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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王安石(2)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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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6. 파양 이부인의 묘표
用蜻蜓點水法이라
잠자리가 날면서 꼬리로 물을 살짝 쳐서 잔잔한 물결이 이는 것과 같은 수법手法으로 지었다.
鄱陽處士 贈大理評事 黃君諱某之妻 今太常博士巽之母也
파양鄱陽처사處士대리평사大理評事추증追贈되었던 황군黃君 의 아내로서 태평현군太平縣君 파양鄱陽 이씨李氏는 현재 태상박사太常博士로 있는 모친母親이다.
年若干 以嘉祐五年十一月乙酉終하고 而以後年十一月丙子 從其夫葬鄱陽長順里之西原하다
연세가 모세某歲일 때인 가우嘉祐 5년 11월 을유일乙酉日을 마쳤고, 이듬해 11월 병자일丙子日부군夫君을 따라 파양鄱陽 장순리長順里의 서쪽 언덕에 안장安葬하였다.
葬若干年 而太君之子所與游者 臨川王某 表其墓曰
하장下葬한 뒤 몇 해가 지나서 태평현군太平縣君의 아드님과 교유하였던 임천臨川 왕모王某가 그분의 무덤 위에 세울 묘표墓表를 다음과 같이 지었다.
太君之爲女子 以善事父母 聞於鄕里러니
태군太君은 처녀시절에 부모를 잘 섬겨서 향리鄕里에 소문이 났었다.
及嫁하야 移所以事父於舅하야 而致其禮有加焉하고 凡在舅黨者 無不禮也하며
출가出嫁를 하자 친정 아버님을 섬겼던 방법 그대로 시아버님을 섬기면서 그 를 더욱 극진히 하였고, 시아버님의 친족들에게도 를 다하지 않음이 없었다.
移所以事母於姑하야 而致其愛無損焉하고 凡在姑黨者 無不愛也하다
친정 어머님을 섬겼던 방법 그대로 시어머님을 섬기면서 그 애모愛慕를 극진히 하여 손색이 없게 하였고, 시어머님의 친족들에게도 애모愛慕하지 않음이 없었다.
相其夫以正而順하고 誨其子以義而慈하니라
그 남편을 바르게 도우면서 순종順從하였고, 그 자식들을 의리義理에 맞게 가르치면서 자애慈愛로웠다.
處士君嘗娶而有子矣러니 蓋視遇之無異於己子하다
시아버님이신 처사군處士君이 일찍이 장가를 들어 자식이 있었는데, 그들을 보살피고 대우하기를 자기의 아들과 다름이 없게 하였다.
其後太君之子 以進士起하야 爲聞人하니 而州之士大夫皆曰 是母非獨能敎 亦其爲善也하니 宜有子로다하니라
그 후 태군太君의 아들이 진사시進士試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가 사람들에게 알려지니, 고을의 사대부士大夫들이 모두 말하기를 “이 사람의 모부인母夫人께서 다만 잘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또한 착한 일을 하였으니, 그런 아들을 둠이 마땅하다.” 하였다.
其子爲尉於宣州之太平하고 又參虔州錄事 皆欲迎太君以往한대 太君曰 吾助汝父享祠春秋於此 義終不得獨往이라하다
처음 그 아드님이 선주宣州태평현위太平縣尉가 되었다가 다시 건주虔州녹사참군錄事參軍이 되었을 때에 번번이 태군太君을 모시고 가려 하였는데, 태군太君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너의 아버님이 이곳에서 춘추春秋선대先代 제사祭祀를 지내는 것을 도와야 하니, 의리상 끝까지 홀로 따라갈 수가 없다.” 하였다.
及爲南劒州順昌縣令이라가 知洪州新建縣事 而處士君已不幸이라
남검주南劍州 순창현령順昌縣令이 되었다가 홍주洪州 신건현新建縣지사知事가 되었을 때에는, 처사군處士君께서 불행히도 이미 서거逝去하셨는데,
乃曰 吾老矣 今而後 可以從子라하니 故其終 在新建其子之官寢하니라
그제야 말씀하시기를 “내가 늙었으니, 이제는 자식을 따라갈 수가 있겠다.” 하였으니, 그 때문에 신건현新建縣의 그 아드님 관사官舍에서 생을 마치게 된 것이다.
太君生一男二女하니 男卽博士 女皆已嫁로되 其幼蚤卒하고 其長者 少喪其配하고 事姑以孝聞而不嫁하니
태군太君께서는 1 2를 낳았는데, 아들은 박사博士이고, 딸은 이미 모두 출가出嫁하였으나,막내 딸은 일찍 사망하였고, 맏딸은 젊어서 남편을 잃고 시어머님을 효성으로 섬긴다고 소문이 났으며, 수절守節하고 개가改嫁를 하지 않았다.
州之士大夫又皆曰 是母能敎 非獨施於其一男而已 蓋其女子亦母之力也라하니 嗚呼
이에 고을의 사대부士大夫들이 모두 말하기를 “이 어머님께서 잘 가르치는 일을 다만 그 한 아들에게 행하는 데 그쳤을 뿐만 아니라 그 딸의 처신이 훌륭한 것도 어머님이 잘 가르치신 덕이다.” 하였으니, 아아!
豈不賢哉
어찌 현숙賢淑하셨다 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역주
역주1 鄱陽李夫人墓表 : 本 墓表의 墓主 李夫人의 아들 黃巽은 王安石 및 曾鞏과 少時부터의 親友였으며, 嘉祐 5년(1060)에 李夫人을 下葬한 뒤 몇 해가 지나서 黃巽의 請을 받고 지었다 하였는데, 表文을 지은 정확한 연대는 考究할 수가 없다.
역주2 太平縣君鄱陽李氏者 : 太平縣君은 아들의 관계에 맞추어 冊封받았던 李氏의 封號이다. 太常博士인 아들이 과거 太平縣尉를 역임하였으므로 太平縣君으로 책봉받은 것이다.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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