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貞觀政要集論(1)

정관정요집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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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정요집론(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貞觀八年 左僕射房玄齡 右僕射高士廉注+名儉, 齊淸河王岳之孫. 初隱居終南山, 武德初, 秦王領雍州牧, 擧爲治中. 及居東宮, 授右庶子. 遷益州督長史, 勵風俗有聲. 入爲吏部尙書, 拜僕射. 卒, 贈司徒. 於路 逢少府監注+少, 去聲. 唐制, 掌百工繕作之政.竇德素하여 問北門近來更何營造오커늘 德素以聞한대
太宗乃謂玄齡曰 君但知 我北門少有營造 何預君事오하니 玄齡等 拜謝러라


정관貞觀 8년(634)에 좌복야左僕射 방현령房玄齡, 우복야右僕射 고사렴高士廉注+고사렴高士廉은〉 이름이 이니, 북제北齊 청하왕淸河王 고악高岳의 후손이다. 애초에 종남산終南山은거隱居했다가 무덕武德(618~626) 초기에 진왕秦王(唐 태종太宗)이 옹주목雍州牧을 겸직할 때 천거하여 치중治中이 되었다. 태종太宗동궁東宮일 적에 우서자右庶子에 임명되었다. 익주도독장사益州都督長史로 자리를 옮겨 풍속을 바로잡았다는 명성을 들었다. 내직으로 들어와 이부상서吏部尙書가 되고 복야僕射에 임명되었다. 세상을 떠나자 사도司徒에 추증됐다. 길에서 소부감少府監注+(적다)는 거성去聲이다. 나라 제도에 의하면 백공百工수선修繕하고 제조하는 정무를 관장했다.두덕소竇德素를 만나 “북문北門에서 근래 무엇을 다시 건축하는 것이오?”라고 묻자, 두덕소가 사실대로 보고하였다.
태종太宗이 〈이러한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방현령에게 이르기를 “그대는 남아南衙의 일만 맡고 있으면 됐지 내가 북문北門에 건축하는 일이 약간 있다고 해도 그대와 무슨 관계가 있소?”라고 하니, 방현령 등이 사과를 표했다.


역주
역주1 南衙 : 唐나라 때의 宰相 官署이다. 中書省‧門下省‧尙書省이 모두 皇宮 남쪽에 있으므로 이렇게 일컬은 것이다.
역주2 [都] : 저본에는 ‘都’가 탈락되어 있으나, 《貞觀政要》(宏業書局, 1999)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정관정요집론(1) 책은 2019.06.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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