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貞觀政要集論(2)

정관정요집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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夫君臣相遇注+ 夫君臣相遇:夫, 音扶. 後同. 自古爲難이라
군주와 신하가 서로 만남은注+(발어사)는 이다. 뒤에도 같다. 옛날부터 어려웠습니다.
바위를 물에 던져 넣는 의기투합의 형세는 천년에 한 번 만나고, 물을 바위에 던져 붓는 의기불투합의 형세는 어느 때나 없었던 적이 없습니다.
其能開至公之道하고 申天下之用하여 內盡心膂注+ 內盡心膂:膂, 音旅.하고 外竭股肱하여 和若鹽梅注+ 和若鹽梅:商書, 高宗命傅說(열)曰 “若作和羹, 爾惟塩梅.”하고 固同金石者
지극히 공정한 도를 열고 천하의 쓰임을 펴서 안으로 마음과 힘을 다하고注+(힘)는 이다. 밖으로 팔다리의 힘을 다하여 소금과 매실처럼 간을 맞추고注+서경書經》 〈상서商書 열명說命 〉에 고종高宗부열傅說에게 명하기를 “만약 간을 맞춘 국을 만들거든 네가 소금과 매실이 되어야 한다.”라고 하였다. 쇠와 돌처럼 견고하게 되는 것은
非惟高位厚秩이라 在於禮之而已니이다
높은 지위와 많은 봉급을 주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신하를 예우하는 데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옛날에 주 문왕周 文王봉황지허鳳凰之墟에서 노닐 때 버선 끈이 풀어졌는데 좌우를 둘러보니 부릴 만한 사람이 없어 자신이 버선 끈을 맸습니다.
豈周文之朝 盡爲俊乂 聖明之代 獨無君子者哉
어찌 주나라 문왕의 조정에 뛰어난 인재가 다했으며 성스럽고 밝은 시대에 유독 군자가 없어서였겠습니까?
但知與不知 禮與不禮耳니이다
다만 알아주고 알아주지 못함과 예우하고 예우하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是以伊尹 有莘之媵臣이요 韓信 項氏之亡命이로대
이 때문에 이윤伊尹유신씨有莘氏잉신媵臣이었고, 한신韓信항우項羽를 떠난 망명자였는데,
殷湯 致禮하여 定王業於南巢하고 漢祖 登壇하여 成帝功於垓下하니
은 탕왕殷 湯王이 이윤에게 예의를 극진히 하여 왕업을 남소南巢에서 정하고 한 고조漢 高祖가 한신을 단에 올리는 예를 차려 대장군으로 삼아 황제의 공적을 해하垓下에서 이루었습니다.
若夏桀 不棄於伊尹하고 項羽 垂恩於韓信이런들 寧肯敗已成之國하여 爲滅亡之虜乎注+ 是以伊尹……爲滅亡之虜乎:媵, 音. 垓, 音該. 伊, 姓, 尹, 字也. 伊尹, 名摯, 湯三聘之, 遂佐湯伐桀, 放桀於南巢之地. 有莘, 國名. 送女曰媵. 湯妃, 有莘氏之女也. 史記謂“伊尹欲行道以致君而無由, 乃爲有莘氏之媵臣說(세)湯, 致於王道.” 蓋戰國時有爲此說者. 韓, 姓, 信, 名也. 淮陰人. 數(삭)以策干項羽, 羽弗聽, 信亡歸漢. 高祖用蕭何言, 於是擇日齋戒, 設壇場, 拜信爲大將. 後圍羽於垓下之地.
만약 하 걸왕夏 桀王이 이윤을 버리지 않았고 항우가 한신에게 은혜를 베풀었다면 어찌 이미 이룬 나라를 패망시켜서 멸망한 포로가 되었겠습니까?注+(딸린 하인)은 이다. (땅 이름)이다. 이고 이다. 이윤伊尹은 이름이 이다. 탕왕湯王이 세 번 이윤을 찾아가 초빙하자 이윤이 마침내 탕왕湯王을 도와 걸왕桀王을 치고 걸왕을 남소南巢 지역으로 추방하였다. 유신有莘은 나라 이름이다. 딸에게 딸려 보내는 사람을 이라고 한다. 탕왕의 유신씨有莘氏의 딸이다. 《사기史記》 권3 〈은본기殷本紀〉에 “이윤伊尹를 행하여 훌륭한 임금을 만들고자 하였으나 방법이 없자, 마침내 유신씨有莘氏잉신媵臣이 되어 탕왕을 설득하여 왕도王道에 이르게 하였다.”라고 하니, 아마도 전국시대에 이런 말을 하는 자들이 있었다. 이고 은 이름이니, 회음淮陰 사람이다. 자주 계책을 내어 항우項羽에게 써주기를 요구했지만 항우가 들어주지 않자, 한신은 도망하여 나라로 갔다. 고조高祖소하蕭何의 말을 써서 이에 날을 택하여 재계를 하고 마당에 을 설치하고 한신을 임명하여 대장군으로 삼았다. 뒤에 해하垓下 지역에서 항우를 포위하였다.
又微子 骨肉也어늘於宋하고 箕子 良臣也어늘 陳洪範於周한대 仲尼稱其仁하시니 莫有非之者注+ 又微子骨肉也……莫有非之者:微箕, 二國名, 子, 爵也. 微子, 紂之庶兄, 諫紂不聽, 遂去之. 武王克商, 封微子於宋. 箕子, 紂之諸父, 諫紂不聽, 被囚爲奴. 武王卽位, 訪之, 箕子爲陳洪範九疇. 論語曰 “微子去之. 箕子爲之奴, 比干諫而死. 子曰, ‘殷有三仁焉.’”
미자微子나라의 골육이었는데 주나라에서 주는 나라 제후 책봉을 받았고 기자箕子는 은나라의 어진 신하였는데 주나라에 홍범구주洪範九疇를 진술하였으나 공자孔子가 그들을 이라고 말하였으니, 그것을 그르다고 한 자가 없었습니다.注+는 두 나라 이름이다, 는 작위이다. 미자微子주왕紂王서형庶兄인데 주왕紂王에게 간언하였다가 듣지 않자 마침내 떠났다. 무왕武王나라를 이기고 미자微子나라에 봉하였다. 기자箕子주왕紂王제부諸父(백숙부)인데 주왕紂王에게 간언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감옥에 갇혀 노예가 되었다. 무왕武王이 즉위하여 기자를 찾아가니, 기자가 홍범구주洪範九疇를 진술하였다. 《논어論語》 〈미자微子〉에 “미자微子는 떠나가고 기자箕子는 종이 되고 비간比干은 간언하다가 죽었다.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나라에 세 명 인자仁者가 있었다.’라고 하였다.”
禮記稱魯穆公 問於子思曰注+ 魯穆公問於子思曰:穆公, 魯君, 名顯. 子思, 孔子之孫, 名伋.爲舊君反服 古歟注+ 爲舊君反服:爲, 去聲.
예기禮記》 〈단궁檀弓 〉에 말하기를 ‘노 목공魯 穆公자사子思에게 묻기를注+목공穆公나라 임금이니, 이름이 이다. 자사子思공자孔子의 손자이니, 이름이 이다. 「옛 임금을 위하여 쫓겨난 신하가 돌아와 상복을 입는 일이 옛날 예입니까?」라고注+(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하자,
子思曰 古之君子 進人以禮하고 退人以禮 故有舊君反服之禮也어니와
자사가 「옛날의 군자는 사람을 등용할 때 예로 하고 내칠 때도 예로 하였으므로 옛 임금을 위하여 돌아와 을 입는 예가 있었습니다.
今之君子 進人 若將加諸膝하고 退人 若將隊諸泉注+ 若將隊諸泉:隊, 音墜. 泉, 禮作淵, 蓋避高祖諱, 故以泉代淵.하나니 毋爲戎首 不亦善乎
지금의 군자는 사람을 등용할 때에 무릎에 올려놓듯이 환영하고 사람을 내칠 때에 연못에 떨어뜨리듯이 하니注+(떨어지다)는 이다. 은 《예기禮記》 〈단궁檀弓 〉에는 으로 되어 있다. 당 고조唐 高祖의 이름[]을 피한 것이므로 으로 을 대신한 것이다., 그들이 도적의 괴수가 되지 않는 것만도 착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又何反服之禮之有注+ 魯穆公……又何反服之禮之有:禮檀弓篇之辭.리오하고
또 어찌 돌아와 복을 입는 예절이 있겠습니까?」라고注+예기禮記》 〈단궁檀弓 〉편의 말이다. 하였다.’라고 했습니다.
제 경공齊 景公안자晏子에게 묻기를 ‘충신이 임금을 섬기는 것이 어떻습니까?’라고 하자,
晏子對曰 有難 不死注+ 有難不死:難, 去聲. 後同.하고 出亡 不送이니이다
안자가 대답하기를 ‘변난에 임금을 위해 죽지 않고注+(변란)은 거성去聲이다. 뒤에도 같다. 임금의 망명에 송별하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公曰 裂地以封之하고 䟽爵而待之注+ 䟽爵而待之:䟽, 平聲.어늘 有難 不死하고 出亡 不送 何也
경공이 말하기를 ‘땅을 분할하여 봉해주고 관직을 나누어 대우했거늘注+(나누어주다)는 평성平聲이다. 변난에 죽지 않고 망명에 송별하지 않는 것은 왜 그런 것이오?’라고 하자,
晏子曰 言而見用하면 終身無難하리니 臣何死焉이리오
안자가 대답하기를 ‘말이 쓰임을 받으면 평생 변난이 없으리니, 신하가 어찌 죽겠습니까?
諫而見納이면 終身不亡하리니 臣何送焉이리오
간언이 받아들여지면 평생 망명하지 않으리니, 신하가 어찌 송별하겠습니까?
若言不見用이어늘 有難而死 是妄死也 諫不見納이어늘 出亡而送이면 是詐忠也니이다하고
만약 말이 쓰임을 받지 못하였는데 변난에 죽으면 이는 허망한 죽음이고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망명에 송별하면 이는 거짓 충성입니다.’라고 했습니다.
春秋左氏傳注+ 春秋左氏傳曰:傳, 去聲. 春秋, 孔子所作而左氏爲傳.崔杼弑齊莊公注+ 崔杼弑齊莊公:崔杼, 齊臣崔武子也. 莊公, 名光.이어늘 晏子立於崔氏之門外러니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양공襄公 25년에注+(책)은 거성去聲이다. 《춘추春秋》는 공자孔子가 지었고 좌씨左氏을 지었다.최저崔杼제 장공齊 莊公을 죽이자注+최저崔杼나라 신하 최무자崔武子이다. 장공莊公은 이름이 이다. 안자晏子는 달려와 최자의 집 문 밖에 서 있었습니다.
其人曰 死乎
안자의 종자從者가 말하기를 「임금을 위해 죽으시렵니까?」라고 하자,
曰 獨吾君也乎哉 吾死也
안자가 말하기를 「홀로 나에게만 임금이냐! 내가 어찌 죽을 것이냐?」라고 하고,
曰 行乎
종자가 말하기를 「도망하시렵니까?」라고 하자,
曰 吾罪也乎哉 吾亡也
안자가 말하기를 「내가 죄를 지었느냐! 내가 어찌 망명할 것이냐?
故君 爲社稷死注+ 爲社稷死:爲, 去聲. 後同. 則死之하고 爲社稷亡이면 則亡之어니와
그러므로 임금이 사직社稷을 위하여 죽으면注+(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뒤에도 같다. 신하도 죽고 사직을 위하여 도망하면 신하도 도망한다.
若爲己死하고 爲己亡인댄 非其親䁥이면 誰敢任之리오하고
만약 군주가 자신만을 위하여 죽고 자신만을 위하여 도망한다면 사사로이 총애한 사람이 아니라면 누가 죽거나 도망함을 감당하겠느냐?」라고 하고,
門啓而入하여 而哭하고 興三踴而出注+ 枕尸股而哭 興三踴而出:枕, 去聲. 踴, 音勇. 事見左傳襄公二十五年.이라하고
대문이 열리자 들어가서 장공의 시체를 자기 다리에 베어 올려놓아 곡하고 일어나서 세 번 발 구르는 예를 하고 나왔다.’라고注+(베다)은 거성去聲이다. (뛰다)은 이다. 이 일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양공襄公 25년에 보인다. 하였습니다.
孟子曰 君視臣 如手足하면 臣視君 如腹心하고
맹자孟子》 〈이루離婁 〉에 이르기를 ‘임금이 신하 보기를 손과 발처럼 여기면 신하는 임금 보기를 배와 심장처럼 여기고,
君視臣 如犬馬하면 臣視君 如國人하고
임금이 신하 보기를 개와 돼지처럼 여기면 신하는 임금 보기를 나라 사람처럼 여기고,
君視臣 如糞土하면 臣視君 如寇讎注+ 孟子曰……臣視君如寇讎:孟子告齊宣王之辭.라하니
임금이 신하 보기를 더러운 흙처럼 여기면 신하는 임금 보기를 원수처럼 여긴다.’라고 하니注+맹자孟子》 〈이루離婁 〉에 맹자孟子제 선왕齊 宣王에게 고한 말이다.,
雖臣之事君 無二志 至於去就之節하여는 當緣恩之厚薄이니
비록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데 두 마음이 없으나 떠나감과 나아감의 절차에 있어서는 은혜의 후하고 박한 것에 기인할 것이니,
然則爲人主者注+ 然則爲人主者:爲, 如字. 後同. 安可以無禮於下哉리잇고
그렇다면 임금이 된 자가注+(되다)는 본래 음의音義대로 독해한다. 뒤에도 같다. 어찌 아랫사람에게 예가 없을 수 있겠습니까?
역주
역주1 以石投水……以水投石 : 의견이 서로 맞아 상대방에게 수용되는 경우와 의견이 서로 맞지 않아 상대방에게 수용되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三國 魏나라 李康의 《運命論》에 “張良이 黃石의 符命을 얻어서 《三略》의 말을 외워 여러 호걸들에게 유세하였으나 그 말이 물을 바위에 던져 붓는 것과 같아서 받아들이는 이가 없었으나, 漢 高祖를 만나게 되어서는 그 말이 바위를 물에 던져 넣는 것과 같아서 어기는 것이 없었다.[張良受黃石之符 誦三略之說 以遊於群雄 其言也 如以水投石 莫之受也 及其遭漢祖 其言也 如以石投水 莫之逆也]”라고 하였다.
역주2 昔周文王遊於鳳凰之墟……乃自結之 : 《韓非子》 〈外儲說 左下〉에 보인다.
역주3 茅土 : 제후 봉작을 말한다. 천자가 제후를 봉할 때에는 그 방면의 色土, 즉 동방은 靑土, 서방은 白土, 남방은 赤土, 북방은 黑土를 꾸러미에 싸서 주어 社를 세우게 하였다.
역주4 齊景公問於晏子曰……是詐忠也 : 《晏子春秋》 〈內篇 問上〉에 보인다.
역주5 枕尸股 : 《春秋左氏傳》 襄公 25년의 杜預 註에 “莊公의 시체를 자기 다리에 베어놓았다.[以公尸枕己股]”라고 풀이하였다.
역주6 (胤)[孕] : 저본에는 ‘胤’으로 되어 있으나, 字典에 의거하여 ‘孕’으로 바로잡았다.

정관정요집론(2)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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