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貞觀政要集論(1)

정관정요집론(1)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정관정요집론(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是時 賊寇每平 衆人競求金寶어늘 玄齡 獨先收人物하여 致之幕府하고 及有謀臣猛將하여는 與之潛相申結하여 各致死力이라
累授秦王府記室하고 兼陝東道 注+今河南等處.大行臺考功郞中注+唐制, 掌百官功過善惡之職.이라
玄齡在秦府十餘年 恒典管記
以玄齡及杜如晦注+詳見下章. 爲太宗所親禮하여 甚惡之注+惡, 烏去聲.하여 譖之高祖注+諱淵, 字叔德.하니 由是 與如晦竝遭驅斥이라
及隱太子將有變也하여는 太宗召玄齡如晦하여 令衣道士服注+令, 平聲. 衣, 去聲.하여 潛引入閤謀議
及事平 太宗入春宮注+東宮也. 武德九年六月, 太宗初爲皇太子.하여 擢拜太子左庶子注+唐制, 東宮左春坊左庶子, 掌侍從贊相禮儀駁正啓奏之職.


이때 적군이 평정될 때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앞다투어 금은보화를 찾았는데, 방현령房玄齡만은 제일 먼저 인재들을 거두어 막부幕府로 보내고 계책을 잘 내는 신하나 용맹한 장수가 있으면 그들과 은밀히 의기투합하여 각자 사력死力을 다했다.
여러 차례 진왕부秦王府기실記室에 임명되고 섬동도陝東道注+섬동도陝東道는〉 지금의 하남河南 등지이다.대행대고공낭중大行臺考功郞中注+고공낭중考功郞中은〉 나라 제도에 의하면 백관百官의 공로와 과실, 선악을 관장하는 직책이다. 겸임했다.
방현령은 진왕부에서 10여 년 동안 근무하면서 항상 문서를 담당하는 일을 맡았다.
은태자隱太子소랄왕巢剌王방현령房玄齡두여회杜如晦注+두여회杜如晦는〉 아래 장에 자세히 보인다.태종太宗에게 신임과 예우를 받는다고 하여 그들을 몹시 미워하여注+(미워하다)는 거성去聲이다.고조高祖에게 참소를 하니,注+고조高祖는〉 이고, 숙덕叔德이다. 이 때문에 방현령은 두여회와 함께 쫓겨났다.
은태자가 변란을 일으키려고 하자 태종이 방현령과 두여회를 불러 도사道士의 옷을 입고注+(하여금)은 평성平聲이다. (입다)는 거성去聲이다.합문閤門으로 잠입하도록 하여 일을 상의하였다.
변란이 평정된 후에 태종이 동궁으로注+춘궁春宮은〉 동궁東宮이다. 무덕武德 9년(626) 6월에 태종太宗이 처음으로 황태자가 되었다. 들어가서 방현령을 태자좌서자太子左庶子注+나라 제도에 의하면 동궁좌춘방東宮左春坊좌서자左庶子는 곁에서 모시며 예의禮儀를 돕고 올바르게 바로잡아 인도하고 아뢰는 것을 관장하는 직책이다. 발탁하였다.


역주
역주1 隱太子 : 唐 高祖 李淵의 장남이자 唐 太宗의 형인 李建成이다. 隱太子는 그가 죽고 난 뒤 복위된 칭호이다.
역주2 巢剌(랄)王 : 唐 太宗의 아우인 李元吉이다. 巢剌王은 그의 爵號이다.

정관정요집론(1) 책은 2019.06.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9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