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唐宋八大家文抄 王安石(1)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1. 재상에게 올린 편지
荊公之書 多深思遠識하니 要之於古之道 而其行文處 往往遒以婉하고 鑱以刻하야 譬之入幽谷邃壑하야 令人神解而興不窮하니 中有歐蘇輩所不及處
형공荊公의 글은 심오한 생각과 원대한 식견識見을 드러낸 것이 많고 옛 유가儒家의 도에 핵심을 두고 있으며, 문장文章을 운용한 부분에 왕왕 굳세면서도 아름답거나 예리하면서도 아로새길 만한 것이 있어서, 비유하자면 으슥하고 깊은 골짜기에 들어간 듯 사람들로 하여금 신묘神妙한 깨달음을 느끼게 하면서 흥취興趣가 다함이 없으니, 문장 가운데는 구양수歐陽脩소식蘇軾의 무리가 미칠 수 없는 경지도 있다.
時荊公 托爲擇便地以養母하니 其書之情旨 深厚婉曲이라
당시에 형공荊公이 어머니 봉양에 편리한 땅을 택할 수 있도록 부탁한 것이니, 편지 속에 드러난 뜻이 심후深厚하고 완곡婉曲하다.
某聞古者極治之時 君臣施道以業天下之民하야 匹夫匹婦有不與其澤者 爲之焦然恥而憂之하니이다
가 들으니, 옛적 천하가 지극히 태평太平했던 시대에는 임금과 신하가 에 맞는 일을 행하면서 천하의 백성들을 위해 종사하였고, 일반 백성들 가운데 그 혜택을 입지 못한 사람이 있으면 그를 위해 애태우며 부끄럽게 여기고 근심하였다고 합니다.
소경과 귀머거리와 난쟁이도 또한 각기 그들의 능력에 맞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담당 관서에서 주선하여 먹고 살도록 하였고, 그 성심誠心에 감화된 바가 소나 양이 밟는 미물에까지 이르러 초목草木조차도 차마 사랑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니, 지금 〈행위行葦〉의 에 쓰인 내용이 이를 표현한 것입니다.
況於所得士大夫也哉잇가
하물며 사대부士大夫가 얻은 벼슬이야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此其所以上下輯睦하야 而稱極治之時也니이다
이것이 상하上下가 화목하여 천하天下가 지극히 태평했던 시대라고 일컫게 된 소이所以입니다.
伏惟閤下方以古之道 施天下하야 而某之不肖로도 幸以此時竊官於朝하야 하니 宜竭罷駑之力하고 畢思慮하야 治百姓하야 以副吾君吾相於設官任材休息元元之意 不宜以私慁上하야 而自近於不敏之誅니이다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합하閤下께서는 옛날의 를 천하에 시행하셔서, 같은 못난 사람도 요행으로 이런 시대에 조정의 벼슬을 얻었고, 을 받아 고을을 다스리는 일을 보좌하게 되었으니, 마땅히 노둔魯鈍한 말 같은 능력으로나마 힘껏 노력하고 사려思慮를 다하여 백성들을 다스려서, 이로써 우리 임금님과 우리 재상께서 을 설치하고 재능才能있는 사람에게 임무를 맡기며 백성들을 편안히 쉴 수 있게 하신 뜻에 부응해야 하며, 사욕私慾 때문에 윗분들을 근심하게 하고 스스로 밝고 지혜롭지 못하게 처신하여 받을 일을 가까이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抑其勢有可言하니 則亦閤下之所宜憐者로소이다
그러나 그 형세가 하소연할 만한 일이 있으니 합하께서도 마땅히 가련하게 여기실 것입니다.
하고 今大母春秋髙하시니 宜就養於家之日久矣
는 어렸을 때에 선친先親이 돌아가셨고, 이제 할머니의 연세가 많으시니 의당 집으로 돌아가서 봉양해야 한다고 마음먹었던 날이 오래되었습니다.
徒以內外數十口 無田園以託一日之命하고 而取食不腆之祿하야 以至於今不能也로소이다
다만 안팎의 식구가 수십 명이고 하루라도 목숨을 의탁할 만한 전원田園도 없어서 넉넉하지 못한 녹봉으로 생활하고 있으므로 지금에 이르도록 결행하지를 못하였습니다.
今去而野處하야 念自廢於苟賤不廉之地하고 然後有以共裘葛具魚菽하야 而免於事親之憂 則恐內傷先人之明하고 而外以累君子養完人材之德이니이다 濡忍以不去하고 又義之所不敢出也
이제 벼슬에서 물러나 향리에서 살며 스스로 글 몇 줄을 읽은 것으로 벼슬을 얻어 비루하게 봉록이나 밝히면서 구차하게 살았던 것에서 벗어나기를 생각하고, 그런 연후에 조모께 계절에 맞는 의복과 소박한 음식이나 갖추어 제공해 드려서 조모를 섬기는 근심에서 벗어나고자 하였으나, 이는 안으로는 선친先親의 밝으심을 손상시키고 밖으로는 군자君子가 인재를 배양하여 완성하게 하는 덕에 누를 끼치게 될까하여 참고 따르면서 떠나지를 못하였고, 또한 의리상 감히 말을 꺼내지도 못하였습니다.
故輒上書闕下하야先人之丘冢하고 自託於筦庫하야 以終이로소이다
그 때문에 이제 곧바로 조정에 상서上書하여 선친의 무덤 가까이 가서 스스로 창고나 관리하는 미천한 관직을 맡고서 이로써 어버이를 봉양하며 생을 마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伏惟閤下 觀古之所以材瞽聾侏儒之道하고 覽行葦之仁하야 憐士有好修之意者하고 不窮之於無所據以傷其操하야 使老者得養하소서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합하閤下께서는 옛날 소경, 벙어리, 난쟁이도 그 능력에 맞게 썼던 도리를 고찰하시고 〈행위行葦〉의 어짊을 살피셔서, 선비가 수신修身 양덕養德할 뜻을 가졌음을 가련히 여기시고, 경제적으로 의거할 바가 없어서 그 봉친奉親의 절조를 상하게 된 사람을 곤궁에 처하지 않게 하셔서, 늙은 할머니로 하여금 봉양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而養者雖愚無能하야 無報盛德이나 於以廣仁孝之政하야 而曲成士大夫爲子孫之誼 是亦君子不宜得已者也니이다
봉양하는 사람이 비록 어리석고 무능하여 성덕盛德에 보답할 길이 없지만, 인효仁孝정사政事를 넓게 펼치시어 사대부士大夫가 자손된 도리를 곡진曲盡하게 이룰 수 있도록 제도를 이끌어 주는 것 또한 재상께서 부득이 급박하게 해야 할 일인 것입니다.
黷冒威尊하니 不任惶恐之至로소이다
위엄과 존귀함을 함부로 범하게 되어 지극히 황공惶恐스러움을 감내하지 못하겠나이다.
역주
역주1 上相府書 : 이 편지는 舒州通判으로 있었던 皇祐 3년(1051)에 宰相 文彦博에게 올린 것이다.
역주2 瞽聾侏儒……食之有司 : 《禮記》 〈王制〉에 “벙어리, 귀머거리, 절름발이, 앉은뱅이, 다리 잘린 자, 난쟁이, 여러 雜技를 가진 자는 각각 그 재능에 따라 〈관청의 일을 시켜〉 먹고 살게 하였다.[瘖聾跛躄斷者侏儒百工 各以其器食之]”라고 보인다.
역주3 其誠心之所化……今行葦之詩是也 : 《詩經》 〈大雅 行葦〉에, “떨기져 자라는 길가의 갈대를 牛羊이여 밟지 말라. 떨기를 이루고 길게 자라 푸른 잎이 무성하게 하라.[敦彼行葦 牛羊勿踐履 方苞方體 維葉泥泥]”는 내용을 인용한 것이다.
역주4 受命佐州 : 舒州의 通判에 임용된 것을 지칭한다.
역주5 少失先人 : 王安石이 19세 되던 寶元 2년(1039)에 부친 王益이 死亡하였다.
역주6 : 여기서는 ‘옆’, ‘가까이’[濱]의 뜻으로 쓰였다.
역주7 犬馬之養 : 부모를 봉양하는 것을 겸손하게 이르는 말이다. 《論語》 〈爲政〉에 “지금의 효라는 것은 能養(봉양을 잘함)이라고 이를 수 있다. 犬馬에게도 모두 길러줌이 있으니, 공경하지 않는다면 〈부모를 봉양함과 犬馬를 기름이〉 무엇이 다르겠는가.[今之孝者 是謂能養 至於犬馬 皆能有養 不敬 何以別乎]”라고 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