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貞觀政要集論(1)

정관정요집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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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정요집론(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貞觀十八年 太宗謂長孫無忌等曰
정관貞觀 18년(644)에 태종太宗장손무기長孫無忌 등에게 말하였다.
夫人臣之對帝王注+夫, 音扶. 多順從而不逆하고 甘言以取容이나 朕今發問 不得有隱이니 宜以次言朕過失하라
“신하가 제왕을 대할 때는注+(대저)는 음이 이다. 대부분 순종하며 거역하지 않고 달콤한 말로 환심을 사지만, 짐이 지금 자문을 구할 때는 숨김이 있어서는 안 되니 짐의 잘못을 차례대로 말하도록 해야 할 것이오.”
長孫無忌唐儉等 皆曰
장손무기長孫無忌당검唐儉 등이 모두 말하였다.
陛下聖化 道致太平하시니 以臣觀之컨대 不見其失이니이다
“폐하의 성스러운 교화는 태평을 이끄셨으니, 신들이 보건대 그 잘못을 발견하지 못하겠습니다.”
黃門侍郞劉洎注+字思道, 荊州人. 貞觀七年, 爲治書侍御史, 遷右丞, 號稱職. 十七年, 遞日直東宮, 遷侍中. 太宗征遼東, 詔輔太子監國, 洎曰 “ 帝恠其言. 及還, 遂賜死.對曰
황문시랑黃門侍郞 유계劉洎注+유계劉洎는〉 사도思道이니, 형주荊州 사람이다. 정관貞觀 7년(633)에 치서시어사治書侍御史가 되고 우승右丞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직책을 잘 수행한다는 말을 들었다. 정관 17년(643)에 일직동궁日直東宮으로 교체되고 시중侍中으로 옮겼다. 태종太宗요동遼東을 정벌할 때 조칙을 내려 태자太子감국監國하는 데에 보좌하게 하자, 유계가 아뢰기를 “걱정하지 마십시오. 대신大臣이 죄를 범하면 법에 따라 엄벌토록 하겠습니다.”라고 하여, 태종이 그 말을 이상하게 여겼는데, 돌아오자 결국 죽음을 내렸다. 대답하였다.
陛下撥亂創業 實功高萬古시니 誠如無忌等言이니이다
“폐하께서 혼란을 정돈하고 왕업을 일으키신 것은 실로 만고萬古의 드높은 공로시니 참으로 장손무기 등의 말과 같습니다.
然頃有人上書 辭理不稱者注+稱, 去聲.어든 或對面窮詰하사 無不慙退하니 恐非獎進言者니이다
하지만 요사이 누군가 상소하였을 때 말의 조리가 맞지 않으면注+(알맞다)은 거성去聲이다. 이따금 대놓고 추궁하고 힐난하여 부끄러워하며 물러나지 않은 경우가 없으니, 간언을 올리는 자를 장려하는 것이 아닌 듯합니다.”
太宗曰
태종이 말하였다.
此言 是也 當爲卿改之注+爲, 去聲. 按 “是年夏四月, 上至太平宮.” 因有是問, 無唐儉名. 又載“馬周曰 ‘陛下比來賞罰, 微以喜怒, 有所高下, 此外不見其失.’ 上皆納之.”하리라
“그 말이 옳으니 을 위해 고치도록 하겠소.”注+(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자치통감資治通鑑》에 의하면 “이해(貞觀 18년) 여름 4월에 임금이 태평궁太平宮에 왔다.”라 하고, 이어서 이 질문이 있었으나 당검唐儉의 이름은 나와 있지 않았다. 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마주馬周가 말하기를 ‘폐하께서 근래 상과 벌을 내리실 때 약간 기쁨과 노여움의 감정에 따라 차이가 있을 뿐이고, 이밖에 다른 잘못은 보지 못하겠습니다.’라고 하자, 임금이 모두 받아들였다.”
【集論】林氏之奇曰
【集論】林之奇가 말하였다.
仁人君子之事君 當夫治安之世라도 而危敗禍亂之言 未嘗一日而忘於口者 蓋不如是 不足以維持其治安而保養其聰明也
인인仁人군자君子가 임금을 섬길 때 다스려져 안정된 세상을 만나도 위험‧패망‧재앙‧혼란에 대한 진언을 하루도 입에 올리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은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그 안정을 유지하여 그 총명을 보존하고 함양하기에 부족하기 때문이다.
舜襲堯之位하여 行堯之道하니 可謂治世矣
임금이 임금의 자리를 계승하여 요임금의 도를 실행하였으니 치세治世라고 이를 만하다.
然益曰 罔失法度라하고 禹曰 無若丹朱傲라하고 皐陶曰 元首叢脞哉라하니 夫舜 豈有是哉리오마는 而禹益皐陶 則不可以無是言也
하지만 은 ‘법도를 잃어서는 안 된다.’라 하였고, 는 ‘단주丹朱처럼 오만해선 안 된다.’라 하였고, 고요皐陶는 ‘임금이 자질구레하게 다 챙기면…….’이라고 하였으니, 순임금에게 어찌 이런 문제가 있었겠는가마는 고요皐陶가 이런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太宗之德 固未能盡如堯舜이요 貞觀之治 固未能盡如唐虞之時 而欲自聞其過하니 則其心 猶足爲堯舜之心也
태종太宗의 덕은 본디 요임금‧순임금과 완전히 같을 수 없고 정관貞觀의 치적은 본디 당우唐虞 시대와 완전히 같을 순 없지만, 스스로 그 과오를 듣고자 하였으니 그 마음은 요임금‧순임금의 마음이 되기에 충분하다.
惜夫 太宗 有堯舜好問之心이로되 而長孫無忌之徒 無禹益皐陶箴規之戒하니 可勝嘆哉
애석하도다, 태종은 요임금‧순임금처럼 묻기를 좋아하는 마음을 가졌지만 장손무기 등은 우‧익‧고요처럼 귀감이 되는 경계의 말을 올림이 없었으니, 안타까움을 이루 다 견딜 수 있겠는가.”
愚按 貞觀末年 魏徵旣死하니 在廷群臣 類多諛說之風이요 其間諛說之特甚者 長孫無忌 是也
내가 살펴보건대, 정관貞觀 말년에 위징魏徵이 죽고 나자 조정에 있는 신하들은 아첨하는 기풍을 가진 자들이 대부분이었고, 그 가운데 아첨이 특히 심한 자는 바로 장손무기長孫無忌였다.
太宗 欲群臣直言 無忌 則曰陛下無失이라하고
태종太宗이 뭇 신하들에게 직언을 요구할 때 장손무기는 “폐하께서는 과실이 없습니다.”라 하였고,
太宗 欲知其過 無忌 則曰陛下武功文德 臣等 將順之不暇라하고
태종이 자신의 과오를 알고 싶어 할 때 장손무기는 “폐하陛下무공武功문덕文德을 신들이 받들어 따르기에도 여념이 없습니다.”라 하였고,
太宗 欲問破高麗之計 無忌 則曰諸將奉成筭而已라하니
태종이 고구려를 격파할 계책을 묻고자 했을 때 장손무기는 “여러 장군들은 짜놓으신 작전을 받들기만 할 뿐입니다.”라고 했으니,
嗚呼 孔子所謂言而莫予違者 其無忌之謂乎인저
아, 공자孔子가 말한 “말을 하면 나를 거역함이 없다.”라고 한 것은 바로 장손무기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向非劉洎輩面折廷爭하여 庶幾魏徵之風이면 則貞觀之政 難乎令終矣리라
만일 면전에서 대들고 조정에서 언쟁하여 위징의 기풍을 거의 갖춘 유계劉洎 등이 아니었다면 정관의 정치는 잘 마무리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역주
역주1 願無憂……當按法誅之 : 《新唐書》 권99 〈劉洎列傳〉에 보인다.
역주2 通鑑 : 《資治通鑑》 권109 唐紀 10 太宗 貞觀 18년에 보인다.

정관정요집론(1) 책은 2019.06.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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