使驟而馳로다
말을 내달리게 하였도다.
前無御者兮
앞에 말 모는 이 없음이여!
後有推之로다
뒤에는 밀어주는 이 있도다.
不駕兮
홀연히 떠나서 돌아오지 않음이여!
其然奚爲哀리오
그렇게 되었음을 슬퍼한들 어이하랴.
哀煢婦兮
홀로 된 여인 슬퍼함이여!
孰慰其思
누가 그 마음 위로해주랴.
墓門有石兮
무덤 입구에 비석 세움이여!
書以余辭로다
내가 지은 를 기록하였도다.
역주
역주1 兵部員外郞馬君墓誌銘 : 本 墓誌銘은 王安石이 提點江東刑獄으로 있던 嘉祐 2년(1057)에서 4년 사이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역주2 天子更置大臣 : 仁宗이 范仲淹의 變法을 위한 건의를 받아들여, 宰相 呂夷簡을 罷職하고 賈昌朝와 范仲淹을 參知政事에 임명하고, 夏竦을 樞密使로, 富弼‧韓琦‧杜衍 등을 樞密副使로 임명한 것을 말한다.
역주3 至宣州一日 移京東路轉運使 : 魏泰가 지은 《臨漢隱居詩話》에 “馬遵이 宣州太守에서 물러나니 郡僚와 軍民이 모두 아쉬워하며 보내주려 하지 않았다.[馬遵謫守宣州 及其去也 郡僚軍民爭欲駐留]” 한 것으로 보아, 부임한 지 하루 만에 떠나는 사람을 그렇게 아쉬워할 리가 없으므로 믿을 수가 없다.
역주4 侍御史知雜事 : 知雜侍御史를 지칭하는 것으로, 御史臺에서 御史中丞의 업무처리를 보좌하는 職任이다.
역주5 繫之以辭曰 : ‘繫……曰’은 辭賦의 末尾에 全文을 結束 總括할 때에 쓰는 형식으로 ‘亂曰’, 또는 ‘結曰’이라고 쓰기도 한다.
역주6 : 탈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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