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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王安石(2)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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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6. 심보 왕회의 제문
交深而言戚하야 可裂肺肝이라
친교親交가 깊었으므로 제문祭文이 슬퍼서 폐부肺腑가 찢어질 듯하다.
嗟嗟深甫
슬프도다, 심보深甫여!
眞棄我而先乎
진정 나를 버리고 먼저 간 것인가?
孰謂深甫之壯以死하고 而吾可以長年乎
심보深甫처럼 건강한 사람이 사거死去하고, 내가 그보다 오래 살 줄을 누가 알았으리오.
雖吾昔日執子之手하고 歸言子之所爲 實受命於吾母하니 曰 如此人 乃與爲友하시니 吾母知子 過於予初
비록 내가 지난날 그대의 손을 잡고 돌아가 그대의 행실行實을 말씀드리기는 하였으나, 나의 어머니에게서 “이와 같은 사람을 벗으로 삼아야 한다.” 하시는 을 받았으니, 나의 어머니께서 그대를 알아보신 것이 내가 처음 그대를 알아본 것보다도 더욱 깊으셨던 것이로다.
終子成德이어늘 多吾不如
마침내 그대는 을 이루었거늘 나는 미치지 못함이 많았도다.
嗚呼天乎
아아, 하늘이여!
旣喪吾母하고 又奪吾友하니
이미 나의 자친慈親을 잃었는데, 또 나의 친구까지 빼앗아가니,
雖不卽死 吾何能久리오
비록 바로 죽지는 않는다 해도, 내 어찌 오래 살 수 있으리오?
搏胸一慟 心摧志朽
가슴을 치며 애통哀慟하자니, 마음 부서지고 뜻은 썩어 문드러지는 듯.
泣涕爲文하야 以薦食酒하니
울고 눈물 흘리며 제문祭文을 짓고, 이에 술과 음식을 바치노라.
嗟嗟深甫
슬프도다, 심보深甫여!
子尙知否
그대는 이를 아는가 모르는가?
역주
역주1 祭王回深甫文 : 王回(字 深甫, 1023~1065)는 王安石과 절친한 사이로, 衛眞縣主簿로 있다가 일이 뜻에 맞지 않아 稱病하고 물러난 후, 王安石, 曾鞏 등과 經術을 切磋하여 높은 경지에 이르니, 당시 사람들이 “비록 漢代의 儒林들이라 해도 그보다 더 나을 수는 없다.” 하였다. 治平 2년(1065)에 卒하자, 歐陽脩, 劉攽 등이 祭文과 哀詞를 지었고, 王安石도 本 祭文과 墓誌銘을 지어 哀悼하였는데, 당시 왕안석은 45세로 母親喪의 喪期를 마치고 江寧에 閑居하고 있던 때이다.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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