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貞觀政要集論(4)

정관정요집론(4)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정관정요집론(4)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貞觀十三年 魏徵恐太宗不能克終儉約하고 近歲頗好奢縱注+① 近歲頗好奢縱:好, 去聲, 後同.하여
정관貞觀 13년(639)에 위징魏徵태종太宗이 검약을 끝까지 잘하지 못하고 근래에 사치와 방종을 매우 좋아함을注+(좋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뒤에도 같다. 염려하여
上疏諫曰 臣觀自古帝王 皆欲傳之萬代하여
상소를 올려 간언하였다. “신이 살펴보건대 예로부터 제왕이 천명을 받아 나라를 세울 적에 모두 만대까지 전하려 하여 자손에게 계책을 남겨주었습니다.
故其垂拱巖廊하여 布政天下호대
그러므로 조정에서 편안히 팔짱을 끼고 일삼는 바 없이 천하에 정치를 펼쳤는데,
其語道也 必先淳朴而抑浮華하고 其論人也 必貴忠良而鄙邪佞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도를 말할 때는 반드시 순박함을 우선하고 화려한 것을 억눌렀으며, 사람됨을 논할 때는 반드시 충성스럽고 선량함을 귀하게 여기고 간사하고 아첨함을 비루하게 여겼으며,
言制度也 則絶奢靡而崇儉約하고 談物産也 則重穀帛而賤珍奇
제도를 말할 때는 사치와 낭비를 끊고 검약을 숭상하였으며, 생산물을 말할 때는 곡물과 비단을 소중히 여기고 진기한 물건을 천시하였습니다.
然受命之初 皆遵之以成治하고 稍安之後 多反之而敗俗하니 其故何哉
그러나 천명을 받은 처음에는 모두 이를 따라서 치세를 이룩하였고, 차츰 안정된 후에는 대부분 이와 반대로 하여 풍속을 무너뜨렸으니, 그 까닭은 무엇이겠습니까.
豈不以居萬乘之尊하며 有四海之富하여 하고 所爲而人必從이라
어찌 만승萬乘의 높음에 있고 사해의 부유함을 소유하여서 말하는 것에 거역하는 자가 없고 행하는 것에 사람들이 반드시 따르므로,
公道溺於私情하며 禮節虧於嗜欲故也리오
공평한 도리는 사사로운 정에 빠지고 예절은 기호와 욕망에 훼손되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語曰 이요 非行之難이라 終之斯難이라하니 所言信矣니이다
속담에 이르기를 ‘아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행하는 것이 어렵고, 행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끝맺음을 하기가 어렵다.’라고 하였으니, 말이 믿을 만합니다.
역주
역주1 受圖 : 大禹가 河圖를 받은 고사로, 帝王이 天命을 받아 등극함을 말한다.
역주2 定鼎 : 나라를 세우고 국도를 정함을 말한다. 夏禹氏가 九鼎을 만들어 九州를 상징하고 나라를 전하는 重器로 삼았다. 《春秋左氏傳》 宣公 3년에 “成王이 鼎을 郟鄏(겹욕)에 놓았다.[成王定鼎于郟鄏]”라고 하였다.
역주3 貽厥孫謀 : 《詩經》 〈大雅 文王有聲〉에 보인다.
역주4 出言而莫己逆 : 《論語》 〈子路〉의 “나는 임금 된 것이 즐거울 것이 없고, 단지 내가 말을 하면 사람들이 나의 말을 어기지 않는 것이 즐겁다.[予無樂乎爲君 唯其言而莫予違也]”에서 유래하였다.
역주5 非知之難 行之惟難 : 《書經》 〈商書 說命 中〉의 “아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행하는 것이 어렵다.[非知之艱 行之惟艱]”을 변용한 것이다.

정관정요집론(4)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