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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王安石(2)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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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5. 처사 정군의 묘표
表征君 幷及其杜與徐하니 變調也
정군征君표문表文두영杜嬰서중견徐仲堅행적行蹟을 아울러 기술記述하였는데, 이는 비지류碑誌類변체變體이다.
淮之南有善士三人하니 皆居於眞州之揚子
회수淮水의 남쪽에 훌륭한 선비 세 사람이 있으니, 모두 진주眞州양자揚子에 거주하고 있다.
杜君者 寓於醫하야 無貧富貴賤 請之輒往하야 與之財非義 輒謝而不受
그 가운데 두군杜君의업醫業에 생계를 의탁하고 있으면서, 빈부貧富귀천貴賤을 따지지 않고 부르는 곳이 있으면 즉시 달려가 치료해주었고, 재물을 주어도 의리에 합당하지 않는 것이면 바로 거절하고 받지 않았다.
時時窮空하야 幾不能以自存호되 而未嘗有不足之色이러라
때때로 곤궁하고 곡간이 비어서 거의 스스로 생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어도, 일찍이 부족한 기색을 드러낸 일이 없었다.
蓋善言性命之理하야 而其心曠然無累於物이어늘
성명性命의 이치에 대하여 말하기를 좋아하였고, 마음을 비워서 외물外物에 얽매이지 않았다.
而予嘗與之語하야 久之而不厭也호라
그래서 내가 에 그와 대화를 한 일이 있는데, 오랫동안 대화를 해도 싫증이 나지 않았었다.
徐君 忠信篤實하야 遇人至謹하고 雖疾病召筮라도 不正衣巾이면 不見하니라
서군徐君충신忠信하고 독실篤實하여 사람을 만나면 지극히 조심하였고, 비록 병을 앓는 사람이 점을 쳐달라고 불러도 의관衣冠정제整齊하지 않았으면 만나주지 않았다.
寓於筮하야 日得百數十錢則止하야 不更筮也하다
점치는 일에 생계를 의탁하고 있으면서도, 하루에 백수십百數十 정도를 벌면 더이상 점을 치지 않았다.
能爲詩하고 亦好屬文하야 有集若干卷하니라
짓기에 능하고 또한 글짓기를 잘하였으며, 문집文集 약간권若干卷을 남겼다.
兩人者 以醫筮故 多爲賢士大夫所知로되 而征君 獨不聞於世
두 사람은 의원醫員서사筮師이기 때문에 많은 현사賢士대부大夫에게 알려졌으나, 정군征君만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征君者 諱某 字某 事其母夫人至孝하다
정군征君이고, 이며, 모부인母夫人을 지극한 효성으로 섬겼다.
居鄕里하야 恂恂恭謹하고 樂振人之窮急하야 而未嘗與人校曲直하고 好蓄書하며 能爲詩하다
향리鄕里에 거주하면서 성실하고 겸손하고 조심스럽게 처신하고, 다른 사람의 곤궁과 위급함을 구제해주기를 즐겼으며, 일찍이 다른 사람들과 옳고 그름을 따지며 다투는 일이 없었고, 책 모으기를 좋아하고 를 잘 지었다.
有子五人하야 而敎其三人爲進士하니 某今爲某官하고 某今爲某官하며 某亦再貢於鄕하다
아들이 다섯인데 그 가운데 셋을 가르쳐서 진사시進士試에 급제하니, 는 지금 모관某官으로 있고, 도 지금 모관某官으로 있으며, 또한 향시鄕試에 거듭 합격하였다.
征君與兩人者 相爲友하야 至驩而莫逆也러니 兩人者 皆先征君以死하고 而征君 以某年某月某甲子 終於家하니 年七十七이러라
정군征君은 위에서 언급한 두 사람과 서로 친교를 맺어, 지극히 즐겁게 지내고 막역莫逆한 사이였는데, 두 사람이 정군征君보다 먼저 사망하였고, 정군征君모년某年 모월某月 모갑자일某甲子日에 집에서 을 마치니, 향년享年이 77세였다.
아, 슬프도다!
古者 一鄕之善士 必有以貴於一鄕하고 一國之善士 必有以貴於一國이러니 此道亡也久矣
옛날에 한 고장의 훌륭한 선비는 반드시 한 고장에서 예우禮遇를 받음이 있었고, 한 나라의 훌륭한 선비는 반드시 한 나라에서 예우禮遇를 받음이 있었는데, 이 가 없어진 지 오래되었도다.
余獨私愛夫三人者하야 而樂爲好士者道之러니 而征君之子 又以請이어늘 於是 書以遺之하야 使之鑱諸墓上하니라
나는 유독 저 세 사람을 사랑해서, 선비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말해주기를 좋아하였는데, 정군征君의 아들이 또한 요청하기에, 이에 이를 기록으로 남겨놓아서 무덤 위에 새겨놓도록 하였다.
杜君諱嬰이요 字大和 徐君諱仲堅이요 字某니라
두군杜君이고 대화大和이며, 서군徐君중견仲堅이고 이다.
역주
역주1 處士征君墓表 : 本 墓表의 墓主를, 沈欽韓은 〈江南通志〉의 注에서 征集이라고 밝혀놓았다. 本 墓表를 지은 時期가 언제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王安石이 進士試에 급제하고 簽書淮南判官이 되었던 22세 때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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