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貞觀政要集論(4)

정관정요집론(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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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정요집론(4)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彦博又曰 臣聞聖人之道 無所不通이라하니
온언박溫彦博이 또 말하였다. “신이 듣건대 성인聖人의 도는 통하지 않음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突厥餘魂 以命歸我어늘 收居內地하여 敎以禮法하고 選其酋首注+⑦ 選其酋首:酋, 慈由切, 後同.하여 遣居宿衛
돌궐突厥의 살아남은 이들이 목숨을 걸고 우리에게 귀순하였으니, 그들을 거두어 내지內地에 살게 하여 예법을 가르치고, 추장을 선발하여注+(우두머리)는 의 반절이다. 뒤에도 같다. 궁성宮城 숙위宿衛로 보내면
畏威懷德하리니 何患之有리오
폐하의 위엄을 두려워하고 은덕을 마음에 간직할 것이니, 무슨 우환이 있겠습니까.
且光武居南單于於內郡注+⑧ 且光武居河南單于於內郡:單, 音蟬.하여 以爲漢藩翰하니 終于一代 不有叛逆이니이다
후한 광문제後漢 光武帝남흉노南匈奴 선우單于내군內郡(내지內地)에 살게 하여注+(오랑캐 임금)은 이다. 후한의 울타리로 삼았으니, 후한 일대一代가 다 끝나도록 반역하지 않았습니다.”
又曰 隋文帝勞兵馬하고 費倉庫하여 樹立可汗하여 令復其國注+⑨ 令復其國:令, 平聲, 後同.이나
온언박이 또 말하였다. “수 문제隋 文帝병마兵馬를 수고롭게 하고 창고倉庫의 물자를 소모하여 계민가한啓民可汗을 세워주어 그의 국가(돌궐)를 회복하게 하였으나注+(하여금)은 평성平聲이다. 뒤에도 같다.,
後孤恩失信하여 圍煬帝於鴈門注+⑩ 圍煬帝於鴈門:隋開皇二十年, 文帝以突厥突利爲啓民可汗, 妻以義成公主. 大業十一年, 煬帝巡北邊, 始畢可汗帥騎數十萬謀襲帝. 義成公主遣使告變, 帝馳入鴈門, 突厥圍鴈門, 急攻之, 帝泣, 目盡腫. 後公主以計解圍.하니이다
후에 은혜와 신의를 저버리고 수 양제隋 煬帝안문鴈門에서 포위하였습니다.注+나라 개황開皇 20년(600)에 문제文帝돌궐突厥돌리突利계민가한啓民可汗으로 삼아 의성공주義成公主를 시집보냈다. 대업大業 11년(611)에 양제煬帝북변北邊을 순시하였는데, 시필가한始畢可汗이 기병 수십만을 거느리고 양제를 습격할 것을 모의하였다. 의성공주義成公主가 사신을 보내 고변하자 양제가 안문鴈門으로 달려 들어갔다. 돌궐이 안문을 포위하고 급히 공격하니 양제가 울어서 눈두덩이가 온통 부었다. 후에 의성공주가 계책을 세워 포위를 풀었다.
今陛下仁厚 從其所欲하여 河南河北 任情居住하고 各有酋長注+⑪ 各有酋長:長, 音掌.하여 不相統屬이면
지금 인후하신 폐하께서 그들이 하고자 하는 것을 따라서 하남河南하북河北에 마음대로 살게 하고 각각 추장酋長을 두어서注+(우두머리)은 이다. 서로 예속되지 않게 하면
力散勢分하리니 安能爲害리잇고
힘이 흩어지고 세력이 나누어지게 될 것이니 어찌 해가 될 수 있겠습니까.”
역주
역주1 (河) : 저본에는 ‘河’가 있으나, 《舊唐書》 〈突厥傳 上〉에 의거하여 衍文으로 처리하였다.

정관정요집론(4)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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