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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王安石(2)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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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3. 우부낭중 증위위경을 지낸 이공의 신도비
中多節奏
문장 중에 주기적으로 되풀이되는 박자가 많다.
嘉祐八年六月某甲子 制曰 朕初卽位하야 大賚群臣陞朝者及其父母하니
가우嘉祐 8년(1063) 6월 모일某日황상皇上께서 제서制書를 내리시기를 “이 처음 즉위하면서 여러 신하들로 조정에 오른 자 및 그 부모에게 크게 상을 내렸는데,
某父具官某 率德蹈義하야 不躬榮祿호되 能敎厥子하야 竝爲才臣이어늘
모관某官 (李寬 형제兄弟)의 부친인 모관某官 (李虛舟)는 의리義理를 준수하여, 자신은 영록榮祿이 없는데도 그 자식들을 잘 가르쳐서, 모두 재능才能 있는 신하가 되게 하였다.
加賜名命하야 序諸卿位 所以勸天下之爲人父者 豈特以慰孝子之心哉
이에 관명官名을 더해주어서 의 지위에 배열排列한 것은 천하天下의 아비된 자들을 권면勸勉하기 위한 것이니, 어찌 다만 이로써 효자의 마음을 위로하려는 것일 뿐이겠는가.
可特贈衛尉卿하노라
그러니 특별히 위위경衛尉卿증직贈職함이 옳다.”라고 하셨다.
翌日某甲子 中書下其書告第하고 又副其書賜寬等하야 以待墓焚하니 寬等受書하고 焚其副墓上하다
이튿날인 모일某日중서성中書省에서 그 제서制書를 내려 그의 집에 고유告諭하고, 또 그 제서制書부본副本이관李寬 형제兄弟에게 하사下賜하여 이를 선친의 묘소墓所에 태워 올리도록 하니, 이관 등이 그 제서를 받고 부본을 묘소가에 태워 올리면서 고유제告由祭를 지냈다.
乃撰次衛尉官世行治始卒하야 來請曰 先人賴天子慶施하야 賜之官三品矣로되 而墓碑未刻하니
이에 위위경衛尉卿세계世系행적行蹟치적治績시말始末을 차례로 엮어 가지고 나를 찾아와서 청하기를 “선친先親께서는 천자天子께서 경사스럽게 베풀어주시는 은혜를 입어서 삼품三品관등官等을 하사받으셨는데도 아직 이를 묘비에 새겨놓지 못하였습니다.
惟德善可以有辭於後世者 夫子實聞知리라커늘 某曰 然하다
오직 덕행德行완미完美하게 갖춘 사람이라야 이를 문사文辭로 지어서 후세에 남길 수 있음은 선생께서 실로 듣고 아시는 일일 것입니다.”라고 하기에, 내가 말하기를 “그렇지요.
衛尉公墓隧 宜得銘久矣라하고 於是爲序而銘焉하노라
위위공衛尉公묘도墓道에는 오래 전에 비명碑銘을 새겨 세워드렸어야 마땅하지요.” 하고, 이에 를 쓰고 을 짓게 되었다.
序曰
서문序文은 다음과 같다.
公姓李氏 故隴西人이라
이씨李氏이니 옛 농서인隴西人이었다.
七世祖諱某 始遷於光山하고
7세조世祖이신 (昌)께서 처음으로 광산光山으로 옮기셨다.
五世祖諱某 以其郡人王閩할새 從之하야 始爲建安人하니라
5세조世祖 (盈)께서는 그 사람(王審知)이 땅에서 을 자칭하자 그를 따라서 비로소 건안인建安人이 되었다.
曾祖諱某 〈祖諱某〉 皆不仕하다
증조부曾祖父 (琯)와 조부祖父 (詢)께서는 모두 벼슬을 하지 않으셨다.
考諱某 嘗仕江南李氏하야 稍顯矣러니 江南國除 又擧進士中等하야 以殿中丞致仕하다 有學行하야 名能知人하야 贈其父大理評事하고 而己亦以子貴 贈至吏部尙書하다
부친 (夤)께서는 일찍이 강남江南이씨李氏가 세웠던 남당南唐에서 벼슬을 하셔서 조금 현달하였는데, 남당이 망한 후 진사시進士試에 응시하여 중등中等으로 급제하여 전중승殿中丞으로 치사致仕하셨는데, 학문學問행실行實로 이름이 사람들에게 알려져서 그 부친께서 대리평사大理評事추증追贈되었고, 자신自身도 아들의 귀함으로 인해 이부상서吏部尙書증직贈職됨에 이르렀다.
遊豫章이라가 樂其湖山하야 曰吾必終於此호리라하고 於是又始爲豫章人하다
예장豫章 땅을 유람하다가 그곳 산수山水를 좋아하여 “내가 반드시 여기서 살다 죽겠다.” 하고 그곳에서 살았으므로, 이에 비로소 예장인豫章人이 되었다.
尙書之子 伯曰虛己 官至尙書工部侍郞하야 以材能聞天下하고 其季則公也
이부상서吏部尙書의 아들로는 맏아드님을 허기虛己라 하는데, 벼슬이 상서공부시랑尙書工部侍郞에 이르렀고 재능才能으로 천하에 소문이 났으며, 그 막내 아드님이 곧 이시다.
公諱某 字公濟
(虛舟)이고 공제公濟이다.
少篤學하야 讀書 兼晝夜不息이러니
어려서부터 독실篤實하게 학문을 닦아서, 글을 읽게 되면 밤낮을 쉬지 않았다.
一以進士擧하야 不中이어늘 卽以爲郊社齋郞하고 再選福州閩淸洪州靖安縣尉하야 有能名하다
한 번 진사시進士試를 보았지만 급제하지 못하자, 곧 형의 음조蔭助교사재랑郊社齋郞이 되었으며, 다시 복주福州민청현閩淸縣홍주洪州정안현靖安縣 현위縣尉에 선임되어, 유능有能하다고 이름이 났다.
遷饒州餘干縣令하여 至於毁하고 取其材하야 以爲孔子廟하고 率縣人之秀者하야 興於學하니 豪宗大姓 斂手不敢犯法이라
요주饒州 여간현령餘干縣令으로 전임되어, 부임하자 즉시 음사淫祠를 헐어버리고 그 재목을 취하여 이로써 공자孔子사당祠堂을 세우고, 현인縣人 가운데 준수한 사람을 이끌고 학교學校를 일으키니, 세력勢力 있는 집안의 대족大族들도 지금까지 행했던 못된 짓에서 손을 떼고 감히 법을 범하지 못하였다.
州將部使者奏하야 乞與京官이어나 移之劇縣호되 不報러니 而坐不覺獄卒殺人以免하다
주장州將전운사轉運使상주上奏하여 경관京官에 임명하거나 더 큰 으로 옮기도록 청하였으나, 비답批答이 없었는데 옥졸獄卒살인殺人을 한 것을 발각하지 못한 일에 연좌되어 면직되었다.
當是時하야 侍郞方以分司就第하니 公曰 吾兄老矣 我得朝夕從之游하야 以灑掃先人廬冡이니 尙何求而仕리오하고 遂止하야 不復言仕하다
이때를 당하여 형님인 시랑侍郞께서 때마침 분사分司에 임명되어 집으로 돌아오니, 공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형님이 늙으셨는데, 내가 아침저녁으로 형님을 따라 놀아 선친의 묘소를 쓸고 닦을 수 있게 되었으니, 오히려 무엇을 원하여 벼슬을 하겠는가?” 하시고 드디어 물러나서 다시는 벼슬하겠다는 말씀을 하신 일이 없었다.
侍郞之卒也 天子以公試秘書省校書郞하고 知江州德安縣事호되 辭不就하다
시랑侍郞하시자 천자天子께서 비서성교서랑秘書省校書郞강주江州덕안현지사德安縣知事로 부르셨으나, 사양하고 취임하지 않았다.
後嘗一至京師하니 大臣交口勸說하야 欲官之호되 終以其不可强也어늘 而晏元獻公爲公請하야 乃除太子洗馬致仕하다
그 후 한 번 서울에 간 일이 있었는데, 대신大臣들이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권하고 설득하여 벼슬을 시키고자 하였으나, 끝내 강요할 수가 없자 안원헌공晏元獻公(晏殊)이 을 위해 요청하여 태자세마太子洗馬에 제수되었다가 치사致仕하였다.
尙書未老하야 棄其官以歸러니 至侍郞及公之退也 亦皆未老
과거에 상서尙書(公의 부친父親)께서 퇴로退老하실 연세가 아닌데도 벼슬을 버리고 귀향歸鄕하셨는데, 시랑侍郞(公의 허기虛己)과 이 물러날 때에도 모두 퇴로할 연세가 아니었다.
自尙書至公 再世皆有子하야 而皆以嚴治其家如吏治하니 江西士大夫慕其世德하고 稱其家法하니라
상서尙書로부터 에 이르기까지 두 동안 모두 훌륭한 아들을 두어서, 모두 그 가정을 엄하게 다스리기를 마치 관리를 다스리듯이 하니, 강서江西 지방의 사대부士大夫들이 대대로 전해오는 덕행德行연모戀慕하고 그 가법家法을 찬양하였다.
蓋近世士多外自藩飾爲聲名이나 而內實罕能治其家 及老하얀 往往顧利冒恥하야 不知休息이어늘 公獨父子兄弟能如此하니 嗚呼
대체로 근세近世들 가운데 밖으로 자신을 보기좋게 꾸며서 명성名聲을 드날리는 사람은 많으나, 안으로 그 집안을 잘 다스리는 사람은 실로 드물며, 늙게 되면 왕왕 이익을 도모하고 염치를 무릅쓰고 행하면서 물러나 쉴 줄을 알지 못하는데, 부자父子형제兄弟만이 유독 이와 같았으니, 아아!
其可謂賢於人也已로다
보통사람들보다 현철賢哲하신 분들이라 이를 만하도다.
公事親孝하야 比遭大喪 廬墓六年然後已하고 事兄與其寡姊 衣食藥物 必躬親之러니
은 부모님을 효성孝誠으로 섬겨서, 대상大喪을 당하자 6년 동안 여묘廬墓살이를 한 후에야 그쳤고, 형님과 홀로 된 누님을 모실 때에도 의복과 음식과 약물藥物의 수발을 반드시 직접 하셨다.
及公老矣 二子就養 如公之爲子弟也하니라
노경老頃에 이르자 두 아드님이 봉양하기를 이 자제 노릇하며 봉양할 때와 같이 하였다.
嘗爲江浙等路提點鑄錢坑冶하고 又嘗提點江南西路刑獄하다
아드님 은 일찍이 강동江東절강浙江 등로等路제점주전갱야提點鑄錢坑冶를 역임하였고, 또 제점강남서로형옥提點江南西路刑獄을 지냈다.
亦再爲洪州官하야 不去左右者十二年이요 皆以才能爲世聞人이라
둘째 아드님 홍주洪州에서 두 차례 벼슬을 하면서 의 곁을 떠나지 않은 것이 12년이었으며, 형제가 모두 재능才能이 있다고 세상에 이름이 알려졌다.
以恩遷公하야 官至尙書虞部郞中하고 階至朝奉郞하고 勳至護軍이러니
황은皇恩을 입어 은 승진되어 벼슬이 상서우부낭중尙書虞部郎中에, 관질官秩조봉랑朝奉郞에, 훈급勳級호군護軍에 이르렀다.
以嘉祐四年七月某甲子 卒於豫章之第室하니 年八十九러라
가우嘉祐 4년 7월 모일某日예장豫章의 저택에서 하시니, 향년享年이 89세였다.
夫人 長壽縣君趙氏 先公卒八年하야 旣葬矣러니
부인夫人장수현군長壽縣君 조씨趙氏이니 보다 8년 앞서 하셔서 이미 장례를 모셨다.
五年某月某甲子 以公葬於夫人之墓左하니 曰雷岡이라 在新建縣之桃花鄕新里하다
가우嘉祐 5년 모월某月 모일某日부인夫人묘소墓所 왼쪽에 합장하니, 지명地名뇌강雷岡이라 하는데, 그 위치가 신건현新建縣도화향桃花鄕 신리新里이다.
夫人 故衢州人이니 某官湘之女
부인夫人은 옛 구주인衢州人으로 모관某官을 지낸 조상趙湘의 따님이다.
湘有文行하고 尙書與爲友 故爲公娶其女하니라
조상趙湘문장文章덕행德行으로 이름이 났고, 의 아버님 상서공尙書公과 친구였으므로 이 그 따님과 혼인을 하게 된 것이다.
子三人이니 寬定實이라
아들이 셋이었으니, 이다.
守秘書省正字라가 早世하다
수비서성정자守秘書省正字로 있다가 일찍 사망하였다.
於公之葬也 爲尙書司勳員外郞이요 爲尙書庫部員外郞이며
의 장례를 지낼 때에 의 벼슬은 상서사훈원외랑尙書司勳員外郞이었고, 상서고부원외랑尙書庫部員外郞이었다.
女子二人 已嫁하다
따님 둘은 이미 모두 출가하였다.
孫二十有一人이요 曾孫十有五人이니 皆率公敎無違者하니라
손자孫子가 21이고 증손曾孫이 15이니, 이들이 모두 의 교훈을 잘 따라서 어기지 않고 있다.
公旣葬 而二子以恩贈公衛尉卿云이라
의 장례를 치른 후에 두 아들의 관직官職에 맞추어 에게 황은皇恩을 내려서 위위경衛尉卿추증追贈하였다.
銘曰
명문銘文은 다음과 같다.
李世大家 隴西其先이라
이씨李氏대대代代대가大家이니, 농서隴西가 그 선조先祖관향貫鄕이었네.
於唐之季 再世光山이라가
나라 말년末年부터 두 광산光山에 살다가,
移遯於閩하니 嶺海之間이라
땅으로 옮겨 은둔隱遁하였으니, 산과 바다의 사이였네.
乃生尙書하니 節行有偉
이곳에서 상서공尙書公이 태어나셨는데 절의節義덕행德行이 탁월하셨고,
始來江南하야 考室章水하니
비로소 강남江南으로 옮겨 오셔서, 장수章水에 집을 짓고 사셨네.
繩繩二子 隱顯兼榮이라
가통家統을 이은 두 아드님은, 물러나 있을 때나 현달했을 때나 모두 영예로웠네.
孰多厚祿
누가 후손의 祿이 많다 하는가?
其季維卿이라
그 막내 아드님이 이 되셨네.
幼壯躬孝하고 唯君之踐이니
어릴 때나 장년이 되어서나 몸소 를 실천하셨고, 오직 군왕을 위해 진력하셨으니
能不盡用하야 止於一縣이라
능력을 다 활용하지 못하고 한 을 다스리는 데 그치셨네.
退以德義하야 釐身於家하니
물러나서는 의리義理를 닦아, 집안에서 몸을 수양修養하시며,
外內肅雝하야 人不疵嗟
안에서나 밖에서나 엄숙히 덕을 닦아, 사람들이 허물을 들추어낼 수가 없었네.
亦有二子하야 維天子使하니
또한 두 아들이 있어서 천자天子使가 되자,
父曰往矣하야 致而臣身이라하고
아버님께서는 “떠나가서 신하臣下의 도리를 극진히 하여라!” 하시고,
子曰歸哉인저
아드님께서는 “돌아가리라.
以寧吾親이라하니라
가서 부모님께 혼정신성昏定晨省하리라.” 하였네.
以率其婦하고 左右恂恂하야
이에 그 아내를 거느리고, 온공溫恭하게 부모를 곁에서 모시어,
以官就侍 天子之仁이라
벼슬을 하면서도 곁에서 모실 수 있었던 것은 천자天子인덕仁德일세.
旣具祉福하야 考終大耄하니
이미 오복五福을 갖추어, 장수長壽하시고 고종명考終命하시니,
追榮于幽하야 乃賜卿號
돌아가신 이후에 영작榮爵추증追贈하여, 이에 의 칭호를 내려주셨네.
伐石西山하야 作爲하고
서산西山의 돌을 다듬어 묘비墓碑를 만들고,
營之墓上하야 勒此銘詩
묘소墓所에 세우고서 이 명시銘詩를 새겨놓았네.
역주
역주1 虞部郎中贈衛尉卿李公神道碑 : 本 碑主 李虛舟(971~1059)는 兄의 벼슬을 근거로 蔭職으로 出仕하여 虞部郎中에 이르렀던 인물이다.
역주2 具官 : 본래 관리의 인원수를 채워 갖춘다는 뜻인데, 唐宋 이후로 문장을 지을 때 구체적인 직명을 생략하고 단지 具官이라고 쓰는 예가 생겨났다. 正式으로 碑를 세울 때에는 관직명을 구체적으로 보완하여 새겨 넣게 된다.
역주3 兄蔭 : 兄이 官職에 있으면서 功을 세웠으므로 아우가 그 은혜를 입어서 官職을 얻게 된 것을 지칭한다.
역주4 淫祀 : 禮法에 맞지 않게 설치한 祀廟나 迷信을 숭상하는 祠堂을 말한다.
역주5 螭龜 : 墓碑를 지칭한다. 碑身 머리에 螭(뿔 없는 용)를 새기고, 碑身 받침에 거북을 새겼으므로, 墓碑를 지칭하게 되었다.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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