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貞觀政要集論(3)

정관정요집론(3)

범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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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정요집론(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河間王孝恭注+① 河間王孝恭:太祖之子也. 佐高祖, 多進圖策, 獨存方面功, 寬恕退讓, 太宗親重之, 宗室莫比. 武德初 封爲趙郡王하고 累授東南道行臺尙書左僕射하니 孝恭旣討平蕭銑輔公祏하고 遂領江淮及嶺南北하여 皆統攝之하여 專制一方하니 威名甚著
累遷禮部尙書 孝恭性惟退讓하여 無驕矜自伐之色이라 時有特進江夏王道宗 尤以將略馳名하고 兼好學注+② 尤以將略馳名 兼好學:將‧好, 竝去聲.하여 敬慕賢士하고 動修禮讓이라
太宗竝加親待하니 諸宗室中 惟孝恭道宗 莫與爲比하니 一代宗英云이러라
【集論】愚按 自古國家之將興也 天必生英傑奇偉之才於其子弟族屬之間 所以昌大其門戶하여 而光啓其運祚也
周之興也 有周公康叔하고 漢之興也하고 降及魏晉六朝하여도 蓋莫不然이라
하여 本支尤盛하니
孝恭之威名 與李靖相亞하고 道宗之將略 與李勣齊肩이로되 又能好學習禮하고 退讓不伐하니 求之布素之士하여도 有不可多得者
雖未可方之 其亦康叔朱虛之流輩歟인저 嗚呼 盛哉로다


하간왕河間王 이효공李孝恭注+태조太祖의 아들이다. 고조高祖를 도와서 계책을 올린 것이 많았고 홀로 한 방면에 공이 있었으며 너그러우며 용서하고 물러나며 사양하니, 태종이 그를 친애하고 중히 여기기를 종실에 비교할 자가 없었다. 武德 초년에 조군왕趙郡王에 봉해지고 여러 번 동남도행대상서좌복사東南道行臺尙書左僕射가 되었다. 이효공은 소선蕭銑보공석輔公祏 을 토벌하여 평정하고 나서 마침내 강회江淮영남북嶺南北을 점령하여 모두 통솔하여 한 방면을 마음대로 제어하니, 위엄과 명성이 매우 높았다.
여러 번 예부상서禮部尙書가 되었으나, 이효공은 성품이 겸양하여 교만하거나 스스로 자랑하는 기색이 없었다. 당시에 특진特進 강하왕江夏王 이도종李道宗병략兵略으로 유명하고, 또한 학문을 좋아하여注+(장수)과 (좋아하다)는 모두 거성去聲이다. 현명한 인사를 존경하고 흠모하며, 늘 예의와 겸양을 닦았다.
태종太宗은 이들을 모두 친밀하게 대우해주자 여러 종실 중에 이효공과 이도종에게 함께 비할 자가 없었으니, 한 시대의 종실의 영걸이라 하였다.
내가 살펴보건대, 예부터 국가가 장차 흥성하려 할 적에는 하늘이 반드시 그 자제와 종족의 사이에서 영걸스럽고 뛰어난 인재를 태어나게 하여 그 문호를 번창하게 하여 그 길운은 밝게 열어주는 것이다.
나라의 흥성에는 주공周公강숙康叔이 있었고, 나라의 흥성에는 주허朱虛동평東平이 있었고, 육조六朝에 내려가서도 그렇지 않은 적이 없었다.
나라가 진양晉陽에서 일어나서 본손과 지손이 더욱 성대해졌으니,
이효공李孝恭의 위엄과 명성은 이정李靖에 버금갈 정도였고 이도종李道宗병략兵略이적李勣과 어깨를 나란히 하였으나, 또 배우기를 좋아하며 예를 익히고 겸양하며 자랑하지 않으니 포의의 선비 중에 찾아보아도 많이 얻지 못할 것이다.
비록 주공周公의 재주의 아름다움에는 견주지 못하더라도 그 또한 강숙‧주허의 같은 부류의 사람일 것이다. 아, 성대하다.


역주
역주1 朱虛 : 漢나라 劉章의 봉호. 惠帝의 이복형으로, 太尉 周勃과 함께 呂氏를 몰아내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漢書 권38 高五王傳》
역주2 東平 : 後漢 光武帝의 第8子인 劉蒼의 봉호로, 明帝의 아우이다. 광무제에게 “선한 일을 하는 것이 가장 즐겁다.[爲善最樂]”라고 대답하여 칭찬을 받았다. 《後漢書 권42 東平憲王蒼列傳》
역주3 唐起晉陽 : 唐 高祖 李淵이 留守太原領晉陽宮監으로 있을 때 隋나라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것을 말한다.
역주4 周公之才之美 : 《論語》 〈泰伯〉에 보인다.

정관정요집론(3)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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