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貞觀政要集論(3)

정관정요집론(3)

범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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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정요집론(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貞觀十四年 詔曰 梁皇侃注+① 梁皇侃:苦旦切. 皇, 姓, 侃, 名. 明三禮, 爲散騎侍郞. 一作皇甫侃者非.褚仲都注+② 褚仲都:明周易. 周熊安生注+③ 周熊安生:字植之, 長樂人, 爲國子博士.沈重注+④ 沈重:字子厚, 通春秋群書, 爲五經博士. 陳沈文阿注+⑤ 陳沈文阿:字國衛, 通三禮‧春秋, 爲五經博士.周弘正注+⑥ 周弘正:字思行, 晉周覬之後, 爲國子博士.張譏注+⑦ 張譏:字直言, 武城人, 爲國子博士. 隋何妥注+⑧ 隋何妥:字栖鳳, 西城人, 爲國子祭酒.劉炫注+⑨ 劉炫:字光明, 河間人, 爲太學博士. 竝前代名儒 經術可紀
정관貞觀 14년(640)에 조칙을 내렸다. “나라 황간皇侃注+(간)은〉 의 반절이다. 은 성이고 은 이름이다. 삼례三禮(《예기禮記》‧《주례周禮》‧《의례儀禮》)에 밝았고 산기시랑散騎侍郞을 역임했다. 황보간皇甫侃으로 쓴 판본이 있는데 잘못이다.저중도褚仲都注+저중도褚仲都는〉 《주역周易》에 밝았다.나라 웅안생熊安生注+웅안생熊安生의〉 식지植之이고 장락長樂 사람이며 국자박사國子博士가 되었다.침중沈重注+침중沈重은〉 자후子厚이고 《춘추春秋》 등 여러 경전에 능통했고 오경박사五經博士가 되었다.나라 심문아沈文阿注+심문아沈文阿는〉 국위國衛이고 삼례三禮와 《춘추春秋》에 능통했으며 오경박사五經博士가 되었다.주홍정周弘正注+주홍정周弘正은〉 사행思行이고 나라 주기周覬의 후손이며 국자박사國子博士가 되었다.장기張譏注+장기張譏는〉 직언直言이고 무성武城 사람이며 국자박사國子博士가 되었다.나라 하타何妥注+하타何妥는〉 서봉栖鳳이고 서성西城 사람이며 국자좨주國子祭酒가 되었다.유현劉炫注+유현劉炫은〉 광명光明이고 하간河間 사람이며 태학박사太學博士가 되었다.은 모두 지난 시대의 유명한 유학자로 경학經學의 조예가 기록할 만하고,
加以所在學徒 多行其講疏하니 宜加優賞하여 以勸後生하고 可訪其子孫見在者注+⑩ 可訪其子孫見(현)在者:見, 音現.하여 錄姓名奏聞하라
이에 더하여 각지의 학도들이 그 강해와 주소注疏를 많이 채용하고 있으니 의당 넉넉한 상을 내려 후생을 권장해야 하고 현재 남아 있는 그들의 자손을 찾아注+(현재)은 이다. 성명을 적어 보고하도록 하라.”
二十一年 詔曰 左丘明注+⑪ 左丘明:左丘明, 見於論語. 唐啖‧趙氏謂 “孔子所言左丘明, 在孔子前, 則左氏傳, 非丘明所爲, 亦有姓左而不得其名者, 爲此傳也.” 考姓氏書曰 ‘蓋左丘姓, 而名明, 傳春秋者乃左氏耳.’” 然則太宗詔從祀諸儒, 以左丘明爲首, 而寘於公穀之列者, 蓋漢晉以來相傳誤, 以左氏爲左丘明也.卜子夏注+⑫ 卜子夏:名, 商, 孔子弟子, 以文學稱, 序詩, 傳易禮春秋.公羊高注+⑬ 公羊高:公羊, 姓, 高, 名, 子夏弟子. 傳春秋.穀梁赤注+⑭ 穀梁赤:穀梁, 姓, 赤, 名, 子夏弟子. 傳春秋.伏勝注+⑮ 伏勝:濟南人, 爲秦博士. 漢文時, 求治尙書者, 聞伏生能治之, 欲召, 時年九十餘, 詔使往受之. 秦時焚書, 伏生藏於屋壁, 兵起流亡, 獨得二十九篇, 敎于齊魯之間.高堂生注+⑯ 高堂生:魯人, 前漢爲博士. 得儀禮十七篇, 傳於世. 爲漢言禮宗.戴聖注+⑰ 戴聖:前漢爲九江太守, 得禮記三十六篇, 傳於世, 號小戴記.毛萇注+⑱ 毛萇:趙人, 爲漢河間獻王博士, 治詩.孔安國注+⑲ 孔安國:孔子之後, 漢武帝時爲博士, 至臨淮太守, 爲古文尙書之宗.劉向注+⑳ 劉向:字子政, 漢楚元王之後. 成帝時, 爲光祿大夫, 校五經.鄭衆注+㉑ 鄭衆:後漢爲大司農卿.杜子春注+㉒ 杜子春:後漢河南人.馬融注+㉓ 馬融:字季長, 扶風人. 漢桓帝時, 爲南郡太守, 著春秋三傳異同說.盧植注+㉔ 盧植:字子幹, 後漢爲北中郞將.鄭玄注+㉕ 鄭玄:字康成, 北海人, 後漢爲大司農卿. 著易‧書‧詩‧禮‧論語‧孝經‧國語‧乾象曆‧天文等書.服虔注+㉖ 服虔:字子愼, 後漢爲九江太守.何休注+㉗ 何休:字邵公, 後漢爲諫議大夫, 解春秋公羊傳‧孝經‧論語等書.王肅注+㉘ 王肅:字子雍, 三國時爲魏太常蘭亭侯, 注孔子家語.王弼注+㉙ 王弼:字輔嗣, 三國時爲魏尙書郞, 注易.杜預注+㉚ 杜預:字元凱, 晉惠帝時爲鎭南大將軍當陽侯, 注春秋左氏傳.范寗注+㉛ 范寗:西晉時爲豫章太守, 注春秋穀梁傳.等二十有一人 竝用其書하여 垂於國冑하고 旣行其道하니 理合褒崇이라
정관 21년(647)에 조칙을 내렸다. “좌구명左丘明注+좌구명左丘明은 《논어論語》에 보이는데 정자程子(정이程頤)가 “옛날의 명사이다.”라고 했다. 나라 담조啖助조광趙匡이, “공자孔子가 말한 좌구명이 공자 이전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은 좌구명이 저작이 아닌 것이고, 또한 그 성이 좌씨左氏인데 그 이름은 알 수 없는 사람이 이 을 지은 것이다.”라고 했다. 혹자가 주자朱子에게 이에 대해 묻자, 주자가 말하기를, “알 수 없다. 선인先人(선친)의 벗 등저작鄧著作(등명세鄧名世)이 지은 성씨를 고증한 책(《고금성씨서변정古今姓氏書辯正》)에서, ‘좌구左丘는 성이고 이름은 인데 《춘추春秋》에 을 쓴 사람은 바로 좌씨이다.’라고 했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태종太宗이 조칙을 내려 제유諸儒들을 사당에 종사從祀할 때 좌구명을 우두머리로 삼아 공양고公羊高곡량적穀梁赤과 나란히 둔 것은 나라와 나라 이래의 오류를 그대로 이어받아 좌씨를 좌구명으로 본 것이다.복자하卜子夏注+복자하卜子夏는〉 이름은 이고 공자孔子의 제자이며 문학文學에 뛰어나다는 평을 들었다. 《시경詩經》을 전해 서술하고, 《주역周易》‧《예기禮記》‧《춘추春秋》에 을 지었다.공양고公羊高注+공양고公羊高는〉 공양公羊이고 는 이름이며 자하子夏의 제자이다. 《춘추春秋》에 을 지었다.곡량적穀梁赤注+곡량적穀梁赤은〉 곡량穀梁이고 은 이름이며 자하子夏의 제자이다. 《춘추春秋》에 을 지었다.복승伏勝注+복승伏勝은〉 제남濟南 사람이며 나라 때 박사博士가 되었다. 한 문제漢 文帝 때에 《상서尙書》 전공자를 찾는데, 복승이 이를 전공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르려 했으나 당시 나이가 90여 세여서 조칙으로 사람을 보내 가르침을 받아오도록 했다. 나라 때 책을 불태우자 복승이 집안 벽 사이에 감춰두었는데 병란이 일어 유실되고 29편만 찾아내 나라와 나라 등지에서 가르쳤다.고당생高堂生注+고당생高堂生은〉 나라 사람이며 전한前漢박사博士가 되었다. 《의례儀禮》 17편을 얻어 세상에 전했으며 나라 때 의 최고 권위자라는 말을 들었다.대성戴聖注+대성戴聖은〉 전한前漢구강태수九江太守가 되었으며 《예기禮記》 36편을 얻어 세상에 전했는데, 이를 《소대례기小戴禮記》라 부른다.모장毛萇注+모장毛萇은〉 나라 사람이며 나라 하간헌왕河間獻王박사博士가 되었으며 《시경詩經》을 전공했다.공안국孔安國注+공안국孔安國은〉 공자孔子의 후예로 한 무제漢 武帝박사博士가 되고 임회태수臨淮太守까지 역임했으며 《고문상서古文尙書》의 최고 권위자가 되었다.유향劉向注+유향劉向은〉 자정子政이며 나라 초원왕楚元王의 후예이다. 성제成帝광록대부光祿大夫가 되었고 오경五經을 교정했다.정중鄭衆注+정중鄭衆은〉 후한後漢대사농경大司農卿이 되었다.두자춘杜子春注+두자춘杜子春은〉 후한後漢 하남河南 사람이다.마융馬融注+마융馬融은〉 계장季長이고 부풍扶風 사람이다. 한 환제漢 桓帝 때에 남군태수南郡太守가 되었고 《춘추삼전이동설春秋三傳異同說》을 저작했다.노식盧植注+노식盧植은〉 자간子幹이며 후한後漢북중랑장北中郞將이 되었다.정현鄭玄注+정현鄭玄은〉 강성康成으로 북해北海 사람이며 후한後漢대사농경大司農卿이 되었다. 《주역周易》‧《상서尙书》‧《모시毛诗》‧《삼례三禮》‧《논어論语》‧《효경孝經》‧《국어國語》‧《건상력乾象曆》‧《천문칠정론天文七政論》 등의 책을 저술했다.복건服虔注+복건服虔은〉 자신子愼이며 후한後漢구강태수九江太守가 되었다.하휴何休注+하휴何休는〉 소공邵公이며 후한後漢간의대부諫議大夫가 되었다.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효경孝經》‧《논어論語》 등의 책을 주해했다.왕숙王肅注+왕숙王肅은〉 자옹子雍이며 삼국시대三國時代나라의 태상太常 난정후蘭亭侯가 되었고 《공자가어孔子家語》를 주석했다.왕필王弼注+왕필王弼은〉 보사輔嗣이고 삼국시대三國時代나라의 상서랑尙書郞이 되었으며 《주역周易》을 주석했다.두예杜預注+두예杜預는〉 원개元凱이며 진 혜제晉 惠帝진남대장군鎭南大將軍 당양후當陽侯가 되었으며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을 주석했다.범녕范寗注+범녕范寗은〉 서진시대西晉時代예장태수豫章太守가 되었고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을 주석했다. 등 21인은 그들의 책을 모두 채택하여 국주國冑(제왕과 귀족의 자제)들에게 교육시키고 있고, 이미 그들의 학설을 시행하고 있으니 의당 포상하고 존숭해야 한다.
自今有事於太學이어든 可竝配享尼父廟堂注+㉜ 可竝配享尼父廟堂:父, 音甫, 魯哀公誄孔子之稱.하라하니 其尊儒重道如此하다
지금부터 태학太學에 제사를 거행하는 일이 있을 때면 이보尼父(공자孔子)의 사당에 배향하도록 하라.”注+(보)는 이니, 〈이보尼父는〉 노 애공魯 哀公공자孔子를 애도하는 글에서 쓴 호칭이다. 태종太宗유학儒學을 존숭하고 유도儒道를 중시함이 이러했다.
【集論】唐氏仲友曰 梁周陳隋之際 吾道窮矣 儒於此時 猶守先王之經하여 有如劉炫之徒 至於流離饑餓로되 而不悔其所發明하여 有以資後學之講習이라
당중우唐仲友가 말하였다. “의 시대에는 우리의 가 곤궁에 처했었다. 하지만 유학자는 이런 시대에도 선왕先王의 경전을 수호하여 유현劉炫과 같은 이들이 방랑 생활을 하며 굶어 죽을 상황에서도 경전의 의미를 밝히는 것을 후회하지 않아서 후학의 강론과 학습에 보탬이 되게 했다.
太宗 能引擢其子孫以報之하고 至於左丘明等二十一人하얀 用其書하고 行其道者 則又配享於夫子以褒大之
태종太宗이 그들의 자손을 발탁해서 보답하고 좌구명左丘明 등 21인에 대해선 그들의 책을 채용하고 그들의 를 시행하니 또 부자夫子(공자孔子)의 사당에 배향하여 포상하고 존대했다.
先儒子孫 蒙引擢之恩하고 又有得配夫子之祀者하니 則今之諸儒 能不加勉 又足爲後世故實이니 太宗二擧 豈不美哉
선유先儒의 자손들이 발탁되는 은혜를 입고 또 부자夫子의 제사에 배향되었으니 지금의 유자儒者들이 더욱더 힘쓰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또 후세의 모범이 되기에도 충분하니, 태종太宗의 두 가지 조치가 어찌 훌륭하지 않은가.
愚按 太宗 旣以夫子爲先聖하여 立廟堂於國學하고 後數年 復優異梁周陳隋名儒之子孫하니 雖其經術學行 未探聖賢之閫奧 然亦可以風厲天下矣
내가 살펴보건대, 태종太宗부자夫子선성先聖으로 삼고서 국자학國子學에 사당을 세우고 그로부터 수년 뒤에 다시 명유名儒의 자손들을 우대했으니 비록 그들의 경학經學학행學行성현聖賢의 내면까지 탐구하진 못했다고 해도 천하天下를 권면할 수 있는 것이다.
又後數年 復詔以左丘明等二十一人配享孔廟하니
그로부터 수년 뒤에 또다시 조칙을 내려, 좌구명左丘明 등 21인을 공자孔子의 사당에 배향케 했다.
左氏諸儒 注釋經義하고 考論制度하여 使後世有所依據하니 誠足以當此하여 遂爲不刊之典이라
좌씨左氏 등의 유학자들이 경전의 의미를 주석하고 제도를 살펴 논평하여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의지하고 근거할 바가 있게 했으니, 참으로 이 질사秩祀에 해당되기에 충분하여 마침내 사라지지 않을 전칙典則으로 삼은 것이다.
太宗是擧 亦前帝王所未及行也 夫儒之近者 恩沾於子孫하고 儒之遠者 禮秩於配享하니 太宗之崇儒重道 顧不美歟
태종의 이 조치는 또한 이전의 제왕들이 미처 시행하지 못한 것이다. 근대의 유학자들은 자손에게 은혜가 미쳤고 옛날의 유학자들은 배향配享으로 질사秩祀를 지내게 되었으니 태종이 유학자를 존숭하고 그 를 중시한 것이 훌륭하지 않는가.
역주
역주1 程子謂古之聞人 : 《論語》 〈公冶長〉 제24장 朱熹의 《集註》에 보인다.
역주2 或問朱子……傳春秋者乃左氏耳 : 《四書或問》 권10 ‘或問丘明非傳春秋者耶’에 나오는 내용이다.
역주3 鄧著作 : 宋나라 때 著作佐郞을 역임한 鄧名世를 가리킨다.
역주4 秩祀 : 예의에 의거하여 등급을 나눠 제례를 거행하는 것이다.

정관정요집론(3)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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