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貞觀政要集論(2)

정관정요집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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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정요집론(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太宗 手詔曰 省前後諷諭注+ 省前後諷諭:省, 悉井切.하니 皆切至之意 固所望於卿也로다
태종太宗이 손수 쓴 조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전후에 걸친 권면의 글을 살펴보니注+(살피다)은 의 반절이다., 모두 간절하고 극진한 내용으로, 본디 경에게 바랐던 것이오.
朕昔在 尙惟童幼 未漸師保之訓注+ 未漸師保之訓:漸, 音尖.하고 罕聞先達之言이러니
짐이 지난날 형문衡門(재야)에 있을 땐 아직 어려서 스승의 가르침에 젖어들지 못하고注+(스며들다, 받아들이다)은 음이 이다. 선현의 말씀을 듣는 경우가 드물었소.
値隋主分崩하여 萬邦塗炭하여 惵惵黔黎注+ 惵惵黔黎:惵, 音蝶. 庇身無所할새
나라 군주가 몰락하자 온 나라가 도탄에 빠져 두려움에 떤 백성들이注+(두려워하다)은 이다. 몸을 보호할 곳도 없었소.
自二九之年으로 有懷拯溺하여 發憤投袂하여 便提干戈하고
짐이 18세 때부터 도탄에 빠져 있는 이들을 구제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분발하여 소매를 떨치고 일어나 창과 칼을 잡고,
蒙犯霜露하여 東西征伐 日不暇給하고 居無寧歲로다
서리와 이슬을 뒤집어쓰면서 동쪽과 서쪽을 정벌하느라 날마다 여유가 없고 편안히 지내는 해가 없었소.
降蒼昊之靈하고 稟廟堂之略하니 義旗所指 觸向平夷
하늘의 영령이 내려오시게 되어 묘당廟堂의 책략을 아뢰니, 의로운 깃발이 가리켜 향하는 곳마다 모두 평정하게 되었소.
弱水流沙注+ 流沙:今屬甘肅. 竝通輶軒之使注+ 竝通輶軒之使:使, 去聲. 輶, 輕車也.하고 被髮左衽注+ 被發左衽:四夷之人也. 皆爲衣冠之域하여 正朔所班 無遠不屆
약수弱水유사流沙(사막) 지역도注+지금 감숙성甘肅省에 속한다. 모두 유헌輶軒( 황제 수레)의 사신이 왕래하였고注+使(사신)는 거성去聲이다. 는 가벼운 수레이다. 머리를 풀어헤치고 옷깃을 왼쪽으로 여미는 오랑캐 지역도注+피발좌임被發左衽은〉 사방 오랑캐에 속한 사람들이다. 모두 의관衣冠(문물)을 갖춘 지역이 되어서 정삭正朔을 나타내는 책력의 반포가 닿지 않는 곳이 없었소.
及恭承하고 寅奉帝圖하여 垂拱無爲하여 氛埃靖息 於玆十有餘年이니
삼가 보력寶曆을 받들고 조심히 제업帝業을 받들며 편안한 무위無爲의 정치를 하며 혼란이 정돈된 지 어느덧 10여 년이 되었으니,
斯盖股肱 罄帷幄之謀하고 爪牙 竭熊羆之力하여 協德同心하여 以致於此로다
이는 고굉股肱(팔다리 같은 문신文臣)의 신하들이 천막 안에서 계책을 극진히 마련하고, 조아爪牙(짐승 발톱 이빨 같은 무신武臣)의 대신들이 웅비熊羆(맹수)의 힘을 다 바쳐 덕과 마음을 하나로 뭉쳐 이런 결과를 이룩한 것이오.
自惟寡薄 厚享斯休하니 每以撫大神器하여 憂深責重이라
덕이 부족하고 재능이 빈약한 내가 이런 아름다움을 후하게 누리고 있는데, 매번 위대한 신기神器(제위)를 어루만지며 걱정이 깊고 책임이 무거워서,
常懼萬機多曠하고 하여 戰戰兢兢하여 하여
만기萬機에 빈틈이 많고 사방의 총명한 말들이 도달하지 못할까 두려워하여 전전긍긍하며 앉아서 아침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詢于公卿하고 以至隸皂 推以赤心이로다
공과 경들에게 묻고, 노예들에게도 다가가 진심을 내보였소.
庶幾明賴하여 一動以鍾石하고 淳風至德 永傳於竹帛하여 克播鴻名하여 常爲稱首로다
그리하여 밝게 보필자들에게 의뢰해서 하나의 행동거지도 종과 돌에 새겨져 순박한 풍습과 극진한 덕이 죽백竹帛(역사)에 영원히 전해져서, 능히 큰 이름을 전파해서 언제나 으뜸이라고 일컬어지기를 바랐소.
朕以虛薄으로 多慚往代어늘 若不任舟楫이면 豈得濟彼巨川이며 不藉鹽梅 安得調夫五味注+ 安得調夫五味:商書高宗命傅說曰 “若濟巨川, 用汝作舟楫.” 又曰 “若作和羹, 爾唯鹽梅.”리오하고
짐이 공허하고 빈약한 재능으로 지난 시대에 견주어 손색이 많은데, 만일 배와 노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저 큰 강물을 건널 수 있으며, 소금과 매실을 빌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다섯 가지 맛을 조절할 수 있겠소.”注+서경書經》 〈상서商書 열명說命 〉에서, 고종高宗부열傅說에게 명하기를 “만일 큰 강물을 건너게 되면 그대를 배와 노로 삼겠다.”라고 하고, 또 〈열명說命 〉에 이르기를 “만일 국의 맛을 조절하게 되면 그대가 소금과 매실이 되어야 한다.”라고 했다.
賜絹三百匹하다
그러면서 비단 300필을 하사했다.
【集論】愚按 春秋之世
내가 살펴보건대, 춘추春秋시대에 나라가 매우 쇠약했는데
季子 知其後亡하고 하니
연릉계자延陵季子(계찰季札)는 〈나라가〉 가장 나중에 멸망할 것을 미리 알았고, 나라가 지극히 강력했지만 주공周公은 〈나라에〉 훗날 찬탈과 시해가 많이 벌어질 줄 알았으니,
夫所貴乎聖賢者 以其見禮知政하여 而前知于未然之先也
성현에게 중요시되는 것은 예절을 보고 그 정치를 파악해서 일이 벌어지기 전에 결과를 알아차린다는 점이다.
善乎 魏徵之言曰 閹宦 雖微 爲患特深하니 今日之明 必無此慮 爲子孫計인댄 不可不杜絶其源이여
훌륭하도다, 위징魏徵이 한 말에, ‘환관이 미약한 직책이긴 하나 걱정거리는 매우 크니 오늘날 현명하신 성상에게는 반드시 이러한 우려가 없겠지만 자손을 위한 계책을 세운다면 그 근원을 끊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고 한 말이여!
厥後 唐之中葉 竟以宦者而亂하고 及其末世하여 遂以宦者而亡하니
그 뒤 나라 중엽에 결국 환관 때문에 혼란이 발생하고 말기엔 마침내 환관 때문에 멸망했으니,
徵之明見 雖周公季子라도 何遠之有哉리오
위징의 밝은 견해는 주공周公계자季子에 견준다 해도 어찌 그 차이가 크겠는가.
太宗 斯時 正當著之爲令하여 俾後之子孫으로 世世無得使宦者與政可也어늘
태종太宗이 이때 명령으로 확실하게 법령을 만들어, 후대의 자손들에게 대대로 환관이 정치에 참여할 수 없도록 해야 했는데,
乃不過停其充使하니 是特一時之計耳者耶
외사外使에 충당하는 것을 멈추는 데 지나지 않았으니, 이는 단지 한순간을 위한 계책일 뿐 어찌 먼 후손에게 끼쳐준 도모라 하겠는가.
旣言閹宦之禍하고 復上疏數千言하여 極陳當時之失하니
위징이 환관의 재앙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서 다시 수천 마디 말을 올려 당시의 문제점에 대해 극진하게 진술하였는데,
史稱徵諫疏二百餘篇이로되 其見於世者 則此其最詳者也
역사 기록에 위징이 간언한 상소가 200여 편이라 일컬어지지만 세상에 뚜렷이 나타난 것은 이것이 가장 상세하다.
太宗答詔丁寧하고 寵賜優渥하니 君臣相與之際 何其盛哉
태종이 답한 조칙이 간곡하고 총애로 하사한 것이 넉넉하니, 임금과 신하가 서로 어울린 관계가 어찌 이토록 성대하단 말인가.
역주
역주1 衡門 : 두 개의 기둥에 한 개의 橫木을 가로질러 만든 사립문으로, 재야 생활을 말한다.
역주2 寶曆 : 帝位의 다른 표현이다.
역주3 四聰不達 : 《書經》 〈虞書 舜典〉에 “사방으로부터 잘 들리도록 하셨다.[達四聰]”라고 한 것에 ‘不’을 보태 그것을 못했다고 겸손하게 표현한 것이다.
역주4 坐以待旦 : 《孟子》 〈離婁 下〉에 보인다.
역주5 衞至弱也 季子知其後亡 : 《御選古文淵鑒》 권49 〈上神宗皇帝書〉 徐乾學의 注에 “季札이 衛나라에 가서 말하기를 ‘衛나라는 君子가 많아서 걱정이 없다. 衛나라는 戰國에서 가장 뒤에 망할 것이다.’ 하였다.[季札適衛曰 衛多君子 未有患也 衛於戰國 爲最後亡]”라고 하였다. 이는 고매한 인품으로 중국의 훌륭한 사대부와 교분을 맺고 외교적 사명을 완수할 것이라는 뜻이다. 季子는 季札로, 春秋시대 吳王 壽夢의 넷째 아들인데, 왕위를 전해주려 함에도 받지 않고 延陵에 봉해져서 호를 延陵季子라고 하고, 魯 襄公 29년에 魯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음악을 청해 듣는 등 上國을 歷聘하며 당시의 현인들과 교유하였다. 《史記 권31》
역주6 齊至强也 周公知其後多簒弑 : 《漢書》 〈地理志〉에 “옛적에 太公이 처음 봉지를 받자, 周公이 어떻게 齊나라를 다스릴지를 물었는데, 태공이 말하기를 ‘현자를 등용하고 공로를 숭상하겠소.’라고 하니, 周公이 말하기를 ‘後世에 반드시 찬탈과 시해하는 신하가 있을 것이오.’ 하였다.[昔太公始封 周公問何以治齊 太公曰 擧賢而上功 周公曰 後世必有簒殺之臣]”라고 하였다.
역주7 貽厥孫謀 : 《詩經》 〈大雅 文王有聲〉에 보인다.

정관정요집론(2)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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