表정군征君에 幷及其두영杜與서중견徐하니 變調也라
회수淮之南有善士三人하니 皆居於진주眞州之양자揚子라
두군杜君者는 寓於醫하야 無貧富貴賤히 請之輒往하야 與之財非義면 輒謝而不受라
時時窮空하야 幾不能以自存호되 而未嘗有不足之色이러라
서군徐君은 忠信篤實하야 遇人至謹하고 雖疾病召筮라도 不正衣巾이면 不見하니라
兩人者는 以醫서사筮故로 多爲賢士대부大夫所知로되 而정군征君은 獨不聞於世라
정군征君者는 諱某요 자字某니 事其母夫人至孝하다
居鄕里하야 恂恂恭謹하고 樂振人之窮急하야 而未嘗與人校曲直하고 好蓄書하며 能爲시詩하다
有子五人하야 而敎其三人爲進士하니 某今爲某官하고 某今爲某官하며 某亦再貢於鄕하다
정군征君與兩人者 相爲友하야 至驩而莫逆也러니 兩人者는 皆先정군征君以死하고 而정군征君은 以某年某月某甲子에 終於家하니 年七十七이러라
古者에 一鄕之善士는 必有以貴於一鄕하고 一國之善士는 必有以貴於一國이러니 此道亡也久矣라
余獨私愛夫三人者하야 而樂爲好士者道之러니 而정군征君之子 又以請이어늘 於是에 書以遺之하야 使之鑱諸墓上하니라
두군杜君諱영嬰이요 자字대화大和며 서군徐君諱중견仲堅이요 자字某니라
정군征君의 표문表文에 두영杜嬰과 서중견徐仲堅의 행적行蹟을 아울러 기술記述하였는데, 이는 비지류碑誌類의 변체變體이다.
회수淮水의 남쪽에 훌륭한 선비 세 사람이 있으니, 모두 진주眞州의 양자揚子에 거주하고 있다.
그 가운데 두군杜君은 의업醫業에 생계를 의탁하고 있으면서, 빈부貧富와 귀천貴賤을 따지지 않고 부르는 곳이 있으면 즉시 달려가 치료해주었고, 재물을 주어도 의리에 합당하지 않는 것이면 바로 거절하고 받지 않았다.
때때로 곤궁하고 곡간이 비어서 거의 스스로 생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어도, 일찍이 부족한 기색을 드러낸 일이 없었다.
성명性命의 이치에 대하여 말하기를 좋아하였고, 마음을 비워서 외물外物에 얽매이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전前에 그와 대화를 한 일이 있는데, 오랫동안 대화를 해도 싫증이 나지 않았었다.
서군徐君은 충신忠信하고 독실篤實하여 사람을 만나면 지극히 조심하였고, 비록 병을 앓는 사람이 점을 쳐달라고 불러도 의관衣冠을 정제整齊하지 않았으면 만나주지 않았다.
점치는 일에 생계를 의탁하고 있으면서도, 하루에 백수십百數十 전錢 정도를 벌면 더이상 점을 치지 않았다.
시詩 짓기에 능하고 또한 글짓기를 잘하였으며, 문집文集 약간권若干卷을 남겼다.
두 사람은 의원醫員과 서사筮師이기 때문에 많은 현사賢士와 대부大夫에게 알려졌으나, 정군征君만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정군征君의 휘諱는 모某이고, 자字는 모某이며, 모부인母夫人을 지극한 효성으로 섬겼다.
향리鄕里에 거주하면서 성실하고 겸손하고 조심스럽게 처신하고, 다른 사람의 곤궁과 위급함을 구제해주기를 즐겼으며, 일찍이 다른 사람들과 옳고 그름을 따지며 다투는 일이 없었고, 책 모으기를 좋아하고 시詩를 잘 지었다.
아들이 다섯인데 그 가운데 셋을 가르쳐서 진사시進士試에 급제하니, 모某는 지금 모관某官으로 있고, 모某도 지금 모관某官으로 있으며, 모某 또한 향시鄕試에 거듭 합격하였다.
정군征君은 위에서 언급한 두 사람과 서로 친교를 맺어, 지극히 즐겁게 지내고 막역莫逆한 사이였는데, 두 사람이 정군征君보다 먼저 사망하였고, 정군征君도 모년某年 모월某月 모갑자일某甲子日에 집에서 생生을 마치니, 향년享年이 77세였다.
옛날에 한 고장의 훌륭한 선비는 반드시 한 고장에서 귀貴한 예우禮遇를 받음이 있었고, 한 나라의 훌륭한 선비는 반드시 한 나라에서 귀貴한 예우禮遇를 받음이 있었는데, 이 도道가 없어진 지 오래되었도다.
나는 유독 저 세 사람을 사랑해서, 선비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말해주기를 좋아하였는데, 정군征君의 아들이 또한 요청하기에, 이에 이를 기록으로 남겨놓아서 무덤 위에 새겨놓도록 하였다.
두군杜君의 휘諱는 영嬰이고 자字는 대화大和이며, 서군徐君의 휘諱는 중견仲堅이고 자字는 모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