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貞觀政要集論(3)

정관정요집론(3)

범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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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정요집론(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高麗歷代逋誅하여 莫能討擊이어늘 陛下責其逆亂殺主虐人하여 親總六軍하사 問罪遼碣하시니
未經旬日 卽拔遼東하고 前後虜獲數十萬計 分配諸州하여 無處不滿하여 雪往代之宿恥注+⑤ 雪往代之宿恥:隋文帝十八年, 高麗寇遼西, 遣楊諒討之, 無功. 煬帝六年, 徵其王元入朝, 不至. 八年, 徵天下兵擊之, 帝親征攻諸城, 不下, 來護兒宇文述等大敗. 九年, 復親征, 不拔. 十年, 復討之, 徵其王入朝, 竟不至.하고 掩崤陵之枯骨注+⑥ 掩崤陵之枯骨:左傳, 僖公三十三年, 晉人及姜戎敗秦師于殽. 文公二年, 秦伯伐晉, 濟河焚舟, 取王官及郊. 晉人不出, 遂自茅津濟, 封殽尸而還.하니 比功校德하면 萬倍前王이라
此聖主所自知 微臣安敢備說이리오
且陛下仁風被于率土하시고 孝德彰於配天하시니
覩夷狄之將亡하면 則指期數歲하시고 授將帥之節度注+⑦ 授將帥之節度:將帥之將, 去聲, 後同.하면 則決機萬里하시며 屈指而候驛하시고 視景而望書하시니 符應若神하고 筭無遺策이라


고구려高句麗는 역대로 토벌을 피하여 토벌하지 못했는데, 폐하께서 개소문蓋蘇文이 반역을 꾀하여 군주를 시해하고 백성들을 잔학하게 대하는 것에 대해 질책하여 친히 6군을 인솔하여 요하遼河갈석碣石에서 그 죄를 물으셨습니다.
열흘도 되지 않아 요동遼東을 함락하였고, 전후로 수십만 명을 포로로 잡아들였습니다. 포로들을 여러 로 분배하여 포로가 넘쳐나지 않는 곳이 없어서, 나라 때 당했던 묵은 수모를 설욕하고注+수 문제隋 文帝 18년(598)에 고구려가 요서遼西를 침략하자, 양량楊諒을 보내어 토벌하였는데, 전공을 세우지 못했다. 수 양제隋 煬帝 6년(610)에 고구려왕 고원高元(영양왕嬰陽王)을 불러 입조入朝하게 하였는데 오지 않았다. 수 양제 8년에 천하의 병사들을 징발하여 고구려를 공격하였는데, 수 양제가 직접 정벌에 나서서 여러 성들을 공략하였으나 함락하지 못하고 내호아來護兒우문술宇文述 등의 장수들이 크게 패하였다. 수 양제 9년에 다시 직접 정벌하였으나 승리하지 못하였다. 수 양제 10년에 다시 정벌에 나서 고구려왕을 불러 입조하게 하였으나 끝내 오지 않았다. 효릉崤陵의 전투처럼 방치되어 썩어가는 전사자戰死者의 유골을 매장하였으니注+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희공僖公 33년에 나라가 강융姜戎과 함께 나라 군대를 효산殽山에서 쳐부수었다. 문공文公 2년에 진백秦伯나라를 공격하여 황하를 건넌 후 타고 있던 배를 불태워버리고서 왕관王官( 지명)과 ( 지명)를 빼앗았다. 그러나 진나라가 싸우러 나오지 않자, 진군秦軍모진茅津( 지명)에서 황하를 건너 지난번 효산에 버려진 전사자戰死者의 시신을 매장하고 돌아왔다., 그 공과 덕을 비교하면 전대 왕들보다 만 배가 됩니다.
이는 폐하께서 잘 아시는 것이니, 미천한 신이 어찌 감히 다 말씀드리겠습니까.
게다가 폐하의 인후한 풍모는 천하를 뒤덮고, 효성과 덕성은 하늘과 짝이 되시니,
오랑캐가 멸망하는 것을 살펴보시는 경우는 시기를 몇 년으로 지적하시고, 장수에게 부절을 주는 경우는注+장수將帥(장수)은 거성去聲이다. 뒤에도 같다. 만 리에서 기미를 결정하시며, 손꼽아가면서 파발마의 보고를 기다리고 해 그림자를 보며 서신을 바라시니, 부합하시는 것은 신처럼 응하고 계산하신 것은 빠트린 책략이 없습니다.



정관정요집론(3)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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