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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王安石(2)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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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5. 우부낭중을 지낸 조군의 묘지명
尙書虞部郞中晁君 諱仲參이요 字孝先이니
상서우부낭중尙書虞部郎中 조군晁君중참仲參이고, 효선孝先이다.
以治平四年五月九日 卒於通判舒州事하다 其子以熙寧二年正月二十九日 卜濟州任城縣諫議鄕呂村之原以葬하고 狀君之行하야 來乞銘이어늘 掇其語爲銘曰
치평治平 4년(1067) 5월 9일에 통판서주사通判舒州事로 있으면서 하자, 그의 아들이 희령熙寧 2년 정월正月 29일에 길지吉地를 정하여 제주濟州 임성현任城縣 간의향諫議鄕 여촌呂村의 언덕에 안장安葬하고, 행장行狀을 엮어 가지고 와서 을 지어주기를 청하기에 그 행장行狀에 있는 말을 수습하여 다음과 같이 을 쓴다.
晁望潁川이니 衛有卿丙이라
조씨晁氏영천穎川망족望族으로, 나라에는 에 오른 조병晁丙이 있었고,
錯以術用하야 作漢家令이라
조조晁錯은 지혜와 학술이 뛰어나 임용되어서, 나라의 태자가령太子家令이 되었었네.
魏晉南北 史無傳人이러니
위진남북조시대魏晉南北朝時代에는 역사에 전해지는 인물이 없다가,
良正官唐이나 仍不大振이라
조량정晁良正나라에서 벼슬을 하였으나, 크게 떨치지는 못하였네.
開封于家라가 徙鉅野縣하야
개봉開封관향貫鄕으로 삼았다가, 거야현鉅野縣으로 옮겼고,
辟時囏屯이라가 出宋而顯이라
시대가 간난艱難해지니 은둔해 있다가, 송대宋代에 벼슬길에 나와서 드날렸네.
逈奮布衣하야 太子太師하고
조형晁逈포의布衣에서 발신發身하여, 태자태사太子太師가 되었고,
宗慤秉政 父子一時
조종각晁宗慤집정執政이 되어, 부자父子가 한 시대에 벼슬을 함께하였네.
三朝四世 錫榮丘墓하고
황제皇帝가 교체하는 동안 4가, 연이어 사후死後증직贈職을 받았고,
佺令中書하니 爲君曾祖
조전晁佺중서령中書令추증追贈되었으니, 증조고曾祖考셨네.
有子迪者 刑部侍郞이니
아들 조적晁迪을 두셔서, 형부시랑刑部侍郞이 되었고,
乃生宗簡하야 世德孔揚이라
그분이 조종간晁宗簡을 낳으시니, 대대代代로 쌓은 공덕功德이 크게 발양發揚된 것이네.
하고 郞于刑部
경동로京東路경서로京西路전운사轉運使가 되었고, 형부刑部낭관郎官을 지내었네.
君實其嗣 少則多譽
이 실로 그분의 후사後嗣로서, 어려서부터 칭찬을 많이 받았네.
仲父保任 主簿上虞
중부仲父조보임晁保任상우현주부上虞縣主簿를 지내셨고,
宰墨隳政하니 易君仕初
지현사知縣事탐오貪汚하여 정무政務를 그르치니, 으로 교체하여 비로소 벼슬을 시작하였네.
從容調胹하니 史莫玩法하야
조용히 화합을 도모하니, 관리들이 법을 농락하지 못하였고,
墨以廉終하고 弱伸强懾이라
부정不正했던 자는 청렴淸廉함으로 마칠 수 있었고, 약자弱者는 기를 펴고 강자强者는 두려워하였네.
按察擾獄 夙如我謀
안찰사按察使가 되어 형옥刑獄을 담당하자, 내가 늘 했던 일처럼 능숙하게 처리하였고,
君不爲奪하고 械囚于州하니
은 힘 하나 쓰지 않고, 죄수罪囚들을 고을 에 구금하니,
將范文正 歎愛而謂호되
범문정공范文正公께서 이에 탄복하고 사랑하며 말씀하시기를,
畏宜繩私하고 公勇勿畏
“두려움은 사심私心을 억제하는 데 합당하고, 공무公務에 용감하여 두려움이 없다.” 하시니,
은 이 뜻을 지켜, 죽을 때까지 잘못이 없기를 바랐네.
薦監越酒라가 旋宅父憂하고
추천을 받아 월주감주세越州監酒稅가 되었다가, 부친상父親喪을 당하여 시묘侍墓살이를 하였네.
判官于滁라가 擢丞大理
저주판관滁州判官으로 있다가, 발탁되어 대리시승大理寺丞이 되었고,
汝州郟城하고 來知縣事하니
여주汝州 섬성현陝城縣지현사知縣事로 돌아왔네.
富姓賕吏하고 寓田勢家하야
호족豪族들이 관리官吏에게 뇌물을 주고, 토지土地권세가權勢家겸병兼倂하여,
役煩且窘하니 中戶愁嗟
백성의 노역勞役은 번거로워지고 또 곤궁해지니, 안의 민호民戶가 근심하고 탄식하였네.
君裒僞券하고 應手卽辨하야
기만적欺瞞的인 계약서를 거두어들이고, 당장 이를 바로잡아,
完蠹噓枯하니 俗戒以勸이라
침탈侵奪당했던 것이 바로잡혀서 폐정弊政이 정리되니, 백성은 경계警戒하며 이에 고무鼓舞되었네.
秦王諸孫 上冡入郛하고
황족皇族진왕秦王의 여러 후손들이, 무덤의 관리를 핑계로 안에 들어와 토색질을 하였으며,
卒榜驛隷어늘 君擒而誅하고
그들의 하졸下卒들이 역리驛吏를 고문하고 구타하니, 께서 이들을 잡아서 처형하였고,
將劾中人한대 匿車夜遁하야
무덤 관리를 맡은 환관宦官들을 취조하려 하자, 수레를 감추고 밤에 달아나서,
移內侍省커늘 罪令卽訊이라
내시성內侍省으로 들어갔으나, 그들이 범한 죄를 즉시 심문하였고,
이렇게 다스려 이듬해에 이르자, 말 모는 주졸走卒들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않게 되었네.
能聲震越하야 號稱其家
일 처리 잘한다는 명성이 크게 떨쳐, 그 가문이 드러나게 찬양을 받았네.
易曹濟陰하야 太子贊善
그 후 벼슬이 바뀌어 제음현령濟陰縣令태자찬선太子贊善이 되자.
督尉索盜하니 里閭宴衎이라
현위縣尉를 지휘하여 도둑 찾아 체포하니, 민간인들 편안하고 즐겁게 지내게 되었네.
馬入罷牧하야 地租于民하고
목장牧場을 없애고 말을 조정에 바치고서, 그 땅을 농민에게 농토로 나누어주었고
廚傳費劇하야 輸之殆貧이라
과객過客들의 숙식宿食거마車馬의 뒷바라지에 비용을 다 써서 거의 가난할 지경에 이르렀으나,
君曰閔哉인저
은 말하기를 “마음 아프도다.
責豈無豫리오
책임이 있는데 어찌 무관심할 수 있으랴.” 하였으며,
操書鐫守하야 多絀其數
서책書冊에 의거하여 태수太守로서의 직무에 힘써, 조세租稅의 항목을 많이 줄였네.
遷官博士하야 去領開州할새
벼슬이 박사博士에서 전임되어, 떠나서 개주開州를 다스리게 되자,
大築學校하야 率衣冠游
크게 학교를 증축하고, 글 읽는 선비를 인솔하여 공부하게 하였네.
溫湯之鹽 實不酬課하야
온탕진溫湯鎭염정鹽井에서 염세鹽稅를 징수하지 않도록 하여,
歲蠲五萬 奏自君可
한 해에 오만五萬 을 탕감해준 것은, 상주上奏하여 재가裁可를 받은 것이네.
氓疾不治하고 謁巫代醫커늘
백성들은 병이 들면 치료하지 않고, 의사醫師가 아닌 무당巫堂을 찾았는데,
敎以餌藥하야 盡投詭詞
약을 복용하도록 가르쳐서, 괴이한 부적들을 모두 버리게 하였네.
失怙恃者 予其娶嫁하고
부모를 잃은 이들에게, 장가들고 시집가도록 뒷받침해 주었고,
坐堂朝晡라가 飮酒閒暇
아침부터 밤까지 공당公堂에 앉아 공무公務를 보고, 한가해서야 술을 마셨네.
英宗纂極 員外于虞하고
영종英宗께서 황위皇位를 이으시자, 우부원외랑虞部員外郞이 되었고,
比駕二部 閱最而除
비부比部가부駕部에 제수된 것은, 고과성적考課成績최상등最上等을 받아서였고,
今天子恩으로 始正郞位하야
지금의 천자天子의 은혜를 입어서, 비로소 정랑正郞의 자리에 올라
攝舒朞年 條敎逾肄
서주舒州를 맡아서 일년간一年間 다스리게 되자, 교령敎令을 질서정연하게 시행하고자 더욱 노력하였고,
殍來隣邦 賑使無僵하고
굶주린 사람들이 이웃 고을에서 찾아오자, 아사餓死하지 않도록 진휼賑恤하였으며,
扶攜飽去하야 又遺之種이라
배불리 먹은 후 노약자를 이끌고 돌아가려 하자, 다시 식량을 주어 보내었네.
敦於除害하야 未始愛力하고
재해災害를 제거하고자 힘써서, 처음부터 노력을 아끼지 않고,
取樅陽河하야이라
종양하樅陽河에서 해온 세곡稅穀의 운송에, 나찰석羅刹石의 위험을 피하게 하고자,
析池口征하야 合于銅陵하니
지구진池口鎭에서 징수한 것을 나누어서, 동릉현銅陵縣으로 합치게 하니,
官不失筭하고 舟無危行이라
관부官府에서는 세곡稅穀을 잃지 않게 되었고, 조운선漕運船들은 위험한 운항을 피할 수 있어,
人幸是爲하야 曠數十載하고
사람들은 이를 경하하여, 수십 년 이래로 없던 일이라 하였고,
趨令讙呼하야 無有稚艾
환호하며 법령을 준수하여, 어린이와 늙은이 중에 구제받지 않은 이가 없었네.
歲漂百航이어늘
고산孤山마당산馬當山에, 매년 많은 선박이 충돌하여 침몰하자,
鑿秋口浦하야 直走雷江이면
추구포秋口浦를 뚫어서, 곧바로 뇌강雷江으로 달리게 하면,
脫險風濤 幾五百里라하야
오백五百 를 운항하는 동안에 바람과 파도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하여
章隨驛聞하니 就付其事
이 사실을 역로驛路를 거쳐 조정朝廷에 보고하자, 그 일의 처리를 에게 맡겼고,
方冬告役이라가 君夏而徂하니
겨울이 오면 그 일을 시작하려 하였는데, 께서 여름에 그만 사망하였으니,
壽五十五 識者歎吁하니라
향년享年오십오세五十五歲였고, 식자識者들이 아쉬워하며 탄식하였네.
公孫氏하니 作配甚似
공손씨公孫氏와 혼인하여 배필을 이루니 매우 화락하였네.
封永康君하고 誕惟四子하니
부인夫人영강군永康君해졌고, 아들 넷을 낳았으니,
端仁端義 端禮端智
단인端仁, 단의端義단례端禮, 단지端智였네.
仁中進士하야 常州司理
단인端仁진사시進士試에 급제하여 상주사리常州司理로 있고,
義郊社郞이며 餘則未仕
단의端義교사재랑郊社齋郞이며, 나머지는 아직 벼슬길에 오르지 않았네.
五女四人 歸爲士妻하니
다섯 딸 가운데 넷은 출가하여 선비의 아내가 되었으니,
石端俁彦이요 俁歸而嫠
이고, 그 가운데 는 남편을 사별死別하였고,
范胡二壻
사위 둘은 범순수范純粹호승유胡僧儒이네.
幼處于家하고 君孫有五하니
막내딸은 어려서 아직 출가하지 않았고, 오인五人이니,
男節符籛이요 其二則女
손자孫子, , 이고, 나머지 둘은 손녀孫女이네.
惟君平生 外晦內明하고
은 일생 동안, 겉으로는 어두운 듯이 처신하였으나 마음속은 밝았고,
忤出不意 黙無與爭이라
뜻밖의 오해를 사서 쫓겨났으나, 묵묵히 지내며 그들과 다투지 않았네.
祿賙族婣하고 恩稱疎戚하야
봉록俸祿은 친족과 인척의 구제에 썼으므로, 먼 친척들도 은혜에 감사하였으며,
庖無朝炊호되 笑語如昔이라
부엌에서 아침밥을 짓지 못해도, 웃고 대화함이 지난날과 같았네.
晩尤靜曠하야 病不告遺하고
만년晩年에는 더욱 마음을 비우고 고요히 지내, 병을 앓으면서도 유언을 남기지 않았고,
極談性命 方絶之時
바야흐로 숨이 끊기려 하면서도, 성명性命의 지극한 이치만을 말하였네.
子丐埋辭하야 衰麤走汴이어늘
아들이 묘지명墓誌銘을 구하고자, 상복喪服을 입은 채로 변경汴京으로 달려왔기에,
掇其緖餘하야 以質幽竁하노라
나의 하찮은 문장을 엮어서, 유택幽宅에 바쳤네.
역주
역주1 虞部郎中晁君墓誌銘 : 虞部郎中은 工部인 虞部司의 長官으로, 鑛山과 茶 및 소금을 관장하던 벼슬이다. 本 墓誌銘은 墓主가 사망하여 下葬한 熙寧 2년(1069) 正月 29일 이전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역주2 使京東西 : 京東路와 京西路 轉運使를 담당하였음을 말한다.
역주3 將范文正……畢身無尤 : 范文正은 范仲淹을 지칭한다. 文正은 諡號이다. 이는 당시에 范仲淹이 知越州로 있었고, 墓主가 主簿로 있던 上虞縣은 越州의 屬縣이었으므로, 墓主가 范仲淹의 屬僚로 있을 때의 일이다.
역주4 秦王諸孫……徒御無譁 : 宋 太祖 趙匡胤의 아우 趙廷美가 秦王에 冊封되었다가 사망한 후 그와 그 자손들의 墓가 汝州에 있었다. 이 墓의 관리자들과 묘의 관리를 위하여 내려온 宦官들의 行惡이 滋甚하였는데, 晁仲參이 汝州縣知事로 있으면서 그 害惡을 바로잡았음을 찬양한 것이다.
역주5 羅刹石 : 池州의 貴池縣을 관통하는 강 속에 큰 바위가 솟아 있는데 이를 羅刹石이라 불렀으며, 강을 오르내리는 선박들이 여기에 부딪쳐서 파선되는 경우가 많았고, 이를 피해 운항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한다.
역주6 孤山馬當 : 孤山은 江西의 彭澤縣 북쪽 長江 가운데 우뚝하게 솟아 있는 산으로 높이가 30丈이고, 馬當은 彭澤縣 동북쪽 40里 되는 곳의 長江 가운데에 가로 놓여 있는 산으로 산의 모양이 말과 같이 생겼는데, 이 두 산이 바람을 돌게 하고 물결을 뒤흔들어 놓아서 선박의 운항을 매우 어렵게 하였다.
역주7 : 醮의 뜻으로, 이곳에서는 結婚을 지칭한다.
역주8 純粹僧孺 : 純粹는 范純粹(1046~1117)이니 范仲淹의 아들로 龍圖閣學士를 역임했던 人物이고, 僧儒는 文人 胡僧儒를 지칭한다.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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