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貞觀政要集論(1)

정관정요집론(1)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정관정요집론(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府中多英俊이로대 被外遷者衆하여 太宗患之하니 記室房玄齡曰 府僚去者 雖多 蓋不足惜이요
杜如晦 聰明識達하여 王佐才也 若大王守藩端拱이어든 無所用之어니와 必欲經營四方이어든 非此人이면 莫可니이다하다
太宗 自此彌加禮重하여 寄以心腹하여 遂奏爲府屬하여 嘗參謀帷幄이라
軍國多事어늘 剖斷如流하여 深爲時輩所服이라
累除天策府從事中郞注+武德四年, 高祖以秦王功高, 古官號不足以稱, 乃加號天策上將, 位在王公上, 開府置官屬. 從事中郞, 其屬職也.하여 兼文學館學士注+太宗爲天策上將, 亂稍平, 乃嚮儒. 宮城西作文學館, 收聘賢才, 詢訪討論. 學士, 其職也.


당시에 진왕부秦王府에는 뛰어난 인물들이 많았지만 외직으로 전임되는 자들이 많아 태종太宗이 걱정을 하자, 기실記室 방현령房玄齡이 말하기를 “진왕부의 관리들 중에 떠나는 자들이 비록 많지만, 이는 애석해할 만한 일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두여회杜如晦는 총명하고 식견이 뛰어나 왕을 보좌할 만한 인재이니, 만일 대왕께서 번진藩鎭(제후 봉국)을 지키고 팔짱 끼고 안일하게 지내려 한다면 그를 쓰지 않아도 되지만, 대왕께서 기필코 사방을 경영하려고 하신다면 이 사람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라고 하였다.
태종은 이로부터 더욱 예우하고 존중하여 심복으로 생각하여 드디어 주청하여 진왕부 속관으로 삼아 일찍이 휘하에서 모의에 참여하도록 하였다.
당시에 군무軍務국정國政이 많았는데, 판단과 처리를 물 흐르듯 명쾌히 하여 동료들에게 크게 존경을 받았다.
여러 차례 옮겨 천책부天策府 종사중랑從事中郞注+무덕武德 4년(621)에 고조高祖진왕秦王의 공이 높아서 옛 관직의 칭호로 부르기에는 부족하다고 하여 ‘천책상장天策上將’이라는 칭호를 더해주었는데, 지위는 왕공王公의 위에 있으며, 를 설치하고 관속을 두었다. 종사중랑從事中郞천책부天策府의 소속 관직이다. 임명되어 문학관文學館 학사學士注+태종太宗천책상장天策上將이 되고 난리가 점차 평정되자, 유학儒學에 마음을 두었다. 궁성 서쪽에 문학관文學館을 짓고 뛰어난 인재를 거두고 초빙하여 자문을 구하고 토론을 하였다. 학사學士는 문학관의 관직이다. 겸임했다.



정관정요집론(1) 책은 2019.06.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