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貞觀政要集論(3)

정관정요집론(3)

범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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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정요집론(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貞觀四年 太宗 以經籍去聖久遠하고 文字訛謬 詔前中書侍郞顔師古注+① 詔前中書侍郞顔師古:名, 籕, 其先琅琊人, 博學善屬文. 隋世李綱薦之, 授安養尉. 高祖入關, 謁見, 授朝散大夫, 遷中書舍人, 詔令一出其手. 貞觀中, 釐正五經, 拜祕書少監, 後撰五禮成, 進爵爲子.하여 於祕書省 考定五經하고
及功畢 復詔尙書左僕射房玄齡하여 集諸儒하여 重加詳議注+② 重加詳議:重, 平聲.하니
時諸儒傳習師說하여 舛謬已久 皆共非之하여 異端蠭起어늘
而師古 輒引晉宋已來古本하여曉答호대 援據詳明하여 皆出其意表하니 諸儒莫不歎服이러라
太宗稱善者久之하고 賜帛五百匹하고 加授通直散騎常侍注+③ 加授通直散騎常侍:晉以員外常侍與散騎常通直, 故號通直, 後世因之.하고 頒其所定書於天下하여 令學者習焉注+④ 令學者習焉:令, 平聲.하다
太宗又以文學多門章句繁雜으로 詔師古與國子祭酒孔穎達等諸儒하여 撰定五經疏義하니 凡一百八十卷이요 名曰五經正義라하고 付國學施行注+⑤ 付國學施行:舊本, 五經疏義, 另爲一章, 今合爲一章.하다
【集論】唐氏仲友曰 五經 出於煨燼之餘하여 諸儒習傳 不勝異說이라
當其竝行之初 是非當否之說 特未定也 世傳旣久하얀 其迂怪淺陋之學 稍稍堙滅이라
其能盛行於世者 如王弼之易 孔安國之書 毛鄭之詩 鄭氏之三禮 杜預之左氏 何休之公羊 范寗之穀梁 皆卓然顯行於世하고
而其他不勝異說之數十百家 爲之盡廢
然爲數子之學者 又各持異見이어늘 太宗 始命名儒하여 爲義疏以統一之하니 豈可謂無益於經哉리오
然亦崇其敎而已 未也
又曰 自漢以來 經學分析하여 傳習不同하고
重以으로 浸益訛舛이어늘 師古家世齊周하여 乃能通晉宋舊文이라 故能釐正南北之謬하니 其有益於學者 多矣
愚按 自經籍僅遺於秦火之餘 漢儒修補掇拾이나 而專門名家之學 紛紜轇轕하여 學者不勝考也
太宗興起斯文하여 命顔師古考定五經하고 孔穎達撰定疏義호대
易主於王弼하고 書主於安國하고 詩主於毛鄭하고 三禮主於康成하고 杜預之左傳 何休之公羊 范寗之穀梁
皆卓然顯行於世하고 而其他數十百家盡廢하니 唐之疏義 可謂有功於經矣
然嘗論之컨대 古者 易有數家어늘 自唐以王弼爲正으로 而秦漢象數之學 晦矣
古者 書有數家어늘 自唐以安國爲正으로 而古文今文之本 亂矣
古者 詩書之序 不附於正經하고 易之十翼 不附於爻彖이어늘 自唐之疏義旣出 而經傳殽亂하여 不可復考矣
由此論之컨대 則明六經之道者 疏義也 晦六經之道者 亦疏義也 雖然이나 名物度數之詳 字義音釋之備 毫分縷析하여 使後世有考焉하니 此則其功之不可誣者也


정관貞觀 4년(630)에 태종太宗경적經籍성인聖人이 살던 시대와의 거리가 오래되고 문자에 오류가 있다는 이유로 중서시랑中書侍郞 안사고顔師古에게 조칙을 내려注+안사고顔師古는〉 이름이 이며 선조는 낭야琅琊 사람이다. 학식이 넓고 문장을 잘 지어 나라 때 이강李綱의 추천으로 안양위安養尉를 제수받았다. 당 고조唐 高祖관중關中에 들어왔을 때, 알현하자, 조산대부朝散大夫를 제수되고 뒤에 중서사인中書舍人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조칙詔勅명령命令의 문장이 모두 그 손에서 나왔다. 정관貞觀 연간에 오경五經을 정리하고 비서소감祕書少監에 임명되었으며, 뒤에 《오례五禮》를 찬술하여 완성하자, 작위가 승진되어 자작子爵이 되었다. 비서성祕書省에서 오경五經고정考定하게 하고,
그 일을 마치자 다시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 방현령房玄齡에게 조칙을 내려 제유諸儒들을 모아 다시 상세한 논의를 진행하게 하였다.注+(거듭)은 평성平聲이다.
당시 제유諸儒들이 스승의 학설만을 전수받고 익히며 오류를 답습해온 것이 오래된 탓에 모두들 안사고를 비난하여 각기 다른 의견들이 여기저기서 일자,
안사고가 이래의 고본古本을 인용하여 판본版本에 의해 분명하게 대답하였는데 상세한 근거를 대어 모두 그들의 의표를 찌르니, 제유諸儒들이 탄복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태종이 한참 동안 훌륭하다고 일컬은 뒤, 500필을 하사하고 통직산기상시通直散騎常侍를 더 제수한 뒤注+나라는 원외상시員外常侍산기散騎가 항상 함께 숙직했으므로 통직通直이라 불렀는데, 후세에도 이를 그대로 따랐다. 그가 고정考定한 책을 천하에 반포하여 학자들에게 익히게 했다.注+(하여금)은 평성平聲이다.
태종이 또다시 학계에 문파가 많고 장구章句가 복잡하다는 이유로 안사고顔師古국자좨주國子祭酒 공영달孔穎達제유諸儒들에게 조칙을 내려 오경五經소의疏義를 편찬하게 했는데, 모두 180권이었다. ‘오경정의五經正義’라 명명하고, 국자학國子學에 보내 교재로 쓰게 했다.注+구본舊本에서는 ‘오경소의五經疏義’ 이하를 별도의 장으로 만들었는데, 지금 하나의 장으로 만들었다.
당중우唐仲友가 말하였다. “오경五經이 불에 태워진 뒤(분서갱유焚書坑儒)에 나와서 제유諸儒들이 익히고 전해 받은 것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이설異說이 있었다.
처음 이설들이 횡행할 땐 옳다 그르다 합당하다 아니다하는 주장이 특히 확정되지 못했지만 오랫동안 세상에 전해오게 되어서는 사리에 어긋나고 기괴하고 미천하고 비루한 학설들이 점차 소멸됐다.
세상에 널리 행해진 것은 예컨대 왕필王弼의 《주역周易》, 공안국孔安國의 《서경書經》, 모형毛亨모장毛萇정현鄭玄의 《시경詩經》, 정현鄭玄삼례三禮, 두예杜預의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하휴何休의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 범녕范寗의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 등이 모두 우뚝하게 세상에 현저히 쓰였고,
그 밖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이설들이 담긴 수십 백 의 책들은 모두 폐기되었다.
하지만 몇몇 학자들이 또다시 각기 다른 의견을 견지하자, 태종太宗이 비로소 명망 있는 유학자들에게 명을 내려 의소義疏를 만들어 통일시켰으니, 어찌 경학經學에 이익이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것은 또한 그 가르침만을 존숭했을 뿐이고 는 아직 이루지 못한 것이다.”
또 말하였다. “나라 이후로 경학經學이 나뉘어져 전해 받아 익힌 것이 다르고,
게다가 남학南學북학北學으로 나뉘면서 점점 오류가 더해졌는데, 안사고顔師古가 집안 대대로 북제北齊북주北周에 살면서 동진東晉나라의 옛 글에 능통했으므로 남학과 북학의 오류를 바로잡았으니 학자들에게 이익을 준 것이 많다.”
내가 살펴보건대, 경적經籍나라에서 불태워진 뒤에 겨우 남은 것을 나라의 유학자들이 보수하고 주워 모았으나 전문專門 명가名家의 학설이 각기 설키고 얽혀서 학자들이 이루 다 고찰할 수가 없었다.
태종太宗사문斯文(유학儒學)을 일으켜 안사고顔師古에게 명하여 오경五經고정考定하도록 하고 공영달孔穎達에게 오경五經소의疏義찬정撰定하도록 하였는데,
주역周易》은 왕필王弼을 위주로 하고, 《서경書經》은 공안국孔安國을 위주로 하고, 《시경詩經》은 모형毛亨모장毛萇정현鄭玄을 위주로 하고, 삼례三禮정강성鄭康成(정현鄭玄)을 위주로 하고, 두예杜預의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과 하휴何休의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과 범녕范寗의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이
모두 우뚝하게 세상에 현저히 쓰이게 되면서 기타 수십에서 백 개의 학파들이 모두 사라지게 되었으니, 나라의 ‘소의疏義’가 경학經學에 공로가 있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일찍이 논하건대 옛날엔 《주역周易》에 전씨田氏초씨焦氏비씨費氏 등 몇 학파가 있었으나 나라에서 왕필을 정본으로 삼으면서 진한秦漢상수학象數學이 사라졌고,
옛날엔 《서경書經》에 구양씨歐陽氏대하후大夏侯소하후小夏侯 등 몇 학파가 있었으나 나라에서 공안국을 정본으로 삼으면서 고문본古文本금문본今文本이 혼란스러워졌고,
옛날엔 《》와 《》의 정경正經에 덧붙지 않았고 《주역周易》의 효사爻辭단사彖辭에 덧붙지 않았으나 나라의 소의疏義가 출현하고 나서 이 뒤섞여 더 이상 고찰할 수 없게 되었다.
이것으로 논한다면 육경六經의 도를 밝힌 것도 소의疏義이고 육경六經의 도를 어둡게 한 것도 소의疏義이다. 그렇긴 하지만 명칭과 기준의 상세함과 자의字義음석音釋의 구비가 자세히 분석되어 후세 학자들로 하여금 참고하게 했으니 이것은 속일 수 없는 공로인 것이다.


역주
역주1 : 方版으로 古本 經書를 가리킨다.(《貞觀政要》, 三民書局, 431쪽)
역주2 南北之分 : 南北朝 시대에 經學이 南과 北 兩派로 갈린 일이다. 《詩經》‧《禮記》 이외에 南朝에서는 魏‧晉의 학문을 위주하였고, 北朝에서는 東漢의 학문을 위주하였다.
역주3 田氏焦氏費氏 : 前漢의 田何, 焦贛(一名 延壽), 費直을 가리킨다.
역주4 歐陽氏大小夏侯氏 : 歐陽氏는 歐陽高, 大夏侯氏는 夏侯勝, 小夏侯氏는 夏侯建을 가리킨다.
역주5 十翼 : 孔子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周易》의 〈彖傳 上‧下〉, 〈象傳 上‧下〉, 〈繫辭傳 上‧下〉, 〈文言傳〉, 〈序卦傳〉, 〈說卦傳〉, 〈雜卦傳〉을 가리킨다.

정관정요집론(3)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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