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貞觀政要集論(3)

정관정요집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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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정요집론(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貞觀十六年 太宗謂侍臣曰 朕近讀劉聰傳注+① 劉聰傳:去聲. 劉聰, 字玄明, 元海第四子, 本新興匈奴, 以漢高祖嘗以宗女妻冒頓, 故子孫冒劉姓. 元海於晉永興中立國, 是爲前趙. 聰殺兄自立.하니 聰將爲劉后注+② 聰將爲劉后:爲, 去聲. 后, 太保劉殷之女, 爲左貴嬪, 後立爲后.하여 起䳨儀殿이어늘 廷尉陳元達注+③ 廷尉陳元達:廷尉, 獄官也. 元達, 字長宏, 後部人. 本姓高, 以生月妨父, 改姓陳. 切諫하니 聰大怒하여 命斬之한대
정관貞觀 16년(642)에 태종太宗근신近臣에게 말하였다. “이 근래 〈유총전劉聰傳〉을 읽었는데注+(전기)은〉 거성去聲이다. 유총劉聰현명玄明이니, 원해元海(유연劉淵)의 넷째 아들인데 본래 새로 일어난 흉노匈奴이며, 나라 고조高祖종녀宗女묵특冒頓(묵특)의 처로 보낸 적이 있다. 그러므로 자손이 유씨성劉氏姓을 썼다. 원해는 나라 영흥永興 연간(304~306)에 나라를 세우니 전조前趙이다. 유총이 형을 죽이고 스스로 즉위하였다., 유총劉聰유후劉后를 위해서注+(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태보太保 유은劉殷의 딸이며 좌귀빈左貴嬪이 되었다가 뒤에 황후皇后에 세워졌다. 황의전䳨儀殿을 지으려 하자, 정위廷尉 진원달陳元達注+정위廷尉옥관獄官이다. 원달元達장굉長宏이며 후부後部(흉노匈奴 북부北部) 사람이다. 본래 성은 이며 태어난 달이 아버지에게 좋지 않다고 하여 성을 으로 고쳤다. 간절히 간언하니, 유총이 크게 노하여 그를 목 베라고 명령하였소.
劉后手疏啓請하되 辭情甚切이라 聰怒乃解하고 而甚愧之注+④ 聰怒乃解 而甚愧之:晉, “劉聰將起殿於後庭, 陳元達切諫, 聰大怒曰 ‘吾爲萬機主, 問汝鼠子乎.’ 將出斬之.” 時在逍遙園李中堂, 劉后聞之, 密勅停刑. 上手疏曰 ‘今宮室已備, 宜愛民力, 廷尉之言, 四海之福也. 陛下宜加封賞, 而更誅之, 四海謂陛下如何哉. 陛下今興工費廣, 爲妾營殿, 而殺諫臣, 使天下罪妾, 妾何以當之. 願賜死, 以塞陛下之過.’ 聰覽之, 命引元達, 謝之曰 ‘外輔如公, 內輔如后, 朕復何憂.’ 更命園曰納賢園, 堂曰愧賢堂.”
유후가 직접 상소를 써서 아뢰어 청하였는데 말과 정리가 매우 절절하였기 때문에 유총이 노여움을 풀고 매우 부끄러워하였소.注+진서晉書》 〈유총재기劉聰載記〉에 “유총劉聰후정後庭에 전각을 지으려고 했는데, 진원달陳元達이 절실하게 간하여 막자, 유총이 크게 노하여 말하였다. ‘내가 만사萬事를 총괄하는 군주가 되어 어찌 너 같은 쥐새끼에게 묻겠는가. 그를 데리고 나가서 참수하라.” 〈진원달이 끌려가다가〉 그때 소요원逍遙園이중당李中堂〈의 기둥을 잡고 울부짖고〉 있자, 유후劉后가 그 소식을 듣고 비밀 칙서를 내려 형벌을 정지하게 하였다. 그리고 직접 상소를 써서 올려 말하였다. “지금 궁실이 이미 갖추어져서 마땅히 백성의 힘을 아껴야 하니 정위廷尉의 말은 천하의 복입니다. 폐하께서 마땅히 봉지와 포상을 더하여야 할 터인데 그를 참수하려 하니 천하 사람들이 폐하를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폐하께서 지금 공사를 일으켜 비용이 많은 데다 첩을 위하여 전각을 짓느라고 간언하는 신하를 죽여서 천하 사람들이 첩을 탓하게 한다면 첩이 어찌 그것을 감당하겠습니까. 첩에게 죽음을 내리시어 폐하의 과실을 막기를 원합니다.” 유총이 그것을 보고 진원달을 데리고 오게 하여 사과하며 말하였다. ‘밖에서 보필함이 과 같고 안에서 보필함이 황후와 같다면 짐이 다시 무엇을 근심하겠소.’ 다시 명하여 소요원을 납현원納賢園으로 바꾸고, 이중당을 괴현당愧賢堂으로 바꾸라고 하였다.
人之讀書 欲廣聞見以自益耳 朕見此事 可以爲深誡이라
사람이 독서를 하는 것은 견문을 넓혀서 자기에게 보탬이 되게 하려는 것이니, 이 이 일이 깊이 경계로 삼을 만하다고 생각하였소.
比者注+⑤ 比者:比, 音鼻.欲造一殿하고 仍構重閣注+⑥ 仍構重閣:重, 平聲.하여 今於藍田注+⑦ 於藍田:藍田, 縣名, 今仍舊, 屬奉元路.採木하여 竝已備具러니 遠想聰事하고 斯作遂止
근래에注+(근래)는 이다. 전각 하나와 이어서 고층 누각을 지으려 하여注+(거듭)은 평성平聲이다. 지금 남전藍田에서注+남전藍田의 이름이고 지금도 옛날 그대로이며 봉원로奉元路에 속한다. 목재를 채집하여 모든 준비가 다 되었는데, 멀리 유총의 일을 생각하고서 이 작업을 마침내 중지하였소.”
【集論】愚按 隋煬帝窮土木之工하고 極宮室之麗하여 迨有甚於紂之하여 卒致家國不保 然亦隋文帝有以啓之也
내가 살펴보건대, 수 양제隋 煬帝토목공사土木工事를 끝까지 하고 궁실宮室의 화려함을 지극히 하여 주왕紂王경궁瓊宮녹대鹿臺보다 심함이 있어서 마침내 국가를 보존하지 못하였으나 또한 수 문제隋 文帝가 그 길을 열어놓은 것이다.
文帝興王之君也 天下旣平 而仁壽之役으로 民不勝困이라 是以後嗣傚之하여 殆有甚焉이라
문제文帝는 왕업을 일으킨 군주였는데 천하가 태평해지고 나자 인수궁仁壽宮의 공사로 백성들이 곤궁함을 감당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후계자가 그것을 본받아서 그보다 더 심하게 하였다.
太宗取孤隋殘弊之天下하니 所宜休息이라
태종太宗이 고립된 나라의 피폐한 천하를 차지하였으니 쉬는 것이 마땅하다.
幸而營造之事 或納人言而止하고 或監前古而止하니 其過隋文遠矣
요행히 건물을 짓는 일에 남의 말을 받아들여 그치거나 옛날의 일을 살펴 그치니, 수 문제보다 매우 뛰어나다.
觀其言曰 帝王所欲者放逸이오 百姓所不欲者勞弊라하니 以聖人之所謂恕 而推己所不欲하여 勿施於人之心이니
태종이 “제왕이 원하는 것은 방탕이고, 백성이 원하지 않는 것은 수고롭고 피곤한 것이오.” 라고 한 말을 살펴보면, 성인聖人이 말한 , 즉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미루어 보아서 남에게 베풀지 않는 마음으로 한 것이다.
君人者而味斯言也하면 豈惟崇飾宮宇池臺爲然哉리오 樂聲色也 求神仙也 闢土地也 事畋獵也 肆遊觀也 凡非百姓之所欲者
군주가 된 자가 이 말을 음미하면 어찌 궁실과 연못가의 누대樓臺를 높이 꾸미는 일에서만 그렇겠는가. 성색聲色을 즐기고, 신선神仙을 구하고, 영토를 개척하고, 사냥을 일삼고, 유람을 제멋대로 하는 것은 모두 백성이 원하는 것이 아니다.
一以恕之하고 一言行之하니 之道也
한 가지 일로 미루어 헤아리고 한 마디 말로 시행하니 하늘에 국가의 운명이 영원하도록 기원하는 방도이다.
魏徵之復其君曰 陛下若以爲足하면 今日不啻足矣 若以爲不足하면 更萬倍過此라도 亦不足이라하니 此言尤爲君人之格言也
위징魏徵이 다시 그 임금에게 말하기를 “폐하께서 만일 만족스럽게 여기신다면 금일만 만족하지 않을 것이고, 만일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여기신다면 이보다 만 배가 된다 하더라도 또한 만족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라고 하였으니, 이 말은 더욱 임금이 된 사람을 위한 격언格言이다.
或曰 太宗之言 固善矣 之作何居 蓋飛山之作 旣有魏徵之諫하고 而翠微玉華以有疾避暑어늘 而卽其舊以修之하니 未可以是而求其備也
혹자가 말하기를 “태종의 말이 진실로 좋습니다만, 비산궁飛山宮취미궁翠微宮옥화궁玉華宮을 지은 것은 어찌된 것입니까.” 하였는데, 비산궁을 짓고 나서 위징의 간함이 있었고 취미궁‧옥화궁은 병이 있어 더위를 피하는 곳인데 옛것을 수리한 것이니 이것을 가지고 완비하기를 요구할 수는 없다.
역주
역주1 載記 : 列國에 관한 기록이란 뜻인데, 《晉書》에서는 권말에 江北에서 明滅했던 16國의 역사를 약술하여 붙였다. 역사에 名號를 세웠으나 정통이 아닌 자의 傳記를 ‘載記’라 하였다.
역주2 (記)[豈] : 저본에는 ‘記’로 되어 있으나, 《晉書》 〈劉聰載記〉에 의거하여 ‘豈’로 바로잡았다.
역주3 瓊宮 : 商나라 紂王이 세운 瓊室이다.
역주4 鹿臺 : 옛날 臺의 이름으로 商나라 紂王의 珠玉錢帛을 저장한 곳이다.
역주5 祈天永命 : 《書經》 〈周書 召誥〉에 보인다.
역주6 飛山翠微玉華 : 唐 太宗이 수리했거나 새로 지은 長安의 궁전 이름이다.

정관정요집론(3)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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