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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王安石(2)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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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2. 尙書屯田員外郞仲君墓誌銘
02. 상서둔전원외랑을 지낸 중군의 묘지명
看他韻折處
그의 기운氣韻저상沮喪되었던 부분을 유념해 보아야 한다.
君仲氏 諱訥이요 字樸翁이니 廣濟軍定陶人이라
중씨仲氏이고, 이며, 박옹樸翁으로, 광제군廣濟軍 정도인定陶人이다.
曾祖諱環이요 祖諱祚 皆弗仕라가 而至君父諱尹始仕하야 至曹州하야 贈右贊善大夫하다
증조曾祖이고, 조부祖父이니, 모두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가 부친父親 에 이르러 비로소 벼슬하여 조주관찰지사曹州觀察支使를 역임하였고 우찬선대부右贊善大夫추증追贈되었다.
元年進士하야 起家莫州防禦推官하니 年少初官이나 然上下無敢易者러라
경우景祐 원년元年(1034)에 진사시進士試에 급제하여 첫 벼슬로 막주방어추관莫州防禦推官을 지냈는데, 나이가 어린데다가 처음 하는 벼슬이었지만 윗사람이나 아랫사람들이 감히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다.
時傳契丹 且大擾邊하니 朝廷使中貴人來問한대 知州張崇俊未知所對어늘 公策契丹無他하야 爲具奏論之하다
그때에 거란契丹이 국경지대를 크게 어지럽힌다는 소식이 전해지니, 조정朝廷에서 궁중宮中환관宦官을 보내어 사태를 파악하려 하였는데, 막주지사莫州知事장숭준張崇俊이 어떻게 응대해야 할지를 알지 못하니, 이 ‘계단무타契丹無他’라는 계책을 내어서, 구체적으로 아뢰고 설명하였다.
崇俊喜曰 朝廷必知非吾能爲此
이에 장숭준張崇俊이 기뻐하며 말하기를 “조정에서는 반드시 내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님을 알 것이다.
然亦當善我能聽用君也리라하다
그러나 또한 내가 의 계책을 잘 들어주었음을 당연히 좋게 여길 것이다.” 하였다.
又權博州防禦判官하야 以母夫人喪去라가
그 후 권박주방어판관權博州防禦判官이 되었으나, 모부인母夫人 때문에 물러났다.
去三年 復權明州節度推官하다 縣送海賊數十人하야 獄具矣어늘 君獨疑而辨之하야 數十人者皆得雪하다
물러난 지 3년 만에 다시 권명주절도추관權明州節度推官이 되었는데, 속현屬縣에서 해적海賊 수십數十 압송押送하면서 죄상罪狀을 갖추어 보고하였으나, 은 홀로 이를 의심하고 다시 조사하여 수십數十 이 모두 풀려날 수 있었다.
用擧者改大理寺丞이라가 知大名府淸平 邛州臨溪兩縣하고 又通判解州하다
추천한 자가 있어서 대리시승大理寺丞으로 옮겼다가 대명부大名府 청평현淸平縣공주邛州 임계현臨溪縣 등 두 지사知事를 역임하고, 다시 해주통판解州通判이 되었다.
於是 三遷爲尙書屯田員外郞이라가 而以五年十二月二十一日卒하니 年五十五러라
이에 세 번 벼슬을 옮겨서 상서둔전원외랑尙書屯田員外郞이 되었다가 황우皇祐 5년 12월 21일에 하니, 향년享年이 55세였다.
君厚重有大志하야 不妄言笑하며 喜讀書하고 爲古文章이러니 晩而尤好爲詩하야 詩尤稱於世하다
중후重厚품격品格에 큰 뜻을 지녀, 말하고 웃기를 함부로 하지 않았고, 글 읽기를 좋아하고 고문古文을 잘 지었는데, 만년晩年에는 짓기를 더욱 좋아하여 를 잘 짓는 것으로 더욱 세상의 칭찬을 받았다.
所在有聲績이나 然直道自信하야 於權貴人 不肯有所屈이라 故好者少
벼슬했던 곳마다 업적을 남겨서 명성을 얻었으나, 자신이 믿는 바를 곧바로 행하고 권귀權貴들에게 굽히려 하지 않았으므로 그를 좋아하는 사람이 적었다.
然亦多知其非常人也러라
그러나 또한 많은 사람들이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았다.
其在越蜀 士多從之學하니라
그가 월촉越蜀에 있을 때에는 많은 선비들이 그를 따르며 배웠다.
하야 言者喜論兵호되 其計不過攻守而已러니
보원寶元강정康定 연간年間에는 건의하는 자들이 국방에 관하여 논하기를 좋아하였으나 그들이 주장한 계책은 공격과 수비의 방책에 지나지 않았는데,
만은 유독 《서경書經》에 이른바 “농시農時를 잃지 않게 하면 배불리 먹을 수 있고, 멀리 있는 오랑캐를 회유하면 가까이 있는 백성을 편안하게 할 수 있으며, 후덕厚德정사政事로 백성을 이끌고 내치기 어려운 아첨꾼을 멀리 내쫓으면, 사방의 오랑캐들이 서로 이끌고 와서 복종할 것이다.”라고 한 말을 바탕으로 하여 〈어융의禦戎議〉 두 을 지었다.
嗟乎
아아!
此流俗所羞하야 以爲迂而弗言者也 非明於先王之義則孰知리오
이런 주장은 당시 속인俗人들이 부끄러워했던 것으로서, 우활迂闊하다고 여겨서 말하지 않았던 것들이었으니, 선왕先王의 뜻을 밝게 아는 자가 아니면 누가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夫中國安富尊强之爲 必出於此
대저 중국中國이 안정되고 부유해지고 강력해지고 존경받을 수 있는 방안이 반드시 여기에서 나온다.
君知此矣 則其自信不屈 宜以有所負而然이어늘 惜乎 其未試也로다
이 이것을 알았으니, 스스로 이를 확신하고 굽히지 않은 것은, 마땅히 자부自負함이 있어서 그렇게 한 것인데도, 그 계책을 시험해볼 기회가 없었으니 안타까운 일이었다.
君初娶王氏하니 尙書蘭之女 又娶李氏하니 尙書虞部員外郞宋卿之女
초취부인初娶夫人왕씨王氏상서가부낭중尙書駕部郎中 의 따님이고, 재취부인再娶夫人이씨李氏상서우부원외랑尙書虞部員外郞 송경宋卿의 따님이다.
三男子 伯達 爲太常博士 次伯适伯同 爲進士
아들이 셋인데, 백달伯達태상박사太常博士이고 다음 백적伯適백동伯同진사進士이다.
三女子 嫁殿中丞任庾 幷州交城縣尉崔絳 興元府戶曹參軍任膺이라
딸도 셋인데, 전중승殿中丞 임유任庾병주幷州 교성현위交城縣尉 최강崔絳흥원부興元府 호조참군戶曹參軍 임응任膺에게 출가出嫁하였다.
博士以元年十一月二十一日 葬君於定陶之閔丘鄕하고 而以余之聞君也 來求銘하다
태상박사太常博士로 있는 아들이 희령熙寧 원년元年(1068) 11월 21일에 정도定陶민구향閔丘鄕안장安葬하고, 내가 과 알고 지낸 사이이므로, 찾아와서 을 지어주기를 청하였다.
銘曰
이에 다음과 같이 을 지었다.
於戱樸翁이여
아아! 박옹樸翁이여.
天偶人觭로다
하늘이 좋은 자질 주었으나 인세人世의 운명은 험난하였네.
翔其德音이어늘 而躓於時로다
아름다운 명성名聲을 드날렸으나, 시대의 곤돈困頓을 겪으셨도다!
역주
역주1 觀察支使 : 觀察使를 보좌하는 관원이다.
역주2 景祐 : 景祐는 宋 仁宗의 年號(1034~1038)이다.
역주3 皇祐 : 皇祐도 宋 仁宗의 年號(1046~1053)이다.
역주4 寶元康定 : 寶元(1038~1039)과 康定(1040~1041)은 宋 仁宗의 年號이다.
역주5 君獨推書所謂……蠻夷率服 : 《書經》 〈虞書〉의 내용이다.
역주6 駕部郎中 : 兵部에 소속된 駕部司의 主官으로, 驛傳, 牛馬 등을 管掌하였다.
역주7 熙寧 : 宋 神宗의 年號(1068~1077)이다.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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