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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王安石(2)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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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2. 학사 정원진의 제문
情之痛而吐辭之激昻이라
마음이 애통哀痛하여 격앙激昻한 말을 토해내었다.
我初閉門하고 屈首書詩라가
나는 어렸을 때에 문을 닫고 《시경詩經》과 《서경書經》을 부지런히 공부하였고,
一出涉世 茫無所知러니
과거에 합격하여 벼슬 세계에 나아가자, 아득할 뿐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는데,
援挈覆護하야 免於阽危하고
이끌어주고 보호해주어서, 위태로움을 벗어나게 해주었고,
雝培浸灌하야 使有華滋
정원사가 북돋아주고 물을 대주듯이 보살펴서, 관운官運이 통달하게 해주었네.
微吾元珍이런들 我始弗殖이어늘
나에게 원진元珍 학사學士가 없었다면, 나는 아마도 발전할 수가 없었을 것인데,
如何棄我하고 隕命一昔
어이하여 나를 버리고 하룻밤을 앓다가 급작스럽게 운명하였는가?
以忠出恕하고 以信行仁이어늘
진정으로 사람들을 관용하였고, 신의信義로써 인애仁愛를 실천하였거늘,
至於白首하야 困厄窮屯이라
머리가 희어진 노경老境에 이르러, 곤액困厄간난艱難을 겪었네.
又從擠之하야 使以躓死하니
거듭 연이어 배척을 받아, 벼슬살이가 험난하여 사망하게 되었네.
豈伊人尤리오 天實爲此
이것이 어찌 사람의 탓이겠는가, 천운天運이 실로 그래서였으리라.
有槃彼石하니 可誌於丘
큼직한 저 비석이 있으니, 무덤에 묘명墓銘을 기록해놓을 만하도다.
雖不屬我라도 我其徂求리라
나에게 묘명墓銘을 부탁하지 않더라도, 내 스스로 찾아가 요청했으리.
請著君德하야 銘之九幽하노라
이에 덕행德行을 기록하여, 묘혈墓穴에 새겨 넣고자 하노라.
以馳我哀하니 不在醪羞
이로써 나의 슬픔을 표현할 뿐, 술과 음식은 올리지 못하였노라.
역주
역주1 祭丁元珍學士文 : 丁寶臣(字 元珍, 1010~1067)은 그의 兄 宗臣과 함께 文名을 떨쳐서, 당시 사람들이 ‘二丁’이라 칭하였으며, 王安石이 官界에서 그의 도움을 많이 받았으므로 그의 墓誌銘을 지었고, 丁寶臣이 卒한 治平 4년(1067)에 이 祭文을 지어 致奠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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