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貞觀政要集論(2)

정관정요집론(2)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정관정요집론(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貞觀十年 太宗謂荊王元景漢王元昌吳王恪魏王泰等曰
自漢已來 帝弟帝子受茅土居榮貴者甚衆한대 惟東平及河間王注+ 惟東平及河間王:東平王, 名蒼, 漢光武子也. 好經書, 有智思, 文稱典雅, 明帝問 “處家何事最樂.” 王曰 “爲善最樂.” 諡曰憲. 河間王, 名德, 漢景帝子也. 博學有德, 武帝時奏對, 推道術而言, 得事之中, 諡曰獻. 最有令名하여 得保其祿位
如楚王瑋之徒注+ 如楚王瑋之徒:瑋, 音葦. 楚王瑋, 晉武帝第五子也. 元康中掌兵權, 剛狠好殺, 因矯詔殺太宰汝南王亮太保衛瓘, 賈后遂執瑋, 下廷尉斬之, 諡曰隱. 覆亡非一이니 竝爲生長富貴注+ 竝爲生長富貴:爲, 去聲. 後同.하여 好自驕逸所致注+ 好自驕逸所致:好, 去聲.
汝等鑑誡하여 宜熟思之하고
揀擇賢才하여 爲汝師友하노니 須受其諫諍하여 勿得自專하라
我聞이라하니 信非虛說이라
比嘗注+ 比嘗:比, 音鼻.夢中見一人하니 云虞舜이라하여늘 我不覺竦然敬異호니 豈不爲仰其德也
向若夢見桀紂런들 必應斫之注+ 必應斫之:應, 平聲.리라
桀紂雖是天子 今若相喚作桀紂 人必大怒
顔回閔子騫注+ 顔回閔子騫:顔回, 字子淵, 閔損, 字子騫, 皆孔子弟子, 以德行稱.郭林宗黃叔度注+ 郭林宗黃叔度:二人皆後漢時高尙之士. 郭林宗, 名泰, 太原人也. 范滂稱之曰 “隱不違親, 身不絶俗, 天子不得臣, 諸侯不得友.” 黃叔度, 名憲, 汝南人也. 郭林宗稱之曰 “汪汪若千頃陂, 澄之不淸, 淆之不濁, 不可量也.” 雖是布衣 今若相稱贊하여 道類此四賢이라하면 必當大喜리라
故知人之立身 所貴者惟在德行注+ 所貴者惟在德行:行, 去聲. 後德行同.이니 何必要論榮貴리오
汝等位列藩王하여 實封하니 更能克修德行이면 豈不具美也리오
且君子小人本無常이라 行善事 則爲君子 行惡事 則爲小人이니
當須自剋勵하여 使善事 日聞하고 勿縱欲肆情하여 自䧟刑戮하라


정관貞觀 10년(636)에 태종太宗형왕荊王 이원경李元景, 한왕漢王 이원창李元昌, 오왕吳王 이각李恪, 위왕魏王 이태李泰 등에게 말하였다.
나라 이후로 황제의 형제나 아들들은 제후로 봉해져 부귀영화를 누린 자들이 많았는데, 오직 동평왕東平王하간왕河間王만이注+동평왕東平王은 이름이 이니, 한 광무제漢光武帝의 아들이다. 경서經書를 좋아하고 지혜가 있었으며, 문장이 전아典雅하다고 일컬어졌는데, 명제明帝가 “집에 있을 때 무슨 일이 가장 즐거운가?”라고 묻자, 동평왕이 대답하기를 “을 하는 것이 가장 즐겁습니다.”라고 하였다. 시호는 이다. 하간왕河間王은 이름이 이니, 한 경제漢 景帝의 아들이다. 박학하고 덕이 있었으며, 무제武帝 때에 주대奏對를 하면서 도술道術을 미루어 말을 하였는데, 일의 실상에 들어맞았다. 시호는 이다. 가장 훌륭한 명성을 남기고, 그 복록과 작위를 보존하였다.
초왕楚王 사마위司馬瑋의 무리와 같이注+이다. 초왕楚王 사마위司馬瑋진 무제晉 武帝의 다섯째 아들이다. 원강元康(진 혜제晉 惠帝 연호) 연간에 병권兵權을 잡아 강퍅하여 죽이기를 좋아하고 이어서 조서를 위조하여 태재太宰 여남왕汝南王 사마량司馬亮, 태보太保 위관衛瓘을 죽였다. 가후賈后가 마침내 사마장을 잡아 정위廷尉(법관)에게 회부하여 참수하였다. 시호는 이다. 멸망에 이른 자가 비일비재하였으니, 모두가 부귀하게 태어나 성장하여注+(때문에)는 거성去聲이다. 뒤에도 같다. 스스로 교만을 좋아한 탓이다.注+(좋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너희들은 이를 귀감으로 삼아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현명하고 재능 있는 자를 간택하여 너희들의 사우師友로 삼으니, 반드시 그들의 간쟁을 받아들여 전횡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내가 듣기로 덕으로 사람을 복종시킨다고 하였으니, 이는 참으로 빈말이 아니다.
근래에注+(근래)는 음이 이다. 일찍이 꿈속에서 우순虞舜이라 말하는 사람을 보았는데, 나도 모르게 황송하여 경이롭게 여겼으니, 어찌 그 덕을 흠모해서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만일 꿈속에서 를 보았다면 반드시 베어 죽였을 것이다.注+(응당)은 평성平聲이다.
는 비록 천자이기는 하였으나, 지금 만일 로 불린다면 사람들은 반드시 크게 화를 낼 것이다.
안회顔回민자건閔子騫注+안회顔回자연子淵이며, 민손閔損자건子騫으로, 모두 공자孔子의 제자이며, 덕행으로 칭송되었다.곽림종郭林宗황숙도黃叔度注+두 사람은 모두 후한後漢 때의 고상한 선비이다. 곽림종郭林宗은 이름이 태원太原 사람이다. 범방范滂이 그를 칭송하기를 “세상을 피해 숨어도 어버이의 뜻을 어기지 않고, 몸은 속세와 단절하지 않으며, 천자도 신하로 삼을 수 없고, 제후도 벗으로 삼을 수 없다.”라고 하였다. 황숙도黃叔度는 이름이 으로 여남汝南 사람이다. 곽림종郭林宗이 그를 칭송하기를 “마음은 넓기가 천 이랑이나 되는 방죽과 같으니, 맑게 해도 맑아지지 않고 흐리게 해도 흐려지지 않아 측량할 수가 없다.”라고 하였다. 비록 일반 백성들이었지만 지금 만약 서로 칭찬하여 이 네 사람의 현인과 같다고 한다면 반드시 크게 기뻐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입신하는 데에 귀한 것은 덕행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注+(행실)은 거성去聲이다. 뒤의 덕행德行도 같다., 어찌 부귀영달을 논할 필요가 있겠는가.
너희들은 번왕藩王의 지위에 있으면서 실제 봉분 받은 토지의 조세를 먹고 살아가니, 다시 덕행을 잘 닦는다면 어찌 훌륭하게 되지 않겠느냐.
또 군자와 소인은 본래 일정하게 정해진 것이 아니니, 선한 일을 하면 군자가 되고, 악한 일을 하면 소인이 되는 것이다.
마땅히 자신의 사욕을 극복하고 면려하여 좋은 일을 한다는 말이 날마다 들리게 하고 욕망과 감정에 휘둘려 형벌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하라.”


역주
역주1 以德服物 : 《孟子》 〈公孫丑 上〉의 “덕으로 남을 복종시키는 것은 진심으로 기뻐서 복종하는 것이니 70명의 제자가 공자에게 복종한 것과 같다.[以德服人者 中心悅而誠服也 如七十子之服孔子也]”에서 유래한 것이다.
역주2 家食 : 자기 집에서 밥을 먹는다는 뜻으로, 녹봉을 받지 않고 봉토의 조세로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周易》 大畜卦의 “집에서 먹지 않게 되면 길하다.[不家食吉]”에서 유래한 것이다.

정관정요집론(2)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