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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王安石(2)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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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7. 임천 오자선의 묘지명
輾轉嗚咽이라
엎치락뒤치락 잠을 이루지 못하며 흐느끼게 한다.
臨川吳氏有子興宗하니 字子善이라
임천臨川 오씨吳氏 집안에 흥종興宗이라는 아들이 있었으니, 자선子善이다.
年二十喪母하고 而其父以生事付之하니 則先日出以作하야 後日入以息하며 日午矣 家一人未飯이면 其夫婦必尙空腹하고 天寒矣 其[家]一人未纊이면 其夫婦必尙單衣하니
나이 20에 모친상母親喪을 당한 후 부친이 집안의 생계를 그에게 맡기니 해뜨기 전에 일어나고 해가 진 뒤에 쉬며, 한낮이 되도록 집안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밥을 먹지 않은 사람이 있으면 부부가 그때까지 반드시 공복空腹으로 지냈고, 날씨가 추워졌는데도 집안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솜옷을 입지 못한 사람이 있으면 그 부부는 그때까지 반드시 홑옷을 입고 지냈다.
蓋如此者 二十年而終하고 三十年而已死하다
이와 같이 한 지 20년 만에 부친이 사망하고, 30년 만에 자신도 사망하였다.
凡嫁五妹하고 辦數喪하며 又以其筋力之餘 及於鄕黨하다
그 사이에 다섯 누이를 시집보내고 여러 차례 상례喪禮를 치렀으며, 또한 부지런히 일하고 남은 여가에 고장 사람들을 돌보기도 하였다.
苟有故 必我勞人佚하야 先往後歸하고
큰 일을 치르게 되면 반드시 내가 수고해서 남을 편안하게 해주고, 남보다 먼저 가서 남보다 늦게 돌아왔다.
而尤篤於友愛하여 見弟有過 則顔色愈溫하야 須飮酒歡極之間 乃微示以意하고
더욱이 우애가 독실하여 아우의 잘못을 보게 되면 낯빛을 더욱 온화하게 하고 함께 술을 마셔서 즐거움이 극에 달했을 때에 이르러서야 넌지시 뜻을 드러내고,
旣而卽泣下曰 吾親屬我以汝하시니 吾所以不避艱險者 保汝而已라하니
이윽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우리 아버님께서 너를 나에게 맡기셨으니, 내가 간난艱難험난險難을 피하지 않은 것은 너를 보호하고자 해서일 뿐이었다.” 하니,
其弟終感悟悔改하야 爲善士하고 以文學名於世하다
그 아우가 끝내는 감동하고 깨달아서 회개하여 착한 선비가 되고 문학文學으로 세상에 이름이 나게 되었다.
此待其弟乃爾 若於他人 則絶口不涉其非 然里中少年 聞其謦欬之音이면 往往逃匿하고 若匿不及이면 則俛首恐愧러라
이런 일은 그 아우를 대할 때에만 했을 뿐이고, 타인他人을 대할 때에는 입을 함봉하고 그의 잘못에 간섭하지 않았으나, 마을의 젊은이들이 그의 기침소리만 들어도 왕왕 달아나 숨어버렸고, 숨을 수가 없게 되면 머리를 숙이고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하였다.
而嘗有所絓하야 一至訟庭하야 及着械 同絓數十人 爲之皆哭하니
어느 날 관가官家에 잡혀가서 재판정에 이르러 차꼬를 차게 되니, 같이 차꼬를 차고 있던 사람 수십 명이 모두 그가 차꼬를 차는 것을 보고 울기 시작하였다.
掌獄者驚起하야 白守한대 守立免焉하니 其見畏愛多此類러라
옥리가 놀라 일어나서 이를 태수에게 보고하자, 태수가 즉시 그를 방면하니, 그가 사람들의 외경畏敬과 사랑을 받았으므로 이런 의 일이 많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某謂其父爲諸舅하니 甚知其所爲
내게는 그의 부친이 외숙이 되므로 그가 한 일을 소상하게 알고 있었다.
故於其弟子經孝宗之求誌以葬也 爲道而不辭하노라
그 때문에 그 아우 자경子經 효종孝宗묘지명墓誌銘을 지어서 부장附葬할 수 있도록 해주기를 청하자, 묘지명 짓기를 사양하지 않은 것이다.
子善 嘗應進士擧라가 後專於耕養하고 遂不復應하니라
자선子善은 전에 진사시進士試에 응시한 일이 있었으나, 그 후에는 농업과 가족 부양에 전심하면서 다시는 응시하지 않았다.
其死以治平四年八月九日이요 而十二月十五日 與其母黃氏 共葬於靈源村父墓之域中하다
그가 사망한 것이 치평治平 4년(1067) 8월 9일이고, 12월 15일에 그의 모친母親 황씨黃氏와 함께 영원촌靈源村에 있는 부친의 묘역에 안장安葬하였다.
父諱偃이니 亦有行義 用疾弗仕하다
부친의 으로, 또한 절의節義고수固守하며 병을 이유로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祖諱表微 尙書屯田員外郞이요 曾祖諱英이니 殿中丞이라
조부의 표미表微로, 상서둔전원외랑尙書屯田員外郞을 지냈으며, 증조曾祖으로 전중승殿中丞을 지냈다.
初妻姓王氏 一男良弼 皆前卒하고 再娶楊氏 生蕘适枉하니 蕘始九歲 而四女 幼者一歲云이라
초취初娶왕씨王氏로 아들 양필良弼 한 사람을 낳았으나 모두 먼저 사망하였고, 재취再娶양씨楊氏을 낳았는데, 가 겨우 9세이고, 딸이 넷인데 어린 딸은 이제 겨우 한 살이다.
역주
역주1 臨川吳子善墓誌銘 : 墓誌銘이라 하였으나, 말미에 韻文으로 된 銘을 붙이지 않은 特異한 형식이다.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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