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貞觀政要集論(2)

정관정요집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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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정요집론(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貞觀十六年 太宗 謂侍臣曰
當今國家何事最急 各爲我言之注+ 各爲我言之:爲, 去聲, 後爲朕同.하라하니
尙書右僕射高士廉注+ 尙書右僕射高士廉:高士廉, 名儉, 以字行. 初秦王薦爲治中, 王爲皇太子, 授右庶子, 旣卽位, 爲吏部尙書, 封許國公. 後遷僕射, 攝太傅, 掌機務, 二十一年卒.曰 養百姓 最急하니이다
黃門侍郞劉洎曰 撫四夷急하니이다
中書侍郞岑文本曰 傳稱爲急注+ 傳稱道之以德 齊之以禮義爲急:傳, 去聲.이니이다
諫議大夫褚遂良曰 卽日 四方 仰德하여 不敢爲非어니와
但太子諸王 須有定分이라
陛下宜爲萬代法하여 以遺子孫注+ 以遺子孫:遺, 去聲.이니 此最當今日之急하니이다
太宗曰 此言 是也로다 年將五十이니 已覺衰怠
旣以長子 東宮注+ 旣以長子 守器東宮:長, 音掌.이나 諸弟及庶子 數將四十이니 心常憂慮 在此耳로다
但自古嫡庶無良이면 何嘗不傾敗家國리오
公等 爲朕하여 搜訪賢德하여 以輔儲宮하고 爰及諸王 咸求正士하라
且官人事王 不宜歲久 歲久則分義情深하여 非意闚𨵦注+ 則分義情深 非意闚𨵦:分, 去聲. 闚, 音窺, 𨵦, 音兪, 窺伺貌. 多由此作이라
其王府官寮 勿令過注+ 勿令過四考:令, 平聲.하라
【集論】唐氏仲友曰 太宗 不知溺愛之在己하여 獨欲責之保傅王者하고 又令王府官不得過四考 何也
彼誠賢者 雖終身而未足하고 誠不賢 一日猶不可어늘 況四考乎
愚按 國家急務 養百姓也 撫四夷也 道德齊禮也 若高士廉劉洎岑文本之言 皆急務也
高士廉高士廉
而褚遂良則以太子諸王須有定分으로 爲當今之急
考其時하니 承乾之惡已著하고 魏王泰窺伺之情頗露하며
漢王同惡之迹益彰하니 遂良之言 宜其爲急務也
非以養百姓撫四夷道德齊禮 爲不急也
太宗不思所以正定分하고 而責備於人 抑末矣
且踰年而有어늘 方且曰 公等爲朕搜訪賢德하여 以輔儲宮하라하니 又何益之有哉


정관貞觀 16년(642)에 태종이 근신들에게 말하였다.
“지금 국가의 가장 급한 일은 무엇인가? 각자 나를 위하여 말해보시오.”注+(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뒤의 위짐爲朕도 같다.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 고사렴高士廉注+고사렴高士廉은 이름이 이니, 로 세상에 알려졌다. 처음에 진왕秦王이 추천하여 치중治中이 되었다가 진왕이 황태자가 되자 우서자右庶子에 제수되었으며, 제위에 오르고 나서는 이부상서吏部尙書에 제수되어 허국공許國公에 봉해졌다. 후에 복야僕射로 승진하였으며 태부太傅를 겸직하고 기무機務를 관장하다가 정관貞觀 21년(647)에 세상을 떠났다. 말하였다. “백성들을 양육하는 것이 가장 급합니다.”
황문시랑黃門侍郞 유계劉洎가 말하였다. “사방의 오랑캐를 위무하는 일이 가장 급합니다.”
중서시랑中書侍郞 잠문본岑文本이 말하였다. “기록에서 ‘덕으로 이끌고 예의로 가지런히 한다.’고 말한 뜻이 가장 급합니다.”注+(기록)은 거성去聲이다.
간의대부諫議大夫 저수량褚遂良이 말하였다. “지금은 사방에서 폐하의 덕을 우러러보고 있어 감히 그릇된 행동을 하지 못하지만,
다만 태자太子제왕諸王들에 대해서는 일정한 분수가 있어야 합니다.
폐하께서는 마땅히 만 대의 법을 제정하여 자손에게 남겨야 할 것이니注+(남기다)는 거성去聲이다., 이것이 오늘 당면한 급선무입니다.”
태종이 말하였다. “이 말이 옳소. 짐의 나이가 오십을 바라보니, 이미 기운이 쇠하고 나른함을 느끼고 있소.
이미 장자長子동궁東宮의 태자로 삼았으나注+(우두머리)은 음이 이다 여러 아우와 서자庶子가 40명쯤 되니, 항상 우려하는 마음이 여기에 있을 뿐이오.
다만 예로부터 적자와 서자가 어질지 못하면 어찌 나라가 기울어 멸망하지 않은 적이 있었소?
공들은 짐을 위하여 현명하고 덕이 있는 인재를 찾아서 태자를 보좌하게 하고 아울러 제왕諸王들까지도 모두 올바른 선비를 찾도록 하시오.
또한 관리가 왕을 섬김이 오랜 세월을 지속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니, 세월이 오래되면 정분情分이 깊어져서 뜻밖에 자리를 엿보는 것이注+(분수)은 거성去聲이다. 는 음이 이며, 𨵦는 음이 로, 엿보는 모양이다. 대부분 이로부터 생겨나니,
왕부王府의 관료들이 4년 넘게 있지 않도록 하시오.”注+(하여금)은 평성平聲이다.
당중우唐仲友가 말하였다. “태종太宗이 편애함이 자신에게 있는 줄을 모르고 다만 왕들의 보부保傅(선생)에게 책임을 지우고자 하고, 또 왕부王府 관원들에게 4년 넘게 있지 않도록 한 것은 어째서인가.
저 진실로 어진 이들은 비록 종신토록 곁에 있게 하더라도 충분하지 못하고, 진실로 어질지 못한 이들은 단 하루도 오히려 불가하거늘, 하물며 4년을 할 것이 있겠는가.”
내가 생각하건대, 국가에서 시급히 힘써야 할 일은 백성들을 양육하고, 사방의 오랑캐를 위무하며, 덕으로 이끌고 예로 가지런히 하는 것이니, 고사렴高士廉유계劉洎잠문본岑文本의 말이 모두 급선무이다.
그러나 저수량褚遂良은 태자와 제왕諸王들에게 반드시 일정한 분수를 정해주는 일을 당시의 급선무로 여겼다.
당시를 고찰해보니 이승건李承乾의 악행이 이미 드러났고, 위왕魏王 이태李泰가 태자 자리를 엿보는 마음이 제법 드러났으며,
한왕漢王 이원창李元昌의 동일한 악행의 자취가 더욱 드러났으니, 저수량의 말은 마땅히 급선무로 해야 할 것이었다.
백성들을 양육하고, 사방의 오랑캐를 위무하며, 덕으로 이끌고 예로 가지런히 하는 것이 급선무가 아닌 것은 아니나,
태종이 일정한 분수를 바로잡아 주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남에게 갖추기를 바란 것은 말단적인 것이다.
또 해가 지나 동궁의 변란이 일어났는데도 또 말하기를 “공들은 짐을 위하여 현명하고 덕이 있는 인재를 찾아서 태자를 보좌하게 하라.” 고 하였으니, 또 무슨 도움이 있겠는가.


역주
역주1 道之以德 齊之以禮義 : 《論語》 〈爲政〉에는 “道之以德 齊之以禮”라고 하여 ‘義’자가 없다.
역주2 守器 : 宗廟 기물을 지킨다는 뜻으로, 太子를 말한다.
역주3 四考 : 네 번 考課라는 뜻으로, 4년을 말한다. 考는 1년에 한 번 시행하였다.
역주4 元昌 : 619~643. 唐 高祖 李淵의 일곱째 아들이다. 太宗의 異母弟이다. 魯王에 봉해졌다가 漢王으로 改封되었다. 太子 李承乾의 謀反 事件에 참여하였다가 죽임을 당했다. 《舊唐書 권64 漢王元昌傳》
역주5 東宮之變 : 魏王 李泰가 태종의 총애를 받자, 皇位 계승이 위태롭다 여긴 태자 李承乾이 漢王 李元昌, 宰相 侯君集과 손을 잡고 정변을 일으켜 황위에 오르려다가 발각되어 이원창‧후군집은 사사되고, 이승건은 廢庶人이 된 사건을 말한다.

정관정요집론(2)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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